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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연 소년들》:
아프가니스탄에서 실려 온 아연관

《아연 소년들》은 1989년 처음 출판됐다.

벨라루스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 참전자, 전사자 가족의 이야기를 썼다.

픽션이 아닌 다큐 문학이다. 작가가 직접 아프간의 전장과 소련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기록했다.

《아연 소년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문학동네, 2017년, 512쪽, 16,000원

아프가니스탄 전쟁

1979년 12월 소련의 권력자들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했다.

소련은 탱크와 헬기로 공격하고 거주지와 농경지를 폭격하고 불태웠다. 독가스까지 사용했다.

1000만~1500만 개의 지뢰를 매설했다. 아프간 전사의 주검에도 지뢰를 설치해 시신을 수습하러 온 가족을 폭살했다.

아프가니스탄의 2만 4000개 마을 중 절반이 파괴됐다.

최소 50만 명이 죽고 최소 100만 명이 불구가 됐다. 800만 명이 피난을 떠났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인구가 1500만 명이었으니, 3분의 2가 죽거나 다치거나 난민이 된 것이다.

소련은 도시를 점령했지만 농촌에서 저항에 시달렸다. 파병됐던 소련군의 4분의 3이 부상을 입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 최소 1만 5000명이 전사했다.

죽은 소련 병사는 아연관에 담겨 가족에게 돌아왔다. 아연관이 밀봉돼 가족은 시신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어린 병사들이 많이 죽었다. 그들을 “아연 소년들”이라 불렀다.

아연관의 소년들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지독한 냉소주의에 빠지거나 소외와 울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아연 소년들》에는 그들의 한탄, 독백, 분노가 있다. 전쟁과 군대가 벌이는 파괴와 학살, 부패와 폭력의 실상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거의 가장 가난한 하층민들에게 패배하고 있는 제국주의 군대의 치부를 엿볼 수 있다.

사기저하, 극도의 혼란스러움, 수치심, 두려움, 죄책감, 배신감.

“영웅적 모험”이나 “고귀한 대의” 따위는 티끌만큼도 없다.

소련 병사들은 1950년대 만들어진 녹슨 통조림을 먹었고, 알코올과 약이 없어 죽어갔다. 전사자들을 관에 넣을 때는 비용을 아끼려고 제2차세계대전의 낡아 빠진 군복을 입혔다.

작가는 아연 소년들과 그들을 전장으로 내몬 권력자들을 분리해서 바라본다. 이런 관점 덕분에 전쟁 반대에 힘이 실린다.

《아연 소년들》은 전쟁을 반대한다. 다만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보다는 인간 삶에 대한 황폐화라는 의미에서 반대한다.

아프간 전쟁 패배의 여파와 1991년 소련 해체로 국가가 직접 이 책을 문제 삼지는 못했다.

대신 작가는 “중상모략”, “반애국주의”, “의도적 명예훼손”에 대한 (의심스러운) 민사소송들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 3부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목격자들》, 《아연 소년들》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 3부작이다. 이 3부작을 통해 비통과 탄식의 숨겨진 목소리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2015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쟁 3부작은 비로소 한국과 영어권 등에서 모두 출판됐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소련 여성들의 증언이다. 1985년 뒤늦게 검열된 채 출판됐다. 작가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지만 책은 200만 부가 팔렸다.

같은 해 속편 격인 《마지막 목격자들》이 나왔다. 같은 전쟁터에서 어린 아이로 전쟁을 겪은 이들의 증언이다.

두 권의 책은 어떤 전쟁 역사서보다 전쟁을 겪는 여성과 아동의 경험과 심리에 대해 많은 걸 담고 있다.

“만약 당신이 모르고 있다면 말해줄게요. 전쟁 기간에 어린애였던 사람이 전선에서 싸운 자기 아버지들보다 종종 더 빨리 죽는답니다. 군인이었던 사람보다 더 빨리, 더 빨리요……”

“그렇게 우리는 며칠을 지냈어요. 마을에서 우리끼리요. 사람들은 죽은 채로 쓰러져 있거나 매달려 있었어요.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전부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나중에 어느 낯선 여자와 마주쳤을 때, 우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죠. ‘아줌마와 살래요. 우리끼리 있는 건 무서워요.’ 그 여자 집에는 다른 사내아이 두 명과 우리 두 남매가 있었죠. 아군이 올 때까지 그렇게 살았어요.”

국가는 미디어, 교과서, 기념일과 박물관을 통해 역사를 통제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은 공식 역사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살아가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평안을 빼앗는 괴로운 기억을 스스로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수백 명을 인터뷰하지만, 자신의 관점에서 대화하고 질문하고 선택하고 발췌한다. 그는 수동적인 기록가가 아니다.

체르노빌과 우크라이나 전쟁

소련 해체 이후에도 벨라루스 정부와 우익은 그를 위협하고 협박했다. 2000년대에는 거의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전에 10년 동안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등지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집필해 1997년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출판했다.

국내에서도 화제였던 미국 HBO의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2019)은 이 책과 에피소드가 거의 같거나 겹친다.

둘 다 기꺼이 추천한다. 〈체르노빌〉은 사실적이고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매혹적이다. 울먹이느라 읽기 힘들다.

핵 재난은 끔찍하고 암울했지만 그게 이야기의 다는 아니다. 높으신 양반들의 소름끼치는 비열함과 정반대로 평범한 사람들은 놀라운 용기와 연대의식을 보여줬다.

2020년 벨라루스에서 반독재 대중투쟁이 일어났지만 독재자 루카셴코는 권좌를 지켰다. 스베틀라나는 다시 벨라루스를 떠나야 했다. 그의 책과 이름도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스베틀라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했다. 러시아군을 돕는 벨라루스 정부도 비판했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의 확전은 비판하지 않았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독재자들에 반대하느라 미국과 나토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이 전쟁이 양대 제국주의의 대리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미국과 서방 모두 문제의 원인이다. 러시아 정부와 미국 정부 둘 다 전쟁광이다. 근거는 너무 많다. 아프가니스탄도 한 예다.

지난 세기 10년간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폭격하고 학살했다. 이번 세기 20년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폭격하고 학살했다.

이들 권력집단은 전쟁과 학살의 범죄집단이다. 야만을 멈추려면 러시아와 미국과 나토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스베틀라나의 입장 때문에 그가 전해 준 목소리들이 빛을 잃을 이유는 없다

《아연 소년들》과 다른 세 책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반전, 반핵, 반제국주의 관점을 북돋을 수 있다.

《아연 소년들》은 매번 울음을 견디기 힘들다. 다시 읽어도 무심코 펼쳐도 어느 페이지에서 시작해도 그럴 정도다.

그러니 낭독 모임을 해도 좋겠다. 원하는 부분을 각자 고르고 서로 돌아가면서 낭독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유익한 경험과 기억이 더 강화될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 전쟁과 진정한 전쟁기계(이 체제)를 어떻게 멈출지 토론할 수도 있다.

아래의 인용 글들은 전체 512쪽인 《아연 소년들》의 극히 일부분이다.

어떤 병사는…… 도자기에 보석에 장신구, 양탄자…… 별의별 것을 다 가져왔더라고요. 모두 전투가 있을 때 마을에 들어가 뺏어온 것들이죠. 돈을 주고 사거나 물물교환을 하는 병사들도 있었고요…… 탄창으로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마스카라, 파우더, 아이섀도 등이 든 화장품 세트를 손에 넣을 수 있었어요. 탄약통은 끓여서 팔았어요……

지휘관이고 사병이고, 전쟁영웅이고 겁쟁이고 가릴 것 없이 모두 장사를 했죠.

자동소총의 총검, 군용차의 거울, 예비부속품들도 걸핏하면 사라지고…… 포상으로 받은 메달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사병, 척탄병

나는 구석진 곳이 무서웠어요. 집에서도 구석에 갈 일이 있을 때…… 구석이 앞에 보이면 그 순간 속이 오그라들면서 의심부터 들었어요. ‘저 구석에 누가 있으면 어쩌지?’ 한 일 년은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섭더라고요. 방탄조끼도 없고, 전투모도 없고, 총도 없는 게 꼭 벌거벗은 것만 같았거든요.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울리면 이마가 식은땀으로 흥건해져요…… 꼭 총 쏘는 소리처럼 들려서요! 그런데 어디서 총을 쏘는 거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려요. 그러다 책장 선반에 눈길이 멈추면서 정신이 들어요…… 아, 아! 여긴 우리집이지……

사병, 동력화 보병대

우리는 장례식에서조차 진실을 말할 수 없었어요. 그 병사들은 지뢰에 몸이 산산조각 났는데…… 사람이 양동이 반만큼의 살점으로 남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런데도 우리는 ‘차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식중독으로 세상을 떴다.’고 말해야 했죠. 그런 병사들이 수천 명에 이르자, 그제야 유족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일이 허락되었어요. 시신들은 그래도 익숙해지더라고요. 하지만 그 시신들이 모두 그토록 젊고 내 피붙이 같은, 작은 소년들이라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간호사

점심시간이 되자 난데없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보드카 상자들이 속속 도착했어요.
―이열 종대로 집합!
대열을 이루자 곧바로 몇 시간 후면 우리를 태우러 비행기가 도착할 거라는 공지가 뒤따랐어요. 우리가 서약한 대로 군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으로 출발한다고요.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요! 우리는 순식간에 공포와 혼란에 휩싸였고 대열은 아수라장이 됐어요. 입을 꼭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 짐승처럼 길길이 날뛰는 사람. 누구는 분노에 치를 떨며 눈물을 흘리거나 온몸에 마비가 왔고, 또 누구는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 추악한 속임수에 충격을 받아 그대로 기절해버렸죠. 그래서 보드카를 준비했던 거예요. 술을 먹여서 우리를 달래고 구슬리려고요. 보드카를 마시고 술기운이 머리까지 오르자 탈영을 시도하는 병사들이 생겼고, 장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병사들까지 있었어요. 하지만 소총으로 무장한 다른 병사들이 철통같이 포위한 채 우리를 비행기 쪽으로 떠밀었어요. 우리는 짐짝처럼 비행기에 태워졌어요. 텅 빈 비행기의 쇳덩어리 몸통 안으로 내동댕이쳐진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졌어요……

사병, 운전병

많은 장교들이 여기도 소련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어요. 병사들을 마음대로 구타하고 함부로 모욕을 줘도 된다고요. 그런 장교들은 시신으로 발견되곤 했죠…… 전투중에 등에 총을 맞고서……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찾아내요?

민간인 여성 복무자

군위원회에서 나온 대위가 맨 먼저 우리집을 찾아왔어요.
―어머니, 마음을 강하게 먹으세요……
―우리 아들은요?
―여기, 민스크에 있습니다. 지금 데려오는 중입니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아들, 나의 작은 태양!
나는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 대위에게 달려들었어요.
―왜 너는 살아 있고 우리 아들은 아니지? 너는 이렇게 건장하고 이렇게 건강한데. 우리 아들은 얼마나 조그만데…… 너는 어른이고 우리 아들은 아직 아이라고. 왜 당신은 살아 있는 거냐고?
관이 도착했어요. 나는 관뚜껑을 두드리며 아들을 불렀어요.
―아들, 엄마의 작은 태양! 아들, 엄마의 작은 태양!
지금은 아들을 만나러 무덤으로 가요. 묘비 위로 털썩 쓰러져 묘비를 꼭 껴안죠.
―아들아, 나의 작은 태양아……

어머니

“제군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나 자네들이 목격한 일들에 대해 쓸데없는 말은 삼가길 바란다.” 국가 기밀이라나요! 10만 명이나 되는 자국 병사들이 남의 나라에 가 있는데 기밀이라니요. 심지어 카불의 날씨가 얼마나 무더운지도 비밀에 부쳐야 했다고요……

병사들이 의사들에게 체키[돈]를 주고 간염환자의 오줌을 구입해 마셨어요. 두 컵씩이요. 당연히 탈이 생겼죠. 그렇게 의병제대 판정을 받아냈어요. 자기 손가락을 일부러 쏘는 것도 봤어요. 또 기관총의 노리쇠로 제 몸을 불구로 만드는 것도 봤고요……

사병, 통신병

우리는 총을 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훈련중에 몇 번이나 총을 쏴봤는지 알아요? 격발사격 세 번에 연발사격 여섯 번이 전부였어요……

우리가 도착하기 4일 전에 ‘젊은이[이등병]’하나가 전역병들[장기복무병]의 막사로 다가가 수류탄을 던졌어요. 전역병 일곱이 그 자리에서 그냥, 찍!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죠. 그런 다음 젊은이는 자신의 입안에 총을 쐈고요. 그대로 뇌가 날아가버렸죠.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은 모두 전투중에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어요.

사병, 저격수

그들은 우리가 ‘강도떼들’[아프간 전사들]과 싸운다고만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10만이나 되는 정규군이 9년 동안 오합지졸의 ‘강도떼’ 하나 소탕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것도 최첨단 군사기술까지 보유한 군대가?

포로들을 붙잡아 데려와보면, 모두 힘든 노동으로 다져진 농사꾼 팔을 가진, 비쩍 마르고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무슨 강도떼예요? 그냥 평범한 주민들이었다고요!

소령, 포병연대 선전원

1981년이었어요…… 온갖 소문이 돌았어요……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비한 살인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우리가 텔레비전으로 본 것은 소련 병사와 아프간 병사들이 친교를 맺는 장면, 꽃으로 장식된 우리 장갑차들, 그리고 분배받은 땅에 입을 맞추는 농부들이 전부였으니까요……

아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편지를 딱 한 통만 보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은 아름답고 평화로워요. 우리 나라에는 없는 꽃들도 많고 나무에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해요. 물고기도 많아요.”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라 무슨 낙원인 것처럼 썼더라고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요.

병사들이라고 해봐야 무지하고 미숙한 소년들이었어요. 거의 아이들이었다고요. 그런 아이들을 불구덩이에 던져놓았는데, 정작 본인들은 그걸 명예로운 행위로 받아들였어요. 우리가 아이들을 그렇게 키운 거예요.
아들은 아프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달에 전사했어요…… 내 아들…… 내 살과 피…… 어떻게 죽었느냐고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예요.

글을 쓰세요! 진실을 알려요! 모든 진실을요! 나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평생을 두려움 속에 산 걸로 충분해요……

어머니

이번에는 봉합용 실이 필요해서…… 실패를 하나 집어들고, 이어서 또하나를 집어들었는데 둘 다 바스러져 먼지가 돼버렸고요. 전쟁 때부터, 그러니까 1941년부터 창고에 보관돼 있던 것들 같더라고요.

24시간을 꼬박 수술대 옆에만 붙어 있곤 했어요. 어쩔 땐 48시간씩 서 있기도 했고요. 전투중에 부상을 당한 부상병들이 주로 실려왔지만 때로는 난데없이 자기 무릎이나 손가락에 스스로 총을 쏜 병사들이 들어오기도 했어요. 정말 피바다였어요……

―살아 있는 ‘두흐’[아프간 전사] 본 적 있어? 물론 도적놈처럼 생기고 이로 칼을 물고 있었겠지?
집에서 남동생이 물었어요.
―봤지. 젊고 잘생긴 젊은이였어. 모스크바 공과대학을 졸업했대.

간호사

여자친구가 날 떠났어요…… 사랑하는 내 여자가…… 그녀와 2년을 함께 살았어요…… 바로 그날 주전자를 태워먹었죠…… 주전자가 타는데, 그냥 앉아서 주전자가 까맣게 변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거예요. 그런 일이 자주 있어요.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에요.

―좋은 아침은 무슨 좋은 아침! 또 소리질렀잖아. 밤새 소리만 질렀다고.
그러면서 그녀는 아침마다 울었어요.
그녀에게 전부 다 이야기한 건 아니에요……

기억나요…… 그녀는 나를 사랑했어요. 울면서 그랬죠. “당신은 지옥에서 살아온 거니까…… 내가 당신을 구원해줄게……” 사실은 쓰레깃더미에서 기어나온 건데 말이죠.

중사, 척후병

공동묘지에 갔어요…… ‘아프간 참전 용사들’의 무덤을 둘러보고 싶어서요. 아들 무덤에 온 어느 어머니를 우연히 만났는데……
―썩 꺼져요, 지휘관 양반! 당신은 머리가 하얗게 셌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우리 아들은 지금 땅속에 있다고요. 아직 면도도 못해본 어린 내 아들이 말이에요.

소령, 대대 지휘관

장례식에서 다들 침묵을 지켰어요.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입을 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나는 드라이버를 들고 서 있었어요. 아무도 못 뺏어가게 꼭 쥐고서요.
―관 좀 열어줘요…… 아들을 보게 해달라고요……
나는 드라이버로 아연관의 뚜껑을 열고 싶었어요.
남편이 죽으려고 했어요. “살고 싶지 않아. 용서해, 여보, 더이상은 살 수가 없어.” 남편을 설득했죠.
―묘비를 세워야죠. 타일도 붙이고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해야죠.
남편은 잠을 못 잤어요.
―자려고 누우면 우리 아들이 찾아와. 나한테 입을 맞추고 나를 안아줘.

집안 곳곳에 아들 사진들을 걸었어요. 나는 그렇게라도 해야 견디기가 쉬웠지만 남편은 더 힘들어했죠.
―사진들 치워. 우리 아들이 나를 보잖아.
우리는 묘비를 세웠어요. 비싼 대리석으로 멋지게 만들었죠. 아들이 결혼할 때 쓰려고 모아둔 돈을 전부 묘비에 썼어요. 빨간 타일로 무덤을 꾸미고 무덤 주변에 꽃을 심었어요. 달리아를 심었죠. 남편은 무덤 울타리를 색칠했어요.
―이제 할 건 다 했어. 아들이 화를 내진 않을 거야.
다음날 아침에 남편이 직장까지 바래다주더라고요. 돌아가면서 작별인사를 건네고요. 교대 시간이 돼 집에 왔는데…… 남편이 부엌에서 밧줄로 못을 맨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아들 사진 바로 맞은편에서 목을 맸어요.
―아아! 아아! 세상에!

알고 싶어요.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죠? 왜 우리 아들이 아연관에 담겨 와야 해요? 나 자신이 저주스러워요…… 나는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에요. 내가 직접 아들을 가르쳤죠. “의무는 의무인 거야. 아들. 우린 의무를 다해야 해.” 밤이면 모든 이들을 저주하다가 아침이 되면 아들 무덤으로 달려가 용서를 빌어요.
―아들,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용서하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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