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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시의 지하철 ‘착한 적자’ 지원 회피:
적자 핑계로 노동자 조건, 시민 안전 위협 말라

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지난해 철도·지하철의 재정 적자가 크게 늘자, 정부와 서울시, 보수 언론 등이 심각한 문제라고 호들갑을 떨며 적자 줄이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지난해 적자액이 약 1조 1000억 원으로 2019년에 비해 90퍼센트 늘었다. 올해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늘어난 적자는 승객이 감소하고 방역 비용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특히 노인·장애인 등에 대한 무임 수송, 학생 할인, 버스-지하철 환승 지원, 수송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 수준 등이 적자를 늘린 주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와 지자체가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교통복지 제공으로 생겨난 ‘착한 적자’다. 그런 만큼, 적자가 늘어난 것이 문제라고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지자체와 함께) 재정을 대폭 지원해야 한다.

‘착한 적자’에 대해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포스터 ⓒ이미진

그런데 중앙 정부와 서울시는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따른 무임수송 손실이 매해 3000억 원에 가까울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 등이 국가가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기획재정부의 반대와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무관심으로 통과가 무산됐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교통공사노조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적자가 심각해진 지난해 전국 6대 도시철도 운영기관 중 오직 서울교통공사만이 시 보조금을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지하철은 서울의 핵심적인 대중교통인데, 서울시가 ‘착한 적자’에 대한 지원 책임을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관련 노조들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들은 도시철도 무임수송에 대한 정부 보조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서울시에, 서울시는 정부에 서로 공을 떠넘기며 방관해 왔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적자폭이 커지자, 정부와 서울시 모두 서울교통공사에 비용 절감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들도 서울교통공사에 “뼈를 깎는 자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질타하고 나섰다.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시는 700억 원가량의 비용 절감을 주문하면서, 임금과 복리후생비 동결, 근무제도 개악 등을 촉구했다.

이는 적자를 핑계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려는 것이다. 노후시설 교체 등 안전시설 투자도 줄어들 수 있는데,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내핍 수준 비용절감”

서울교통공사 사측도 이런 요구를 수용해 적자 줄이기에 나섰다. 서울교통공사 김상범 사장은 지난 3월에 “내핍 수준으로 절감”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상범 사장은 지난해에도 서울지하철이 “부도 직전”이라며 노동조합에 임금 동결을 요구했었고 부족 인력 충원 약속도 외면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퇴직자와 결원 등으로 700명을 충원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인력 충원을 최소한으로만 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정년퇴임자 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을 감축하라는 것이다. 공사 측은 이에 대해서도 수용할 태세가 돼 있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공사는 장기적으로 역무와 승무 등 업무에서 인력을 10퍼센트 이상 감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을 뿐이다. 그동안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휴일 근무, 1인 역사 근무 등을 강요 받았고 툭하면 임금 동결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공공 교통을 책임져 왔다.

더구나 5년 전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들어 오는 열차에 치여 사망한 20살 청년 노동자 김군의 사고에서 보듯, 인력 부족은 지하철 사고와 노동자·승객의 안전을 위협한다.

지금도 서울교통공사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다. 서울지하철과 도시철도 통합 과정에서 이미 정원이 1029명 감축되기도 했다. 최근 노조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노동자들은 현장의 부족한 인력 충원을 최우선 해결 요구로 꼽았다.

공사 측은 때때로 정부와 서울시에 재정 지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올 초에도 6개 도시철도 사용자들은 정부에 무임수송에 대한 국고 보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공사 측은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다. 이들은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는 데서 정부·서울시와 한목소리를 내 왔다. 그런 점에서, 서울교통공사 사측이 노동자들을 향해 칼을 빼들기 시작한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지난 몇달간 서울지하철 노사는 공동으로 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구해 왔는데, 사측은 노조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며 공격을 강행하고자 했을 것이다.

최근 사측의 공격이 가시화되기 시작하자,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이에 반대하는 항의를 시작했다. 사측과 독립적으로 정부와 서울시에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의 조건 후퇴를 막기 위한 투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