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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권, 탈시설 지원, 평생교육 지원:
장애인 운동의 요구는 정당하다

최근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 장애인들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연일 비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준석은 “박원순 시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하다며 이 시위를 왜곡하고, “선량한 시민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하겠다는 비문명적 방식”이라며 시위를 비난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지난 20여 년간 투쟁해 왔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요구하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시작했다.

장애인을 속죄양 삼아 대중을 분열시키려는 이준석의 시도는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같은 당 김예지 국회의원이 장애인들의 시위에 직접 참가해 무릎 꿇고 사과하고, 인수위원회도 장애인 단체를 직접 만나는 등 이준석과 선을 그었다.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 ⓒ이미진

이준석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거의 다 해결된 것처럼 호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권은 열악하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사망한 일을 계기로 시작됐다. 집 안에서 ‘갇혀’ 살던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와 투쟁을 벌였다. 이후 관련 교통약자법이 제정되고 정부들은 저상버스·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확대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구체적 수치로 약속해 왔다.

그러나 현재 전국 저상버스 도입 비율은 30퍼센트 미만으로, 정부가 계획한 10년 전 목표치(31.5퍼센트)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를 2004년까지 완료하겠다고 약속했고 박원순 전 시장은 다시 2022년까지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16개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지자체장들이 모두 하나같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투쟁의 성과로 교통약자법이 개정됐다. 개정법은 새로 들여오는 버스를 모두 저상버스로 의무화 하고, 특별교통수단을 지원하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국가 예산 지원을 의무가 아니라 ‘임의조항’으로 바꿨고, 법은 또 다시 앙꼬 없는 찐빵이 됐다.

윤석열은 대선 때 저상버스·특별교통수단 확대 등을 공약했으나, 구체적 예산 확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재정 긴축을 하겠다는 새 정부가 알아서 장애인 복지에 돈을 쓸 리 만무해 보인다.

예산 확보 없는 약속은 믿을 수 없다

시위대의 다른 요구들도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시위대는 ‘장애인 권리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동권과 더불어 장애인 평생교육과 지역사회 자립 등 지원 확충을 2023년 예산에 반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 나라 장애인 예산(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은 3조 6000억 원으로 GDP 대비 0.6퍼센트 수준이다. 이는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것은 많은 장애인을 고통으로 내몬다.

우선, 대중교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출근길에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는 것이 ‘시위’가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장애인들이 마음대로 외출하고 일터에 가기에 대중교통이 엉망인 현실을 보여 준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은 장애인들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이 기간 발달 장애인을 그 가족이 살해하는 비극이 심심치 않게 보도됐다. 코로나19로 극심한 생활고와 돌봄 부담에 지친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개별 가정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고 발달·중증 장애인을 집안이나 시설에 ‘가두’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려면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지원이 대폭 늘어야 한다.

또, 장애인들은 교육을 받는 데서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2017년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장애인 중 절반 이상(54.4퍼센트)이 중학교 이하 학력이었다. 장애인은 정규 의무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평생교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다른 많은 개혁 배신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문제에서도 결국 예산을 확보하지 않아서 뒤통수 치기 일쑤였다. 예컨대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했다지만, 예산에 짜 맞춘 점수제로 교체됐을 뿐이다. 오히려 새롭게 조사를 받은 장애인 일부가 지원이 삭감되는 일도 있었다. 장애인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항의에 나서야만 했다.

계급 문제

장애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노동자·서민일수록 산재 등으로 장애를 가질 확률이 더 높고, 장애를 갖게 된 이후에도 차별을 완화할 수단이 별로 없다.

반면, 부유한 장애인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개인 운전 기사를 부리거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자립에 필요한 비용 걱정도 별로 없을 것이고, 교육 기회도 더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등록 장애인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가난하다.

이 사회는 장애인들을 방치하고 배제한다. 어쩔 수 없이 지원을 해야 할 때에도 그 필요에 턱없이 못 미치고, 경제 위기 시기에는 가장 먼저 장애인에 대한 복지를 거둬들인다. 그래서 장애인을 위한 약속이 있어 왔지만 20년간 제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는 근본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야 한다는 자본주의 논리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장애인을 생산적인 노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장애인 복지를 그저 ‘비용’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하지만 장애인을 돕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득이 된다는 것은 자주 입증됐다. 예컨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과로 늘어난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다른 교통약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 누구나 생애 주기의 어떤 순간에 장애를 겪을 수 있다. 노동계급은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장애는 계급의 문제이다. 장애인들의 요구와 투쟁에 지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