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언제나 밀정을 운동에 침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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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경찰 끄나풀 노릇을 했던 김순호가 경찰 수뇌(경찰국장)가 됐다. 김순호는 엄혹한 군부독재 정권 시절에 운동 동료를 보안경찰에 밀고해 사지로 내몬 ‘프락치’ 활동으로 정권의 특전을 받아 경찰 간부가 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영화 〈밀정〉의 이정출(송강호 분)을 연상하면 된다. 이정출의 비열한 인격과 변화무쌍한 표정은 가히 압권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경찰은 반정부 운동들에 첩자들을 침투시켰다. 19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 같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대중 투쟁 덕분에 1990년대 이래로 정치적·시민적 권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한국 정치 체제도 권위주의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조금씩 변해 왔다. 그럼에도 경찰의 첩자 침투 공작은 중단되지 않았다. 가령 2013년 이석기 전 의원이 포함된 ‘RO 사건’도 경찰 첩자가 결정적 정보를 제공했다.
경찰 첩자의 구실
경찰은 자신의 또 다른 눈과 귀가 돼 줄 경찰 정보원(첩자, 끄나풀, 밀고자 등)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빨대’라고 부르며 경멸하기도 한다.
그런 인물이 경찰국장이 됐으니, 기분이 떨떠름할 경찰 간부들도 적잖을 듯하다.
그래서일까, 경찰 쪽에서 김순호의 과거 전력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우리가 더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선거로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의 비밀스런 부분인 정보·보안기관의 고위 관료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순호는 노태우·김영삼 정부들뿐 아니라 민주당 정부에서도 승진을 거듭해 이제 치안감 자리에 올랐다.(치안감은 군대로 치면 사단장급이다.)
사실, 선출된 공직은 자본주의 국가 권력 구조 속에서 한시적 부분일 뿐이다. 반면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외교부 등의 고위 관료직이 국가의 영구적 부분이다. 이 기관들은 비교적 공개돼 있다.
국정원·보안경찰·국군안보지원사(옛 기무사이자 보안사) 등은 비밀스러우면서도 영구적인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첩보 활동은 이 비밀스런 국가기관이 사용하는 필수적인 전술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가 계급을 “서로 싸우는 형제들”이라고 묘사했다. 시장과 이윤을 놓고 서로 싸우지만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데서는 형제들이라는 것이다. 기업과 국가는 정보를 공유한다. 국가기관들 사이에서도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동시에, 기업들과 국가들은 경쟁 기업들과 국가들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한다. 기업들이 치열하게 국제적 경쟁을 벌이는 세계에서 모든 국가는 잠재적인 적국이다. 가장 중요한 정보들을 축적해야 체제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첩보 활동이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자연히 기업이나 국가에 맞서는 운동도 정보·보안기관들의 중요한 감시 목표물이 된다. 첩자는 운동 속에 침투해 경찰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
또한 경찰 첩자는 운동들을 파괴하고 분열시켜 계급 억압 체제에 충성하는 해악적인 존재들이다.
위축되지 말고 의연하게 활동하기
궁지에 몰린 윤석열 정부가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억압적 국가기관들을 강화하려 한다.(‘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윤석열의 국가기관 통제 노력’을 보시오.) 경찰 첩자 출신에다 오랫동안 대공·방첩 수사를 담당해 온 김순호를 경찰국장에 임명한 것도 그런 신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공·방첩” 업무는 북한(과 연계된 좌파)뿐 아니라 혁명적 좌파까지 겨냥해 왔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는 윤석열에게 이명박의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을 배우라고 충고했지만(7월 10일자), 성한용 기자의 기억은 다소 부정확하다.
김문성 기자가 본지 지난 호에서 지적했듯이, 임기 초 촛불 운동에 부딪혀 지지율이 폭락했던 이명박 정부는 7월쯤 촛불 운동이 사그라들자 반격을 강화했다. 8월에 경찰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소속 활동가 7명을 국가보안법으로 체포했다. 이듬해 1월 경찰특공대가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점거 농성 중이던 세입자들을 강경 진압했다. 2009년 8월 초 경찰은 쌍용차 점거 파업을 무력으로 파괴했다.
이명박 정부의 칼끝은 자신의 경쟁자에게도 향했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무현을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명박 정부는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는 국가 탄압을 강화해 우파의 전열을 재정비한 뒤에(특히, 2008년 9월에 터진 세계 경제 공황을 국가 탄압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중도실용’이라는 가면을 썼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이명박의 전철을 밟으려 하는 듯하다. 윤석열 정부는 당장에는 (“공안정국,” 즉 일반화된 탄압 물결보다는) 김일성 회고록 출판사 대표와 이 책의 제작·판매에 관여했다는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실장, 주체사상 관련 책을 읽은 해군 병사 등 외곽을 때리며 야금야금 공격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이 윤석열 정부의 탄압에 대해 광범한 연대를 효과적으로 구축하지 못하면 가랑비에 옷 젖을 수 있다. 권투에서 상대에게 (결정타가 아니라도) 잽을 자꾸 맞으면 무력한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경제 침체(라는 통제하기 쉽지 않은 외생적 요인들)에 직면해 노동계급의 조건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가 지지율이 추락하고, 여기에 여권의 내분까지 겹쳐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좌파는 윤석열 정부의 탄압 측면만을 보고 활동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고 당당하게 활동을 해 나가야 한다.
영국의 경험
경찰이 첩자를 운동 속에 침투시키는 전술은 비단 권위주의적 유산도 아니고 한국 정보·보안기관만의 독특한 수법인 것도 아니다.
영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국가가 운동들에 경찰 첩자를 침투시켜 온 사실이 여러 차례 폭로됐다. 2015년에 활동을 개시한 ‘경찰의 민간인(시위 또는 저항 세력) 위장 사찰 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수십 년 동안 경찰 첩자들이 상당수 정치 단체와 활동가 단체들에 침투해 보통 수년 동안 활동했음이 확인됐다.
“경찰 첩자들이 보고한 정보들은 방대했다. 문제가 되는 단체들의 활동과 그 회원들을 보고했다. 또한 선출된 대표자들을 비롯해 그들이 접촉한 단체와 개인들도 포함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경찰은 수십 년 동안 급진좌파 단체, 인권 단체, 인종차별 반대 운동 단체, 여성 단체 등에 첩자를 침투시켰다. 조사위원회가 현재까지 조사한 시기인 1973~1982년에만 경찰 첩자가 침투한 단체가 적어도 1000개가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전술이 경찰 최고위층의 인가를 받았고, 활동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됐으며, 새롭게 임명된 비밀 경찰들이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었음도 밝혀졌다.
런던경찰청 소속 ‘특수 시위 대응 부대’(SDS)가 이 활동을 주도했다. SDS는 1968년 10월 런던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를 앞두고 시위 정보를 모으기 위해 창설돼 2008년까지 운영됐다. 운동 단체에 침투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사실상 모든 저항 세력을 감시하도록 국가의 인가를 받은 기구였다.
국내 정보국(MI5)이 이런 비밀 경찰과 공모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MI5가 “믿을 만한 고정” 첩자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 침투시키라고 경찰에 요구했다. 적어도 24명의 경찰 첩자가 SWP에 침투해 모임에 참가하고 당대회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 개인 신상 명세들을 수집했다.
빈스 밀러(가명)도 이런 자들 중 한 명이었다. 이 자는 1976~1979년 런던 동부 월섬스토의 SWP 지회에 침투했다. 당시는 파시스트 세력이 다시 세를 모으며 대중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던 때였다. 이에 대항해 SWP는 나치 조직인 영국 국민전선에 맞선 투쟁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정보국과 경찰은 반파시스트 운동을 단속하려고 경찰 첩자를 SWP에 침투시켜 당원들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사찰했던 것이다. 반면 극우 단체들에는 관대했다. 한 수사관이 조사위원회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극우 단체들에는 침투하지 말라는 “고위급 단위의 정책 결정”이 있었다.
또, MI5는 “학생들의 체제 전복 활동”에 대해서도 정보를 파악하라고 경찰에 요구했다. 이 요구 사항은 MI5와 국방부의 고위 관리가 승인한 것으로, 1975년에 경찰서장들에게 전달됐다.
스티븐 로런스
몇 해 전에는 로런스 캠페인에 경찰 첩자가 침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티븐 로런스는 1993년에 인종차별주의적 우익들에게 살해당한 흑인 청년이다.
LA 흑인 반란(1992년)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던 때라, 경찰은 영국에서도 대규모 시위들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첩자를 침투시켜 로런스 가족의 “흠”을 찾아내려 했다. 로런스 가족의 의지를 꺾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흑인들이 많이 참가한 이 운동에서 의심을 덜 받게 하려고 흑인 첩자를 침투시키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경찰의 정상적 활동이다. 그리고 이것이 국가가 하고 있는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나 반파시스트 운동이 성공적으로 건설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찰의 개입이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단,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위축되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활동을 계속해 나아가야만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