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성·안병호 등 비정규직 활동가들 최후진술 재판:
집회 금지 방역 정책을 폭로하고 노동운동의 대의를 옹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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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오늘, 2년 전 노동절에 집회와 행진을 한 것이 감염병예방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기소된 비정규직 활동가 7인의 1심 최후진술 재판이 있었다.
이날 기간제교사노조의 박혜성 위원장과 전국영화산업노조의 안병호 조합원이 법정에 출석해 당시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2년 전 노동절에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코로나19 긴급 행동’ 집회는 코로나로 인해 생계를 크게 위협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인 자리였다.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 100명가량은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물론이고 반도체 공장에서나 볼 법한 전신 방호복을 입고서 2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야외 시청광장에서 집회를 했다. 당시 국내 발생 확진자 수는 전국적으로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감염병을 명분으로 약식명령으로 1인당 200만 원씩 벌금을 부과했다. 노동자들이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다투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 박혜성 위원장은, 정부가 비필수 부문의 휴업과 임금 보전을 보장하고 병원 등 필수 업무에는 인력과 자원을 확충하라는 요구는 무시하면서 집회만 전면 금지한 것의 모순을 들춰내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부과된 벌금형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방역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방역을 핑계로 노동자의 입을 틀어막는 노동자 탄압입니다.”
안병호 조합원 또한 “당시 공연과 영화가 모두 중단돼 힘들었는데 정책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의 힘든 사정을 알리려고 나섰던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한 것이었음을 강조했다.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행동’이 주최한 당시 집회는 정부의 도심 집회 전면 금지 조처에 정면 도전하며 노동운동이 강행한 첫 집회였다. 그런 만큼 활동가들과 언론의 관심이 무척 높았다. 정부는 이 집회를 잊지 않고 있다가 15개월 후, 노동운동을 향한 각종 탄압에 나서면서 함께 기소했다.
이 활동가들에게 벌금 약식명령이 내려진 지난해 8월은,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에게 집회 주최를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F-35 전투기 도입에 반대한 청주 평화운동 활동가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때이기도 하다.
오늘 법정에서 2년 전 노동절 집회의 정당성을 옹호한 것은 향후 국면에서도 중요할 것이다. 국가기관이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위기와 생계비 위기 속에서 억압 태세를 갖추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비슷한 탄압이 많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본 재판에 앞서 같은 법정에서는 검찰이 한 여성 독거노인에게 벌금 200만 원을 구형한 사건이 진행됐다. 그녀의 죄는 지난 4월 코로나 격리 해제를 하루 남겨 놓고 외출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고 혼자 생활하는데, 예전과 달리 정부가 생필품도 제공해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런 고통받는 미조직 개인들을 위해서라도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박혜성 기간제교사노조 위원장 최후진술 전문
저는 오늘 2020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고 난생처음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기소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방역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방역을 핑계로 노동자의 입을 틀어막는 노동자 탄압입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해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정부의 방역 조치는 매우 위선적이었습니다.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서울 도심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콜센터 노동자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책상에서 근무해야 했고, 노동자들이 밀집해 일하는 공장은 아무런 조치 없이 가동됐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날마다 코로나 위험 속에서 만원 버스와 만원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해야 했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코로나 위험에 방치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코로나 대유행 당시 필수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휴업을 명령하고, 휴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의 임금을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병원과 같은 필수 업무에는 인력과 자원을 집중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정작 정부는 이런 중요한 방역은 신경도 쓰지 않고 노동자들의 집회만을 문제 삼으며 집회 참가자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에 모인 우리 노동자들은 자신과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방역을 매우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시청광장은 몇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매우 넓은, 뻥 뚫린 야외 광장입니다. 이곳에서 마스크뿐 아니라 방역복을 입었고, 장갑도 끼고, 대열을 지어 앉아 있을 때도 2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앉았습니다. 시청광장을 행진할 때도 2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기 위해 매듭을 묶은 끈을 잡고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집회 금지는 법에서도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감염병을 전염시킬 위험한 집회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집회 참여자 중에 코로나에 확진됐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서울시가 감염병예방법에서 규정하는, 불확실하고 판단 기준이 모호한 위험 발생을 이유로 노동절 집회를 원천 금지한 것이야말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습니까?
또 하나 말하고 싶습니다.
왜 노동자들이 집회에 참가했을까요?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위험한 일터에서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지 못하고 병원에 실려 가거나 하늘나라로 가는 노동자, 코로나로 수업이 열리지 않아 임금이 ‘빵 원’이 된 노동자, 코로나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된 노동자 등이 5월 1일 시청광장에 모였습니다. 저 역시 비정규직 교사인 기간제 교사들이 정규 교사와 동일한 노동을 함에도 임금과 복지 등에서 차별받고 부당한 편견에 시달리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절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이는 것을 금지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입니다.
재판부는 이날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감염병 예방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범법자로 만드는 정부에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노동절 집회는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