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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을 자신의 견해에 끼워맞추는 사회진보연대

레닌의 민족자결권 지지는 애초 취지부터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계간 사회진보연대》 180호에는 민족자결권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다룬 필자의 글을 비판하는 김성균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의 글이 실렸다.(김성균 씨가 주장을 제시할 때 “우리”를 주어로 줄곧 사용하므로, 그 글의 입장을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으로 취급하겠다.)

사회진보연대는 ‘민족자결권 요구를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레닌이 아니라 스탈린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한 반면,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이나 ‘소련의 이익’이라는 조건을 붙여 민족자결권을 선택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사회진보연대는 레닌의 입장을 우크라이나에 적용한다면 “우크라이나 민중이 원하는 방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서방의 무기 지원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락

사회진보연대의 묘사에는 레닌이 민족자결권을 지지한 더 큰 정치적 맥락이 누락돼 있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을 보면, 레닌이 민족자결권을 마치 그 자체로 목적인 것처럼 취급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민족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 변화를 다룰 때에도 사회진보연대는 마르크스가 소수 민족의 자결을 지지한 것이 단지 주권을 가진 자본주의 국민/민족 국가를 결성할 보편적 권리를 인정하는 차원이었던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영국에서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을 보며 민족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민족 억압이 노동자 운동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었다. 아일랜드인에 대한 억압은 영국 지배자들이 노동계급 내부를 이간시켜 각개격파하는 비결이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민족 억압 문제가 심각했던 제정 러시아에서 활동한 레닌도 노동자 운동에 해악적인 영향을 끼치는 대(大)러시아 국수주의에 맞서기 위해, 억압받는 소수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전시켰다.

다른 한편, 제국주의 시대에는 진정한 민족 해방이 불가능하다며 자결권 요구를 일절 부정한 룩셈부르크 등의 급진파와도 레닌은 치열하게 논쟁했다. 그런 추상적인 국제주의는 오히려 대러시아 국수주의와 상통할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레닌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민족 문제가 갖는 폭발성에 주목하며 민족자결권 요구의 중요성을 포착했다.

요컨대, 레닌의 민족자결권 지지는 애초 취지부터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진보연대도 분리·독립의 자유가 진정한 국제적 단결이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라는 레닌의 입장을 인용하기는 한다. 그러나 모든 민족(국가)의 통합이라는 먼 미래의 추상적 목표를 위한 것으로 묘사할 뿐이고 그런 입장이 당대의 국제 노동계급 투쟁의 이익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사회진보연대의 이런 누락은 레닌의 민족자결권 지지를 “부르주아 이론”을 받아들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과 관계있는 듯하다.

물론 레닌은 민족해방 투쟁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국민/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임을 명확히 이해했다. 그러나 피억압 민족의 정치적 분리·독립권 인정은 당시 민족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해법이 아니었다. 피억압 민족에 관해 온갖 입발린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정작 그들의 정치적 결정권에 관해서는 회피하거나 반대하는 개혁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에 맞서서 레닌은 민족자결권 슬로건을 걸었다. 이를 “부르주아 이론”으로 일컫는 것은 터무니없다.

무조건적 지지

사회진보연대는 레닌이 말한 “무조건적 지지”를 마치 모든 구체적인 상황에서 민족자결 요구를 지지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예컨대, 사회진보연대는 1916년에 레닌이 쓴 다음 구절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한 제국주의 열강에 맞선 민족해방 투쟁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다른 열강에 의해 ⋯ 이용될 수도 있다고 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민족자결권을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민족자결권 요구에 초좌파적 태도를 취하며 그 요구를 부정한 룩셈부르크 등을 겨냥한 것이지, 제국주의의 관여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강령적 수준의 논의와 구체적 현실과 전술 수준의 논의를 뒤섞어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에 의해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과, 구체적 조건에서 실제로 제국주의에 의해 이용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들과의 논쟁을 다룬 다른 글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쓴다.

자결을 포함한 여러 민주주의 요구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 구체적인 개별 사례에서 부분은 전체와 모순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그것은 거부돼야 한다. 한 나라의 공화주의 운동은 다른 국가의 ⋯ 음모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그 특정한 운동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제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 공화주의 요구를 삭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민족 문제에 관한 토론 요약”(1916))

레닌이 말한 “무조건적” 지지는 이리저리 살피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민족해방 운동을 이끄는 지도부와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구체적 투쟁이 내는 객관적인 효과가 제국주의의 약화를 가져온다면 그 투쟁에 조건을 달지 말고 지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진보연대가 언급한 필자의 글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하는가”(링크)에서 필자는 제1차세계대전 때 폴란드 독립 문제에 대해 레닌이 취한 입장을 예로 들며 현실의 투쟁에 미치는 효과가 레닌의 중요한 잣대였음을 보인 바 있다.

레닌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 온 폴란드의 독립을 기본적으로 지지했지만, 폴란드 민족 운동이 러시아에 맞서겠다며, 폴란드를 점령해 들어온 독일 제국주의와 협력하는 상황에서는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들이 폴란드 독립 요구(자결권에 포함된다)에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당시 폴란드의 상황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똑같지 않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주의에 의해 침공·점령되어, 그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당시 폴란드 상황과 달리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에서 자결권 요구(더 구체적으로 자기 방어) 자체는 결코 부적절한 것이 아니다.

서방이 사실상 개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태의 성격을 자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진보연대가 인용하는 레닌의 말처럼 “강령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 정황을 분석해야 한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그 대의를 앞세워 서방 제국주의의 대리자를 자처하고, 서방이 이를 이용해 자신의 제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는 갈수록 더 위험한 곳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이라는 대의를 위한다는 것을 앞세워 서방의 무기 지원을 지지한다는 것은 현실의 이런 중요한 측면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태의 구체적 측면들을 요모조모 신중히 따져 보기보다 사회진보연대는 레닌이 자결권을 무조건 지지했으니 우크라이나 정부가 요구하는 서방의 군사 지원도 지지하는 것이 이론의 올바른 적용이라는 식의 논법으로 일관한다. 막상 레닌의 “구체적 정황을 분석해야 한다”는 말과 동떨어진 주장과 실천을 하는 것은 사회진보연대이다.

볼셰비키 정부의 민족 정책

사회진보연대는 러시아 혁명 이후 피억압 민족들의 자결권을 인정한 볼셰비키 정부의 정책을 다룰 때에도 그것의 더 큰 맥락을 무시하는 우를 되풀이한다. 1920년대 초 민족 문제를 둘러싼 레닌과 스탈린의 대립은 마치 무조건 민족자결권을 지지한 레닌과 민족자결권을 혁명의 이익에 종속시키려 한 스탈린의 대결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인식이다. 제정 러시아에 의해 억압당했던 민족들의 자결을 혁명 직후 장려한 조처들은 결코 혁명의 이익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비러시아계 민족들과 혁명 러시아 정부의 관계가 언제나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수 민족들의 자결권을 인정한 원칙 있는 조처들은 볼셰비키 정부가 내전에서 승리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일례로, 볼셰비키 정부에게서 상당한 자율권을 얻은 우랄산맥 서부 지역의 바시키르인들은 내전 초기에 백군에 가담했다가 백군의 학대에 질려 1919년 2월 적군에 가담했다. 이를 계기로 그 지역의 전세는 볼셰비키 정부에 유리하게 기울었다.

반면, 사회진보연대가 레닌의 일탈이자 실수라고 옳게 지적한 1920년 볼셰비키 정부의 폴란드 침공은 폴란드의 민족 문제를 제국주의에 유리한 방향으로 악화시키고 혁명의 확산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레닌과 스탈린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스탈린이 노동자 국제주의의 미사여구를 이용해 대러시아 국수주의를 은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족 문제의 중요성을 기각하는 입장이 혁명 이전부터 스탈린을 비롯한 볼셰비키 지도부 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레닌은 그것이 대러시아 국수주의와 만날 위험성을 감지하고 일찍부터 그런 입장과 논쟁을 벌였다.

혁명의 파고가 높아지던 시기에 레닌은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현실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혁명의 파고가 잦아들면서 민족 문제를 기각하는 입장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특히, 혁명의 핵심 기반이었던 노동계급이 내전 이후 사실상 해체되는 바람에 볼셰비키 정부는 (차르 시대의 관료들을 포함한) 국가 관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레닌이 없애려고 혼신을 다한 대러시아 국수주의가 부활하는 토대가 됐다.

스탈린의 입장은 당시 대두하던 이런 국수주의 경향을 의식적으로 대변하는 것이었다. 레닌이 조지아 독립을 놓고 스탈린과 충돌한 것은 단지 자결권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가 혁명의 타락 방지가 달린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당시에 레닌은 러시아 국가가 “관료적으로 일그러진 노동자 국가”라고 우려스런 눈으로 봤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의 민족 정책의 변화는 사회진보연대의 묘사와 달리 단지 스탈린의 “개성과 의견”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러시아 혁명이 고립되고 패배로 향하던 역사적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각기 다른 세력들이 상호 작용하고 서로 대결한 과정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짚고자 하는 것은 사회진보연대의 이전 입장에 관한 것이다.

사회진보연대의 핵심 이론가 임필수 씨는 러시아 혁명 100년을 기념한 기획 연재 글(2018년 발표)에서 레닌의 민족자결권 지지를 비판한 룩셈부르크의 입장을 우호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사회진보연대는 오히려 레닌의 민족자결론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족 문제에 관한 입장이 지난 몇 년 사이에 말없이 바뀐 것인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위협하고 압박하는 문제를 놓고 사회진보연대가 원칙과 일관성을 중시하는 태도 같지 않다.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심지어 핵전쟁의 위험까지 무릅써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사회진보연대는 미국 제국주의의 위협에 대응해 핵 미사일을 만든 북한은 어떻게 보는가? 이 문제에서 부적절하게도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둔다. 민족자결권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지금의 사회진보연대로서는 일관되지 않은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레닌을 원용하며 어떤 원칙 있는 입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려 하지만, 실은 자신의 친서방 기회주의를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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