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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하는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이 전쟁은 국민 방위 전쟁이지만, 서방은 이를 통해 러시아와 대결하고 있다 ⓒ출처 우크라이나 국방부

5월 20일 사회진보연대는 우크라이나의 좌파 활동가 타라스 빌로우스가 쓴 ‘자결권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글을 번역·발표했다.

타라스 빌로우스의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러시아는 공격적인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인민해방전쟁을 벌이고 있다.” (2)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가 아무리 불완전할지라도 러시아는 더 보수화해 “준파시즘 정권”이 됐다. (3)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해야만 진보적인 변화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좌파는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지하고 (서방의) 무기 지원에도 지지를 보내야 한다.

현재 비극의 현장이 된 우크라이나의 활동가가 전하는 말인 만큼 이런 메시지는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냉엄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전쟁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됐고,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살상하고 도시를 파괴하는 것이 러시아군인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는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키려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철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빌로우스는 자신이 글 서두에서 던진 다음과 같은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왜 그렇게 많은 관심을 쏟고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가?”

빌로우스는 “제국주의 간 충돌”이 이 전쟁의 “구성 요소 중 하나”라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서방이 우크라이나에서 하는 구실이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이 미국을 대신해 ISIS 소탕 작전을 벌였을 때 미국이 했던 구실보다 더 작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서방 제국주의가 전쟁에서 하는 결정적 역할

서방은 분명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결정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다. 예컨대 5월 21일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400억 달러를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체 국가 예산에 맞먹는 규모이고, 대부분이 군사적 지원에 쓰일 것이다. 또, 서방은 온갖 첨단 무기를 지원하면서 그 하이테크 무기들을 어디에 쏴야 할지 좌표를 찍어 주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러시아 약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국방장관 회의를 열고 있다.

서방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대대적인 러시아 제재를 단행했다. 제재는 흔히 평화적 압력 수단으로 묘사되지만, 현대적인 형태의 제재를 처음 발전시킨 20세기 초 국제연맹의 설립자들은 제재를 국제 질서를 강제할 “전쟁보다 무시무시한 수단,” “경제적 무기”(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한 말)로 여겼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경제 전쟁을 넘어선 강대국들 간 직접 충돌과 심지어 핵전쟁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그런 충돌은 더 큰 재앙을 낳을 것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당한 수모를 만회하고 동맹국들을 결집시켜 더 유리한 조건에서 중국을 제압하려 한다. 애초 푸틴의 침공 의도와 달리 나토의 영향력은 이제 러시아 북쪽 국경으로 확장됐다. 서방 국가들은 이번 전쟁을 구실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다. 특히, 독일은 재무장에 나섰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이라는 명분을 이용해 러시아를 상대로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빌로우스는 우크라이나가 자기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이 전쟁을 대리전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어느 대리전에서도 ‘대리인’이 자기 이해관계가 없는 순전한 꼭두각시였을 뿐인 적은 없었다.

자결권,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사실, 강대국들이 약소국이나 억압받는 민족의 안위를 걱정한다며 개입을 정당화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제1차세계대전 때 러시아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공에 직면한 세르비아를 지켜 주겠다며 참전했다. 1938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할 때 내세운 명분도 체코 주데텐란트 지역의 핍박받는 독일어 사용 주민들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한 논리의 하나도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주민들을 억압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혁명적 좌파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억압하고 이들이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리고 억압하는 나라의 노동자들과 혁명적 좌파가 억압받는 나라의 자결권(분리·독립을 포함한)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다른 민족(인민, 국민)을 억압하는 민족(인민, 국민)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민족 자결권 지지는 주의해서 봐야 한다.

예컨대 미국은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티베트인 탄압을 들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지독한 위선이다. 물론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인들의 자결권이라는 대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특정 상황에서는 자결권 주장이 특정 제국주의 세력과 반대해 다른 제국주의 세력과 협력하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이것은 제1차세계대전 때 혁명가들이 부딪힌 매우 큰 문제였다. 그 전쟁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슬라브인들의 소국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러시아 제국이 세르비아를 지키겠다고 전쟁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당시 차르의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의 해방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레닌 등 당시 러시아 혁명가들은 그런 전쟁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지 않았다. 레닌은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의 민족적 요소는 부차적이며 이 전쟁의 전반적인 제국주의적 성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전쟁은 열강들의 충돌로 급속히 확대돼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이 아니라 최초의 세계대전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전쟁 전부터 레닌은 민족 억압 문제를 외면하거나 피억압 민족의 “자치권” 정도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분리·독립의 권리를 포함한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줄기차게 옹호했다. 그러나 그런 권리가 위의 사례처럼 구체적 조건에서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모순을 빚을 때는 언제나 그는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봤다.

사실, 자결권 옹호는 기본적으로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한 것이었다. 또, 혁명 전략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전술에 관련된 것이기도 했다. 레닌은 피억압 민족의 반란이 제국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고, 그래서 국제 노동계급이 그들의 자결권을 지지하며 그런 반란들을 자국 지배계급과 싸우는 데에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런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에 기초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공에 직면해 자국 방위 문제가 첨예하게 제기됐던) 세르비아에서도 두 사회주의자 의원이 자국의 전쟁 공채 발행(오늘날로 치면 국방 예산 증액)에 용감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국주의에 맞서 러시아 제국주의를 지지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마르크스 시절부터 제정 러시아는 반동의 보루로 여겨졌고, 그런 러시아의 억압을 받던 폴란드인들의 자결권은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지지를 널리 받아 왔다.

그런데 제1차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일부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은 독일 제국주의에 협조하려 했다. 1916년 독일군 점령지에 폴란드 정부가 세워질 즈음 레닌은 이렇게 강조했다.

단지 폴란드를 되찾으려고 온 유럽을 전쟁으로 몰고가는 것은 가장 나쁜 종류의 민족주의일 것이다. 그저 소수 폴란드인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의 고통에 빠뜨리는 꼴이 될 것이다.

한편, 이제 도리어 러시아 자유주의자들이 폴란드를 (독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자, 레닌은 이렇게 강조했다.

이제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당시에 ‘사회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마르크스주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은 ⋯ “폴란드 독립”과 같은 구호가 러시아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이런 구호는 전쟁을 지속하려는 야욕을 표현하고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구호는 “폴란드를 둘러싼 전쟁에 반대한다”여야 한다.

이처럼 사회주의자들은 억압받는 인민의 자결권이라는 대의를 일반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자결권 요구가 구체적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무엇이 더 근본적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과 특수, 전체와 부분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구분의 중요성은 1960~19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을 봐도 알 수 있다. 베트남 한 나라의 차원에서만 보면,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는 그저 반노동계급적 스탈린주의 체제가 강화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호찌민은 분명 용감한 민족해방 투사였지만 1945년 자신의 스탈린주의적 노선을 거슬러 투쟁을 더 밀어붙이려는 파업 노동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한 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제 사회주의자들은 그 전쟁에서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했다. 국제적 차원에서 베트남 국민의 승리는 미국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세계 곳곳의 반제국주의 투쟁과 노동자 투쟁을 고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국제주의가 출발점이어야 한다

빌로우스는 국제주의자를 자처하지만 그의 출발점은 사실 우크라이나이다. 빌로우스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기대어 전쟁에 승리한다면 극우가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려고, 그동안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즘에 맞선 운동이 얼마나 전진했고 극우가 얼마나 약화돼 왔는지를 자세히 다룬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나타나는 제국주의 갈등의 동학이 무시된 채 펴는 빌로우스의 논의는 그의 시선이 온통 우크라이나에만 쏠려 있다는 인상을 준다.

빌로우스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강제로 국경을 다시 그은 선례를 만들어”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침공을 시작한 것은 러시아이지만, 미국 등 서방도 러시아가 이렇게 나올 것임을 알고도 나토를 확장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이라는 더 강력한 강대국과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국제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충돌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진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우크라이나가 제국주의(적)간 충돌의 무대가 된 것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5월 21일 서울 “전쟁을 멈춰라! 국제공동행동” ⓒ이미진

제국주의에 맞서려면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체제에 맞선다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각자의 구체적 조건에 따른 실천을 해야 한다.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정부가 추진하거나 지지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상대국의 제국주의만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자국 제국주의(또는 친제국주의)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회주의자들의 출발점은 서방과 러시아 모두의 제국주의와, (서방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젤렌스키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오로지 이것만이 우크라이나 노동계급과 전 세계 노동계급의 장기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반면, 부문적·단기적 이익을 위해 전체 (국제) 노동계급의 장기적 목표를 포기하는 것을 두고 레닌은 “기회주의”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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