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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레닌과 민족자결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살펴본다

이 기사는 8월 11일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민족 억압과 민족자결권 문제는 언뜻 보면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 지배권을 놓고 다투던 과거의 문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조금만 둘러봐도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옛 식민 지배를 방불케 하는 민족 억압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중국의 위구르족과 티베트족 억압 등이 그 사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자결권이 쟁점이 되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자국을 방어할 권리를 지지하고 러시아 철군을 요구한다. 그런데 서방은 우크라이나 자결권 옹호를 명분으로 러시아를 상대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또, 점점 위험해지는 대만 해협 갈등에서도 대만 독립이 핵심 쟁점의 하나다.

이처럼 민족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위기와 제국주의적 이해관계 속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기 때문에 만만찮은 문제다.

그런 만큼 민족 문제는 좌파들이 종종 걸려 넘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런 사례다. 예를 들어 일부 좌파는 우크라이나 자결권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서방 제국주의가 이 전쟁을 이용하고 영향력을 강화하는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정의당,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많은 개혁주의 정당들, 심지어 일부 혁명적 좌파들이 이런 혼란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혼란의 사례로 일부 좌파는 중국의 소수 민족 문제가 서방의 중국 압박에 이용된다는 이유로 이들의 자결권을 외면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민족 문제는 만만찮은 문제다.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명제 하나는 계급 투쟁이 역사의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례들을 보면 세계의 거대한 충돌들은 계급이 아니라 민족과 국경, 주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민족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실천을 발전시키는 데서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었다. 레닌의 입장은 당대의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다듬어졌는데, 이 글에서는 그 논쟁을 살펴보면서 레닌의 기여와 그 의미를 짚어 보도록 하겠다.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

레닌이 활동하던 시기에 민족 문제는 이전보다 훨씬 첨예해졌다. 자본 간 경쟁이 국민국가 간 경쟁과 결합되는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고, 선진국 노동운동 내에서 개혁주의가 성장하면서 노동자들을 국익 이데올로기에 묶어 놓는 구실을 했다. 또,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받는 곳에서는 그에 맞선 반란이 민족주의 운동의 형태를 취했다.

이렇게 민족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민족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됐다.

당시 유력한 입장 하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활동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접근법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일부와 루마니아 일부 등을 포괄하고 여러 소수 민족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배 민족들과 피억압 소수 민족들 사이의 민족 갈등이 컸고 이것이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교육과 문화 영역 등에서 민족 자치를 보장하면 노동계급의 단결을 이룰 수 있다고 보면서 개혁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오토 바우어였다.

이들이 요구한 자치권은 레닌이 주장한 자결권과는 구분되는 것으로, 정치적 분리·독립을 결정할 권리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틀 자체에는 도전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제국의 틀을 유지한 채 개혁을 해서 노동운동 내의 민족적 갈등을 무마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우어의 노선은 오히려 노동운동 내에서 민족적 차이를 부각하고,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이 상이한 민족 조직들로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레닌은 바우어의 노선이 사회주의 정당을 민족별 연방 조직으로 재편하도록 부추기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다민족 제국은 해체돼야 하는 반면 노동계급은 응집력 있게 조직되고 국제적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레닌은 역설했다.

룩셈부르크의 입장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개혁주의 입장에서 자치권을 요구했다면, 그 반대편에는 계급 투쟁을 흐린다며 민족자결권 요구를 반대한 혁명가들이 있었다. 폴란드 출신의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런 입장이었다.

당시 폴란드는 오랜 기간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분할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의 민족 독립 요구가 시대착오적이고 반동적이라고 주장했다. 폴란드가 산업 발전으로 러시아와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폴란드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 민족 독립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폴란드 노동자들은 민족 독립이 아니라 러시아 노동자와의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고 룩셈부르크는 주장했다.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문제에서 더 나아가 일반적으로도 민족 독립 요구를 반대했다.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힌 상황이므로 민족 독립 요구는 비현실적이고 노동운동이 길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룩셈부르크가 왜 그런 입장을 취했는지 이해하려면, 당시 폴란드 운동 상황을 봐야 한다. 당시 폴란드 독립 운동의 주도권은 폴란드 사회당에 있었는데, 폴란드 사회당은 이름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민족주의 정당이었다. 그 지도자들은 1905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폴란드 노동자들이 러시아 노동자들과 함께 총파업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 행동이 폴란드인의 민족적 단결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계급의 이익을 민족 위에 놓지 말라는 것이다.

룩셈부르크의 입장은 폴란드 사회당의 민족주의가 노동계급에 끼칠 해악을 경계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레닌은 폴란드 사회당의 민족주의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진단과 폴란드 노동자들이 러시아 노동자와의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과제 제시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레닌은 룩셈부르크가 억압국인 러시아의 혁명가들도 폴란드의 독립 요구를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비판했다.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이 폴란드 독립 요구에 반대하는 것은 타당할지 몰라도, 억압국인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이 폴란드의 자결권을 지지하지 않으면 러시아 국수주의에 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레닌은 지적했다. 룩셈부르크의 입장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일면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레닌의 입장

레닌은 바우어나 룩셈부르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바우어는 민족 문제를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했고, 룩셈부르크는 경제적 분석을 토대로 자결권 요구를 반동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정치적인 문제로 봤다. 즉, 그것이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레닌이 활동했던 제정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마찬가지로 여러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이었다. 인구의 57퍼센트를 차지한 소수민족들은 여러 억압과 차별에 시달렸다. 무슬림과 유대인이 특히 심각한 억압을 받았다.

레닌의 독특한 기여는 억압국의 민족주의와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를 구분한 것이었다. 레닌은 억압국의 민족주의는 반동적이지만 억압받는 민족의 민족주의는 진보적 측면이 있다고 봤다.

즉, 제국주의 시대에 피억압 민족의 투쟁은 제국주의와 그 지배계급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반제 민족 해방 투쟁에 대한 입장은 무조건적, 그러나 비판적 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민족 운동들의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이지만 제국주의와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운동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민족 운동을 위해 피억압 민족 노동운동이 자신의 정치적·조직적 독립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레닌이 지지한 민족자결권은 분리·독립을 결정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피억압 민족의 반란을 일관되게 지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 억압국의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족의 노동계급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토대 위에서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고 레닌은 지적했다.

바우어가 민족주의와 타협하고, 룩셈부르크가 민족 운동을 계급 투쟁과 단순히 대립시키기만 했다면, 레닌은 민족자결권 지지를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한 수단으로 보았다. 자결권을 위한 투쟁을 계급 투쟁에 종속시키려 한 것이다.

레닌은 억압국의 사회주의자와 피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의 과제를 세심하게 구분했다. 피억압 민족의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반대와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결합시켜야 하는 한편, 억압국의 혁명가들은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만 억압국의 민족주의라는 주된 적에 대항하고 국제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고 레닌은 강조했다.

폴란드 혁명가들이 분리·독립에 반대할 수 있지만, 러시아 혁명가들은 폴란드의 분리·독립을 포함한 자결권을 지지해야 하고, 이 둘은 전혀 모순이 아니라고 레닌은 강조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처지에서 노동계급의 국제주의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다른 경로라고 봤다.

또, 레닌은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이 언제나 분리·독립 요구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자결권 지지는 반제 투쟁의 일환이어야지,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이나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민족 운동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레닌은 폴란드 민족운동이 제1차세계대전 때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독일 제국주의와 손잡은 구체적 상황에서는 러시아의 혁명가들이 폴란드의 자결권 요구를 지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과 민족자결권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키고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는 곧바로 러시아 내 여러 소수 민족의 민족자결권을 인정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볼셰비키 정부는 반동과 외세 개입으로 일어난 내전으로 어려운 조건에 내몰렸음에도 그 포고령이 공문구가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조처들 덕분에 볼셰비키는 소수민족들의 지지를 받고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바깥의 피억압 민족들의 반란을 자극할 수 있었다.

혁명 직후 소비에트 정부의 민족자결권 지지가 그저 책략적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피억압 민족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한 노력이었다. 볼셰비키 정부는 소수 민족 거주지에서 국수주의적 편견을 드러내는 러시아 노동자들과 당원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개입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피억압 민족의 문화 육성을 지원했다. 그들의 언어로 된 교육과 출판물을 장려했고, 무슬림 학교를 열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각 민족의 문화를 적극 육성하자는 바우어 노선과 흡사해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스탈린 등은 레닌이 민족주의에 타협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닌의 정책은 민주주의와 자발성에 기초한 진정한 통합을 위한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바우어 노선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었다.

이런 조처들은, 제정 치하에서 뿌리내렸고 혁명이 고립되면서 되돌아오고 있던 러시아 국수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레닌이 민족주의에 타협하고 있다고 비판한 스탈린은 사실 러시아 민족주의를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스탈린은 레닌이 죽은 뒤 제정 러시아의 국수주의와 소수 민족 억압을 부활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푸틴은 ‘민족주의에 타협한’ 레닌의 정책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화근이 됐다며 레닌을 비판했다. 그러나 옛 소련 소속 공화국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충돌과 갈등은 오히려 진정한 국제적 결속을 추구한 레닌의 시도가 좌절된 결과이자, 그런 노력을 파괴한 스탈린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스탈린주의 체제의 억압 경험 때문에 소련 붕괴 후 그 지역에서 민족주의들이 부상했다. 그리고 그곳의 지배계급과 제국주의 열강이 자기 영향력을 키우려고 이를 부추겼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게 해서 생긴 충돌과 갈등의 일부다.

오늘날의 의미

우리는 레닌이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기본적으로 옹호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레닌의 출발점은 제국주의 지배와 민족의 억압을 견디다 못해 그 자신의 국가를 요구하게 되는 사람들의 처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곧 모든 분리·독립 요구를 지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구체적 현실에서 투쟁에 미치는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그 기준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이 제시한 관점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데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에 맞서 자국을 방어할 권리를 지지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충돌이라는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방 제국주의가 이 전쟁을 이용해 스스로를 강화하려 뛰어들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유착관계를 맺으며 대리인 구실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좌파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제국주의의 충돌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서방 제국주의의 지원과 그를 통한 영향력 확장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민족 문제에 대한 레닌의 기본 접근, 즉 제국주의 반대와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중시하는 것에 배치되는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배경으로 코소보의 민족 갈등이 다시 첨예해지고 있다. 이 지역은 20여 년 전 민족적 증오가 불붙어 재앙을 낳았던 곳이다. 당시 좌파들은 이 쟁점에 큰 혼란을 겪었다. 세계적으로 다중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런 문제들이 증폭될 수 있다.

이런 때에 민족 문제와 민족자결권에 대해 레닌이 발전시킨 원칙, 주장, 그리고 구체적 맥락을 세심히 고려하는 방법 등은 오늘날 우리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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