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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선거 결과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12월 14일 공공운수노조 결선 투표를 끝으로 민주노총 11기(직선 4기) 및 공공운수노조·금속노조 지도부 선거가 마무리됐다.

민주노총 선거에서는 양경수 후보조(자주파인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소속)가 박희은 후보조(‘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소속)를 누르고 당선됐다.

공공운수노조 선거에서는 세 후보조(중앙파·사회진보연대가 지지하는 윤정일 후보조, 현 집행부를 계승한 강철 후보조, 친노동전선 경향의 엄길용 후보조) 중 엄길용 후보조가 당선됐다.

금속노조 선거에서는 중앙파·사회진보연대가 지지하는 장창열 후보조가 전국결집과 전국회의가 연합한 전규석 후보조를 이겼다.

민주노총 선거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는 전반적으로 큰 관심과 주목을 끌지 못했다. 두 후보조의 지난 실천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이렇다 할 기대를 품게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는 전반적으로 큰 관심과 주목을 끌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의 생계비 공격과 ‘노동개혁’이라는 핵심 문제에 대한 두 후보조의 지난 실천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이렇다 할 기대를 품게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번(10기, 직선 3기)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는 사회적 대화가 핵심 쟁점이었다. 당시 양경수 후보조는 대화보다는 “투쟁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며 당선됐다. 경제 위기 장기화와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다수의 조합원들은 투쟁을 강조한 양경수 후보조를 지지했다.

아쉽게도 지난 3년간 양경수 집행부는 선거 때 강조했던 만큼 투쟁을 이끌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한 봉쇄 조처를 뚫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성사시키고 2021년 10월 20일 하루 파업 등을 조직하기는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을 저지하기에는 미흡했다.

그렇게 할 기회와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소속 일부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만만찮은 투쟁에 나섰다. 우파 정부의 등장이 그들의 사기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은 것이다.

생계비 폭등에 맞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과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파업했고, 건설 노동자들이 윤석열 정부의 탄압에 저항했다.

그 투쟁들은 전국적 초점을 형성하며 불가피하게 대정부 투쟁의 성격을 띠었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 경제 위기로 인해 양보할 여력이 적을 뿐 아니라, 한 부문의 성과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을 고무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건은 상이한 불만과 투쟁을 서로 연결시켜 저항을 전면화(실질적인 연대 투쟁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지도자들은 해당 노동자들이 거의 홀로 싸우도록 사실상 방치했다.

2023년 늦여름, 서이초 교사 사망 여파 속에서 윤석열 정부를 한 발 물러서게 한 교사 대중 운동에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별 노력이 없었다. 그 투쟁을 적극 지지·연대하며, 교사들을 넘어 더 많은 노동자들을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할 기회를 잡지 않은 것이다.(선거 대비가 더 중요했을까?)

이렇듯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노동계급이 겪는 고통을 해결하거나 덜기 위한 연대 투쟁을 제대로 건설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 번 선거에서 “투쟁을 우선해 지형을 바꿔야 한다”던 양경수 위원장의 당찬 포부는 임기 동안 만족스럽게 실현되지 않았다.

변별성

그런데 중앙집행위원회 내 좌파 성원들도 양경수 팀과 다른 투쟁적 방책을 제시하고 특히 기층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호소하고 조직하지 않았다.

예컨대, 지난해 11월 24일부터 16일간 진행된 화물연대 (재)파업은 고물가·고금리·고유가로 심각한 생활고에 처한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대표했다.

상대편은 윤석열이 탄압을 진두지휘하고 정부와 사용자, 주류 언론들이 모두 달려드는 등 ‘계급 전쟁’으로 대응했다.

그런 만큼 노동운동도 그렇게 대응해야 했다. 즉, 노동자 연대 투쟁을 진심으로 조직해야 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지지와 응원은 광범했고, 건설노조 일부가 동조 파업에 나서는 등 그럴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지도부의 대응은 체면치레 수준의 하루 행동을 넘지 못했다. 정의당은 물론이고 진보당의 정치인들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미온적 대응에 아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노총 중집의 좌파 집행부원들도 아무런 변별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

당시 본지는 민주노총이 연대 파업을 벌여야 하고 화물 파업과 그 시기에 분출한 윤석열 퇴진 운동과의 연결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희은 후보조가 속한 ‘전국결집’은 당시 화물연대 파업을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 확대해 나가자는 적절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박희은 후보는 민주노총이 실질적인 연대 투쟁(특히 총파업)을 벌이도록 그 성사를 위해 직접 조합원들에게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기층에서 선동하기 등 좌파답게 실천하려는 모습을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좌파라면 노조 집행부가 필요한 투쟁 건설을 회피할 때, 이를 비판하면서 독립적으로 투쟁을 하자며 조합원들에게 대안적 초점을 제공해야 한다.

한편, 얼마 전 민주노총 중집은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일환인 노조 회계 공시를 수용했다. 중집 내부에서 이견과 논쟁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박희은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은 반대 입장이었다며 양경수 후보에게 회계 공시 수용을 철회하자고 제안한 것은 선거에서의 차별화 시도일 뿐이라는 인상만을 줬다. 필요할 때 행동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실질적이고 책임성 있는 태도는, 중집 내 논의 과정에서부터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하고 공식 결정으로 굳어지기 전에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을 설득하고 저항해, 공시 수용을 찬성하는 중집 성원들을 압박하는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박희은 후보조가 선거에서는 양경수 후보조에 비해 투쟁을 강조했지만, 투쟁 조직에서 자신이 왜 양경수 후보보다 나은지 지난 실천을 통해 증명한 것은 없었다. 실천에서 좌파가 다른 노조 지도자들과 변별성이 없다면, 조합원들이 왜 선거에서 좌파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할까? 박희은 후보조의 주장이 조합원 다수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지 못했던 핵심 이유다.

이번에 박희은 후보조가 얻은 득표율은 3년 전 민주노총 임원 선거 1차 투표 때 두 좌파 후보조가 얻은 득표율을 더한 것과 엇비슷했다.

지형

이번 민주노총 선거 결과는 2016년 철도노조 파업 등 박근혜 퇴진 운동의 방아쇠 역할을 했던 조직 노동자들의 영향력이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유실된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하에서(2017~2021년)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진보 포퓰리즘 전략(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공조를 통해 개혁을 달성하겠다는)에 헌신하는 바람에, 열린 기회를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지 못하고 자본가 계급의 집행부, 문재인 정부에게 주도권을 내줬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 옹호, 한일 갈등에서 정부 지지 등).

이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실망한 사람들과 괴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더구나 기간제교사, 건강보험고객센터 정규직 전환 투쟁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기껏해야 형식적인 집회 정도를 열거나, 고약한 일부 노조 지도부(가령 전교조)는 사실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기까지 했다.

이런 점들이 지난 5년간 한국의 노동운동의 투쟁성을 좀 더 온건한 쪽으로 (또한 좀 더 부문주의적으로) 이동시킨 요인들이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는 이런 추세 속에서 치러졌다. 물론 각 부문 조합원들의 상태와 후보자들의 면모와 책략(합종연횡 같은)에 따라 산별노조 선거 결과는 다소 불균등했다.


공공운수노조 선거 결과의 함의

공공운수노조 선거에서는 좌파가 당선됐다.

엄길용 위원장 당선인은 2007~2008년 철도노조 위원장,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수서발 KTX 민영화 저지 파업 당시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장을 역임했었고, 철도노조 파업으로 몇 차례 해고를 당한 바 있다. 현재는 공공운수노조 내 좌파 활동가들의 모임인 ‘공공운수노조 현장활동가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공공운수노조 지도부(2018~2020년 중앙파·사회진보연대 지도부, 2021~2023년 현정희 지도부)가 기층 노동자들의 염원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자,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이번에 좌파 지도부를 뽑은 것이다.

특히, 이전 공공운수노조 지도부가 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심지어 공공운수노조 소속 건강보험노조 정규직 집행부가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비정규직 투쟁을 비난하는데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과 반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엄 당선인은 공공운수노조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비종파적이고 좌파적인 활동가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투쟁에 꾸준히 연대 활동을 해 와서 비정규직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신뢰가 높은 편이다. 이번 선거에서 ‘비정규직 철폐 원칙 재확립 및 각종 차별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엄길용 후보의 당선에는 공공부문 노조의 성장과 투쟁 경험이라는 더 넓은 맥락도 작용한 듯하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작은 정부’가 대세인 듯 오해가 많았지만, 실상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공공부문은 성장해 왔다. 그러면서 공공부문과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역할이 커져 왔다.

실제로 지난 여러 해 동안 노동조건 공격에 맞서 저항을 벌여 온 곳도 주로 공공부문이었다. 2016년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맞서 공동 파업을 벌였고, 이는 박근혜 퇴진 운동의 기폭제 구실을 했다.

덕분에 박근혜 퇴진 운동 성공 이후 공공부문에서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에 더해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이 늘었다. 김유선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사장의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연구1: 2017~2021년 조합원수(조직률) 증가’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2017~2021년 공공부문(공무원, 교원, 공공기관) 노조 조직률 상승 폭은 민간부문보다 3배 이상 높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했다(결국 사기로 드러났지만). 이에 자극을 받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요컨대, 사회·경제적 구조에서의 중요성과 박근혜 퇴진 운동이 낳은 정치적 효과 등이 결합되며 공공부문 노조가 성장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대규모 교사 노동자 시위가 분출하는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금속노조 선거 결과의 함의

금속노조는 지난 몇 년 동안 투쟁 면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양쪽 위원장 후보 모두 현대차 출신이었는데, 현대차 지부는 올해까지 5년 연속 임금 및 단체협상을 무분규로 타결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고립’ 탈피와 ‘시민’ 저항을 강조한 온건 성향의 장창열 후보조가 표를 더 얻은 것이다. 금속노조 현 위원장이 전국회의 소속인 점도 전국결집·전국회의 연합 후보조에게 불리했을 것이다.

민주노총 선거에선 양경수 후보조를 패권주의라고 비판했던 전국결집이, 금속노조 선거에서는 전국회의와 후보 연합을 한 것은 그 지지자들을 갸우뚱하게 했을 법하다. 원칙 있는 투쟁 건설 지향보다 노조 집행권을 위한 기회주의의 발로로 비쳤을 수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 내에서도 불균등성이 나타난다.

현대중공업지부 선거에서는 출마한 4개 후보조 중 가장 왼쪽인 백호선 후보조가 1차 투표 1위에 이어 결선 투표에서도 중앙파(이자 현 집행부를 계승한) 후보조에 이겼다.

2013년 당시 현대중공업노조 선거에서 12년 만에 민주파가 노조 집행권을 되찾은 뒤, 그간 억눌러 왔던 임금 등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며 투쟁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민주파 집행부 10년을 거치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기존 집행부의 자기 제한적 투쟁과 교섭을 중시하는 타협적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었다.

특히, 최근 역대급 수주 호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는 현 중앙파 집행부의 1차 임금 협약안을 부결시킨 뒤 역대 최대의 기본급 인상을 따낸 것으로 이어졌다.

또한 민주파가 당선된 지난 10년간의 결선 투표에선 민주파 후보조와 친사측 후보조가 경합을 벌였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친사측 후보조들이 모두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년에 올해보다 더 큰 규모의 임금 인상액과 이를 위한 투쟁을 강조한 좌파 후보조가 당선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