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이 끝나다. 연대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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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솟구쳤던 화물연대 파업이 12월 9일 안타깝게도 종료됐다.
윤석열 정부의 극악한 탄압과, 기업주들과 친기업 언론들의 십자포화 비난 속에서도 화물 노동자들은 16일간 생계를 포기하고 용기 있게 싸웠다. 윤석열이 선포한 계급 전쟁의 최전선에서 실질적인 연대 행동 부족으로 고초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싸웠다.
그런 만큼 각 파업 거점에서 농성장을 철거하는 노동자들은 원통한 심정을 토로했고, 일부는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파업 종료를 보도하면서 “조합원 61.8퍼센트의 찬성”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보수 언론의 경우, 정부의 강경 대응에 노동자들이 “백기 투항”했다고 썼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실제 찬반투표에 참여한 조합원은 13.67퍼센트밖에 안 됐다. 투쟁에 나섰던 많은 노동자들이 투표에 불참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항복하자는 투표를 해서 뭐 하냐”면서 말이다. 그 와중에도 적지 않은 수(37.6퍼센트)가 반대표를 찍었다.
즉, 기층 노동자들이 지도부의 파업 종료 결정을 뒤엎을 정도로 자신감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기꺼이 동조한 것도 아니다. 되레 다수는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했다.
생계비 위기 저항의 잠재력을 보여 주다
고물가·고금리·고유가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조속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실질임금이 깎이고 은행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난 몇 개월간 곳곳에서 불만을 터뜨리고 일부는 거센 저항에 나섰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광주·전남 건설 전기 노동자,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금융·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그랬다.
화물연대가 지난 6월에 이어 이번에 다시 파업에 나선 것도 심각한 생존 위기 상황 때문이었다. 하루 평균 14~16시간 장시간 운전대를 잡아도 치솟은 기름값과 부품 비용, 눈덩이처럼 커지는 은행 이자 부담 등으로 생활수준이 크게 떨어졌다.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는 안전운임제의 시행(유지·확대)을 바랐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은 심각한 생활고에 처한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대표했다.
반면 윤석열은 특히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더욱 광범한 대중의 불만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연대 파업이 성과를 낸다면 반윤석열 운동을 강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화물연대 파업은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내건 투쟁일지라도, 정부의 수반인 윤석열이 탄압을 진두지휘하고 정부와 사용자들이 모두 달려들 만큼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었다.
게다가 화물연대 파업으로 시멘트, 석유화학, 철강, 정유 등 일부 산업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걱정을 키웠다. 산업 전반에서 이윤에 타격을 받을 듯하자 첨예한 정치 문제로 부상한 것이다.
이번 투쟁은 생계비 위기 상황에서 싸울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광범한 지지·응원이 뜻하는 바다.
윤석열 퇴진운동은 12월 3일 촛불 집회를 화물연대 파업 지지 집회로 열었다. 정치적 운동이 처음으로 대중의 경제·사회적 요구를 적극 결합시켰다. 이것은 약소하지만 분명 전진이다.
윤석열의 범정부적 탄압 공세
윤석열은 집권 초인 지난 6월에도 화물 노동자들의 강렬한 파업에 직면했다. 노동자들은 일부 산업에 차질을 주고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구실을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번 파업 초기부터 범정부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두 차례나 발동하고, “국가적 재난,” “북핵 위협” 운운하면서 화물연대 파업을 국가를 위협하는 적으로 규정했다.
사용자들과 그들의 언론들은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며 환호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광일은 지배계급의 증오심을 표현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협상하지 않는다. 국가는 공권력의 삼엄함을 드러내는 심판자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심화하는 경제·안보 위기 등 다중 위기 상황에서 그 고통을 대중에게 떠넘기려고 필사적이다. 그래서 노동자 저항을 짓밟고 권위주의적이고 강경하게 탄압했다.
이번 투쟁은 현 정세하에서 세력 균형의 추가 어디로 기울지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였다. 화물연대 파업은 (그 함의상) 단지 그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불황기에는 노동자들의 임금 방어 문제에 국가 권력이 나서 통제하고, 사용자들도 웬만해선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의 삶과 조건을 지키려면 투쟁이 보편화(확산)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의 고물가·고유가·고금리 등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 국제적 공급망의 교란, 기후 위기 등 체제의 다중적 위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오늘날 흔히 ‘정치’ 하면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하는 활동, 그들과 협조해서 하는 입법운동 등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의미에서 정치는 이런 의미의 (개혁주의) 정치와 다르다. 대중 투쟁을 조직해 국가에 정면 도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려면 실질적인 계급적 연대가 필요하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상 백기투항 강요한 민주당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되기 하루 전인 12월 8일,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제시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러나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정부·여당의 안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였다. 이 점은 민주당도 애초부터 잘 알고 있었다.
안전운임은 현재 전체 화물 차량의 6퍼센트가량(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적용되고 있다. 대다수 화물 노동자들은 그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어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품목 확대 요구는 노동자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요구다.
민주당은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직후에 자신들이 안전운임제를 꼭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화물연대는 민주당이 당시 발의한 입법안(올해 말로 돼 있는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와 5개 적용 품목 확대)을 지지했다.
그러나 수개월간 민주당은 안전운임제 관련 안을 점점 후퇴시키더니 결국 정부안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들의 말처럼 “민주당은 립서비스만 했을 뿐, 항복을 하라고 반협박”이나 한 것이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스피커가 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오히려 정부·여당의 강공에 밀려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벨트 구실을 했다.
민주당은 기존의 안전운임제라도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정당화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부안으로 후퇴하자 윤석열 정부는 “3년 연장안은 이미 무효가 됐다”며 그조차 거부하겠다고 나왔다.
민주당의 후퇴는 그 정당의 진정한 성격에서 비롯한다. 민주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공공연히 수호하는 정당으로, 기업인들의 지지를 주요 기반으로 삼고 있다. 비록 기업인들은 민주당을 차선책으로 여기지만 말이다.
당의 참된 본질 때문에 그들은 이태원 참사 문제에서도, 긴축 예산안이나 집시법 개악 문제에서도 타협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민주당에 기대어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안전을 지킬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싸워야 한다. 개혁과 해방은 다른 누가 선사해 줄 수 없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한계
앞서 살펴봤듯이, 윤석열 정부와 사용자들과 국민의힘, 그들의 언론들은 화물연대 파업에 계급 전쟁으로 대응했다. 그런 만큼 노동운동 측의 대응도 정치적(전 계급적 연대)이어야 했다.
건설노조 일부가 동조 파업을 선언하고 실제 파업에 나선 것은 가뭄에 단비 같은 반가운 일이었다.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본부는 “화물연대를 지키는 것이 건설노조를 지키는 것”이라며 연대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를 포함한 민주노총, 정의당 등 노동운동의 개혁주의 지도부들의 대응은 그럭저럭 체면치레 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연대를 조직하기는 했지만 매우 부족했다.
가령 민주노총 지도부는 뒤늦게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12월 6일 하루 조직한 행동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다음 날 민주노총 중집은 윤석열에게 “엄중 경고”한다며 대화를 촉구했다. 자기 조합원들이 강경 탄압에 내몰려 “윤석열을 땅에 묻어버리고 싶다”면서 울분을 터뜨리고 있을 때, 상급단체 지도자들은 조합원들에게 대항 ‘명령’을 하며 신속하고 만만찮게 투쟁을 조직하길 회피한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철도노조의 “합의 잠정 타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그는 “서울교통공사나 철도노조가 파업까지 돌입하지 않았던 것은 좋은 일”이라며 “더 큰 혼란이 야기되지 않고, 요구가 수용되었다”고 (기자 간담회에서) 말했다.
그러나 철도노조의 파업 불발은 화물연대 파업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물연대 파업이 패배하면 정의당과 민주노총이 강조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의 동력도 축소될 것이다. 자기패배적 전략의 추구가 아닐 수 없다.
양경수 위원장의 ‘사회적 혼란’ 걱정은 노동조합 지도층의 정치적 무능·무기력을 보여 준다. 중요하게 다가온 기회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사실상 피하면서, 투쟁의 맥을 끊는 구실을 사실상 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과 노조 지도부 사이 정치투쟁/ 경제투쟁 분업 노선의 한계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이런 소심한 실천이 누적돼 온 결과,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연대 행동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화물연대 파업 종료로 당분간 윤석열은 더한층 자신감을 얻고 강경하게 나올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 강공을 이어가다가 자칫 실수하면서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고,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공격했다가는 만만찮은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윤석열은 취임 7개월 만에 만만찮은 퇴진 운동에 직면해 있다. 비록 이번에 씁쓸하게 차질이 빚어졌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