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공연장 공격에 대한 서방의 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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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공격에 대한 반응은 세계 최대 강대국들의 위선과 이중잣대를 훤히 드러냈다.
3월 22일 총을 든 남성들이 공연장 ‘크로커스 시티홀’에 난입해 130명 넘게 살해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 연계 단체 아이시스-K가 이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다.
아이시스-K는 극렬 종파 세력으로, 제국주의자들이 아시아·중동·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을 지배하려 드는 과정에서 성장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습격자들은 공연장에 난입해 관중에 총을 난사했고 건물에 불도 질렀다.
러시아 정부는 총격범 네 명을 모두 체포했고 이번 주에 공개 법정에 세웠다. 총격범들을 고문한 흔적을 드러내기를 개의치 않았다.
보안군은 총격범 한 명의 귀를 잘랐다. 다른 한 명은 휠체어에 실려 눈을 못 뜨는 채로 법정에 나왔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시점까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아이시스 측에서 공격의 배후를 자처한 데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후 푸틴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소행이라고 언급했다.]
오히려 푸틴은 우크라이나 개입설을 주장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측”이 국경에 “탈출구를 마련”했고 총격범들이 [체포 당시] 그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연설에서 “테러리스트 배후 세력은 모조리 징벌하겠다”고 선언했다. 푸틴은 이 공격을 빌미 삼아 러시아-서방 제국주의 간 대리전이 돼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동원을 강화할 공산이 크다. 또, 푸틴은 러시아 국내에서도 탄압을 강화할 것이다.
서방 언론은 푸틴에게 이번 총격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할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서방은 자기 영토에 비슷한 공격이 벌어지면 정확히 그렇게 활용해 왔다.
9·11 공격을 이용해 미국 전 대통령 조지 부시와 영국 전 총리 토니 블레어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과 더 광범한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9·11 공격을 이용해 서방은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적들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공포를 부추겼고, 국내외에서 무슬림을 악마화하기 위해 이슬람 혐오를 부추겼다.
그러나 공격 대상이 러시아냐 서방이냐에 따라서 서방의 공식 [정치권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2015년 1월 알카에다가 프랑스 언론사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을 공격하자, 서방 지배계급 정치인들은 프랑스에 대한 지지를 표하러 파리로 몰려들었다.
그런 정치인 중에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를 비롯해 손에 피가 흥건한 전쟁광들도 있었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과 국립축구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총격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도 너 나 할 것 없이 “공식적” 추도 물결이 일었다.
반면 지금 서방은 러시아를 제압하고 싶은 욕망이 추도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아이시스 자체는 제국주의자들의 반복적 개입이 만든 악순환의 산물이다.
미국·영국이 주도해 이라크를 파괴하고 종파 갈등을 부추긴 탓에 아이시스 같은 단체들이 성장할 기반이 형성됐다.
그런 단체들은 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정치적 공백을 채우는 데에 한몫했다. 이에 더해 러시아가 무슬림을 공격해 온 역사도 이번 모스크바 총격에 한몫했을 것이다.
남아시아연구소 소장 마이클 쿠겔만은 아이시스-K가 러시아의 무슬림 억압 사례들을 선전에 끌어다 쓰고 있다고 알자리라에 전했다.
쿠겔만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러시아가 체첸에서 저지른 일”과 같은 “러시아의 대외 정책 자체가 아이시스에게는 거대한 공격 신호”와 다름없다고 했다.
인구 다수가 무슬림이고 현재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체첸에서 러시아 국가는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
1990년대에 체첸이 독립을 선언한 후 러시아는 체첸을 상대로 유혈 낭자한 식민 전쟁을 벌였다. 이런 학살을 가능케 하려고 러시아 국가는 오랫동안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며 체첸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그렸고, 체첸인에게 “내부의 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 전쟁 이후, 체첸 운동 세력 일부는 푸틴과 손잡았고, 현재 체첸인들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 병력으로 동원하고 있다.
체첸 운동 세력 중에는 아이시스 같은 단체들로 이끌린 곳도 있었다.
지난주 모스크바 공격의 배후는 끝내 규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서방은 그런 참사를 얼마든지 부추기고도 남을 작자들이다.
이는 푸틴도 마찬가지다. 푸틴 정부는 132명이 사망한 2002년 모스크바 극장 공격을 [제2차 체첸 전쟁에] 이용했고, 어쩌면 그 비극을 야기한 당사자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모스크바 공격은 비극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극이 제국주의적 폭력을 더한층 키우는 데에 이용되게 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