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금융기관의 문턱에서 또다시 차별받는 이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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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드사 콜센터에서 카드 발급 심사를 담당한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금융기관의 심사 기준이 이주 배경 노동자와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매우 차별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계좌 개설, 카드 발급, 해외 송금 등 기본적인 일상 금융거래조차 국적과 체류 자격 탓에 까다롭고 모욕적인 절차로 변한다.
특히 소득 수준이나 실제 상환 능력과 무관하게 국적만으로 거래를 거절하거나, 내국인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문제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며 비슷한 임금을 받고 비슷한 생활을 하더라도, 내국인은 카드 발급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반면 이주 노동자는 국적이나 체류 자격 탓에 처음부터 배제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분류에 따른 심사 기준을 들 수 있다. FATF는 범죄 수익, 테러 자금, 대량살상무기 확산 자금의 유통 방지를 명분으로 매년 정기 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에서 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국가를 선별해 거래 중단이나 강화된 절차 등의 제재 사항을 권고한다.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강대국이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은 2009년에 가입했다.
2026년 2월 13일 FATF 발표에 따르면, 북한과 이란은 ‘대응조치 대상’(거래 거절) 고위험 국가로, 미얀마는 ‘강화된 고객확인 대상’ 고위험 국가로 유지됐다. 알제리, 베트남,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파푸아뉴기니 등 22개 국가와 지역은 ‘강화된 관찰 대상’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의 검은돈 세탁이나 조세 회피가 가난한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델라웨어주나 영국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 등에서도 세계적 규모의 조세 회피와 불투명한 자금 흐름이 폭로된 바 있다. 하지만 FATF가 이들 강대국의 금융 중심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일은 결코 없다.
강대국의 금융 중심지는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 회로로 작동하는 반면, 가난한 나라 출신 노동자와 민중은 국적을 이유로 일상적인 금융 거래에서 의심받고 배제된다. 금융기관은 이러한 국제 기준과 국내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근거로 고객에게 강화된 고객 확인 절차를 적용하거나 거래를 거절한다.
이주 배경 사람들은 국적 이외의 기준으로도 배제된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심사가 까다로워지며, 체류·근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E-9(고용허가제)이나 H-2(중국·구소련 지역 동포 대상 방문 취업) 비자 소지자, 혹은 난민 체류 자격을 가진 이들은 그 자체로 금융 거래 거절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장에서 상담하다 보면, 나는 구체적인 근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기준상 발급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해야 할 때가 있다. 이주 배경 노동자들은 저임금, 위험한 노동 환경, 불안정한 체류 자격으로 이미 여러 겹의 차별을 겪고 있다. 그런데 금융기관의 문턱에서도 이들은 또다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소득이 있어도 계좌 개설이 어렵고 카드 발급이 까다로우며, 때로는 국적이나 비자 종류만으로 거래 자체를 거절당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불편이 아니다. 사회적 차별이 금융 시스템 내에 제도화돼 있음을 보여 준다.
이주민과 난민을 배제하는 금융 제도, 제국주의적 제재 질서, 국적에 따른 낙인찍기는 부당하다. 이주노동자는 내국인과 같은 일터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지배자들은 국적과 체류 자격으로 노동자들을 갈라치고, 특정 집단을 더 쉽게 의심하고 배제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니라 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