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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알렉스 캘리니코스 강연:
파시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다음은 7월 3일 영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한 발제와 토론 정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첨가한 것이다.

파시즘의 고유한 특징과 특별한 위험성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1930년 10월 독일 나치의 집회 ⓒ출처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

파시즘이 위세를 떨친 1920~1940년대의 역사를 보면, 마르크스주의자들도 파시즘의 주요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이유로, 때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그 밖에 파시스트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온갖 이유로 박해받았다.

그런 만큼 192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파시즘을 이해하려고 애쓴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시도들은 파시즘이 사회·정치 현상으로서 왜 특별한지를 포착하지 못했다. 여기서 방점은 “정치”에 있다. 계급 투쟁에 개입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파시즘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주의자의 주된 관심사는 계급 투쟁일 수밖에 없다.

먼저, 두 가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자.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서 스탈린주의가 상이한 국면에서 제시한 견해들이다.

첫 번째 사례는 민중전선 스탈린주의다. 1935년 제7차 코민테른 대회는 스탈린주의에 완전히 장악됐다. 당시 코민테른 의장이자 불가리아 공산당 지도자였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제시한 파시즘 정의는 매우 널리 알려지고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에 따르면 파시즘이란 “금융 자본의 가장 반동적이고 국수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부분에 의한 공공연한 테러 독재”다.

이것이 실제 뜻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파시즘이 정말로 나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디미트로프가 옳다. 참고로 디미트로프 자신도 나치 독일에서 운 좋게 빠져 나왔다.

둘째, 디미트로프의 정의에 따르면 파시즘은 대자본의 도구다. 파시즘이 지배계급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자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파시즘이 나쁘다는 것은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파시즘이 어떤 점에서 다른 정치 세력과 구분되는지에 관해서는 [스탈린주의 측이] 전혀 말해 주는 바가 없다.

사실 디미트로프의 파시즘 정의는 민중전선을 채택하기 전에 스탈린주의가 제시한 파시즘 이해를 답습한 것이다. 그것은 코민테른 제3기(1928~1934년)에 제시된 것으로, 당시 공산당들은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초좌파적 노선으로 선회하고 “사회파시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사회파시즘”이란 당대 유럽 부르주아 사회의 주요 정치 세력이 모두 파시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여기서 “유럽”이라고 한 것은 이 논의들이 대부분 유럽의 파시즘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의 일본과 중국이 중요한 사례다. 그러나 시간 제약상 이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여러 주류 우파, 정치적 자유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까지 모두 파시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민주주의도 파시즘의 일종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사회파시즘”이라는 용어가 나온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도 무솔리니나 히틀러만큼 나쁘다는 뜻이다.

이러한 관점과 디미트로프가 나중에 내놓은 파시즘 정의의 공통점은, 파시즘이 정말로 나쁘다고는 말하지만 정치적으로 독특한 점은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파시즘이라고 본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파시즘에 대한] 공식들이 낸 효과는 상이했지만 모두 재앙적이었다. 1930년대 초에 나치가 전진하는 와중에, 사회파시즘 규정은 대중적 노동자 정당이었던 독일 공산당이 사민당에 대해 종파적인 노선을 취하도록 부추겼다. 사민당을 사회파시스트로 규정했으니, 히틀러에 맞서 그들과 단결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그 결과 노동계급은 분열했고 나치가 승리했다.

그 후 디미트로프가 제시한 파시즘 정의는 민중전선을 정당화했다. 파시즘을 자본의 가장 반동적인 부분의 도구로 보는 것의 함의는 자본의 비교적 괜찮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즉, 덜 반동적이고, 비교적 진보적·친민주주의적인 자본이 있다는 것이다. 민중전선의 논리는 당시 나치와 무솔리니로 대표되고 있던 파시스트들에 맞서 ‘민주적’ 부르주아지와 단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파시즘이라는 규정은 슬그머니 폐기됐다. 그러나 민중전선도 재앙을 낳았다. 스페인 내전의 패배는 민중전선 정치가 가져 온 대실패의 한 사례다.

이로써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주요 마르크스주의 세력이 파시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대략 살펴봤다.(어쨌거나 당시 세계 곳곳의 반파시즘 투쟁에서 우세했던 주요 마르크스주의 세력은 스탈린주의화한 공산당들이었다.)

디미트로프의 파시즘 정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용되고 있다. 디미트로프의 공식이 고스란히 인용되기도 한다. 이는 스탈린주의가 다시 유행을 타는 것의 반영이기도 한다.(개브리얼 록힐의 형편없는 최근 저서 《누가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자금을 대 줬는가?》는 그 유행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사회파시즘 규정을 여전히 고수하는 스탈린주의 종파들도 있다. 그들이 오늘날 중요한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자신이 반대하는 것을 모두 파시즘으로 일컫는 경향이 있다. 트위터에서는 사람들이 [최근 사임한] 영국 총리 스타머를 줄곧 파시스트로 일컫는다. 그러나 이것은 욕처럼 쓰는 딱지일 뿐, 분석이 아니다.

그나마 분석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알베르토 토스카노가 쓴 《후기 파시즘》이 있다. 토스카노는 테오도어 아도르노나 프레드릭 제임슨과 같은 몇몇 영향력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한 후기 자본주의 개념을 이용해서 파시즘을 살펴본다. 토스카노는 현대 파시즘에 고유한 특징이 있다고 시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짜임새 없는 서술 방식 탓에 그 책에서 어떤 명료한 이론을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토스카노는 자본주의에서 비교적 일반적으로 나타는 현상들과 파시즘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토스카노는 역사 속 식민 지배와 파시즘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연속성이 있다는 것은 옳은 얘기지만 딱히 새로운 통찰은 아니다. 파시즘과 식민주의의 관계에 관해서는 1950년대에 나온 에메 세제르의 탁월한 저서가 정곡을 찌른바 있다. 그는 홀로코스트는 식민 지배의 야만성이 유럽인들에게 되돌아온 것이라고 진실의 중요한 단면을 지적했다.

토스카노는 또한 자유주의와 파시즘의 연속성도 강조한다. 무솔리니는 집권 후 부르주아지의 지지를 얻으려 애썼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자유 시장 경제와 긴축 재정의 옹호자로 내세웠다. 따라서 토스카노의 얘기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사실 그람시도 비슷한 논의를 한 바 있다. 놀랍게도 토스카노는 그람시의 논의를 전혀 다루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무솔리니의 행보는 이탈리아 파시즘이 이탈리아 자본가 계급과 국제 자본가 계급의 환심을 하려 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후 무솔리니는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노선을 추구했다. 히틀러도 지배계급의 환심을 사는 데 능했지만 나중에는 국가 통제를 강화했다.

토스카노와 같은 방식으로 파시즘을 이해하는 것의 난점은 보통의 자본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연속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진정한 파시스트 지배 체제가 들어설 때 나타나는 단절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토스카노만 그런 함정에 빠진 게 아니다. 더 좌파적이고 명석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우고 팔레타는 ‘파시즘화(化)’에 관해 이야기한다. ‘파시즘화’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코민테른이 썼던 용어다. 파시즘이 서서히 국가에 침투하고 사회 전반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었다. 국가의 억압 기구 일부와 파시스트들의 공모는 파시즘 역사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파시즘 지배 체제가 나타내는 단절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사례를 통해 이 점을 살펴보겠다. 이탈리아에서는 오늘날 이탈리아 형제당이라고 불리는 역사적 파시스트 정당의 지도자인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를 지내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이는 이탈리아 사회의 우경화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지배 체제가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단적인 반례로 근래에 일어난 가장 고무적인 사건의 하나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대중파업이다. 멜로니 정부가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제약하는 입법을 강행했음에도, 이탈리아에서는 2025년 9월과 10월 두 차례 팔레스타인 연대 총력 파업이 일어났다.

무솔리니 치하였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폴 풋[작고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간부]의 아들이자 역사가인 존 풋이 쓴 《피와 권력: 이탈리아 파시즘 흥망사》라는 흘륭한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1920~1922년에 파시즘이 조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편 유혈 낭자한 공세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파시스트들이 정부 운영권을 갖기도 전에 자행한 일이다. 이것이 파시즘의 본모습이다. 즉, 파시즘은 조직 노동계급을 분쇄하려 한다.

파시즘을 이해하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러 시도들이 드러낸 이러한 한계에 견줘 보면 트로츠키 저작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발제 막판에 다룰 트로츠키의 정치적 결론도 중요하지만, 트로츠키가 파시즘의 독특함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파악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이한 계급 지배 형태들을 살펴보면서 파시즘의 성격을 파악한다.

트로츠키만 그런 방식을 취한 것은 아니다. 그람시도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그런 시도를 했다. 또, 니코스 풀란차스도 파시즘을 다룬, 장단점이 모두 있는 저서에서 그렇게 했다.

그람시가 남긴 유명한 말에서 출발해 보겠다. 그람시는 [트로츠키처럼] 강제력만으로는 지배계급이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폴레옹은 이렇게도 표현했다. “총검으로 온갖 일을 할 수 있어도 그 위에 앉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나폴레옹 자신이 총검 위에 앉으려 하다가 곤경에 빠졌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이 도덕적·정치적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한다.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는 강제력에 의한 지배와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통합이다. 후자를 통해 지배계급은 자신의 강제력과 경제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람시가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은(그러나 트로츠키는 다룬) 측면이 있다. 헤게모니가 작동하려면 지배계급과 다른 계급들 사이에 제도화된 관계가 성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상이한 형태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지배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먼저, 제1차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여러 면에서 유럽에서 여전히 우세했던 전통적 보수주의가 있다. 이것은 유럽의 구체제가 거친 마지막 단계였는데, 구래의 지주 계급이 지배계급 내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며 자본가 계급의 상이한 부분들과 공존하는 형태였다.

그들은 강제와 부패, 후견주의, 교회의 권력을 통해 지배했다. 골치아프게 말썽을 일으키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가차없이 짓밟았다. 그리고 하층 계급의 다른 부분들을 매수해서 사회의 통합을 유지하려 했다. 지배자들은 권력이 가져다 주는 이득을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이를 정당화해 주는 성직자들이 언제나 있었다.(우리 모두가 비교적 좋게 보는 현 교황 레오 14세를 딱히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전통적 형태의 계급 지배는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커다란 압박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면서 혁명적 격변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대공황이 오고 혼돈이 펼쳐졌다.

자본가 계급 지배의 두 번째 형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다. 이것은 전통적 형태와 사뭇 다르다. 마르크스와 레닌 모두가 지적했듯이, 자본가들이 공공연하게 정치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더는 지주에 의존하거나 그들 뒤에 숨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차이는 의회 민주주의와 선거 경쟁이, 조직 노동계급을 포함시킬 정치적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그저 탄압과 이간질, 매수 등으로 다스리기에는 너무 강력해졌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단지 개인이 아니라 조직된 계급으로서 자본주의 안에서 일정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조합 관료의 구실이 핵심적이다. 노동조합 관료는 노동자 착취의 조건을 협상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으로서, 기층 노동자들과는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다. 노동조합 관료와 그들의 정치적 표현체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통해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안에서 일정한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계급 지배 형태는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시기 유럽에서 널리 확산됐다. 그러나 그 시기는 결국 파시즘의 승리로 끝났다. 그 시기에는 바이마르 공화국도 있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안정화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맹아적 형태의 파시즘 무장 조직인 ‘자유 군단’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예컨대 ‘자유 군단’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 같은 혁명가들을 살해하는 데 이용됐다.

그런데 이런 계급 지배 형태[부르주아 민주주의]에 필요한 계급 간 타협(오늘날 복지 국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은 대공황이 오면서 갈수록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대공황에 직면하자] 지배계급은 조직 노동계급을 분쇄해야 했다. 그러나 조직 노동계급은 독일 혁명의 패배[1923년], 1920년 9월 이탈리아 공장 점거 운동의 패배 등 여러 패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매우 강력하고 투쟁적이었다. 자신의 힘을 맛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굴복시킬 것인가?

권위주의적 보수주의로 돌아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군사 독재를 수립하거나 기존 지배 체제의 독재적인 버전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서 트로츠키는 보나파르트주의 지배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런 규정의 장단점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더 억압적이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에 기대는 해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독일처럼 노동계급이 강력한 사회에서는 그런 해법이 먹히지 않을 것이었다. 헝가리처럼 지주가 여전히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그런 해법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래서 헝가리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동안 준파시즘적 독재하에 있었다. 그러나 더 산업화한 사회에서는 그런 해법이 불가능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동안 프랑스에서는 좌파와 우파가 계속 엎치락뒤치락 해 왔다.

바로 이런 조건에서 파시즘이 역할을 한다. 트로츠키는 파시즘의 핵심 특징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파시즘은 조직된 대중 운동이고, 다만 노동계급이 아닌 중간계급(하층)의 운동이다. 그 운동에는 영세 상인이나 변호사, 의사 같은 사람들뿐 아니라 그 시기에 상대적 특권을 누린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참여했다. 어쨌든 파시즘은 그 외의 보수적 세력들과는 규모가 현격하게 다른 대중 운동이었다.

둘째, 그 대중 운동은 부분적으로라도 준군사적 노선에 따라 조직됐다. 이것은 유럽에서 일어난 격렬한 전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1914년 8월에 시작된 제1차세계대전은 혁명의 물결이 일고 나서야 끝났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그 과정은 전쟁 경험으로 훈련된 집단을 낳았다. 이들은 자국 제국주의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후퇴를 강요받은 것(독일 제국주의의 좌절은 특히 극적이었다)에 분노했다. 이들은 전투와 폭력에 익숙해 있었다. 이는 파시스트 대중 운동의 결속력을 키우는 데서 중요한 요소였다.

셋째, 파시즘 운동들은 단지 조직적 결속력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결속력도 있었다. 혁명적 미사여구로 치장한 반혁명적 이데올로기가 그 결속력을 제공했다. 다시 말해,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그저 ‘좋은 옛 시절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말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그러나 주된 논조는 아니었다. 그들의 주된 논조는 ‘우리 사회가 근본부터 구조적으로 잘못돼 있고, 이런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다. 그들 중 사고가 분명한 자들은 유대인 혐오로 나아갔다. 20세기 초에 유대인 혐오는 인종차별적 자본주의 비판을 제공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마르크스가 분석한 착취나 착취 관계, 축적 과정에 있지 않다. 소수의 유력한 유대인들이나 ‘국제 유대인 집단’, 또는 로스차일드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이 히틀러의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말이다.

이런 식으로 유대인 혐오는 사회의 재건을 위해 공격해야 할 표적을 제공했다. 그것은 파시스트들이 건설하는 대중 운동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 특히 홀로코스트의 중요한 동기였다. 이에 관해서 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이처럼 파시즘은 전통적 보수주의 하에서라면 불가능했을 방식으로 노동계급을 분쇄하고 원자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계급 지배다.

디미트로프식의 분석이 놓치는 파시즘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그런 운동들이 자본으로부터 일정한 정치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대자본의 환심을 사려 했다. 자신들을 권좌에 앉혀도 대자본에 이롭다는 것을 보이려 한 것이다. 대자본은 거기에 응해 줬다. 그러나 권좌에 오른 파시스트들은 대자본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이는 독일 나치 지배 체제가 갈수록 국가자본주의로 기운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파시즘도 같은 길을 걸었다.(시간 제약상 이에 관해 더 자세히 논의하기는 어렵다.)

고전적 파시즘이 어떻게 됐는지에 관해서는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파국을 맞이했다. 다행인 일이었다. 비록 파시즘을 무너뜨린 것은 주로 경쟁 제국주의들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시 극우와 그 안에 포함된 파시즘이 전진하고 있다. 현 시기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와 비슷한 점이 있다. 제국주의 경쟁이 격화되고, 애국주의가 강화되고, 군비 지출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세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가 아닌 경제적 대안이 일관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무솔리니 집권 초기와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개혁당의 지도자 나이절 퍼라지가 파시스트인 것은 아니지만 그는 신자유주의자이자 초(超)대처주의자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경제적 대안이 없는 것이다.

둘째, 지금 극우 내에서 우세한 경향은 포퓰리스트 인종차별주의다. 물론 그 안에서 파시스트 분파가 성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트럼프는 닉슨 식 공화당 정치를 추구한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부패하고 잔인하고 악랄하고 이기적인 부류이고, 그 외에 온갖 수식어로 그를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지배계급과의 단절을 나타내지 않는다. 물론 트럼프 정부 안에는 파시스트들도 있다. 트럼프의 참모인 스티븐 밀러가 그런 사례다. 그러나 오늘날의 극우는 여전히 매우 이질적이다. 파시즘의 거리 운동도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보다 훨씬 약하다.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영국의 파시스트 토미 로빈슨은 온갖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거리 시위를 벌일 수 있었다. 따라서 거리의 파시즘은 죽은 게 아니다.

극우가 더 급진화할 여지도 여전히 많다. 예컨대, 트럼프가 추락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트럼프는 크게 낭패를 보고 있다. 2028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패배하면 트럼프주의 운동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트럼프주의 운동은 사라지지 않고 급진화할 공산이 크다.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인 멜랑숑이 국민연합 후보를 패배시킨다고 상상해 보자.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도 아주 없지는 않은 시나리오다. 극우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멜랑숑 정부는 자신을 뒤흔들려는 국제 자본의 어마어마한 공세뿐 아니라, 극우의 공세에도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더 적나라한 파시즘으로의 이행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은 오늘날 영국에서도 관찰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트로츠키가 자신의 분석에서 도출한 매우 중요한 결론들이다. 시간 제약상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하겠다.

첫째,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우리는 파시즘의 공격으로부터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해야 한다. 그것이 좋아서, 또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라서 방어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사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원한다. 노동계급의 독재를 원한다. 이것은 가장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이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나 파시스트 지배 체제 모두와 닮은 데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가장 부패하고 한심한 형태의 사회민주주의라고 할지라도 노동자 운동과 그 밖의 운동들이 조직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틀을 제공한다. 따라서 우리는 파시즘의 공격으로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해야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공격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영국 등지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탄압을 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결론이다.

둘째, 파시즘에 맞선 공동전선이 있어야 한다. 영감을 주는 많은 사례들이 이전 토론회에서 언급됐다. 그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고 파시즘을 패퇴시킬 태세가 된 모든 사람들을 단결시켜야 한다. 가장 강력한 형태의 대중 운동, 특히 파시스트들을 거리에서 몰아내고 선거에서 영국개혁당이나 세계 각지의 극우 정당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셋째,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파시즘은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착취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더 혹독한 처지로 내모는 가운데 부상한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파시스트들을 물리치는 데 머물지 않고 체제에 맞설 혁명적 당을 건설해야 한다.

토론 정리

매우 흥미로운 토론이었다. 많은 논점과 쟁점이 제기됐다.

먼저, 히틀러 지배 체제의 변화에 관해서 나온 주장에 관해 이견이 있다. 그 변화를 더 큰 틀 속에서, 파시스트들과 지배계급의 전반적인 관계 변화 속에서 살펴보겠다. 자세히 이야기할 시간은 없지만 말이다.

집권한 파시스트들에 특히 해당하는 얘기지만 집권 이전의 파시스트들에도 해당하는 것으로, 한 발언자가 지적했듯이 파시스트와 지배계급의 관계는 갈등으로 가득하다. 영국의 파시스트 토미 로빈슨은 기업인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는 골드만삭스 회장 등의 기업인들이 자기 집에 초청하고 싶어할 인물은 결코 아니다. 독일어에는 ‘품격 있다’(salonfähig)라는 멋진 표현이 있다. ‘상류층의 다과회나 만찬에 초청할 만하다’는 뜻이다.

파시스트 운동의 역사를 보면, 그 운동의 영리한 지도자들은 그 ‘품격’을 갖추려고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히틀러가 그랬다. 나치가 선거에서 돌파구를 연 후 히틀러는 대자본가들에게, 자신이 권력을 믿고 맡길 만한 인물임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파시스트들과 지배계급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소란스럽고 위험한 그들의 거리 운동이 지배계급의 걱정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가 벌인 일[지지자들을 부추겨 국회의사당에 난입하게 해 폭동을 일으켰다]에 미국 지배계급이 경악한 것을 떠올려 보라. 따라서 둘 사이 관계의 균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히틀러 정권은 돌격대(SA)를 공성망치로 이용해, 집권 후 삽시간에 조직 노동계급을 파괴했다. 당시 돌격대는 지배계급과 특히 군 장성들을 긴장케 했다. 나치 지도자들이 원칙을 저버렸다고 성토하고, 자신들이 군대를 대체하겠다고 을러댔기 때문이다. 그러자 히틀러는 1934년 6월 30일 ‘장검의 밤’에 돌격대를 급습해 핵심 인물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득을 본 것은 누구인가? 군 장성들이 아니었다. 나치 운동의 또 다른 일부, 즉 힘러가 이끄는 친위대(SS)가 득을 봤다. 친위대는 경찰과 안보 기구 등을 장악해 ‘국가 안의 국가’로 발전해 홀로코스트를 조직하고 거대한 군사 조직을 육성했다. 1944년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군 장성들은 ‘7월 20일 음모’로 히틀러를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했다. 도리어 친위대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장성들을 제거했다. 독일 장교 계급의 지도자들이 친위대에 의해 체계적으로 살해당했다.

이것은 자본으로부터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파시스트들의 노력이 매우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율성 확보는 국가자본주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시도와 결합됐다. 괴링이 그 중심에 있었다.

오늘날 이탈리아 총리 멜로니도 그보다는 덜 극적이지만 자본과의 관계를 협상하려 한다. 2022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멜로니는 자신이 ‘품격’ 있고 믿을 만한 인물임을 유럽 지배계급에게 보이려고 애썼다. 심각한 기능 장애를 겪고 있는 유럽연합의 통화 시스템을 교란시키지 않을 것임을 보이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지배계급이 유럽연합과의 준통합으로 인해 받는 제약이 현재 훨씬 커졌다. 또한, 멜로니의 오른쪽에는 그녀가 너무 유약하고 타협적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 멜로니는 이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파시즘하의 여성에 관해서는 내가 권위 있는 답을 내놓기 어렵다. 역사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한때 역사가들은, 나치 독일에서 전시 경제가 발전하고 있을 때 히틀러가 여성을 노동력에서 제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부엌, 교회, 자녀’라는 표어로 대표되는 가족 이데올기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가들은 오히려 많은 여성이 노동력에 편입됐다고 주장한다. 나치가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극우와 여성에 관해 내가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핵심 전선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전선은 극우가 무슬림을 공격할 때 이용하는 가짜 페미니즘이다. 이것은 극우가 펴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중요한 일부이고 대결이 필요하다. 또 다른 전선은 소위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격이다. 다시 말해,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다.

그동안 트럼프 정부는 온갖 기행과 좌충우돌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 하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그리고 사람들을 전통적 성역할과 이성애 규범적 가족 제도에 욱여넣으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문제를 핵심 전장으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도전에 응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전장이다. 제정신 박힌 좌파라면 누구나 트랜스젠더 해방 투쟁이 얼마나 위력적이고 큰 급진화와 영감을 주는 운동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자세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놓고 우리에게 싸움을 거시겠다? 그래 어디 한 번 덤벼 보시지’ 하는 자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연대체 ‘극우에 맞선 여성들’의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극우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노동당 선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공동전선은 정당이 아니고 선거 연합도 아니다. 특정한 쟁점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이다. 급진 좌파의 선거 대안에 관해서 말하자면, 지금은 정말 형편없는 상황이다. 특정 선거에서 누구를 찍느냐는 문제가 훨씬 까다로워졌다.

그럼에도 ‘영국 개혁당에 투표하지 말라’, ‘[또 다른 극우정당] 영국 회복당에 투표하지 말라’, ‘극우나 파시스트에게 투표하지 말라’가 운동의 명백한 강조점이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짚겠다.

극우에 자금을 대는 재단에 관한 폭로가 있었는데 사실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대자본이 극우에 돈을 대고 입김을 행사하는 훨씬 극명한 사례가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다. 그는 금융 시장에 의해 거의 슈퍼맨의 반열에 올랐다. 조만장자로 부풀려졌지만 실제로는 무가치한 인물이다. 오늘 아침 트위터에서 본 얘기인데,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영국 정치를 논하고 영국 극우와 인종차별적 폭동을 지지하며 올린 글이 스페이스엑스 상장에 관한 글의 두 배에 이른다고 한다. 어쩌면 머스크는 ‘은행들이 내 주머니를 채워 줄 것임은 확실하니, 나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서 대자본과 파시스트들의 관계에 관해 얘기했지만, 현재 우리는 금융 시장을 이용해 몸집을 불린 세계 최대의 자본가가 영국의 가장 만만찮은 파시스트들을 지원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끝으로 [‘나크바’를 맞이해 극우와 반극우 운동이 런던에서 맞불 동원을 했던] 5월 16일 영국의 반극우 시위의 승리를 상기시키고 싶다. 정말 끝내주는 날이었다. 파시스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거리에 동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가을 반극우 시위대가 토미 로빈슨의 극우 시위에 밀린 것을 설욕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5월 16일 영국의 반극우 시위. 인종차별 반대를 매개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반극우 운동과 연결된 사례다 ⓒ출처 Guy Smallman

모든 성공 요인들을 분석할 수 있고 분석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날 시위 참가자들은 ‘로빈슨 꺼져라’ 하고 외치러 나온 것이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유대인 혐오자라고 비방하는 영국 국가도 꺼져라’ 하고 외치러 나온 것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연대는 그 시위의 매우 강력한 동인이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상황을 크게 변화시키고 반극우 거리 행동의 효과를 키운 핵심 요소였다. 강력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반극우 투쟁에 가세해 큰 힘을 보탠 것이다.

물론 이를 이뤄 내는 데는 어려움도 있었다. 반드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극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투쟁에 참여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제공하는 급진적인 활력과 영감은 반극우 투쟁의 중요한 무기가 됐다. 앞서 트랜스젠더 운동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도 매우 중요하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번역: 이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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