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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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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제국주의 국가인가

트럼프의 ‘막가파식’ 제국주의 행태 때문에 트럼프와 미국의 국제적 지지율은 크게 하락하는 반면, 시진핑과 중국의 신뢰도는 상승하고 있다. 2026년 4월 여론조사 전문 기업 갤럽이 130여 개국에서 각각 1,000여 명을 설문한 결과, 트럼프의 미국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31퍼센트로 바이든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24년에 비해 8퍼센트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에 대한 지지율은 작년의 32퍼센트에 비해 4퍼센트포인트 높은 36퍼센트로 나타났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동맹국들에 모욕적이고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수시로 해 왔기에 이런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여러 국가에 관세 폭탄을 안겨 줬고, 주요 동맹국들에 미국에 대한 투자를 강요했다. 캐나다와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확장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를 납치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적극 후원했고, 더 나아가 네타냐후와 함께 2025년 6월에 이어 올 2월 말부터 시작된 이란 전쟁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

그에 비해 시진핑의 중국은 기존 국제 질서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진핑은 푸틴과 더불어 권위주의 통치자이자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9년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을 때나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포위하며 위협하던 때의 중국과 시진핑이 지금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중국에 대한 세계 여론이 미국을 역전한 것은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횡포에 대한 전 세계적 반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좌파들 내에서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횡포를 저지할 세력으로 중국이 자주 거론되는데, 그 근거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중국도 미국과 함께 G2를 구성하는 강대국이지만, 트럼프의 미국과 달리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이다(다극화포럼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인식은 미국이 독주하는 단극적 체제에서 미국과 중국(그리고 더 추가한다면 러시아)이 주도하는 다극화된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그 자체로 진보이고 발전이라고 본다.

둘째, 중국은 미국과 달리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개발도상국이며, 미국 같은 제국주의 열강과는 달리 제3세계 국가들과 호혜와 평등 그리고 발전을 공유하는 국가라는 인식이다(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많은 좌파들도 공유하는 생각이다).

셋째,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며 더 나아가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는 입장이다(비자이 프라샤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글은 중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최상부에 위치한 제국주의 국가이며, 따라서 중국은 트럼프의 미국을 대체할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진정한 대안은 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닌 국제사회주의라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1]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트럼프가 진지하게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병합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를 강제적인 영토 병합의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강대국이 식민지를 보유하는 일이 거의 없어 제국주의가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각되던 차에, 트럼프가 영토 병합 의지를 드러내자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소환된 것이다.[2]

그런데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제국주의를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 점령한다는 식의 초역사적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 단계와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본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정확히 그렇다. 제국주의에 대한 대중적 개설서에서 레닌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 즉 독점 자본주의와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다. 즉, 자본주의가 독점 단계로 발전하는 동안 자본들이 국가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를 형성하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을 내재적 속성으로 갖게 됐다. 그래서 자본주의 세계 체제 자체가 경쟁을 토대로 한 위계를 이루는데, 이를 제국주의라고 한다. 이런 위계의 상층에 있는 국가들이 제국주의 국가인 것이다. 안소니 브루어가 이 점을 잘 표현했다.

‘제국주의’라는 용어의 의미가 확장되고 변형된 까닭에 고전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 이론을 오해하기가 쉽다. 오늘날 ‘제국주의’라 하면 보통 선진국이 후진국을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제국주의’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을 뜻했다. 영토 분쟁으로 표출되고, 경제적 형태뿐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형태도 띠며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 간 전쟁으로 귀결되는 경쟁 말이다.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지배는 이러한 제국주의 개념에 분명 함축돼 있기는 하지만 핵심은 강자들 사이의 지배권 다툼에 있으며, 그러한 다툼에서 저개발 국가들은 능동적 행위자라기보다는 수동적 전장의 위치를 차지한다.[3]

제국주의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제국주의를 국가의 대외 정책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잘 보여 준 사례는 영국의 개혁주의적 자유주의자 존 앳킨슨 홉슨이다. 그는 제국주의를 민족주의의 팽창 정책으로 이해했는데, 이런 팽창 정책은 식민지 민족을 정복하고 축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위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라고 봤다.[4] 따라서 홉슨은 자본주의 국가가 이런 제국주의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쟁과 군사적 충돌이 호전적인 지도자나 군수업자들의 농간 때문이라고 보는 것도 홉슨과 비슷한 생각이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바처럼, 제국주의는 각국 지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필연적이고 내재적인 경향이고, 이 세계 체제 내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과의 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오해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도식적·형식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제국주의의 기본 특징으로 규정했다.

(1) 생산과 자본의 집적이 매우 높은 단계로 발전해 경제 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독점체가 창출된다.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이 융합하고 이 ‘금융자본’을 토대로 금융과두제가 형성된다. (3) 상품 수출과는 구분되는 자본 수출이 이례적인 중요성을 획득한다. (4) 국제적 독점자본가 연합체가 형성돼 자기들끼리 세계를 나누어 갖는다. (5) 거대 자본주의 열강 사이에서 전 세계 영토 분할이 완료된다.[5]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레닌이 꼽은 제국주의의 기본 특징들은 목록일 뿐이어서 각 항목의 상대적 중요성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캘리니코스는 “그렇게 되면 과거사에 비춰 봤을 때 각 항목이 실제로 현실과 부합했는지, 부합했다면 얼마나 보편적으로 부합했는지를 가늠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레닌 자신도 ‘모든 정의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다른 상대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6]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 좌파들은 레닌의 다섯 가지 표식에 기초하여 ‘금융자본’이 존재하는지, 자본 수출을 하는지, 아니면 지리적 세계 분할에 참가하는지에 따라 어떤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이고 어떤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중국에 이런 정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N. B. 터너는 중국에서는 국가와 민간 독점자본이 형성돼 있고, 국유은행 4곳이 중국 경제의 ‘관제고지’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금융자본의 지배를 보여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거대한 자본축적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자본을 해외에 투자하고 있기에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자본 수출국이라고 지적했다.[7] 프레드 엥스트(양허핑이며, 필명은 Hua Shi)는 중국의 국유 기업 집단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자본의 자원에 대한 갈증 때문에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의 제국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8]

레닌이 말한 금융자본은 힐퍼딩이 정식화한 개념을 따른 것으로, 그 당시 일부 유럽에 한정된 현상이었다. 금융자본이란 은행자본이 주도해 산업자본을 융합한 경우를 말한다. 레닌이 말한 금융자본과 똑같은 것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와 은행자본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산업자본으로 레닌의 금융자본을 이해한다면 레닌이 설명하고자 한 제국주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터너와 엥스트는 중국의 자본축적과 해외 팽창 그리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의 경쟁 등을 올바르게 지적하면서, 레닌이 제기한 다섯 가지 특징을 기준으로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규정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 자체를 제국주의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레닌의 또 다른 제국주의 지표를 근거로 중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좌파도 있다. 호주 좌파인 샘 킹이 대표적이다.[9] 그는 독점자본의 존재로 제국주의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국의 대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중국에 대자본이 많지만 중요한 기술(에너지, 통신, 반도체 등)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존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한 사례가 화웨이인데, 화웨이는 반도체를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기업들이 기술 독점에서 ‘초과 이윤’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10]

화웨이가 자체 칩을 설계하고 그 칩을 중국에서 생산할 뿐 아니라 다른 중국 기업들에게 공급한다는 점에서 그의 말이 사실은 아니지만, 설령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특정 부품의 해외 의존을 두고 종속이나 제국주의를 규정할 수는 없다. 이런 논리라면 미국의 군수산업을 포함해 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희토류에 의존하고 있으니 미국의 주요 산업들이 중국에 종속돼 있다고 할 수 있을 테다.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G2라고 불릴 정도로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최상층에 있고, 정치경제적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제국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먼저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을 몇 가지로 나눠 비판적으로 살펴본 다음,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일 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이 경쟁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바로 제국주의 세계 체제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국제 정치를 이해하는 데 왜 중요한지를 살펴보겠다.

중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주장 1: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다?

중국이 비자본주의 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이 좌파 내에 꽤 퍼져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갈래가 있다.

첫째는 중국을 비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라고 본 조반니 아리기다. 그는 세계체계론의 대표적 이론가로, 페르낭 브로델의 주장을 따라 세계가 물질생활-시장경제-자본주의의 3층 구조로 돼 있다고 여겼다. 2007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출판된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에서 아리기는 중국이 불투명하고 독점과 특권이 존재하는 3층 구조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투명한 교환 영역이 지배하는 2층 구조의 시장 경제라고 주장한다.[11] 아리기를 포함한 세계체계론자들은 시장 경제를 자발적 교환과 수평적 유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보면서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자본주의를 특권과 독점이 존재하는 불투명한 영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리기의 책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체계 또는 서구 중심의 헤게모니를 대체할 유력한 후보라고 암시함으로써 좌파 내에서 논쟁을 촉발시켰다. 아리기는 중국이 영토적 팽창을 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상호 호혜적 무역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서구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견제할 대안 발전 모델을 제시한다고 봤다. 이런 입장은 오늘날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주자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무역 질서를 추구한다는 입장과 유사하다.

둘째는 중국을 모종의 사회주의 사회로 보는 입장으로, 인도 출신의 비자이 프라샤드가 대표적이다. 그는 인도공산당(마르크스주의파)[CPI-M]에 속한 좌파 학자다.

오늘날 프라샤드처럼 중국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보는 좌파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좌파들은 오늘날의 중국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일종인 국가자본주의로 본다. 개혁·개방을 추진한 1978년 이후부터, 또는 국유 기업을 민영화하면서 회사법 같은 기업 제도를 도입한 1990년대부터, 아니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부터는 중국이 자본주의로 전환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라샤드는 중국에 자본가들이 있지만 자본가 ‘계급’은 형성돼 있지 않고, 중국공산당이 현대적 조건에 맞는 사회주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중국공산당이 빈곤과 부패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 근대화를 달성했고, 시진핑이 강조한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 건설이 자유 시장의 힘을 억제하는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 사회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계급 사회이고, 중국공산당과 당-국가 체제는 이런 계급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기제이다. 중국 당국은 스스로가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적 독재에 기반을 둔 국가라고 천명하지만, 현실에서 중국은 노동자 투쟁을 탄압할 뿐 아니라 알량한 정치적·시민적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는 권위주의 체제다. 그런데도 프라샤드는 중국공산당의 공식 입장을 현실의 검증 없이 그대로 믿는 듯하다.

또한 그는 중국공산당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중국 당국자들은 자국이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점을 정기적으로 피력”할 뿐 아니라 “중국이 원하는 것은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윈-윈(win-win)’ 협력과 발전을 목적으로 시작된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이니셔티브를 그 사례로 든다.[12]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최상층부에 있으면서 세계적 패권을 두고 미국과 경제적·군사적·지정학적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제국주의 경쟁은 중국의 국내 정책뿐 아니라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대하는 태도가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서방 열강이 식민지 대하듯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주장 2: 부등가교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중국의 민간 부문은 자본주의 영역이지만 국가 부문은 비자본주의(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영역이기에 자본주의 논리가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13] 중국에서 국가 부문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명목상 비중이 크지 않지만 경제의 관제고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 때문에 마이클 로버츠의 입장은 중국 자본주의 체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입장에서 더 문제적인 것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상품을 그 가치 이하로 판매해서 중국에서 생산된 잉여가치가 미국으로 이전된다는 주장이다. 로버츠는 이를 근거로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느 국가들이 세계 자본주의 패권을 다투며 그 국가들이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떻게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느냐는 맥락을 제쳐 놓은 채, 생산된 잉여가치의 이전으로만 제국주의 국가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다. 더욱이 경제적 측면으로만 봐도 중국에서 창출된 잉여가치가 미국으로 이전된다는 주장은 틀렸다.

이런 주장의 원류는 아르기리 엠마뉴엘의 부등가교환론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국이 됐음에도 저발전 상태에 머물렀다. 이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그중 좌파적 버전의 하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탈 때문이라는 것이다. 엠마뉴엘은 부등가교환 이론으로 국제 교역에서 선진국(중심부)이 후진국(주변부)의 잉여가치를 수탈한다는 설명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14]

엠마뉴엘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확대 부등가교환과, 임금이나 착취율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협소한 부등가교환을 구분했는데, 대외무역에서 부등가교환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는 모두 협소한 부등가교환이라고 생각했다. 엠마뉴엘은 착취율이 높은 저임금 국가가 착취율이 낮은 고임금 국가와 교역할 경우, 그 가치의 일부가 고임금 국가로 이전된다고 주장했다.[15]

이 주장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저임금 국가의 착취율은 높고 고임금 국가의 착취율은 낮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임금 수준이 곧 착취율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 생산성이 높으면 고임금 노동자가 저임금 노동자보다 착취율이 높을 수 있다. 선진국 노동자들이 제3세계 국가들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아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고(기계화가 더 진척됐다는 의미) 그래서 노동 생산성이 높은 경우 착취율은 제3세계 노동자들보다 더 높을 수 있다. 또한 선진국 노동자들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제3세계 노동자들보다 크기 때문에 그들의 임금이 실질적으로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둘째, 엠마뉴엘은 교역을 하는 두 국가 중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의 가격이 가치보다 낮게 책정돼 그 가치의 일부가 고임금 국가로 이전된다고 본다. 이것은 한 나라의 임금이 그 나라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필요노동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무시하면서 생기는 전형적 혼란이다. 두 교역국은 임금 수준이 다를지라도 서로 득을 보면서 무역을 할 수 있다.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의 가치는 고임금 교역 상대국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아니라, 그 상품이 생산된 저임금 국가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에 의해 계산된다.

엠마뉴엘은 부등가교환 이론에 기초해 선진국 노동자들이 노동귀족으로 전락한다는 주장도 편다.[16] 선진국 노동자들이 저발전 국가들로부터 얻은 초과이윤을 분배받아 체제를 옹호하는 개혁주의 경향을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선진국 노동자와 저발전국 노동자들이 연대할 물질적 토대가 없다는 함의가 있다. 하지만 선진국 자본가들이 저발전국으로부터 초과 이윤을 얻는다 해도 그것을 알아서 자국 노동자들에게 나눠 주지 않는다. 선진국 노동자들이 저발전국 노동자들보다 임금이 높은 것은 노동력 재생산에 드는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그들의 계급투쟁도 한몫을 한다.

리민치는 부등가교환론을 좀 더 세련되게 적용한다.[17]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1990년대 초반에 중국은 분명 주변부의 일부였다. 중국은 미국 및 기타 고소득 국가들뿐 아니라 모든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 그룹들에 대해서도 불리한 노동 교역조건(the labor terms of trade)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후 중국은 모든 국가 그룹에 대해 노동 교역조건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2015~2017년경에 이르면, 미국 노동 1단위와 교환하기 위해 여전히 중국 노동 약 5단위가 필요하고, 다른 고소득 국가 노동 1단위에 대해 중국 노동 4단위가 필요하지만, 중국 노동 1단위는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노동 약 2단위, 남아시아 노동 약 4단위와 교환될 수 있다. 중국 노동 1단위는 남미, 카리브해, 중동, 북아프리카, 동유럽, 중앙아시아의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들의 노동 1단위와 거의 대등한 수준이다. 또한 중국은 다른 동아시아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우위를 점했다.[18]

리민치는 중국이 제조업 발전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계의 주변부에서 반(半)주변부로 진입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이 중심부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일방적인 부등가교환을 당하는 처지에서 조금 발전해, 중심부로부터는 수탈을 당하지만 주변부 국가들에 대해서는 투자도 하고 저렴한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하면서 이들을 수탈하는 지위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에너지 자원 또는 리튬이나 희토류 등 광물 자원에 대한 중국의 무한한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며, 중국의 자본축적은 생태 위기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봤다. 학계뿐 아니라 운동 내에도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을 전망하는 사람이 많지만, 리민치는 중국의 부상이 초래할 경제적·생태적 위기까지 지적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럼에도 그는 부등가교환 이론과 비슷한 논점으로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노동 교역조건’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중국이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착취하거나 약탈하는 국가이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 투자의 이 부분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아시아와 남미 민중의 노동과 자연자원을 약탈한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의 전체 해외 자본투자 중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중국 자본이 축적하고 있는 거대한 부의 미미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중국의 국내 자본량은 중국의 해외 자산보다 다섯 배나 많다). 중국의 일부 자본가들은 개도국에서 제국주의 같은 행위로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중국 자본주의는 제국주의가 아니다.[19]

리민치가 제시한 노동 교역조건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엠마뉴엘이 말한 임금 수준 차이와 비슷하다. 그는 1990년대에 미국의 노동 한 단위가 해외 노동 4단위 이상과 교환됐는데, 2000년대에 들어 그 조건은 미국에게 더 유리하게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미국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라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은 1990년대에 노동 교역조건이 0.05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는 외국의 노동 한 단위가 중국의 노동 20단위와 교환된다는 의미다. 중국의 발전 덕분에 2016-2017년에 중국의 노동 교역조건은 0.5가 됐다. 즉 중국의 노동 두 단위가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 한 단위와 교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중국이 일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서는 노동 교역조건이 1을 넘어서지만 미국을 포함한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1을 밑돌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 3: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

1949년 중국 혁명 75주년을 기념하는 글에서 프라샤드는 서구 제국주의 모델이 “그 나라들을 더 깊은 부채의 늪으로 밀어 넣는 것”이기에 “서구의 잉여 재순환 메커니즘은 본질적으로 영속적인 부채의 순환”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신뢰 부족과 무역 전쟁)은 중국을 서구와는 다른 길로 이끌었다. 2013년 일대일로(BRI) 구축에 이어 2023년에는 신질 생산력을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일대일로는 미국과 유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구축하려는 중국의 의지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비약적인 발전을 돕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20](강조는 원문 그대로)

중국도 자신이 개도국이라고 강조한다. 2023년 7월 10일 왕이 상무위원은 글로벌행동포럼 고위급회의에서 ‘중국은 당연히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해 8월 22일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 폐막식에서 시진핑은 “중국은 개도국이자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으로서 다른 개도국과 같이 호흡하고 그들과 공동의 미래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2024년 6월 12일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 60주년 기념사에서도 중국이 “언제나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며, 항상 개도국에 속해 있다”고 강조했다.

서방 주도의 국제 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중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대안적 국제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지향을 숨기지 않는다. 톈진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가 그것이다. “GGI의 궁극적 목표는 글로벌 사우스를 더 잘 대표하는 새로운 제도와 규범을 창출하고, 유엔의 중심성을 회복하며, 거버넌스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대안적인 발전 모델을 제공하느냐는 물음에 프라샤드는 그렇다고 답한다. 오랫동안 서구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구속성 원조’(tied aid)를 제공해 “우리가 돈을 빌려줄 테니 그 돈으로 우리 물건을 사라”는 식이었지만 중국은 기러기 대열 모델(Flying Geese Theory)을 따랐다고 프라샤드는 주장한다.[21] 기러기 대열 모델이란 선두 그룹이 먼저 나아가면서 그들이 발전시킨 기술을 그 뒤를 따르는 국가들에 전수해 준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라는 용어는 사실 모호하지만 대체로,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수탈당하거나 억압당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지닌 저개발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개발도상국이라는 용어도 모호하지만, 대체로는 소득 수준이 낮지만 경제성장률이 비교적 높은 국가들을 나타낸다.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만큼 그러한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고 첨단 산업에서 미국과 우열을 겨룰 만큼 발전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최상층에 속한다. 그래서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로 봐야 한다. 중국 국민 소득 수준이 개도국 수준인가 하는 문제는 중국이 제국주의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데서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정말로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부채 함정 외교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뜨거운 쟁점 하나가 중국의 ‘부채 함정 외교’다. 부채 함정 외교란 중국이 의도적으로 개발도상국에 과도한 차관을 제공하고, 해당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할 상황을 유도한 뒤, 전략적 자산(항구나 공항, 철로 등)을 강탈한다는 뜻이다. 2016년 중국 국유기업이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에 대한 99년간의 운영권을 획득한 사례가 널리 거론된다. 2021년 말 중국이 우간다의 엔테베 국제공항을 차지했다는 오보도 부채 함정 외교 논란을 가중시켰다.[22]

부채 함정 외교와 관해 중국의 ‘의도성’은 핵심이 아닐 뿐더러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과 채무국 사이의 계약 조건이 평등하거나 호혜적이지는 않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차관을 제공하면서 비밀 유지 조항, 우선 변제권 및 현금 흐름 통제, 채무 재조정 금지, 광범한 조기 상환 및 취소 권한, 교차 부도 및 교차 취소 조항 등을 강요했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요구한 내국민 대우, 역진 방지 조약, 최혜국 대우, 시장 접근 조항, 분쟁 해결 절차 등과 비슷한 불평등한 조항이다.

중국은 리스크 부담에 대한 대가로 국제적 수준보다 약간 높은 금리로 차관을 제공해 각종 인프라 공사를 계약하고, 공사에 자국 원자재나 자국 노동력을 투입하며, 그 뒤 채무국의 경제 상황 악화로 원금·이자 상환이 지연될 경우 채무국의 자산을 확보한다. 물론, 이것은 중국과 채무국이 체결한 협정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이 이행 불가능한 ‘과도한’ 조건을 채무국에 강요하는 것은 아니기에 ‘약탈적’ 요소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는 불평등한 것들이 대부분이다.[23] 채무국이 계약을 이행하면 중국은 자국 원자재와 자국 노동력을 활용해 국제적 수준보다 높은 수익을 거두게 되고, 채무국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중국은 채무국에 더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거나 함반토타 항구처럼 중요한 군사적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불리한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나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지부티, 키르기스스탄, 라오스, 몰디브, 몽골, 몬테네그로,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지에서도 중국은 채무국의 약점(정치적 불안정, 경제 위기나 불황, 터무니없는 과도한 계획 등)을 파고들거나 그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했다.

중국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라오스 고속철도 건설 자금을 제공했는데, 그 규모가 라오스 전체 GDP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 결과 2026년 현재 라오스는 거대한 부채 위기와 함께 중국 의존도가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철도 사업인데, 총 투자액 35억 3,000만 달러 중 중국이 51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주요 광물 자원 개발에 중국 자본이 참여하고 있는데, 타지키스탄 금 생산량의 75퍼센트 이상을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2010년대에 몰디브의 압둘라 야민 대통령은 중국-몰디브 우의대교와 공항 확장 같은 거대 프로젝트에 중국 자금을 끌어들였다가 현재 부채 상환 압박을 받고 있다. 몬테네그로의 바르-볼야레 고속도로 프로젝트,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지부티의 중국 군사기지 건설, 몽골의 광산 개발이나 인프라 건설 등은 중국의 국력 투사를 위한 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의 노동 초착취 사례들이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보면 동반 번영이나 호혜나 평등이 아니라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다를 바 없다.[24]

브릭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대체하고 향후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할 세력으로 브릭스가 거론되고 있다. 중국도 브릭스의 핵심 일원이다. 브릭스는 2001년 골드만삭스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짐 오닐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앞글자를 따서 BRIC라 불렀던 것에서 기원하며, 2010년 남아공이 합류하면서 브릭스(BRICS)가 됐다. 그 뒤 2024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 5개국이 가입했고, 그 외 10여 개 국가들이 파트너 국가가 되면서 브릭스플러스(BRICS+)가 됐다. 브릭스플러스는 단순히 신흥국 경제 모임을 넘어서 글로벌 사우스를 대변하는 거대한 지정학적 블록이자 서방 주도의 경제·정치 질서가 아닌 대안적 블록으로 여겨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브릭스가 부상한 것은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비중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들이 산업 생산과 자본 축적의 중심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25] 브릭스 소속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서방 자본주의가 구축한 국제 경제·금융 질서의 혜택을 입으며 발전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아류제국주의(sub-imperialism)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브라질 마르크스주의자 후이 마우루 마리니(Ruy Mauro Marini)는 아류제국주의와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 협력” 관계로 묘사했다. 이는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들과 지역 열강인 브릭스 국가들의 관계를 분석할 때 유용한 통찰을 준다.[26]

미국이 상대적 쇠퇴를 겪는 가운데 부상한 브릭스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경제·금융 질서 속에서 부상했지만, 자신들의 독자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 질서에 순종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부분의 브릭스 국가들이 역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지역적 분쟁과 갈등은 이전보다 더 첨예질 수 있다.

그래서 브릭스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대체할 것이라든지, 미국에 대항해 글로벌 사우스를 대변할 것이라든지, 중국이 이런 브릭스를 이끌고 글로벌 사우스를 대변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브릭스는 나토나 유럽연합 같은 연합체나 동맹이 아니라 기껏해야 느슨한 협력체에 지나지 않는다. 브릭스 회원국인 중국과 인도는 국경 분쟁으로 서로 부딪힌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지정학적 갈등에서도 대립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가입한 이란과 아랍에미리트도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을 계기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브릭스플러스 국가들은 대부분 지역 강국이기에 그들의 협력을 강화하는 요소뿐 아니라 갈등을 키우는 요소도 있다.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

‘세계는 평평하다’ 하거나 ‘맥도널드가 있는 두 국가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한때 유행했다. 이는 당시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는 더욱 맞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립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지역 강국들 사이의 갈등이 지역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대체하거나 적어도 이전보다 더 안전하고 평등한 세계를 이끌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최상층에 있는 제국주의 국가이기에 중국에 이런 기대를 거는 것은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이 세계 2위의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는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게 아니라 제국주의 갈등과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첫째,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힘과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중국의 상대적 지위는 오히려 높아졌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헤게모니 약화에 대한 미국 지배계급의 대응이지만 그것이 서방 동맹국들을 압박하면서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더 가속시키고 있다. 그 덕분에 중국의 상대적 영향력은 더 높아졌고, 이에 비례해 미·중 경쟁과 갈등도 더 첨예해졌다.

미·중 제국주의 경쟁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지정학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칩스법, 인플레감축법, 관세 전쟁, 희토류 수출 통제,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 생물보안법 등은 미·중 제국주의 갈등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신흥 강국이 기존 강대국을 위협할 때 두 국가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현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불렀다.[27]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는 그것의 전형적 사례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국제 관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납치, 나토 탈퇴 협박, 그린란드에 대한 야욕 등은 모두 미·중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1년 이래 중국 견제에 집중해 중국을 동아시아 지역에 묶어 두려는 미국의 계획(‘아시아로의 중심축 전환’)은 실패했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확대로 대응했다. 일대일로 사업의 확대에 맞춰 중국은 인민해방군의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현재 중국의 해외 군사 기지는 지부티 군사기지가 유일하지만, 중국은 파키스탄의 과다르항, 캄보디아의 리암 해군기지 등을 자신들의 군사적 목적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의 두 가지 요인을 고려해 봤을 때, 대만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충돌할 수 있는 쟁점이다. 중국 당국은 대만 합병이 1949년 민족해방혁명 때 완수하지 못한 국가 통일의 과제를 완수하는 국내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만은 비록 같은 한족 중심의 국가이지만 80년 가까이 중국과는 별개의 국가로 존재해 왔고 따라서 중국의 대만 합병 시도는 제국주의적 행위이다. 따라서 좌파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군사적 위협에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좌파는 대만의 자결권 보호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개입에도 반대해야 한다. 미국의 개입은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뜻할 수밖에 없다. 양안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수백만 명이 죽을 것이고 대만은 중국에 점령되거나 아니면 미군의 호위 하에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대만 독립 요구를 단지 대만의 자결권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28]

진정한 해결책은 중국 노동자들이 권위주의적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과 투쟁에 기초해 중국과 대만 민중은 분리독립을 선택할지 아니면 재통합을 선택할지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중국 당국은 자신들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1949년 민족해방혁명 이래로 지금까지 사회주의 사회였던 적이 없다. 더욱이 경제 발전 덕분에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고,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최상위 제국주의 국가가 됐다. 중국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진보적인 세력이 아니며, 덜 호전적인 세력도 아니다. 미·중 사이의 제국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에 맞서 중국에 기대를 거는 행위가 허망할 뿐 아니라 위험한 이유다.

진정한 대안은 미·중 경쟁 속에서 어느 한 쪽을 편들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세계 체제를 전복하고 그 폐허 위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자본주의 발전으로 거대한 노동계급이 형성돼 있고, 또 경제투쟁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자신들의 계급의식을 점차 자각하고 있다. 2000년대 이래로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의 저항들이 일어나곤 했고, 일부 저항에서는 중국 지배자들이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중국 노동계급이 정치 의식을 더 발전시켜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중국 노동계급이 그들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 정치 의식을 고양하는 데 혁명적 좌파가 기여해야 할 것이다.


[1] 냉전 초기에 국제사회주의 전통을 확립했던 토니 클리프는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닌 국제사회주의”를 주장했다. 필자도 이 테제를 차용해 ‘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닌 국제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의 국제 질서가 냉전 시대처럼 양극화된 체제라거나 신냉전 체제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세계는 정치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다극화된 체제이지만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독주가 지속됐다. 그런데 미국의 군사적 독주도 약화되고 있는데, 2026년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은 미국 군사력의 약화를 보여 주고 있다.

[2] 오늘날 강대국이 식민지를 경영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지만,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와 중국의 신장위구르, 티베트, 네이멍구 통치다. 이스라엘은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했고, 1948년에는 미국을 포함한 제국주의 국가의 도움으로 그 지역의 아랍인들(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한 뒤에 세운 정착자 식민주의 국가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등장한 신중국 정부는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네이멍구를 편입해 통치하고 있다.

[3] 안소니 브루어. 1984. 《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 염홍철 옮김. 사계절출판사. 100쪽.

[4] J. A. 홉슨. 1995. 《제국주의론》. 신홍범·김종철 옮김. 창작과비평사. 9쪽.

[5]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2017.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 대중적 개설》. 황정규 옮김. 두번째테제. 212쪽.

[6] 알렉스 캘리니코스. 2011.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천경록 옮김. 책갈피. 70쪽.

[7] B. Turner. 2015. Is China an Imperialist Country? Considerations and Evidence. www.red-path.net.

[8] Hua Shi. 2017. ‘Imperialism, Ultra-Imperialism and the Rise of China‘.

[9] 샘 킹은 마르크스주의와 종속이론을 받아들이는 호주의 좌파 활동가이다. 그는 제국주의란 강대국 사이의 경쟁이 아니고 독점자본의 기술적 우위를 가진 소수의 제국주의 국가가 나머지 국가의 가치를 수탈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선진국 노동 계급이 초과 이윤의 일부를 분배 받기 때문에 개혁주의 경향을 보인다는 노동귀족 이론을 받아들인다. 이런 논리에 기초해 그는 《중국 특색의 제국주의》(Imperialism with Chinese Characteristics)에서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연하게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제국주의로 보지 않는다.

[11] 조반니 아리기, 2009,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강진아 옮김, 도서출판길, 23쪽.

[12] Vijay Prashad & Tings Chak. 2022. ‘China's path to Socialist Modernization’. Midwestern Marx Institue.

[13] Michael Roberts. 2025. ‘Imperialism and capital export’. IIPPE China working Group presentation.

[14] 부등가교환론에 대한 유용한 비판은 Nigel Harris의 ‘Theories of Unequal exchange’(1985)와 Michael Kidron의 Capitalism and Theory의 제9장 ‘Black reformism: the theory of unequal exchange’(1974)을 보라.

[15] Guglielmo Carchedi. 1991. Frontiers of political economy. Verso. p222.

[16] Arghiri Emmanuel. 1972. Theory of Unequal Exchange. Monthly Review Press. pp.177-184.

[17] 그는 1989년 톈안먼 항쟁에 참가했다가 중국 국가의 탄압을 피해 캐나다로 유학을 갔고, 그 뒤 캐나다 요크대학교와 미국의 유타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동안에도 중국 내 좌파 활동가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인물이다. 그의 사상을 구성하고 있는 세 영역은 마르크스주의, 세계체계론, 생태주의다.

[18] Minqi Li. 2021. ‘China: Imperialism or Semi-periphery?’ Monthly Review vol.73. No.03.

[19] Minqi Li. 2021. ‘China: Imperialism or Semi-periphery?’ Monthly Review vol.73. No.03.

[20] Tings Chak, Vijay Prashad. 2024. ‘Seventy-Five years of the Chinese Revolution’. Monthly Review online.

[21] Vijay Prashad. 2020. ‘Vijay Prashad on Chinese Socialism & Internationalism Today’. Qiao Collective 21/05/2020. https://www.qiaocollective.com/home/conversation-vijay-prashad.

[22] 우간다의 유력 일간지 〈데일리 모니터〉는 “우간다가 중국 현금을 위해 공항을 헌납했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어 우간다 정부가 채무불이행을 할 경우 엔테베 공항의 운영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 저널〉, 〈블룸버그〉, 〈파이낸셜 타임스〉 등 세계적 부르주아 언론들이 이 문제를 다루면서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중국 수출입은행과 우간다 정부 간 계약 내용을 보면, 채무불이행이 되면 중국 수출입은행은 공항 운영권이 아니라 수익이 발생하면 예치해 두는 현금을 누구보다 먼저 확보할 수 있는 권리(에스크로 통제권)를 갖는다고 돼 있었다. 그래서 중국 수출입은행이 엔테베 공항 운영권을 차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23] 2021년 2월, 미국의 데보라 브라우티검(Deborah Brautigam)과 멕 리스마이어(Meg Rithmire)는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 사례를 면밀히 조사한 끝에, 이 사례는 스리랑카 정부의 부실한 타당성 검토 같은 정책 실패 때문이지 중국의 이른바 ‘부채 함정 외교’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중국도 이 사업으로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황을 볼 때 이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서구의 여러 은행들은 스리랑카 정부의 함반토타 항구 개발 사업이 무모하다며 대출을 거부했다. 반면에 중국은 선뜻 자금을 제공했는데, 이것은 스리랑카가 재정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또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중국이 함반토타 항구를 지정학적 요충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함반토타 항구 사례에서 경제적 손익은 핵심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24] 하워드 프렌치의 《아프리카, 중국의 두 번째 대륙》(2015)은 대부분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저지른 약탈적 행위들을 잘 폭로하고 있다.

[25] Adrian Budd. 2024. China – Rise, repression & Resistance. Bookmarks. pp.175-178.

[26] Adrian Budd. 2024. China – Rise, repression & Resistance. Bookmarks. P.176.

[27] 그레이엄 앨리슨. 2018. 《예정된 전쟁》. 정혜윤 옮김. 세종서적. 6-8쪽.

[28] Adrian Budd. 2024. China – Rise, repression & Resistance. Bookmarks.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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