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지뢰 폭발 사고:
다시 지뢰밭이 되고 있는 비무장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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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오전 경기도 파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 사고로 수색대대장과 공병 중사가 크게 다쳤다.
이들은 육군 25사단 소속으로 18명이 군사분계선(MDL) 쪽으로 새 수색로를 내던 중이었다고 한다. 합동참모본부 설명을 보면, 그곳은 수십 년 동안 사람이 들어가지 않은 수풀이었다.
합참은 9월 28일 중간 조사 결과 “북한군의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고, 최종 판정이 나면 “합당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추석 연휴 내내 공세를 폈다. 장동혁은 정부가 고의로 조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 “탄핵”, “구속”을 거론했다. 최근 그 폭을 넓히고 있는 대정부 공세에 좋은 소재를 잡았다는 기세다.
국힘은 대북 확성기 재설치를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도 북한에 사죄를 요구하며 단호한 대처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무장도가 높다는 DMZ에 지뢰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수색을 나간 공병들도 지뢰 탐지를 하며 전진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쟁점은 왜 ‘평화 구상’을 내건 이재명 정부하에서 비무장지대가 다시 지뢰와 방벽의 전선이 되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요새가 된 ‘비무장’지대
북한은 2023년 말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2024년 4월부터 ‘국경선화’ 작업을 펼쳐 왔다. MDL 이북에 철책과 방벽을 세우고 지뢰를 묻고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도 폭파했다. 작업 중 MDL을 넘는 일도 잦아져 9월 초까지 최근 한 달 동안 20여 차례로, 2025년 한 해(17회)보다 많았다.
도로를 끊는 요새화는 공격보다는 방어에 가까운 행동이다. 〈동아일보〉의 국방 담당 기자는 2024년 10월 칼럼에서 요새화의 배경으로 “북한군의 대규모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일부 병력 공백이 생긴 틈에 한미동맹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다는 내부 불안”을 꼽았다.
북한 지배자들이 느끼는 위협은 상상 속 위협이 아니다. 한미 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은 기간을 줄였지만, 한미일은 9월 7~11일 제주 동·남방 공해에서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를 예정대로 치렀다. 북한 외무성은 이 훈련을 비난하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끝까지 가장 강경하게 맞서겠다”고 했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는 사이 북·중 관계는 복원됐다. 조·중 정상회담 발표문에서 비핵화는 사라지고 군대 간 교류 강화가 들어갔으며, 김정은은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를 밝혔다. 대만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미중 대결의 전선에서 북한은 북쪽 최전방을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거울에 비친 두려움
남한의 움직임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군은 2025년 9월 사고 지점 인근에서 북한군의 지뢰 매설 흔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번 작전은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가리려는 유엔군사령부와의 현장 조사를 위해, 지뢰가 묻혔을지 모르는 땅에 길을 내는 일이었다. 그 길은 계획보다 MDL 쪽으로 더 나아갔다고도 한다.
북한군이 MDL을 넘을 때마다 군은 대부분 경고사격으로 대응해 왔다. 그런데도 사고 뒤 보수 언론과 국힘은 흔적을 찾고도 1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며, 오히려 더 일찍 들어가지 않은 것을 탓한다.
이처럼 남북 양쪽은 데칼코마니 같다. 상대의 요새화는 공격이고 자신의 대응은 방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국경선을 지키는 것은 안보의 기본 중 기본이다”라고 썼다. 북한의 두 국가론처럼 남쪽 권력층도 그 선을 국경선이라 부르며 지키자고 나선 것이다. 유승민은 여기서 더 나아가 “더 강력한 ‘국경선 요새화’”를 주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진상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이라는 구조 안에서 중도를 걸으려 한 이재명 정부의 ‘평화 구상’은 1년도 지나지 않아 휴지 조각이 돼 가고 있다.
2015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8월 4일 목함지뢰 사건 뒤 박근혜 정부가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열흘 만에 남북이 DMZ에서 포격을 주고받았다(본지 155호). 지금은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당시보다 더 첨예한 상황이다.
이번 사고에서 크게 다친 것은 두 명이었지만, 좁은 길에 함께 있던 18명 전원이 병원으로 실려 갔고 퇴원한 15명도 상태에 따라 외상후스트레스 심리치료 등을 받을 예정이다. 현장 조사 때는 사고 당시 병력이 다시 그 지뢰밭에 들어갔다.
‘상응 조치’가 또 다른 상응 조치를 부르면, 다음에 그 길에 들어설 사람도 장군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명령을 받은 사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