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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드라마평 〈닥터 X〉:
극우가 벌이는 과거 독재와 학살의 정당화에는 목적이 있다

역사와 현실을 잘 비추는 좋은 드라마는 종종 사회적 격랑에 앞서 나온다. 드물지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예술가들은 시대의 징후를 누구보다 잘 감지하기 때문이다. 명민한 작가들은 100도로 끓기 전에 사회의 온도를 더 일찍 아는 것 같다.

광주항쟁을 다룬 드라마 〈모래시계〉는 1995년 연초에 나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결국 대중투쟁은 그해 연말에 학살 수괴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격변이 될 사회적 균열과 진동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해도 영화나 드라마가 실제로 투자를 받고 제작에 들어가 완성되고 폭넓게 전달되기까지는 대단한 운이 따라야 한다.

더 흔하게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사회를 문화가 따라잡는 것이다. 투자자들도 시대의 변화에 압박을 받는 때를 말한다. 이는 스타들에게도 비슷한 압력이 된다.

영화·드라마 산업에서 스타는 단순한 인기인이 아니라 투자와 제작, 유통과 흥행까지 산업 전반을 움직이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들 역시 시대의 맥박을 강하게 느낄 때 고립이 아니라 연대가 될 만한 출연을 선택한다.

요약하자면, 영화·드라마 산업에선 단지 용감한 창작자가 용감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대중운동이 크지 않다면 좋은 작품도 단지 논쟁적일 수 있다. 내용도 애매하기가 쉽다. 대중운동이 크면 좋은 작품은 현실적이고 대중적일 수 있다. 내용도 더 좋을 수 있다. 대중운동이 지축을 뒤흔든다면 좋은 작품은 시대를 흔들 수도 있다. 다만, 영화·드라마의 제작 기간은 긴 편이라서 이는 변수가 된다.

커다란 희망을 일깨우는 심대한 싸움이 거리와 캠퍼스, 일터를 장악할 때 걸작이 곧 나오거나 나올 조건이 될 만하다.

국내 제작 영화·드라마라 해도 세계적 정세와 무관하긴커녕 영향을 받는다. 관객·시청자들의 수용 과정 역시 그럴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정치적 논쟁을 치르는 영화·드라마가 계속 나올 것이다. 현재 촬영 중이거나 준비 중인 영화들의 목록만 살펴봐도 그러하다. 우익들도 이런 사실을 다 알 것이다.

한편, 국내 드라마의 중심인물들은 주로 경영자와 전문직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집단은 재벌·기업가다. 다음은 경찰·검사·변호사고 의사들도 상당하다. 따라서 재벌·기업물과 범죄·수사물이 가장 강한 위치에 있다. 그보다 한 수 아래지만 조선왕조물과 메디컬 드라마 역시 주요 제작 분야다. 메디컬 드라마는 광고 효과 때문에 대형 병원들도 환영한다. 산업은 제작 과정이 표준화된 이런 장르들을 편애한다.

최근에는 여기에다 빙의(남의 몸에 들어감), 회귀(과거의 자기로 돌아감), 환생(다시 태어남), 몸바뀜(영혼 교환), 빙의해서 회귀하기까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거꾸로 물구나무세운 장르들이 혼입되곤 한다.

기존 주요 인물(재벌, 검사, 경찰, 의사, 스타, 셰프 등)과 기존 주요 장르(재벌·기업물, 범죄·수사물, 조선왕조물, 메디컬 드라마 등)에 인생 리셋물이 결합되는 것이다. 인생 초기화 판타지는 원래 웹소설에서 대유행했다.

이는 불평등한 현실이 마치 철옹성처럼 느껴져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좌절된 심정을 반영하고 겨냥하는 것이다.

닥터 X

SBS의 금토 드라마 〈닥터 X〉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2025)처럼 대형 병원 외과 의사가 아웃사이더 영웅인 메디컬 드라마다. 〈닥터 X〉의 주인공 계수정 역시 압도적인 외과 수술 능력을 발휘하지만 의료 산업의 전형적인 부조리·인물들과 격하게 대립하곤 한다. 이런 대립에서 계수정은 하위 90퍼센트 사람들이 느낄 만한 박탈감과 분노를 대변한다.

그래서 많이 시원하긴 하지만 점점 헛헛해지는 것은 현실의 강력한 구조적 문제를 특별한 일개인의 능력과 도덕으로만 해결하는 에피소드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드라마들에는 노동계급 집단이 무엇을 성취하거나 삶과 노동조건을 변화시키는 서사가 거의 없다.

지배적 서사는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 소수의 강력한 개인에게 집중된 것들이다.

특히 드라마들이 역사를 극화하는 방식은 주로 위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닥터 X〉의 한 장면

그런데 〈닥터 X〉의 6화와 7화는 다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광주항쟁을 재현한다.

이를 두고 극우와 우파의 공격이 집중된 것, 드라마가 다룬 당시 헬기 사격의 진상이나, 항쟁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날조와 왜곡의 문제처럼 광주항쟁은 계속해서 반향이 있고 쟁투가 벌어지는 현재의 전장이다.

세계적 현상

부상하는 극우의 문화전쟁, 역사전쟁은 세계적 현상이다.

적대하고 대립하는 세력과 계급 간의 투쟁이 연속인 세상에서 과거는 계속해서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겨우 수천 년 된 계급 사회)도 명확한 합의에 기반한 공유된 역사를 가질 수 없다. 판정이 완전히 끝난, “종결된 역사”란 없는 것이다.

합의된 서사가 명확할 것 같은 근래의 과거들, 즉 군부 독재와 학살·고문·처형, 파시즘과 홀로코스트, 노예제·인종차별·식민주의에 대해서조차 그게 ‘나빴다’로 종결되지 않았다.

극우의 역사 재구성은 주로 엉성하거나 터무니없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과학적 분석을 마치 경멸받아 마땅한 것인 양 여긴다.

하지만 무엇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죽어도 트럼프주의는 지속될 수 있다. 중도 정치는 붕괴하고 극우가 부상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만든 재난과 위기가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극우의 뿌리와 토양은 그대로 두고, 가지만 치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스페인,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유난했던 학살 정권들이 인적으로 청산된 적이 없다. 사면법과 면책 특권 아래 아무도 거의 처벌받지 않은 채 민간 정권 이양 또는 ‘민주화’가 진행됐다. 사면과 면책으로 보호받은 군부, 경찰, 사법부의 인적·제도적 연속성은 현재 극우와 극우가 벌이는 역사전쟁의 근간이 되고 있다.

파시즘이든 군사독재 미화든 힌두 민족주의든 기독교 우파든 극우의 사상, 배경, 지향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종종 반자본주의적인 체하기는 일시적·부분적이며 결국은 거짓말이다. 극우의 과거도 자본주의고 미래도 자본주의다.

극우가 국가의 위대함, 군대의 영광, 인종적·종교적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일견 상식적인 것 같지만, 그들이 찬양하는 과거는 나치즘이, 파시즘이, 프랑코가, 피노체트가, 비델라가, 메디시가, 이승만이, 전두환이 벌인 납치와 고문과 학살이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수도 한복판에서도 전 정부 인사들과 지지자들을 납치하고 암살했다.

브라질의 극우 보우소나루는 군부 독재의 가장 악질적인 고문 책임자를 찬양한다. 그의 아들은 그자의 얼굴을 티셔츠에 새기고 다녔다. 칠레의 현 대통령은 도살자 피노체트의 재집권 운동을 벌였던 자로서 지금도 그를 추앙한다. 이들은 학살자 옹호에 애국과 민족주의 이미지를 덧씌우려 한다.

인도의 극우 모디 정부는 더 먼 역사까지 다시 쓰고 있다. 인도가 본래부터 힌두 문명 국가였다고 재정의하는 것이다. 근현대사는 물론 고대사도 손보고 진화론까지 교과과정에서 삭제했다.

과연 역사의 진실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할까?

사람들이 과거를 알지 못하게 하려고 지배자들이 애쓴 사례는 숱하게 많다. 지배자들에게 역사란 대중의 정신을 지배하는 중요 수단이다.

사회가 깊은 위기에 빠지고 사람들이 그 위기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기에는 지배적 시각과 사뭇 다른 역사관이 부상하곤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극우도 마치 그런 것인 양 군다. ‘기억의 문화’를 비판하고 ‘자책적 태도’를 문제 삼는다고 하지만, 실상 학살과 독재를 옹호한다.

무지나 부도덕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극우가 과거의 독재와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은 현재의 정치적 권위주의와 억압 강화를 위한 것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극우가 바라는 대로 되려면 보다 급진적인 단절이 있어야 한다. 실패한 윤석열의 시도 같은 것이다. 그래도 자본주의지만, 훨씬 야만적으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는 자본주의일 것이다.

진정으로 세상에 필요한 단절은 아래로부터 노동계급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의 폐절이다. 가난과 전쟁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불평등한 부의 세습을 끝내기 위해서, 화석연료 산업을 피의 왕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국가권력을 이용해 계급 전쟁에 복무하는 자본가들의 청부업자들을 청산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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