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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영화평 〈암살자(들)〉:
박정희를 둘러싼 역사 전장이 된 영화, 우파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영화 〈암살자(들)〉은 9월 23일 개봉하자마자 ‘역사 왜곡’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가 ‘박정희가 아내 육영수 살해를 사주했다’는 식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주진우가 앞장섰다. “천인공노할 짓”, “패륜적 범죄”,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권양숙 여사가 사주했다는 영화가 나오면 그것도 표현의 자유인가.”

28일부터는 국민의힘 지도부, 박정희기념재단·육영재단·박정희학술원, 우파언론들이 참전했다.

“표현의 자유는 좌파의 전유물인가”(장동혁), “육영수서거역사왜곡처벌법을 만들거나 5·18역사왜곡처벌법을 없애라”(나경원), “5·18은 성역이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는 다시 쓰는가”(이진숙),

“피해자를 가해자인듯 몰았다… 영화계, 현대사 끊임없이 왜곡”, “들끓는 2030… 암살자(들)은 역사왜곡”(조선일보)

“패륜”, “역사 왜곡”,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전투에 나서라고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9월 초부터 국힘 지지율이 여당을 앞서거나 비슷해졌다. 28일 전후에 이런 기세를 바탕으로 외교·안보(북한군 포로, DMZ 지뢰) 사안에서 극우의 탄력이 붙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암살자(들)〉을 인질 삼아 ‘좌파 역사관’과 ‘문화 권력’까지 공격 대상으로 엮어 우파들을 고무·결집시킨 것이다.

사실 그동안 성공한 한국 상업 영화 중 우파 입맛에 맞는 영화가 거의 없었다. 자본가들은 주로 수익성을 보고 투자했는데 결과가 그랬다. CJ 그룹이 회장 이재현이 구속된 후 박근혜 정부에게 영화 〈국제시장〉을 제작해 ‘천만 영화’로 만들어 준 배경이다.

극우와 우파에겐 할리우드가 더 낫겠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나 〈오디세이〉는 꼭 그렇지도 않다. 2020년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기분 상한 트럼프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되찾자!”고 외쳤다. 〈바람과…〉는 노예제를 찬양하고 ‘잃어버린’ 과거 ‘전통적’ 백인의 미국 신화를 성공적으로 조작했던 영화지만, 당대 최고 흥행작이었다.

국제적으로도 극우와 그 정치인들이 벌이는 ‘역사 전쟁’, ‘문화 전쟁’은 사회를 더욱 우경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진숙의 기자회견문에는 그 본심이 잘 나온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고 국민들을 가난에서 탈출시켰던 위대한 지도자를 기어이 독재자로, 또 배우자 살해의 배후에 있을지도 모를 패륜적 인물로 만들려는 것인가.”

진정한 민주주의에는 어림도 없는 자유민주주의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겼을 뿐 아니라 실제로 기초적인 민주적 권리들과 그것을 요구하던 사람들을 짓밟아버린 자들(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과 그렇게 하려다 실패한 자(윤석열)를 찬양·옹호·추종하는 자들(과 그런 자들을 동료로 둔 자들)의 입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무시해선 안 된다. 현재까지 공격은 성공적으로 보이며, 따라서 극우들에게 결집력을 주고 있다. 윤어게인 극우 행동가들이 배우 유해진의 집 앞에 한 달 치 집회 신고를 냈다. 국힘은 영화 상영 중단과 감독의 국회 국정감사 출석을 요구한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과 문화산업 자본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다. 하지만 공격의 영향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전에는 이런 공격이 대단치 않았다.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극우가 계속 성장했다. 미·중 경쟁 고조, 다중 위기, 이재명 정부의 내란 청산 부진과 개혁 배신 등이 극우를 독려하고 고무한다.

“패륜, 왜곡”?

이 영화에 “박정희가 육영수 살해를 사주했다”는 설정이나 관점은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받아들일 만한 설정이나 관점이 있긴 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한다. 영화상으로도 그는 박정희가 아니라 “중정의 윗선”을 의심한다.

다만, 그건 추론의 약점 같다. 중정의 윗선이 박정희가 아니고 다른 누구일까? 주요 인물인 김재환 기자(박해일 분)는 박정희 암살 시도 또는 암살 “소동극”이 한일 협정과 그에 따른 차관에 경제적 이익이 걸린 세력들과 연관된 음모가 아닌지 의심한다.일본에서 수입한 지하철 전동차 가격이 2배였던 것이 한일간 리베이트로 의심됐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하필 박정희 또는 육영수 암살(극)을 할 개연성은 낮다. 그렇게까지 보는 것은 너무 과하게 만사가 위로부터 조작된다는 관점일 수 있다.

불과 1년 전 도쿄 한복판에서 있었던 김대중 납치·살해 기도 사건(중정 부장 이후락이 박정희의 ‘윤허’ 없이 행한 과잉 충성 행동인지 박정희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과, 항상 박정희가 충신들을 치열하게 경쟁시키는 방식으로 (마치 히틀러가 그렇게 했듯이) 자신을 지배 구조의 정점으로 유지해왔다는 사실 때문에, 위로부터의 음모에 대한 의심은 이해할 만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영화가 훨씬 중요한 문제들에서 옳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박정희 정권이 부패하고 잔혹한 독재 권력임을 보여 준다(옳다). 박정희와 국가가 검열, 조작, 협박, 납치, 처형 등 온갖 “천인공노할 짓”과 “패륜적 범죄”를 저질렀음을 “왜곡”없이 보여 준다(완전히 옳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저항에 나섰고 정의에 헌신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강조한다(중요하게 옳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든지 우리를 억압하려고 벌였던 악행들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다. 널리 알려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비추어 현재와 미래의 일도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파의 노력을 설명해줄 이 말을, 우리도 유념해야 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1984》)

반면, 개혁 흉내와 국힘 흠집내기 수준 정도로만 진행하는 민주당 정부의 과거사 진상 규명은 늘 미진했고 민주당의 역사관도 진실에 너무 불충하거나 부적절하다.

요컨대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4년 8월 이전 역사를 역사유물론 관점에서 짧게라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제국주의 전쟁(제2차세계대전)이 끝났다. 한반도는 식민지에서 해방됐지만, 대신 분단됐다.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했고 남쪽은 미군이 점령했다. 남쪽 지배 세력은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했다.

1947년 제국주의적 경쟁이 재편되면서 즉 냉전이 시작되면서 1948년 남과 북에서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됐다. 그 선거를 두 차례 거부한 저항의 대가로 제주도민의 10분의 1이 미군정·이승만·극우들에게 도륙당했다.

1950~1953년 한국전쟁의 근본 동력은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적 경쟁이었다. 한국전쟁은 3년간 훨씬 좁은 지역에서 교전과 폭격이 벌어졌음을 감안한다면, 제2차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쟁보다 참혹했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대량 학살자이자 독재자였다(북한 정부도 별반 낫지 않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은 도망쳤고 남산의 이승만 동상도 박살났다. 1년 후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 쿠데타는 이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었다.

박정희 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방식은 첫째는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와 이해관계로의 긴밀한 편입, 둘째는 국가자본주의적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 셋째는 가혹한 착취였다. 특히 셋째 즉 가혹한 착취를 위해 사회를 극도로 억압했다.

하지만 강점엔 약점이 따르는 법이다.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는 방식은 그만큼 세계 경제의 등락에 민감했다. 산업화는 대규모 노동계급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처럼) 1970년을 전후로 한국 경제도 위기가 왔고 노동 쟁의가 급증했다(1971년 10배 증가).

이 1971년에 치른 대선에서 박정희는 김대중에게 질 뻔했다(서울에선 참패했다). 당시 국가 예산의 8분의 1에 맞먹는 돈을 뿌리고도 그랬다. 한 달 뒤 총선에서도 야당이 서울에서 압승했지만, 그 전날 김대중은 돌진하는 대형 트럭에 치여 죽을 뻔했다.

1971년 12월 박정희는 보위법을 제정해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했다. 1972년 10월 박정희는 친위 군사 쿠데타를 성공시켜(“10월 유신”) 사실상 선거가 없는 종신 집권을 시작했다. 대통령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 국회 입법도 동의도 없이 헌법의 기본권을 정지시킬 수 있었다(긴급조치권). 이는 사법적 판단도 받지 않았다. 기본권인 노동3권을 (헌법이 아니라) ‘법률이 정하는 범위’로 후퇴시켰고 주요 산업 노동자의 파업권을 법률로 부정할 수 있게 했다.

육영수가 저격된 사건의 배경인 1974년 8월 서울은 일년 전인 1973년 8월 도쿄의 김대중 납치·살해 기도 사건과 연장선에 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암살이 횡행했다. 1945~48년 해방정국에도 정치 폭력과 암살이 많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미국, 유럽, 일본도 그랬다. 남북한 역시 1968년 서로 상대국 지배자의 암살을 기획, 도모했다. 당시 납치와 암살의 주체가 좌파든 우파든 국가기관이든 현실에선 픽션이나 상상 속에서처럼 정교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게다가 1974년 세계는 격변과 혼란에 휩싸였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과 석유파동은 위기에 빠져있던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추가했다. 그 직전 칠레혁명은 반혁명을 맞았다. 미국 노동자들의 파업은 1970년 정점에 올랐다가 닉슨의 유례없는 조치들로 무마됐지만 닉슨은 탄핵에 직면해 1974년 8월 사임해야 했다. 포르투갈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문세광이 자신의 박정희 암살이 민중 봉기를 이끌 것이라 착각한 것도 당시엔 무리가 아니었다(하지만 잘못된 정치 전략이다).

표현의 자유

영화에 나오는 〈동아일보〉 기자들 투쟁은 대중 항쟁의 영향에서 출발된 것이다. 학생과 노동자들의 용감한 투쟁이 없었다면,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워할 일이 적었을 것이다. 1974년 3월 동아일보 노동조합을 결성했지만 정부는 불허했다. 이 흐름은 10월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어졌고 1975년 3월 기자들은 대량 해고됐다.

영화와 달리 이때 농성장에 폭력배들을 동원한 건 중정이 아니라 신문사 사장이었다. 중정은 그전에 자본가들을 압박해 신문에 광고가 하나도 실리지 못하게 했다. 기자들이 검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투쟁은 1972년 필리핀에서도 비슷했다. 1979년 군사 독재 하의 브라질에서 기자들은 대중 파업에 동참했다. 그리고 해고된 뒤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대안언론운동에 나섰다. 한국의 동아투위처럼 말이다.

이렇듯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서든 대중 항쟁의 산물이었다.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이 표현의 자유의 최대의 적이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시위와 파업은 집단적 발언이며 표현의 자유 행사지만,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박정희가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자들을 숭상하는 자들은 다시 그것을 철저히 짓밟고 싶은 자들이다. 자유와 권리는 진공 속에 있지 않고 그렇게 논할 수도 없다. 억압과 착취와 독재와 학살을 옹호하는 자들이 원하는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독재와 학살에 기여하는 자유다.

실제 역사 속 표현의 자유는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고 활동가들이 구속과 고문을 무릅쓰고 유인물을 찍어 돌린 집단적 투쟁의 결과다. 즉 표현의 자유란 극우가 원하고 행동하는 것의 정반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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