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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에 대한 사과와 정책연대 논란을 돌아보며

한국노총에 대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사과와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 논란이 지난 한 달여 간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커다란 쟁점이 됐다. 민주노동당을 배제한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누더기로 전락했지만, 이 논란은 민주노동당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돌이켜 보면, 상처가 불가피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0월 한국노총 지도부가 대선 때 지지할 후보를 선정하는 조합원 총투표 후보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포함되려면 지난해 민주노동당 대표가 한국노총 지도부를 비판했던 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요한 것에서 시작됐다.

작년 9월 한국노총 지도부가 정부의 지원으로 노사발전재단을 설립하는 대가로 정부와 노사관계로드맵 추진을 야합한 것을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비판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경총 회장과 함께 뉴욕 월가에 찾아가 기업주들에게 투쟁을 자제할 테니 투자해달라고 읍소했을 때는 노총 위원장인지 경총 위원장인지 모르겠다며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한국노총 지도부 비판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대로 대변한 올바른 비판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노총 지도부의 사과 요구는 대선을 앞두고 한국노총 지도부가 조합원들에 대한 통제력을 미끼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굴복시키려는 비열한 행위였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는 한국노총 지도부에게 사과하고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지지를 공식적으로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인가, 사과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지지를 구할 기회를 포기할 것인가 하는 강요된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었다.

이러한 강요된 선택지 앞에서도 제대로 된 전술이라면 한국노총 지도부와 평조합원들을 구분하여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동안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거대한 투쟁에 나선 경우가 꽤 존재했고, 따라서 한국노총 조합원 중에도 정부와 기업주와 야합하는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해 비판적인 조합원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 2천 명 가량은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을 후원하는 세액공제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꼼수를 부려가며 자본가 정당 후보를 지지한다 해도, 평조합원들이 전부 지도부의 방침을 고스란히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한국노총 지도부의 강요에 타협하지 말고, 조합원들에게 직접 지지를 호소했어야 했다.

유감이게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10월 15일 김선동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한국노총 지도부를 찾아가 사과하는 길을 택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권위는 물론 당 자체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이자, 당을 지지해 온 선진 노동자 대중의 실망감을 자아내는 행위였다.

이 때문에 다함께를 비롯해 당 안팎의 단체들이 당 지도부의 사과를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한국노총을 아우르는 노력은 지당하나,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27일 정해진 열사 분신이 있었고, 인천 전기원 파업에 한국노총 조합원들 중 일부가 파업 파괴 행위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사과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더 거세졌다. 결국 11월 2일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한국노총에 사과한 것에 대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에서 문성현 대표는 다행히 한국노총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성현 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의 좌파 단체들은 계속해서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 자체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다함께가 발표한 성명도 그러한 요구를 포함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 지도부의 사과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과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했다. 비판을 넘어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흔히 함축적으로 그 대상, 즉 당 지도부를 적대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한 사과는 우파 노조 지도부에 대한 타협이었지, 계급의 적들에게 타협하는 배신적 행위 그 자체는 아니었다.

정책연대

게다가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한 당 지도부의 타협은 대선을 앞두고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지지를 구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던 듯하다. 문성현 대표는 한국노총 지도부에게 과도한 표현에 한해서만 사과했다고 해명했는데, 한국노총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사용한 어용노조, 노동자 이름 떼라 하는 표현이 지도부를 넘어 조합원들에게도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던 듯하다.

물론, 당시 구체적 상황에서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사과는 그들의 배신적 행위에 대해 당 지도부가 비판적 태도를 거둬들이는 것으로 비쳐졌다. 따라서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비판할 만했다. 그러나 아예 적대시할 만큼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당 대표의 해명 이후에도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한 사과 자체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 이해를 구하려 한 노력 자체를 철회하라는 것으로 풀이될 우려가 있었다.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한 사과가 선진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행위였다면, 사과했다가 다시 이를 완전히 철회하는 것은 마치 한국노총 조합원들을 연대의 대상으로 염두에 두지 않는 것처럼 비쳐지는 등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 다시 한번 당 지도부와 당 자체의 위신을 따라서 당원인 우리 모두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행위가 될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일부 단체들은 한국노총이 어용노조이며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해체 대상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 자체를 거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전신인 대한노총 시절 국가에 의해 지도되는 어용노조, 즉 국가 통제 노조였으나,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난 20년 사이에 우파 노조로 조금씩 변모해 왔다. 그래서 1997년 대중파업과 그 이후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한국노총 산하 노조에서도 커다란 투쟁에 나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노총을 어용노조로 규정하며 부분적 정책연대마저 완전히 거부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한국노총 지도부를 넘어 지난 수년간 투쟁에 나서왔고 잠재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한국노총 조합원들 전체를 배척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쉽게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러한 과도한 요구에 밀려 사과를 완전히 철회하고 한국노총에게 정책연대 답변서와 확약서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노총 지도부는 이를 빌미 삼아 정책연대 후보에서 권영길 후보를 제외했다. 결국, 2만여 명이 모인 11월 24일 한국노총 노동자대회 때도 권영길 후보를 제외한 기성 정당의 반노동자적 후보들이 연단에서 역겨운 소리를 늘어놨다. 기성 정당 후보들 중 일부가 정책연대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한국노총 지도부가 추진하려던 기성 정당 후보들과의 정책연대는 다행히 누더기가 됐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사과 요구에 대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타협, 그리고 이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과 당 지도부의 번복, 정책연대 불참 등의 과정은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일부 한국노총 소속 선진 노동자들과 노동자들 모두에게 조금씩 위신을 떨어뜨린 과정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제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모두 민주노총 노동자들과 함께 한국노총 조합원들을 상대로도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가 확대되기를 충심으로 바라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침 한국노총 소속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권영길 지지 조합원 선언을 조직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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