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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대안 논의 ④ ─ 칼 폴라니:
자기조정적 시장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책 《대폭락 1929》가 잊혀질 만하면 경제 위기가 터져 의도치 않게 스테디셀러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경제 위기는 지금까지 당연시해 왔던 정설과 이를 설파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지금까지 무시하거나 금기시해 왔던 주장과 인물들을 올려놓는다. 최근에 칼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한 것도 그 한 예다.

칼 폴라니

이런 현상의 수혜자 중 한 명이 칼 폴라니다. 정태인은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차례로 30년간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폴라니의 시대”라고 단언했고, 우석훈은 “폴라니가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기빈은 시장경제의 대안 체제로 폴라니가 주장한 ‘지역적 계획경제’를 주장한다.

미국에서 닷컴거품이 붕괴한 직후인 2001년에 폴라니의 주저인 《거대한 변환》의 세 번째 판본이 출판됐는데, 이 책의 서문에서 스티글리츠는 반세기 전에 쓰였음에도 폴라니가 제기한 쟁점과 전망이 오늘날에도 그 특징을 잃지 않고 있다며 그에 대한 관심이 때늦은 감이 있다고 썼다.

실제로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면서도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보지 않았던 폴라니에게서 뭔가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폴라니가 신자유주의의 핵심 공리인 자기조정적 시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라는 점에서 그의 사상을 음미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폴라니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해당하는 자기조정적 시장이라는 신화를 논박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오스트리아로 망명해 〈오스트리아 국민경제〉의 편집자로 있는 동안 신자유주의의 대부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와 그의 스승 루드비히 폰 미제스(한계효용혁명의 주창자 중 한 명)의 자유 시장 논리를 반박하는 데 주력했다.

1933년 영국으로 이주한 뒤 노동자교육협회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구상한 것이 바로 《거대한 변환》인데, 영국 노동자들을 비참한 상태로 내몬 시장경제의 참혹한 현실이 이 책의 저술 동기 중 하나였다.

자기조정적 시장

《거대한 변환》의 핵심 내용은 시장경제가 인류에게 가장 자연스런 제도라는 주장이 역사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나 근거가 없는 허구라는 점이다.

아담 스미스는 “어떤 물건을 다른 물건과 교역하고 거래하며 교환하려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주장하지만, 폴라니는 그것이 근대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폴라니는 교역과 거래의 발전을 통해 시장경제가 출현했다는 진화론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시장경제가 주된 경제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중상주의] 국가의 의도적인 정책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방임이라는 신화 뒤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의 폭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경제는 사회의 일부로서 그 안에 존재했다. 그런데 국가는 경제 성장, 국력 신장을 위해 국내 시장을 확장하려 했고, 이는 상품화할 수 없는 토지·노동·화폐를 상품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폴라니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그 영향으로 인해 산업이 생산에서 꼭 필요한 요소들을 자기조정적 시장에 내맡기는 과정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허구적 상품인 토지·노동·화폐가 등장했고, 자기조정적 시장 기제가 확립됐다.

산업혁명의 결과 거대한 기계에 종속돼 일하는 소녀 노동자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노동(인간), 토지(자연), 화폐(구매력)마저 상품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폴라니에게 자기조정적 시장에 근거한 시장경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유토피아일 뿐이었다. 사회에 “묻어 들어” 있던 경제가 이탈하면서 사회의 안정성을 위협해 불안정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라니는 시장경제의 필연적 귀결이 바로 파시즘과 전쟁이며, 파시즘의 원인이 영국의 산업혁명과 리카도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파편화하고 붕괴할 위험에 처할 때 등장하는 사회의 자기보호를 위한 반작용을 폴라니는 “이중 운동”으로 설명한다. 폴라니는 “노동, 토지, 화폐의 상품화가 언제나 시장경제의 본질이지만, 만일 ‘악마의 맷돌’과 같은 시장 기제로부터 인간과 자연 그리고 경제조직이 보호되지 않았다면 어떤 사회도 잠시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조합이 합법화되면서 노조와 노동자 정당이 등장해 사회적 보호운동의 주된 담당자가 됐고, 토지를 시장의 법칙에 내맡기는 시도에 대한 보호운동으로 보수적인 토리당의 입법 활동이 나타났다. 화폐시장에서도 금본위제가 해체되고 통화량에 대한 중앙은행의 개입이 있었다.

폴라니는 이런 이중운동이 반드시 노동자 계급의 저항 운동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앞서 지적한 바처럼 시장의 확대로 인해 사회 조직 전체가 위협을 받기 때문에 ‘계몽된 반동세력’을 포함한 다양한 경제적 계층에 속하는 집단들이 자기조정적 시장 기능에 반발할 수 있다.

폴라니가 볼 때, 19세기 영국에서 확립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첫 번째 ‘거대한 변환’이었다면 이런 경향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 두 번째 ‘거대한 변환’에 해당한다. 그가 《거대한 변환》을 쓰고 있던 때(이 책은 1944년에 처음 출판됐다)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그 종말을 고한 1929년의 대공황이 있었고, 파시즘과 스탈린이 집권했으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펼쳐지고 있었다.

뉴딜 정책

폴라니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가, 비록 야만적이긴 하지만, 바로 파시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파시즘이 “산업과 정치의 영역에서 모든 민주적 제도를 파괴하는 대가를 치르고 성취된 시장경제의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폴라니는 파시즘에 대항하려면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 사상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폴라니에게 시장경제의 위기에 대한 또 다른 해결책이 바로 뉴딜 정책이다. 그는 금본위제를 포기한 루스벨트에게서 민주주의를 지키면서도 세계 시장의 영향으로부터 국민경제를 지킬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 즉 뉴딜 정책이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억제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재촉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폴라니가 이런 결론에 이른 것은 자신이 격렬하게 비판했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시장은 항상 균형을 이룬다는 고전파의 시장 이데올로기에 대한 케인스의 비판을 넘어서 잉여가치와 착취의 문제로까지 사고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폴라니는 제2인터내셔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접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를 ‘경제주의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1844년 경제학철학수고》를 높이 평가했고 루카치를 통해 물신화나 노동소외를 이해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리카도와 마찬가지로 경제 결정론이라며 기각했다.

폴라니는 1930년대의 위기에 대한 세 번째 해결책으로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을 지지했다. 폴라니가 보기에, 일국사회주의론은 세계적 경제 위기에 대한 지역적 계획경제의 한 모델이었다. 그는 냉전 때에도 노동자들에게 소련을 방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폴라니는 1930년대의 세계경제 위기로 인해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유토피아는 파산했고 19세기의 시장경제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그가 불가역적이라고 보았던 그 현상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재림해 얼마 전까지 맹위를 떨치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

예측이 빗나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30년대의 ‘거대한 변환’ 과정을 거치면서 폴라니가 인류의 대안 체제라고 봤던 것이 또 다른 ‘거대한 변환’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한가 하는 점이다.

대변환

폴라니는 말년에 전(前)자본주의 사회의 특징들을 집중 연구했다. 시장경제를 대체할 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시장경제 이전 사회, 특히 원시·고대 사회에는 자기조정적 시장이 아니라 호혜, 재분배, 교환의 세 가지 형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폴라니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현 사회에서도 호혜는 기부 문화로, 재분배는 적십자 활동으로, 교환은 공정무역으로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원리를 대안 사회의 기본 원리로 채택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폴라니 자신도 원시·고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런 특징들이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연결시키는지를 규명하지 못했다. 이것은 폴라니의 이론 그 자체의 허점에서 비롯한다.

폴라니는 경제가 사회 속에 포함돼 있다는 의미에서 실체로서의 경제(어떤 이는 ‘살림살이 경제’라고 표현한다)를 제기하며 아담 스미스의 ‘경제적 인간’을 비판했다. 그는 사회적 과정이 경제적 과정에 선행할 뿐 아니라 경제적 과정은 따로 독립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에 ‘묻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경제가 사회로부터 ‘탈착근할’ 때에도 그에 걸맞는 사회 구조를 형성하고 확립한다. 즉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 구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폴라니가 말한 사회에서 경제의 탈착근(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확립)과 거대한 변환(사회의 자기조정)을 통한 사회의 안정성 회복의 논리는 너무 기계적이고 단선적이다.

폴라니가 대안으로 제시한 ‘지역적 계획경제’는 현대에서 다양한 변형으로 제시된다. 생활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 또는 지역공동체 등이 그 본보기들이다. 하지만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다양한 지역주의적 대안 추구는 언제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폴라니가 최근에 각광을 받는 일은 고무적이다. 그만큼 시장경제의 허구를 본질적으로 비판한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허구적 상품’, ‘실체로서의 경제’, ‘이중운동’, ‘묻어 들기’ 같은 독특한 개념으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그럼에도 자기조정적 시장에 대한 그의 비판이 빛을 발휘하려면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를 규명한 마르크스의 분석·대안과 결합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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