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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들에게 추천하는 도서

대학 신입생 추천 도서를 소개하는 글을 구상하느라 며칠을 낑낑댔습니다. 신입생에게 추천한다는 말에 더 겁을 먹었죠. 일단 지난해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추천도서 목록처럼 너무 어려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읽어 봐도 정말 훌륭한 책들과 신입생 독자들을 연결하는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푼 희망을 안고, 어떤 이들은 새로운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대학에 입학할 것입니다. 저마다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을 것이고요. 이쯤 돼서 ‘나는 신입생 때 무엇을 고민했지?’ 하며 자문해 봅니다.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대학생이 경찰 곤봉에 맞아 죽은 사건, 열심히 일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제 가족뿐 아니라 도처에 있다는 발견, 대학에서 하는 공부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해명해 주지 않는다는 답답함 등이 저로 하여금 정의롭지 못한 사회 현실에 눈 뜨고 행동에 나서게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 경험은 10년도 더 된 경험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거 너무 구닥다리 티 내는 거 아닌가’ 하고 자책하는 와중에도, 지난해 있었던 용산 참사, 정권의 반민주적 악행, 대량해고와 노동자들의 저항 등이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아는 사람들 모두가 현실을 바꾸려고 나서지는 않습니다. 〈레프트21〉을 읽는 신입생들이 직간접 경험을 통해 접한 불의에 눈감지 않고 대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몇 권 추천해 보겠습니다.

현실이 불의하다고 해서 절망할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바꾸는 행동에 나섭니다. 얼마 전 타계한 미국의 진보적 역사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하워드 진은 보통 사람들의 행동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2002년 출간된 자서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와 2009년 출간된 《하워드 진, 역사의 힘》(예담)에서 그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힘든 시기에 희망을 갖는 것은 단지 어리석을 정도로 낭만적이어서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 자체가 절망뿐 아니라 열정, 희생, 용기와 연대 정신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질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오직 최악의 상황만을 본다면, 우리의 행동 의지는 꺾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민중이 용맹하게 행동했던 때와 장소를 기억한다면 ― 그런 경우는 무수히 많다 ― 우리는 행동하려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중)

하워드 진의 책 중에 빠뜨리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 또 하나 있는데요, 바로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당대)입니다. 마르크스가 죽은 지 1백여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마르크스의 사상이 유효한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연극으로도 공연됐죠.

“나는 흔히 마르크스를 평가할 때 한 가지 빠뜨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이론가,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마르크스는 혁명가로서도 보기 드물게 적극적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나는 마르크스의 이런 다른 면, 그러니까 현실에 깊숙이 참여한 열정적인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를 무대 위에 올리고 싶었다. …

“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이 무자비한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왜곡된 것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억압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에 자못 흡족해하는 서구 정치가와 저술가들로부터도 마르크스를 구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의 분석이 옳다는 것은 날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건들이 명명백백히 입증해 주고 있다.”

하워드 진은 이 책에서 자신이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이론과 실천)에서 매우 큰 영감을 얻었다고 썼는데, 《공산당 선언》은 제가 다음으로 추천할 책입니다.

이 소책자는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막 태동하는 시기에, 자본주의의 동력과 모순,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세력인 노동자 계급의 등장과 잠재력, 혁명가의 과제를 매우 짧은 글에서 압축적으로 표현한 탁월한 저작입니다.

마르크스가 1백60여 년 전에 쓴 이 소책자를 읽다 보면, 오늘날의 현실과 너무나 흡사한 묘사들을 접하면서 흠칫 놀라게 됩니다. 오늘날의 현실에도 너무나 와 닿아, 여러 해에 걸쳐 다시금 읽게 되는 저작입니다.

한편 마르크스 하면,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자본》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죠. 최근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면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이 생각만큼 읽기 쉽지는 않습니다. 입문서로 두 권을 추천합니다. 리오 휴버먼이 쓴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와 피에르 잘레가 쓴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브라질에서 3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인데다 한국에서도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읽힌 책입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태동했고, 어떻게 변해 왔는지 매우 쉬운 예들을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는 초심자들이 읽기 좋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입문서입니다.

다음으로 추천할 책들은 한국의 노동 현실에 관한 책들입니다. 주당 노동시간, 산업재해 빈도 등에서 한국 노동자의 삶이 열악하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죠. 더구나 정부와 기업주들은 대량해고, 임금삭감, 복지 축소 등 본격적으로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합니다.

이에 맞선 저항이 두려웠는지 최근 운동 탄압 전담 검사들이 노동운동을 잘 알아야 한다며 《전태일 평전》을 열독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이 싹트기 전인 40년 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 전태일은 당시의 노동 현실을 고발하며 1970년 11월 13일 제 몸을 불살랐습니다.

그 계기로 노동 현실은 조금씩 알려졌고, 1980~90년대 《전태일 평전》을 읽은 수많은 대학생들이 ‘나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전태일의 소망을 접하고는 노동자 투쟁 지원 운동에 헌신하게 됐습니다.

물론 1970년대에 비해 오늘날 한국 경제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고된 노동에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열악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오늘날 노동자의 현실을 가슴 절절하게 고발한 책이 한진중공업 여성 용접공 출신 김진숙 씨가 쓴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입니다.

한진중공업은 민주노조를 결성하자마자 노조위원장이 살해당하고, 2003년에도 노조위원장이 1백29일 투쟁 끝에 자살을 하는 등 매우 격렬한 쟁의를 겪은 작업장입니다. 2002년 한진중공업 사측은 일한 지 21년이나 된 노동자 임금이 세금 떼고 80만 원인 현실에서 임금동결과 대량해고를 강행했는데, 최근에도 대량해고로 인해 사측과 노동자들 간 긴장이 첨예하게 형성됐습니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엄청난 이윤을 얻는 동안 작업복 등이 땀범벅이 돼 ‘소금꽃’이 필 정도로 일하고도 해고를 당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김진숙 씨는 단지 노동자가 불쌍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이 세상의 부를 만드는 주인공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신에게 씌워진 족쇄를 깨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투쟁이라고 말합니다.

“참 사는 것 같았다. 싸워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의 투쟁은 위험해 보인다. 싸워서 얻은 해방감을 단 하루도 누려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을 지키겠다고 목숨까지 거는 이들은 무모해 보인다. 그들은 아직도 거북선을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북선은 우리가 만들었다.”

그럼에도 2000년대 동안 노동운동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정부와 기업주들, 보수 언론은 정규직 노동자를 ‘귀족’이니, 이기적이라느니 하며 비난했습니다. 이런 논리를 시원하게 반박하는 책으로 하종강 씨가 쓴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후마니타스)을 추천합니다.

끝으로 민중의 행동으로 세계를 뒤바꾼 역사도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책갈피)는 왕이나 영웅 등 지배자들의 관점으로 쓴 기존의 역사관을 배격합니다. 역사를 민중의 투쟁사를 중심으로 바라보며, 인류 역사가 어떻게 민중 자신의 행동으로 변해 왔는지 살펴보는 훌륭한 저작입니다.

민중의 행동이 세계를 바꾼 역사는 무수히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를 꼽자면,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일시적이나마 노동자와 민중이 세계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 준 사건이었습니다.

혁명의 순간을 생생히 기록한 《세계를 뒤흔든 열흘》(책갈피)도 추천합니다. 당시 혁명을 직접 취재한 미국인 기자 존 리드는 혁명의 주인공이었던 민중의 행동과 열망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이 책들이 신입생 여러분이 불의에 눈 뜨고 맞서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 글이 얼마나 책들의 진가를 잘 드러냈는지는 솔직히 걱정이 듭니다. 미흡하다고 느끼신다면, 직접 책을 펼쳐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