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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와 공포 조장의 정치

최근 일어난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앞다퉈 성범죄에 대한 강경책을 내놓고 있다. 국회에서는 전자발찌법 적용 대상 확대(살인과 강도까지), 부착기간 연장(10년에서 30년으로), 법 소급 적용이 검토중이다. 또, 신상공개제 적용 대상 확대(청소년 대상에서 모든 성범죄)와 소급 적용도 논의되고 있다.

성범죄자의 상세한 신상정보를 곳곳에 공개하도록 한 미국 메간법 범죄를 줄이지 못했고 범죄 전력자의 사회 복귀를 어렵게 하는 결과만 낳았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동 성범죄에 분노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특히, 여성들은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가 두렵고 혼자 돌아다니기가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주류 정치인들이 논의하는 안들은 대중의 공포만 부추길 뿐 진정한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감시를 강화해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주장에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 검찰과 경찰은 전자발찌 시행으로 재범률이 크게 낮아졌다(0.17퍼센트)고 주장하지만, 이 수치는 전체 성폭력 범죄자가 아니라 가석방 대상자(보통 모범수로 분류되는)를 대상으로 한 조사일 뿐이다.

부르주아 언론이 모범으로 치켜세우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성범죄자 감시를 시행하지만, 이 때문에 성범죄가 줄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성범죄처럼 암수(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범죄)가 많은 범죄는 국가별 비교가 어렵다. 하지만 암수율이 적은 살인범죄 발생률을 비교하면,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일반 살인 발생률 3위, 총기 살인 발생률 1위를 기록한다.

게다가 미국이 2008년 세계 4위의 사형 집행국이라는 점도 고려하자. 결국, 강력한 처벌과 감시가 흉악범죄를 예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성범죄 정책은 성범죄 예방은커녕 도덕적 공포를 부추겨 성범죄 전력자들에 대한 폭력과 배척을 증가시키고 있다.

‘성 맹수’

부르주아 언론은 성범죄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며 마치 타고난 ‘성 맹수’가 있는 양 묘사한다. 하지만 날 때부터 범죄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범죄 역시 여느 범죄처럼 사회적 뿌리가 있다.

자본주의에서 성은 인간의 자연스런 속성에서 분리돼 사고팔리는 상품이다. 여성의 신체는 신문, 방송, 거리 광고판 등에서 물건처럼 전시된다.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눈요깃거리로 취급하고 열등한 존재 취급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성 의식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자본주의에는 이 밖에도 수많은 차별과 배제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강요되는 치열한 경쟁은 많은 사람들의 인성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숨막히는 경쟁과 폭력, 배제가 판치는 사회에서 인간성이 파괴된 개인들이 양산된다.

이런 개인들을 낳는 사회적 조건을 공격하지 않고서 성범죄는 결코 근절될 수 없다.

더욱이 성범죄 대부분이 가족, 친척, 친구 등 잘 아는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경찰이 감시할 수 있는 대상조차 명백히 제한돼 있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흔히 피해자의 고통을 내세워 성범죄에 대한 강경책을 옹호한다. 그러나 전자발찌 도입 확대에만 수백억 원 예산을 투입할 태세인 정부는 정작 성폭력 피해자의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덜어 줄 지원책은 거의 내놓지 않았다.

범죄 예방이나 감소와 거리가 먼, 범죄자 보복이나 낙인이 형사정책의 목표가 돼선 결코 안 된다. 인간을 타락시킬 뿐인 복수와, 범죄 전력자의 사회 복귀를 힘들게 하는 낙인과 배척으로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지는 않는다.

모든 성범죄자가 기회만 생기면 다시 같은 짓을 저지른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검찰 통계로도 성폭력 범죄자의 동종 재범률은 15퍼센트가량이다.

범죄의 사회적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개인의 처벌과 감시에 주력하는 형사 정책은 결국 거대한 감시체제를 발전시킨다. 바로 이것이 지금 한국을 포함해 대다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공포 정치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용산참사를 가리는 데 연쇄살인 사건을 이용했듯이, 이번 사건도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법무부 장관 이귀남이 사형 집행과 보호감호제 부활을 시사한 데서 보듯, 이명박 정부는 이번 사건을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공격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 조성은 경제 위기로 증가하는 대중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기도 하다. 대규모 실업을 양산하고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이명박 정부는 대중의 불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쪽으로 향하게 하려 한다.

감시제도 강화는 이후 경찰력 증강의 구실이 될 가능성도 짙다. 정부와 기업주들에 맞선 저항과 노동자 투쟁이 증가하면 그 속내가 금세 드러날 것이다.

지난 30년 간 미국에서 보수주의자들은 1960년대 사회운동이 이룬 개혁을 되돌리고 사회 통제를 강화하려고 범죄를 핵심적인 정치 쟁점으로 삼았다. 그 결과 미국은 선진국에서 가장 낙후한 복지 제도와 세계 최고의 투옥 인구를 갖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모방하려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흉악범죄를 빌미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려는 것에 진보진영이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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