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반대 집회 ― 정부는 집회를 불허했지만 분노마저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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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과 종로통 일대는 주황색 풍선과 붉은 손팻말을 든 사람들로 북적댔다. 풍선과 팻말에는 “흘러라! 강물, 들어라! 청와대” “생명 파괴 민생 파괴 4대강 공사 중단”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시민사회·노동·종교·정당 등 단체들은 ‘4대강 공사 중단을 위한 국민행동’을 개최했다.
경찰청장 ‘조혐오’ 취임 후 첫 대중 시위였다. 경찰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동화면세점 앞 등에 모인 시민들을 에워싸고 이동을 가로막았다. 광화문 우체국 근처에선 인간띠잇기를 하는 시민들을 방해했다. 충돌은 없었지만 항의는 넘쳐났다.
많은 시민들이 “집회의 자유도 없는, 이런 게 공정 사회냐”고 항의했다. 인터넷 공지를 보고 참가했다는 한 시민도 “이명박 정부는 수백억 원을 들여 홍보하고, 그것도 부족하다고 방송 장악한다고, PD수첩 막고, 낙하산 사장 보내고 하면서 우리는 모여서 목소리도 못 내게 한다”고 말했다.
산발 시위가 끝나고 시민들은 이날 유일하게 허가가 난 보신각 앞 문화제 장소로 모였다. 집회가 시작하자마자 비가 쏟아졌지만, 장소를 꽉 메운 시민 2천여 명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날 야 5당 정치인들도 참가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민주당 사무총장 이미경, 국민참여당 대표 이재정 등이 연단에 섰다.
이들은 모두 국회 차원의 ‘4대강 사업 검증 특별위원회’(검증특위) 구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매우 정당한 요구다. 4대강 사업의 효과와 진행 절차가 모두 의혹투성이기 때문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최근 4대강 사업 적자가 투자 예산의 4분의 3이나 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30만 개 창출도 실패했다. 현재 공사 시작 후 늘어난 일자리는 2천4백 개에서 1만 3백 개(이 중 정규직 1백30개)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나 야당의 협상에 맡겨 놓고 국회만 쳐다 보고 있으면 위험할 수 있다.
첫째, 검증특위 자체는 4대강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할 기구가 아니다. 오히려 한나라당 의원도 참여해야 하는 기구다. 따라서 검증특위 구성을 두고 한나라당과 벌이는 전투는 정부의 시간끌기에 이용되는 소모적인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둘째, 검증특위가 공사 중단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검증특위가 구성돼 폭로를 효과적으로 하더라도 대중행동이 아니면 막을 수 없다. 이미 4대강 공사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지는데도 이명박 정부가 강행을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말처럼 “4대강 사업마저 못하면 완전히 레임덕이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대강 공사 반대 운동은 어떤 요구든 국회에 압력 넣기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은 4대강 문제를 다른 운동과 연결시키며 운동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이날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4대강 예산] 22조 원이면 최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 4대강 예산을 비정규직 노동자 8백50만 명에게 사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운동 등과 4대강 반대가 결합되는 것도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한 서울지역 당원은 “4대강 공사 반대 여론이 높지만 이명박을 막는 힘이 부족한 것은 반대 여론이 표출될 공간이 없어서인 듯하다”고 대중 시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저녁 문화제 연단에서 4대강 모두에서 공사가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영산강과 금강을 관할하는 민주당의 전남도지사(박준영)와 충남도지사(안희정) 등이 4대강 공사를 찬성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에게 분명한 태도를 취할 것을 좀더 공개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민주당의 모호함을 볼 때 진보진영은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에서도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