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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3대 권력 세습:
민주노동당의 혼란스럽고 군색한 침묵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을 두고 〈경향신문〉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간 논쟁을 비롯해 진보진영 내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함께 운영위원이자 계간 《마르크스21》 편집자인 김하영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 쟁점을 살펴본다. 김하영 운영위원은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책벌레)의 저자이기도 하다.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이 진보진영 내에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정희 대표와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북한 3대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침묵의 근거는 혼동으로 가득하고 군색하다.

첫째, 이정희 대표와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이 우파와 그 논리에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큰 착각이다. 오히려 진보진영의 다수가 이런 문제에 침묵해 왔기 때문에 우파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자신의 전유물인 양 행세하며 기세등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 다 찬성투표하자!” 북한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은 국가 운영 근처에도 갈 수가 없다.

진보진영이 북한 3대 세습을 선명하게 비판해야, 유명환 사건으로나 삼성 이재용 사례로나 북한 세습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되는 우파의 위선을 날카롭게 들춰낼 수 있고, 우파가 사회주의를 소름끼치는 독재와 같은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계속 진보진영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것을 좌절시킬 수 있다.

북한을 비판하면 우파에게 득이 될 뿐이라거나 심지어 국정원 또는 CIA 첩자 취급하는 정통 자주파의 논법은 남한 정권과 체제를 비판하려면 ‘북한 가서 살라’고 말하는 우파의 논법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다.

둘째, 진보진영의 북한 세습 비판을 제국주의적 개입 정책과 뒤섞는 것도 심각한 혼동이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는 북한 3대 세습 비판이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라며, 그것이 “19세기와 20세기 유럽 열강의 아시아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빌었다.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패권주의 사고 발상과 하등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체제를 비판하더라도 얼마든지 미국의 대북 제재와 군사적 위협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다함께와 〈레프트21〉이 지금까지 한결같이 취해온 입장이다.

만약 미국이 3대 세습을 들먹이며 북한을 압박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민주주의를 염려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제국주의적 개입의 핑계일 뿐이다. 미국은 중동 전략을 위해 사우디아바리아의 세습 왕가와 돈독한 협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진보진영은 제국주의적 개입을 일관되게 반대하면서 북한의 민주주의가 제국주의의 개입이 아니라 북한 민중 자신에 의해서만 쟁취될 수 있다고 주장해야지, 대북 압박을 반대하기 위해 비민주적인 북한 정권마저 두둔하는 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셋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 세습(뿐 아니라 북한 문제 일체)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잣대로 삼아 내정 불간섭, 체제 인정과 존중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북한 세습 비판이 급작스럽게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평화를 해칠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주류 정치 내 진보파의 영향력이 크지도 않은데 말이다.

게다가 남북관계는 남북 당국 상호 관계의 누적적 결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더 복잡한 동북아 정세와 관련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결정되곤 했다. 순진한 관점에서만 보면, 이명박 정부와 북한 당국이 서로 거칠게 비난하다가 몇 달 전 느닷없이 비밀접촉설이 흘러나온 것에 당황할 수 있다.

사실, 북한 당국은 상호 비방을 일삼아 온 남한 독재정권들과도 숱하게 비밀외교를 했다. 임수경 씨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에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입장할 때 비밀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 중이던 당시 청와대 정책보좌관 박철언이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능라도 경기장 주석단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남북관계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물론 남북한이 대립과 충돌이 아니라 관계개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특히 통일을 중시하는 민주노동당은 통일 한반도의 사회상이 어떤 것인지, 진보의 비전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불간섭과 상호 체제 존중이라는 미명 아래 북의 세습을 은근히 두둔한다면, 남북 민중 모두에게서 결코 매력적인 대안으로 지지받지 못하고 진보에 대한 환멸감만 안겨줄 것이다. 남한의 진보진영은 당국간 외교관계가 아니라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처지와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북한 피억압 대중과의 연대를 우선에 놓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정통 자주파는 북한은 남한과 달리 당 관료와 피억압 대중으로 나눌 수 없는 사회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억압 기관들의 존재가 사회적 분단을 방증한다. 억누를 다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그토록 육중한 억압 기관들과 끔찍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넷째,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평가는 물론이고 후계 구도 자체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새세상연구소 긴급토론회에서 박경순 부소장은 김정은이 김정일의 아들인지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 김정일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북한 당국이 이를 세계 만방에 알리면서 금세 근거 없음이 드러났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양형섭 부위원장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대를 잇는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후계 구도를 공식화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북한 3대 권력 세습 비판을 완화하기 위해 애처롭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알 수 없다’는 대응법은 문제를 회피하거나 북한 관료 비판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자주파가 단골 메뉴로 애용해 온 방법이다. 식량난, 북한 인권, 탈북자 문제 등을 놓고도 늘 그랬다.

그러다가 빼도 박도 못할 사실이 알려지면, 이번에는 북한 문제를 ‘우리의 가치관과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요컨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당화

그런데 북한 문제는 북한식 가치관과 잣대로 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 당국의 정당화 논리를 수용하는 것일 뿐이다. 박경순 부소장은 “단순히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후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업적 때문에 북한의 인민과 당원들이 아래로부터 추대”하는 것이라는 북한의 후계자론을 소개하며, 그것이 “현실적으로 검증받은 이론”이라고 옹호한다.

그러나 ‘혈통 본위’가 아니라 ‘인물 본위’라든가, 합법적 절차와 방식을 통한 인민들의 선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북한 당국의 뻔뻔스런 세습 정당화 논리일 뿐이다. 30년 동안 최고지도기관 선거가 없었던 북한에서 “합법적 절차와 방식을 통한 인민들의 선출 과정” 운운하는 것은 완전 코미디다. 이번 당 대표자회의 선출도 김정일과 그 핵심 측근들이 내정한 것을 사후 승인한 것에 불과했다.

후계자론이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의 동의를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는 박 부소장의 주장도 황당하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아들인지도 알 수 없다더니 어떻게 북한 주민들의 의사는 알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후계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췄는데 수령과 혈연관계라고 해서 주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북한 당국의 주장도, 민주노동당 지도자가 그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도 낯뜨겁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스위스 유학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바닥에서 경력을 쌓지 않고도 일약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될 수 있었겠는가?

다섯째, 이정희 대표는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든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비장하게 침묵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비판을, 지배계급에게 “사상이 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아 국가보안법 처벌을 피하려는 비겁한 행위에 은근히 빗댔다. 불쾌한 일반화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을 비판함으로써 지배계급에게 합리적 진보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일부 진보세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민주노동당 자주파의 상당수도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된 당원을 제명함으로써 이른바 “공당”으로 거듭나고자 타협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남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북한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남한 사회의 변혁 전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진보진영 안에는 다함께와 〈레프트21〉처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북한을 비판하는 단체도 있다. 다함께와 〈레프트21〉은 북한을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라고 보며 남북한 모두에서 근본적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배계급은 이런 종류의 북한 비판을 환영하지도, 사상이 불온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실제로 이런 입장이었던 국제사회주의자들(IS) 그룹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2백 명이 넘는 회원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다.

기회주의적 ‘진보’파가 아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북한 비판은 지배계급에게 합리적 진보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 변혁 대안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3대째 권력을 세습하는 북한이 사회주의라면,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에 반감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환멸감을 느낄 것이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는 북한이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이런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진정한 사회 변혁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