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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사망:
남북한 모두에서 민중을 억압한 자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이 지난 10일 사망했다.

황장엽이 사망하자 보수 우익들은 일제히 애도하고 있다. 〈중앙일보〉 등은 황장엽을 ‘북한의 민주화와 민족의 평화통일을 염원했던 망명객’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명박도 그의 사망이 “우리 역사의 아픔”이라며 그에게 훈장까지 줬다.

황장엽 장례식에서 조문하는 한나라당 지도부

그러나 황장엽은 한반도 민중의 애도를 받을 자격이 없다.

북한에 있을 때 황장엽은 북한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주체사상을 통해 북한 관료 독재를 옹호한 나팔수였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관료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하는 체제를 합리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황장엽은 1950년대 ‘천리마 운동’, ‘청산리 방법’ 등 노동자들의 착취를 강화하려는 북한 관료들의 노력을 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적인 혁명적 사업”이라며 칭송했다.

이처럼 충실하게 관료지배체제를 정당화한 덕분에 그는 40세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됐고, 이후에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노동당 비서 자리에 오르는 등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우익은 비록 황장엽이 주체사상을 체계화했으나, 그의 의도와 다르게 김일성과 김정일 등이 이를 독재와 세습 합리화의 도구로 악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한 권력에서 승승장구하던 1970~80년대에 그는 김일성 수령론 이론화에 앞장섰다. 그리고 “수령이 개혁한 혁명 위업은 한 세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계승”해야 한다며 권력 세습을 정당화한 자가 바로 황장엽이다.

변신

북한에서 40년 넘게 북한 인민을 착취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지배계급의 일원이었던 황장엽이 1997년 남한으로 망명해 남한 보수 우익의 이데올로그로 변신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황장엽이 망명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1996~97년 민주노총의 파업이 터진 직후였다. 당시에 그는 “시위와 파업 같은 일체 폭력적인 방법을 엄금하여야 한다. 폭력을 고집하는 자는 총살까지 하여야 한다”며 남한 노동운동을 혹독히 탄압하라고 촉구했다.

그 후에도 그는 남한에서 민주적 권리 탄압을 지지했다. 2004년에 그는 남한 우익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선언에 동참했으며, 송두율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에도 일조한 바 있다.

최근에도 그는 천안함 사태를 두고 “누워서도 김정일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아는데 남한에는 참 한심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이명박 정권의 ‘북풍’을 두둔해 주고, 북한 인민들을 고통스럽게 할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를 촉구했다.

북한에서도 지배 관료로서 ‘인민의 적’이었으며, 남한에 망명한 후에는 남한 ‘인민의 적’이었던 이 자의 죽음을 애도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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