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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논쟁:
어떤 복지를 누구의 돈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우파의 참패 이후 복지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시장직을 걸고 눈물을 흘리며 협박”(〈파이낸셜타임스〉)했는데도 사람들이 외면했을 정도로 복지 확대에 대한 바람이 압도적이라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복지 확대가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물론 대자본가들의 정당인 한나라당이 이 정도 충격으로 ‘보편적 복지’ 같은 개혁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하진 쉽지 않을 것이다.

8월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을 축하하는 시민들 ‘부자 증세’로 노동자 민중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부자 감세 철회나 세금을 늘리려는 시도는 지지층의 반발과 분열로 이어질 것이고, 감세 정책을 유지한 채 복지를 늘렸다가는 재정 적자가 커져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유럽 나라들의 추락은 이런 불안을 한층 증폭시켰다.

그래서 홍준표는 ‘보편적 복지’가 “사회적 약탈 행위”라며 보수층의 결집을 호소했고 이명박은 보란듯이 제주 영리병원 찬성론자인 경제관료 출신 임채민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필요한 곳에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하려면 부자는 제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별적 복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를 헷갈리게 하려는 거짓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10만 명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는데 당연히 이들은 대부분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복지가 늘지도 않았다.

사실 이명박은 선별적이든 보편적이든 복지를 늘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경제 위기 속에서 자본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자 감세는 할지언정 복지 확대를 위한 부자 증세를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선별적 복지 제도 하에서 이뤄지는 선별 작업들 자체가 전체 복지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설계된 것들인데다 그 자체가 낭비적이다. 반면 보편적 복지 하에서는 복지가 확대되면서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더 손쉽게 복지를 제공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보편적 복지는 더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정부와 기업들에게 복지 지출을 늘리라고 요구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보편적 복지에 한사코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한편, 8월 29일에 민주당이 발표한 ‘민주당의 복지국가 구상’은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물론 감세 철회 등 조세 개혁,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 확대, 국고 지원 확대, 낭비적 지출 축소 등 그럴듯한 방안도 포함됐다.

문제는 어떻게 자본가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그런 정책을 시행할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 증세 같은 방안을 한사코 피하려다보니 필요한 재정 규모 자체를 지나치게 작게 잡기도 한다. 그래서 진보신당은 “이는 복지 확대를 위해서 돈을 낼 수 없다는 일부 보수층과 부유층의 논리에 굴복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

무엇보다 민주당의 재정 계획은 한국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계산된 것들이다.

“재정 건정성이 훼손되면 복지지출이 오히려 국가발전의 독이 [된다]”는 민주당이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이 한 말을 실천으로 옮기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런 민주당과 손을 잡고 보편적 복지를 이루겠다는 진보진영 내 일부 지도자들의 생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최근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참여당과의 통합이나 민주당과의 선거동맹을 추진하면서 부유세 같은 진보정당의 급진적 대안을 일부 후퇴시키려 했다.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강령을 후퇴시킨 것도 앞으로 복지 대안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데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 하는 이전 강령은 경제 위기 시기에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조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 진보 정당의 강령에는 이런 내용이 다시 포함돼야 한다.

최근 공공노조 산하의 사회공공연구소가 펴낸 보고서에서 오건호 실장이 다시 보편적 증세, 건강보험료 인상 등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첫째, 오건호 실장은 당장 필요한 복지 재원 65조 원 중에 35조 원은 평범한 사람들이 세금을 내는 소위 ‘참여재정 방식’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일년 사이에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4퍼센트 가까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런 방안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이다.

둘째, 앞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된 것인데 이 보고서에도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가 아예 빠져 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오건호 실장은 서구 복지국가와 달리 한국에서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새로운 복지 주체 형성’은커녕 실제로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운동의 성장 가능성을 가로막을 뿐이다. 진보정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자본가들의 저항을 물리치려면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투쟁이 필요한데 조직 노동자들만이 그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은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일관된 복지 대안과 이를 실현시킬 강력한 운동을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