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이목이 그리스에 집중돼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해도 그것이 진실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자, 혁명적 맑스주의자 할 것 없이 다들 시시각각 바뀌는 그리스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리스 대중이 자국 정부와 유럽연합,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간에 체결된 양해각서에 따라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긴축 프로그램을 거부한다는 사실이 5월 6일 선거 결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스 대중의 거부 의사는 주로 시리자(급진좌파연합)를 통해 표출됐다. 시리자의 당수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긴축 프로그램을 “야만적”이라며 비난했고 유럽연합·IMF 양해각서에 찬성하는 정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리스는 6월 17일에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됐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리자는 주요 우파 정당인 신민주당과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번 승부에는 엄청난 판돈이 걸려 있다. 만약 시리자가 양해각서에 반대하는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된다면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은행에 자금 지원을 중단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리스가 전면적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급진좌파 진영에는 시리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스탈린주의 조직 가운데 가장 큰 축에 드는 그리스 공산당(KKE)은 조직 노동계급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스 공산당은 또한 대단히 종파적이다. 공산당 총서기인 알레카 파파리가는 지난 선거 이후 시리자와의 회동을 거부하는 등 종파적 행보로 지지율 하락을 자초하고 있다.

안타르시아

그 밖에 안타르시아(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도 있다. 안타르시아는 마오주의 또는 트로츠키주의 배경을 지닌 극좌파 조직들의 연합체인데, 그 안에서는 공산당에서 분열해 나온 신좌파경향(NAR)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자매조직인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비중이 가장 크다.

안타르시아는 그리스의 디폴트와 은행 국유화, 노동시간 단축, 유로존 탈퇴를 요구하는 차별화된 강령을 내세운다. 이는 그리스 공산주의 운동 진영 내에서 유럽연합에 친화적인 편인 시나스피스모스가 주도하는 시리자와는 극명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안타르시아는 지난 총선에서 1.2퍼센트를 득표했다. 이전보다는 올랐지만 의회에 진출하기에는 부족한 득표율이다. 안타르시아는 6월 17일 선거에도 나온다. 그러나 안타르시아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그리스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불출마론자(그 가운데는 안타르시아의 유로존 탈퇴 요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들은 일단 시리자가 집권하면 더 좌경화해서 유럽연합에 맞서 싸울 것이라 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믿음을 걸어야 할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치프라스는 지난 5월 24일에 방영된 뉴스 인터뷰에서 시리자가 집권하면 독일과 그 동맹 세력들도 한 발 물러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의 메시지는 이와 사뭇 다르다. 그는 최근 〈가디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제 그리스가 “대가를 치를 때”라고 냉혹하게 말했다.

이 논의들은 대부분 선거적 관점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2008년 12월 이래 그리스는 유럽에서 한 세대만에 가장 치열한 사회적 투쟁이 불타오른 곳이다. 긴축 정책은 총파업을 17회 불러왔고 그 밖에 수많은 전국적·지역적 수준의 파업과 점거를 촉발했다.

그리스를 좌경화시킨 것은 바로 이런 투쟁들이다. 시리자는 선거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기는 했지만 긴축 반대 운동을 이끌지는 않았다. 노동조합들은 전통적으로 그리스 사회당(PASOK)의 통제 하에 있었는데, 이제 사회당의 통제력은 와해됐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공산당과 안타르시아 활동가들이 훨씬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나는 안타르시아가 많은 표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타르시아가 선거에 나온다면 진정한 투쟁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이 ‘진정한 투쟁’에는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에 맞선 대대적 공세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안타르시아는 또한 시리자를 지지하는 사람들과도 협력하고 대화할 의지가 있으며, 또 그렇게 해 왔음을 분명히 밝혔다.

안타르시아의 목소리가 클수록 시리자도 그리스에 영원한 긴축을 강요하려는 세력들에 맞서 굳건히 싸워야 한다는 압력을 더욱 강하게 받을 것이다.

결정적인 전투는 선거가 끝나고 벌어질 텐데, 여기서 안타르시아는 실로 중요한 구실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