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정당들과 진보·좌파 정당들의 노동공약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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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총선 보건의료 정책 평가: 진정성 없는 더민주당, 좀 더 분발해야 할 정의당”을 읽으시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현장에 적용시키기 위한 공격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동공약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임금 삭감과 쉬운 해고를 위한 2대 지침 폐기, 노동개악 저지,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권 보장 등 총선 요구안을 발표했다. 민주노총 가맹·산하 노조들은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새누리당 심판과 진보·좌파 정당에 계급 투표를 할 것을 적극 호소하고 있다.
누구나 예상하듯,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도 기업주의 편에 서서 노동계의 요구를 모두 반대했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노동개악을 하는 것이라고 포장해 왔지만, 노동시간 단축,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같은 진정으로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정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최근에는 총선 표를 의식해 최저임금을 9천 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공약을 발표했다가 그조차도 며칠 만에 거둬들였다.
이처럼 가증스러운 새누리당에 비하면 더민주당은 노동계의 요구를 약간 수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도 “양보·희생”하라고 주문하는 물타기의 문제점을 또다시 드러냈다.
더민주당은 그동안에도 ‘노동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데다,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때문에 그들은 정부가 국회를 우회해 2대 지침을 발표한 것은 비판하면서도, 임금피크제·임금체계 개악 등 노동개악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통상임금·노동시간 관련 법 개악에 대해서도 여당과 “큰 틀의 합의”를 한 상태다. 더민주당 이목희 정책위 의장은 파견법 개정도 논의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더민주당의 노동공약은 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권과 파업권을 보장하는 것에도 상당히 부족하다. 특히, 재벌·기업주들이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만들자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반대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재벌 증세, 경영권 제한, 재벌 대기업의 산별교섭과 하청 교섭 참여 등에 “부정적이거나 대단히 소극적”(민주노총)인 견해를 밝힌 것이다. 이는 더민주당의 최근 우클릭을 반영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이 정당이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수호에 헌신하는 당이라는 계급적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더민주당보다 오른쪽에 있는 국민의당은 노동공약 자체가 매우 부실하고, 2대 지침 폐기조차 분명하게 표명하지 않는다.
노동개악 저지
반면 정의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녹색당과 같은 진보·좌파 정당들은 기본적으로 민주노총이 제시한 총선요구안을 지지하며 자본주의 정당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 줬다.
정의당은 “박근혜 정부와 반대로!”라는 선명한 구호를 내걸고 2대 지침 폐기를 주장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월급 3백만 원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최저임금 1만 원, 공기업·대기업 임원 연봉 상한제,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비정규직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등의 공약을 내놨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 개선, ‘5시 칼퇴근 법’, 연간 1천8백 시간으로의 노동시간 상한제 등 노동시간 단축도 제시했다.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공약들도 좋은 요구들이다. 가사노동자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공무원·교원의 노동기본권과 정치적 자유,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폐지, 단체협약의 효력 확장, 공격적 직장폐쇄와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등.
다른 진보·좌파 정당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공약을 제시했다. 노동당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을 함께 내걸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노동당은 ‘35시간 노동시간제’를 제안하고 3개월 평균 주 35시간 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으로 보는 꽤 파격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공유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다.
여기서는 특히 노동시간을 단축해도 임금이 줄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주장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노동운동 내에도 이 점이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금이 줄면 줄어든 임금을 벌충하려고 다시 연장 노동을 하게 되고, 그리 되면 일자리 창출 효과도 줄어들 수 있다.
민중연합당은 최저임금 1만 원 실현과 함께 최저임금 체불에 대한 국가 책임제를 주장하는 점이 눈에 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특별법 도입과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2의 전태일법’ 제정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연합당이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과 이주민 방어를 위한 공약을 전혀 내놓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쉽다.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주민 방어는 진보·좌파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인데 말이다.
반면, 녹색당은 진보·좌파 정당 중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관련 공약이 가장 구체적이고 포괄적이다. 미등록 합법화, 난민 지원 강화 등 이주민들의 중요한 요구들과 ‘이주민에게 지방선거 투표권 부여’를 공약으로 담았다.
일부 우려스러운 공약들
한편, 정부와 사용자들의 임금 공격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진보·좌파 정당들이 임금체계 개악 저지 등을 중요하게 내세우지 않은 점은 아쉽다. 이는 주로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의 임금을 적극 방어하고 나서길 꺼리는 입장 때문인 듯하다. 노동당을 제외한 진보·좌파 정당들이 노동시간 단축 공약에 임금 삭감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진보·좌파 정당들의 일부 노동공약에는 우려스런 내용도 있다. 예컨대, 정의당이 사용자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계급 격차뿐 아니라 노동자들 내부의 소득 격차 문제를 중요하게 보며, 그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가 그렇다.
이 제도는 대기업의 이윤 일부를 중소기업과 공유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기업 간 이윤 배분을 조정한다 해도 자동으로 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효과를 낼 위험이 있다.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이 하청기업에 나눠 줄 ‘초과 이익’을 줄인다면서 말이다.
노동운동이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 축소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몫을 늘리려 노력하는 것이다. 현 시기 임금·소득 정책의 핵심 문제점은 ‘임금 없는 성장’, 계급간 소득 격차다. 투쟁을 통해 임금을 상향평준화 하려고 애쓸 때, 하청·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면서도 ‘정규직 양보론’으로 빗나가지 않을 수 있다.
정의당이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지난해에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에 들러리 구실을 한 노사정위를 비판하면서도, “비정규직과 청년들, 시민사회계까지 두루 포함한” 국회 내 사회적 논의기구를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이 제안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실질화하는 데 힘을 싣기보다 국회 내 협상, 야당 의원들과의 공조를 중시하고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했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대에 “사회적 논의”로는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을 막아 내기가 어렵다. 오히려 정작 투쟁이 필요할 때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강화해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심지를 눅눅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1980~90년대 내내 유럽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됐고 사회적 논의기구가 가장 제도화돼 있는 독일에서 이런 약점을 잘 보여 줬다.
이 같은 우려점은 있지만, 진보·좌파 정당들은 대체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개선하는 요구들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들이 선전하길 바란다. 그리고 총선 후에는 공약대로 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노동자 투쟁을 방어하며 함께 투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