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보건의료 정책 평가:
진정성 없는 더민주당, 좀 더 분발해야 할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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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좌파는 정의당에 투표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읽으시오.
새누리당의 보건의료 공약을 평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하다. 박근혜 정부가 잘 보여 줬듯이, 그런 약속한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거나 지키지도 않고 지켰다고 우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굳이 의미 있는 공약을 찾아내라면 대학병원까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한 정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법 제정 등이 완료돼 기정사실화된 것을 공약에 포함시킨 것일 뿐이다. 그나마 지난해 메르스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논의도 하지 않던 제도를 부랴부랴 만든 것이라 여기저기 구멍이 많다.(이에 대해서는 〈노동자 연대〉 169호 온라인 기사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실시 - 병원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함께 이뤄져야’를 보시오.)
오히려 새누리당은 선거 직후에라도 19대 국회를 다시 열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강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뿐 아니라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지렛대로 쓰일 악법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부터 이 법 통과를 그토록 강조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더민주당은 “의료영리화”를 막겠다면서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총선 공약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서 보건의료 분야 등 공공성이 강조되는 분야는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만 밝혔다. 물론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보건의료를 제외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으므로 합의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 등으로(심지어 법 취지와 상반되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해 온 박근혜 정부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여야 합의로 일단 통과시킨 뒤 꼼수를 쓰려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뿐 아니라 교육, 운수 등 공공서비스에 포괄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더민주당의 조건부 통과 입장은 뻔히 알면서 뒤통수 맞는 시늉하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들에게 의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민주당 2018년까지 “모든 병원에서 간병서비스 제공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 규모나 인력 충원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종대를 보건 특보로 임명한 것에서 보듯 더민주당의 의료 공공성 확대 공약은 일관성이 없다. 김종대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인수위에 참가해 각종 의료 민영화 정책을 입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보건의료의 민낯
한편, 진보·좌파정당인 정의당은 “메르스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민낯”을 뜯어고치겠다며 크게 세 가지 공약을 제시했다.
첫째, 의료 공공성 확대다. 이는 당연하고도 절박한 요구다. 민간병원 위주의 의료 체계 하에서는 돈벌이를 위한 과잉진료가 판을 치는 한편,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건강보험 제도가 있다지만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비보험(비급여) 진료를 근본에서 막을 길이 없다.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병원비에 주저앉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따라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영리병원 허용 등 모든 의료영리화 정책을 중단”하고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정의당의 공약은 지지할 만하다. 보건의료 인력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리고 “공공보건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도록 한 정책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정의당은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원청, 발주처가 재해 및 재난의 실질적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기업살인법”도 추진하려 한다.
△민간 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를 공공병원 중심 체계로 바꿔야 한다. ⓒ사진 출처 정의당
다만, ”공공의료 인프라 구축”이 단지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으로 제한된 것은 아쉽다. 진보적 보건의료 운동의 오래된 요구는 공공의료기관을 대폭 확충해 민간병원 중심의 체계를 장차 공적 의료체계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정의당의 이번 총선 공약은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 강화’에 머무는 듯하다. 옛 민주노동당이 ‘도시형 보건지소 확충’ 등 급진적 개혁 과제를 제시했던 것에 견줘 후퇴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공공병상 비율을 현재의 11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늘리겠다는 노동당의 공약이 더 진보적이다.
둘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건강불평등 해소’다. 1인당 진료비를 연간 1백만 원으로 제한하고(나머지는 정부가 지원), 15세 이하 아동 입원비를 1백 퍼센트 보장하겠다고 한다. 이 점에서도 정의당의 공약이 더민주당의 공약보다 낫다. 하지만 수많은 진보 염원 대중이 지지해 온 ‘무상의료’에 미치지 못하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셋째 공약은 ‘공정한 보험료 체계’다. 핵심은 지역 가입자들의 과도한 부담을 덜고, 고소득자들의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기업주가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도록 한 직장 가입자와 달리 지역 가입자들은 보험료를 온전히 자기가 내도록 돼 있다. 이는 경제가 호황이던 시절 기업주들이 더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려고 받아들인 조처였다. 게다가 지역 가입자들의 경우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다보니(이는 정부의 의도적 책임 방기 탓이다)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 그래서 일부 노동자들의 경우, 퇴직 후 소득이 전혀 없는데도 집과 차가 있다는 이유로 고액의 보험료를 내기도 한다. 반면, 금융소득 등에는 보험료가 거의 부과되지 않고, 의사·변호사 등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이명박처럼 직장 가입자로 위장해 소액의 보험료만 내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보험료 체계는 크게 개선될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이 일관되게 노동자 서민에게 이익이 되려면 단지 부과 대상을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현행 건강보험 제도의 상당 부분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정의당이 그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은 아쉽다.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대해
정의당의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먼저 보험료 부과 대상을 ‘소득’으로만 일원화하려다 보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재산은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아파트 한 채와 기업주·부자들의 재산(수백 채의 고가 주택, 수만 평의 땅 등)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지만 이를 위해 후자에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은 문제다. 이 점에서 보면 더민주당이 1가구 1주택의 경우 보험료 부과를 면제하겠다고 한 방식이 좀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지방 소도시의 작은 아파트 한 채와 서울 한강변의 대궐 같은 빌라 사이의 차이를 반영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정의당이 추진하는 부과체계 개편에 따르면, 소득 상위 16.7퍼센트는 건강보험료가 6만 8천 원가량 오른다. 그런데 이 중에는 진짜 부자들도 있지만 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도 포함될 듯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4사분기를 기준으로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천20만 원인데, 최상위로 갈수록 소득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중 일부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또, 상위 10퍼센트 이하 20퍼센트 이상에 속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백만 원가량 되는데 여기에는 어지간한 맞벌이 가구도 상당수 포함될 것이다. 이들에게 “고소득자”, “무임승차”라는 딱지를 붙여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것은 그다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보험료 상한제(소득 상한제) 덕분에 연봉이 수십억 원씩 하는 대기업 CEO들은 특혜를 누리고 있고, 기업주들의 보험료 부담은 여전히 OECD 최하위 수준인데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정부의 지원을 늘리고 소득 상한제를 폐지하는 등 기업주·부자 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