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사태가 해결되려면 최경희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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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본관 점거 농성에 이어 8월 3일에는 이화여대 졸업생 수천 명이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해 학교 구성원의 신뢰를 잃은 총장에게 이화를 맡길 수 없다"고 발표했다. 나도 그 일부였다. 다음 날 본관 농성 중인 학생들도 총장의 사퇴가 "점거 해지 조건"이라고 발표했다.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최경희 총장 사퇴 요구는 정당하다. 재학생들이 이번 본관 점거 시위에 돌입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추진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배경이었다.
최경희 총장은 2014년 8월 '혁신 이화'의 기치를 내걸고 취임했다. 그가 말한 ‘혁신’은 중앙도서관 서비스 개악, 파빌리온(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고급 카페와 기념품숍) 건설, 학과 구조조정을 통한 신산업융합대학 신설, 성적 장학금 폐지, ROTC 도입 등이었다. 최 총장은 이 정책들을 졸속적이고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학과 구조조정은 대학평의원회가 열리기 불과 16시간 전에야 학생 대표에게 전달됐고, 바닥 보수 공사를 하는 줄 알았던 학생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정문에 고급 커피숍이 들어선 걸 보게 됐다.
최 총장은 박근혜와 황우여·이준식 교육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적극적 협조자이기도 했다. 최 총장 취임 이후 이화여대는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 지원 사업을 거의 '싹쓸이'했다. 대학을 기업의 이윤 필요에 맞게 개편하는 프라임·코어 사업, '선 취업, 후 진학'의 한 방안인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 사업도 그 일부였다. 이미 학생들은 지난 3월 프라임 사업에 반대해 본관에서 36시간 동안 농성을 벌이며 항의한 바 있는데, 완전히 묵살당했다. 대부분의 교수들도 이런 학내 중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
최 총장이 이처럼 학내 반발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며 무리하게 박근혜 정부의 '교육개혁'의 적극적 협조자로 활동하는 것은 단지 정부의 재정 지원을 위해서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 주려는 것인 듯하다. 지난해 박근혜의 이화여대 방문 때도 최 총장은 수백 명의 경찰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학생들이 아니라 박근혜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본관 점거에 대한 최 총장의 대처가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본관 점거 농성 3일째 총장은 21개 중대 1천6백 명의 경찰 병력 투입을 요청했다. 이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 동문, 학부모, 사회 여론의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후에도 기자회견에서 최 총장은 반성은커녕 학생들을 상대로 징계를 협박하고 호통을 쳤다. 8월 3일 최 총장이 학생들 앞에서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전면 백지화하고 학생들을 징계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지 하루 만에 본관에 갇혀 있었던 교수들이 경찰 조사에서 학생들의 처벌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학생들이 최 총장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최 총장은 지금 당장은 학생들의 저항과 여론에 밀려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취소했을지라도 다시금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할 게 뻔하다. 본관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 압도 다수가 최경희 사퇴를 지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최 총장이 퇴임하고 나면, 최 총장 못지 않게 부패하고 정권에 아첨하는 자들이 득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고, 일리도 있다.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반대자 중에는 뉴라이트 교수들도 있다.
대표 사례가 이배용 전 총장이라는 관측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 이배용 당시 총장(2006년~2010년)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7년과 2008년 5퍼센트가 넘는 등록금 인상을 밀어붙였다. 2008년에는 당시 대통령 이명박의 처이자 이화여대 졸업자 김윤옥에게 "내조"를 잘했다는 이유로 "자랑스러운 이화인" 상을 수여했다. 이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학내에서 경찰과 맞닥뜨려야 했다.(나를 포함한 이화여대 '운동권' 학생들도 이 시위에 함께했다.) 이배용 당시 총장은 이후에 박근혜의 중앙선거대책위 의장을 맡았고,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등 일관되게 우파적 행보를 보여 왔다.
학생들은 사실상 최경희와 다를 바 없는 이런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최경희 사퇴가 이배용 같은 자를 불러들이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이배용을 비롯한 우익 총장후보 반대도 똑같이 분명하게 표방해야 한다. 허울뿐인 평의원회가 아니라 훨씬 민주적인 논의 기구가 필요하다. 본관 농성 중인 학생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저희는 의사 결정 절차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합법적인 의사 결정 절차에 학생 대표의 목소리가 일정 부분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 교수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결정할 수 있는 의사기구가 생기거나 기존의 의사 기구를 개편하기를 원합니다"(4일 농성 학생들의 발표)
학생들의 이런 학내 민주주의 요구를 쟁취하는 첫 단추가 바로 최 총장의 사퇴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최 총장을 사퇴시킨다면, 그것은 단지 총장을 다른 인물로 교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학생들이 비민주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거짓말쟁이를 총장으로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이고, 대학을 지배하는 자들이 더는 학생들의 의견을 지금처럼 간단히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임을 뜻한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학내 민주적 의사 결정 기구들을 만들 유일한 방법이다.
총장 사퇴 목표를 이루려면 지금처럼 단호하게 점거를 유지하는 한편, 연대를 확산해 이 투쟁을 더 정치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