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 논평 : 이화여대 점거 투쟁 잠정 승리:
이화여대생들, 점거가 가장 효과적인 투쟁 수단임을 입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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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학생들이 점거농성에 돌입한 지 6일 만에 학교 당국에 대한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정부(교육부) 측의 확인이 남았지만 말이다.
8월 3일 오전 이화여대 총장 최경희는 긴급 교무회의를 열어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 대학’) 추진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대학 본관을 찾아 농성 중인 학생들에게 경찰 투입 등에 대해 사과하고 점거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일절 묻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승리는 단호하고 과감하게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학교 측의 협박에 물러서지 않고 싸운 이화여대 학생들의 것이다.
최 총장은 교수 ‘구출’을 이유로 경찰 병력 1천6백 명을 투입하게 하는가 하면 불과 이틀 전인 8월 1일까지도 기자회견을 열어 ‘외부세력’ 운운하며 점거 학생들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다. 경찰청장은 학교 측의 결정과 관계없이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이런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학생들은 단단히 점거를 유지했다. 점거의 규모는 오히려 어제 8백여 명까지 늘어났다.
최경희 이대 총장은 그간 학생들과는 불통으로 일관하면서 박근혜 정부와는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이번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도 박근혜 정부의 ‘교육개혁’ 가운데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 정책과 연결된 것이다.
정부는 이런 정책으로 고졸 출신 노동자들을 더 빨리 노동시장에 투입하고, 대학 당국들은 정원 외 등록금을 받아 적립금을 더 늘리려 한다. 이대 당국은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계획에 호응해, 프라임·코어 사업으로 대학을 대기업의 이윤 동기에 맞춰 개편하는 데에 적극 앞장섰다. 이미 높은 등록금에도 낮은 장학금, 교원 부족, 강의실 부족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은 이번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이 이런 시장주의적 대학 개편의 일환이고, 자신들의 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느꼈다.
게다가 이대 당국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미래라이프’ 대학 강좌를 다음 학기부터 신설하겠다며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에게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점거 참가자들에게도 권위주의적 태도로 일관해 학생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화여대 당국은 2014년 최경희 총장 취임 이래 박근혜 정부의 주요 대학 관련 정책에 모두 지원해 싹쓸이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학교 당국은 권위주의적 태도로 일관하며 학생들의 불만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올해 봄 이대 당국은 ‘프라임 코어’ 사업 신청을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심지어는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거짓 약속을 하며 뒤통수를 치기도 했다. 점거에 나선 학생들이 평의원 교수들에게 약속을 요구하며 이틀 가까이 나가지 못하도록 했던 이유다.
학생들의 점거 투쟁은 이처럼 일방으로 학위 장사를 결정·강행하려는 대학 당국에 대한 정당한 항의였다.
노동계급 여성도 고려하며
학교 당국과 보수 언론들은 이것이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을 직장 여성들의 대학 진입을 막으려는 이기주의로 몰고 싶어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고등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 노동계급 여성들의 정당한 심정을 이용해 학생들과 이간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굳이 단과대학을 따로 설립할 필요는 없다. 미래라이프 대학처럼 별도의 단과대를 설립하는 것은 오히려 같은 대학에 다니고도 차별을 유지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오히려 강의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선택해 신청하고 페이퍼(레포트)를 제출하는 등 양질의 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생교육 신청자들도 오히려 이를 바랄 것이다. 등록금도 학점 당 납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교원 확대 등 교육 조건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하는데, 이는 교육의 질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 운동 등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물론 교수와 비정규 교원들도 오랫동안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여성 노동자들이 이화여대에서 교육받을 기회 뿐 아니라 더 나은 일자리와 취업 조건을 위해 학위 자격증을 얻고자 하는 바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의 좌파적 또는 진보적 학생들은 이런 여성 직장인과 경력단절 여성에게 손을 내밀어, 대학 측이 대학 문턱을 낮추고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대학 입시를 없애고 누구나 고등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학생 운동의 오래된 개혁 요구였다. 그리 되면 대학 서열화도 약화될 것이고 학벌주의도 크게 약화될 수 있다. 이는 전체 노동자·학생의 삶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요구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
맺으며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학생들의 승리는 점거라는 가장 효과적인 투쟁 수단을 채택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승리의 원인은 아닐지라도 승리에 유리하게 작용한 요인들이 있다.
첫째, 영향력 있는 많은 동문들과 보직교수들도 미래라이프 단과대 신설을 반대했다. 그 조처가 이화여대의 이름값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최경희 총장의 든든한 후원자인 박근혜의 요즘 처지가 우병우와 성주 건으로 매우 곤란하다.
이런 요인들로 최경희는 사면초가였을 것이다. 구조조정 이슈가 권력자들 사이의 갈등을 부르는 건 이번 이대 사건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미래라이프대 신설 계획은 보수적 학생들의 반발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미래라이프대 신설이 신자유주의 대학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는 점에 주로 반발한 진보적 학생들이 그 이슈를 중심으로 쉽게 단결할 수 있었다.
둘째, 이대 점거 진행은 노동자(갑을오토텍) 점거 투쟁과 동시적으로 병행했다. 박근혜 정부로선 하나를 정리하고 다른 하나에 집중해야만 했을 것이다.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주의 정부로서 노동자 착취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져선 안 된다. 특히, 자동차 노동자들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대생들은 자기들의 잠정 승리가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어느 정도 빚졌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날마다 항의하는 수천 성주 군민에게도 비슷하게 빚졌음도 깨달아야 한다.
2016년 8월 3일 노동자연대 운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