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공장 사수투쟁을 지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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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오토텍 투쟁은 올해 노동계 하투에서 단연 핵심으로 떠올랐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1백36년 만에 가장 무더웠다는 이 여름, 노동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와 경찰·용역경비의 침탈 시도에 맞서 굳건하게 공장을 지키고 있다.
애초 갑을오토텍 사측은 파업 노동자들의 공장 출입을 막고 복수노조 설립을 기도하기 위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러나 갑을오토텍지회는 올바르게도 직장폐쇄 전에 조합원을 공장으로 집결시켜 공장 사수를 시작했다.
공장은 완전히 노동자들이 장악했다. 생산은 멈춰 섰고, 출입구는 노조 사수대의 통제하에 놓였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갑을오토텍과 공장 출입구를 함께 사용하는 대유위니아가 생산을 재개했지만, 이 곳 직원들의 출입도, 하루 1백여 대씩 대유위니아에 물품을 실어 나르는 트럭도 갑을오토텍지회의 통제를 받는다.
갑을오토텍은 충남 아산에 위치한 5~6백 명 규모의 중견기업이지만,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공장 사수 투쟁에 나서자 금세 전국적 주목을 끌었다. 많은 노동자들과 단체들이 투쟁을 지원하려고 농성장을 방문하고, 밤새 공장 출입구 앞에서 보초를 서고, 기금을 보내고, 물·쌀·라면 등 식료품을 보냈다. 그래서 한 언론은 이 투쟁이 “노동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썼다.
잠재력
아직 투쟁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이번 투쟁은 여러모로 곱씹어볼 만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갑을오토텍 투쟁은 오늘날 경제 위기 하에서도 노동자들이 얼마나 단호하게 싸울 수 있는지, 또 그럴 만한 힘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어떤 이들은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공격 때문에 노동자들이 파편화되거나 고립돼서 더는 과거와 같은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회의론을 편다. 여기에는 노동계급의 잠재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갑을오토텍 투쟁은 이 같은 회의론에 대한 통쾌한 반박의 사례다.
‘탈산업화’에 대한 온갖 거짓 신화 속에서도 오늘날 세계 어디서든 제조업 노동자들의 힘은 여전히 지배자들에게 위협적이다. 특히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 비중이 상승하고 있는 나라다. 얼마 전에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총 부가가치 대비 제조업 비중이 1970년 17.5퍼센트에서 2014년 30.3퍼센트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부품과 같은 중간재 비중이 1995년 68.5퍼센트에서 2011년 78.8퍼센트로 늘었다.
부품사 노동자들은 산업구조, 생산 조직방식의 변화 속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동안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생산의 유연성을 높여 수익을 더 내려고 부품 재고를 매우 적게 유지하는 ‘적기 생산 방식’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수익성을 내려고 고안된 이 방식은 역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에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9년에 영국의 자동차 부품사인 비스테온 노동자들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포드는 부품 계열사인 비스테온을 분리 매각하고 부품 조달을 외주화했다. 고용을 위협받은 노동자들은 비스테온 공장 세 곳을 점거하고 포드의 완성차 생산에 위협을 가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 왔다. 지난해에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7일간의 전면 파업으로 현대·기아차의 생산에 타격을 줘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이번 공장 사수 투쟁에서도 노동자들은 힘을 보여 줬다. 당장에 현대중공업과 미쓰비시 등 해외 기업들이 갑을오토텍으로부터 부품을 공급 받지 못해 안달이 났다.
갑을오토텍의 전체 생산 물량에서 현대중공업에 납품하는 비중은 1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하루 이틀 바짝 일하면 현대중공업에 일주일 치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물량 공급이 끊겨서, 지금 현대중공업은 조업 단축에 들어갔다. 굴삭기 등 건설장비에 장착되는 에어컨 부품의 80퍼센트를 갑을오토텍으로부터 조달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해외 기업들의 압박 때문에 갑을오토텍 사측은 지금 난처한 처지에 몰렸다.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에 연대가 모아지고 정치화되는 것도 저들에겐 부담이다. 이런 사측을 더 몰아붙이려면, 갑을오토텍의 주요 고객사인 현대·기아차에 타격을 가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갑을오토텍 파업에 호되게 당한 현대차 측은 이번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비해 다른 부품사들로 생산을 이원화해 뒀다.
그럼에도 금속노조의 조직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저들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히 있다. 대체생산을 하고 있는 부품사(한온시스템), 특히 원청인 현대·기아차에서 대체생산을 거부하고 전수검사를 요구하고 연대파업을 벌인다면, 갑을오토텍 투쟁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치 위기
둘째, 갑을오토텍 투쟁은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위기와 분열을 이용해 싸우면 효과적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애초 많은 이들은 정부가 여름 휴가 기간을 틈타 경찰병력을 투입해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을 진압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쌍용차 파업, 만도·에스제이엠 용역 침탈 때도 저들은 금속 노동자들이 여름 휴가를 간 사이를 틈타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번에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 자신이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져 곳곳에서 저항에 직면해 있던 탓이고, 다른 하나는 이 속에서 갑을오토텍 투쟁이 연대의 초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요즘 되는 게 없다. 총선 참패 이후 집권당 내 분열과 위기의 골은 더 깊어졌다. 최근 새누리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모두 친박계가 휩쓸었지만, ‘도로 친박당’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비박계의 “선명성 경쟁”도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가 이명박계를 겨냥해 들춰내기 시작한 대우조선 분식회계는 부메랑이 돼서 박근혜에게로 화살이 돌아가고 있는 판국이다. 박근혜가 내리꽂은 대우조선 현 사장이 수사 대상에 올랐고,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성주군민들의 투쟁은 지칠 줄 모르고 고양되고 있고,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점거도 진행되고 있다. 하반기 노동자 투쟁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7월 20일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16년 만에 공동 파업에 나선 것은 좋은 신호였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도 이미 그전부터 파업을 벌여 생산에 타격을 미치고 있었다. 여름 휴가 이후 현대·기아차지부가 임금 공격에 맞서 4시간 파업을 시작했다. 현대차 전주위원회는 사측의 파업 방해를 규탄하며 자체적으로 파업 수위를 높여 지난주 3일간 6시간씩 파업을 벌였다.
최근에는 오비맥주 노동자들이 여름 성수기라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전면 파업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지난달에도 몇 시간짜리 파업을 했는데, 16일을 기해 생산직에서 영업직으로 파업을 확대하고 수위를 높인 것이다.
물론 투쟁이 일반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아직 섣부를 수 있다. 투쟁은 불균등하고 노동자들의 자신감도 충분히 높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포항과 광양의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은 최근 2주 넘게 전면 파업을 벌이며 억눌린 분노를 표출했는데, 안타깝게도 지도부가 흡족할 만한 양보를 따내지 못한 채 파업을 종료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지도부를 거슬러 투쟁을 발전시킬 만한 자신감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따라서 지금의 정치 위기를 이용해 갑을오토텍 투쟁에 대한 실질적 연대를 조직하고, 투쟁을 더 확산하기 위해서는 기층의 좌파 활동가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정권의 균열과 위기는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 위기가 깊고 장기화되고 있고, 박근혜와 같은 통치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특히 노동개악과 노조 탄압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떠오른 갑을오토텍 투쟁이 승리한다면, 이는 노동운동에 커다란 자양분이 될 것이다. 활동가들은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연대 확대를 위해 애써야 한다.
공장 사수
셋째, 갑을오토텍 투쟁은 공장 사수라는 전술이 얼마나 효과적인 수단인지를 잘 보여 준다.
2009년 쌍용차 파업 직후 노동운동 내에서는 점거 파업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 등의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싸우면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표하곤 했다.
그러나 2014년 말 직선제로 진행된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쌍용차 점거 파업을 이끈 한상균 위원장의 당선은 이 투쟁의 정치적 회복을 뜻했다. 노동자들은 경제 위기 하에서 노동개악 공격에 칼을 빼든 박근혜와 사용자들에게 맞서려면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여겨, 한상균 후보 조에 표를 던졌다.
갑을오토텍 투쟁은 점거 전술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보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시작된 점거 농성이 기세를 올린 것도 의미심장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점거 농성은 폐업이나 해고에 맞서 싸우는 전술로 흔히 사용됐다. 이런 투쟁은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최상의 집단 행동으로, 사용자들이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거나 직장폐쇄를 하는 등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수단이다.
이는 사측을 수세적 처지로 내몰고,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고 이간질하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노동자들은 이 속에서 공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산의 주역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사업장과 부문의 노동자들을 자극하는 효과도 낸다. 연대와 지지를 모아 나가는 데서도 탁월하다.
지금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공장 사수 투쟁은 바로 그런 효과를 내고 있다.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공장을 틀어쥐고 연대를 모아 나가자, 사측은 애가 타서 용역경비를 철수시키고는 ‘일부 생산을 재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물론, 저들은 노조파괴 시도를 멈출 생각이 조금도 없다. 저들은 생산 재개의 물꼬를 터서 파업 효과를 떨어뜨리고 직장폐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경찰력 투입의 빌미를 만들려 한다. 11일 용역경비가 물러난 뒤, 사측이 더한층 조직적으로 관리직을 동원해 ‘출근길을 막지 말라’는 펼침막을 들고 파업을 비난하며 생산 재개를 압박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따라서 단호하게 공장 사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실질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투쟁의 판돈은 커졌다. 그만큼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게 이 투쟁을 지킬 책무가 있다.
금속노조는 시급히 연대 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경찰력 투입 시 연대파업을 논의한다’는 결정은 무기력하다. 경찰이 투쟁 대열을 짓밟기 전에, 투쟁이 장기화돼 노동자들이 지치기 전에 실질적 연대로 승기를 잡아야 한다.
금속노조의 실질적 연대가 있어야 한다
불법 대체생산을 막아야
최근 갑을오토텍지회는 원청사인 현대·기아차지부의 연대 투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일부 조합원들을 현대차 전주·울산 공장과 기아차 광주 공장에 파견했다. 이들은 4일간 이 곳 공장을 돌며 노조 집행부·대의원과의 간담회, 출근 홍보전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활동가들에 따르면, 지회가 현대·기아차지부에 요청하는 바는 이렇다. 갑을오토텍 사측이 진행하고 있는 불법적 대체생산 정황 근거를 확인해 달라, 그것이 확인될 시 현대·기아차지부와 갑을오토텍 지회가 공동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강력한 대응에 나서 달라.
사실 이미 몇몇 불법 대체생산의 정황은 드러난 상태다. 갑을오토텍 사측이 쟁의 기간 중 대체생산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노조법 43조를 위반한 채, 버젓이 갑을오토텍의 마크가 찍힌 부품을 2~3차 하청업체에서 생산해 현대·기아차와 일부 해외 기업들에 직접 납품하고 있다는 근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 있는 갑을오토텍 주재원에는 관리직들이 남아 불량품을 검사·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부가 이런 점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음에도 압수수색과 불법 판정을 내리지 않고 미적대고 있는 것은 저들이 누구의 편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현대·기아차지부가 불법 현황 파악에 대한 협조를 넘어, 부품 전수조사를 요구하며 실질적 연대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현대차 전주와 울산 4공장, 기아차 광주 공장 등의 활동가들이 나서 이런 활동을 촉구하고 강제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대체생산을 도맡아 하고 있는 한온시스템의 노조가 대체생산 거부를 조직해야 한다. 한온시스템지회는 사측을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실질적 거부에 나서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 내에는 ‘내 밥줄이 끊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일부는 대체생산 거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갑을오토텍 투쟁의 승리는 부품사들에서 자행되는 노동자 쥐어짜기 공격과 노조 탄압에 맞서는 데도 커다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연대도 중요하다. 최근 충남지부의 일부 지회장들은 지부 운영위에서 지역 차원의 연대 파업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고 한다. 이는 고무적인 소식인데, 이런 주장을 더 공개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충남지부는 조합원이1만 명이 넘는 지역지부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 지역에는 현대제철, 현대차 아산공장을 비롯해 1차 벤더의 여러 부품사들이 존재한다. 이 노동자들이 단결해 연대 파업에 나선다면 갑을오토텍 투쟁에 커다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연대를 구축하는 데 좌파 활동가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노조 공식 체계를 거슬러 노조 지도자들에게 도전하기를 꺼리거나, 혹은 아래로부터 투쟁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상층 간부들에 압력을 넣는 일을 등한시해서는 효과적으로 연대를 건설하기 어렵다. 이는 연대 파업을 회피하는 노조 지도자들을 맘 편하게 만들어주기만 할 것이다.
8월 9일 금속노조의 대의원·활동가 3백40여 명은 시급한 연대 파업을 촉구하는 연서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연서명을 조직한 일부 활동가들은 최근 기층의 활동을 더 확대·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활동가들이 자신이 속한 사업장과 지역에서 전수조사·대체생산 거부 등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연대 파업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