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순 갑을오토텍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여기서 지면 그냥 죽는다, 그런 각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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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오토텍 공장 사수 투쟁에는 가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재환 기자가 김미순 갑을오토텍지회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김미순 위원장은 거듭 연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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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오토텍 투쟁에서 가족들의 굳건한 지지와 활동이 인상적인데요, 가족대책위는 어떻게 결성이 됐나요?
회사에서 신입사원 채용을 했어요. 제가 듣기로는 10명이면 되는 걸 60명을 했어요. 그런데 그중에 비리 경찰들, 특전사 출신들이 끼어 온 거죠. 노조 파괴 목적으로 왔는데 수차례 폭력이 있었죠. 처음 시작한 건 8명이었어요.
남편들이 이런 상황인데 엄마들이 모르는 거예요. 걱정할까 봐 말 안 하고 묵묵히 견디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엄마들이 나서야 된다, 남편들 더 다치기 전에. 그런데 이후 흉기에 맞고 주먹에 맞고 머리도 깨지고 갈비뼈도 나가고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소수가 할 일은 아니다 생각해서 아는 엄마들을 최대한 ‘단톡’방으로 초대했어요. 제가 그때부터 글을 썼어요. 이거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하자 그런 마음으로 작년에 결성을 했어요.
그동안 노동부, 경찰청, 아산시 등을 쫓아 다니며 항의해 오셨고, 공장 앞에서는 가로막는 경찰과 싸우기도 하시고요, 직접 정부기관을 상대하면서 느낀 것도 많으실 것 같아요.
아빠들이 파업을 시작하고 3주 넘게 집에 못 오고 있어요. 경찰에서 용역들을 허가만 안 내리면 된다고 생각해서 (충남지방)경찰청장님 네 번 만나고 노동부 천안지청장님 만나러도 네 번 간 것 같아요. 아산시장님, 국회의원도 만나러 갔어요.
그런데 경찰청 가면 우리 소관 아니라 그러고, 또 경찰서 가면 권한이 없다고 그러고, 노동부 가도 법원에서 판결이 나야지 자기들 책임 아니라고 그래요. 가는 곳마다 세 명만 [들어와라] 이에요. 그래서 관공서 구호가 ‘세 명만’인줄 알았어요.
관공서 가면 기다리라고 해요. 저희도 기다려요. 제가 항상 서두에 그래요. ‘저희 좀 신사적으로 하고 싶다. 저희는 도움 받으려고 왔습니다. 엄마들이 너무 절박해서 도움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라고. 알았다고 해 놓고 그냥 방치하는 거예요. 연락 없어서 다시 가서 ‘어떻게 됐습니까?’ 하면 회의 중 아니면 출타 중이라고. 경찰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핑계들을 대요.
관공서 가는 데마다 다 외면당하고 범죄자 취급 받고 할 때 보면 기분은 진짜 더러워요. 우리가 무슨 세균, 병균 된 것처럼 느껴져요. 대접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할 말 있어 왔는데 만나는 줘야 되지 않냐는 거죠.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꾸려지는 관공서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가대위하고 경찰들하고 7월 31일에 몸싸움이 있었어요. 욕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욕을 하고 있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이번 투쟁에서 가대위가 처음부터 활약이 커 보이는 것에는 지난해부터 그런 투쟁 경험과 분노가 쌓여 온 맥락이 큰 것 같습니다. 각오 같은 게 더 커지셨을 것 같아요.
(머리띠의 “생존권 사수”를 가리키며) 올해는 더 악랄하잖아요. 버젓이 세상에 다 드러났고 법으로도 심판해서 구속이 됐는데도 진짜 너무 악랄한 거예요.
여기서 지면 진짜 우리 엄마들 밥줄 끊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들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들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이번에도 아빠가 다치면 어떡하지? 아이들한테는 아마 그게 제일 큰 두려움인 것 같아요. 저희들보다도 더 큰 무게로 오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부터 다 나왔어요. 사진으로 아빠들 피 흘리는 거, 싸우는 거, 다친 거, 다 봤기 때문에 다른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우린 여기서 지면 그냥 죽는다, 그런 각오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몸으로 같이 해야 되는데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오시는 분들이 10만 원씩, 20만 원씩, 30만 원씩 통장에 입금을 해 줘요.
가족대책위 활동에 자녀들도 함께 참여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함께하게 됐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애들이 작년에도 굉장히 많이 활동을 했어요. 올해 피켓 만든 거 다 우리 친구들(자녀들)이 만들어 준 거예요. 알바하는 친구도 있고 대학생 친구,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도 있어요. 알바로 돈을 버는 친구들은 그 돈을 지원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들이 돈이 많지는 않아도 너희들한테 지원해 줄 수 있다고 그랬더니 저희도 아빠를 위해서 하고 싶은데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러더라고요. 너무 예쁜 거예요.
지난번 촛불 집회 때 읽었던 편지 글이 있어요. 아빠가 작년에는 ‘고3이라 너는 공부만 하면 돼’ 라는 그 말에 자기가 그냥 수긍을 했고 그런데도 공부도 안 되고 해서 그런 시간들을 보냈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 중에 자기 이모에게 간 이식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자기 친구는 서슴없이 수능을 포기하고 간 이식을 했는데 그거 보면서 자기가 느꼈다고 했어요. 아빠도 내가 굉장히 절실하게 필요했을 텐데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저는 그거 보면서 마음이 더 아파요. ‘저 연대할 수 있어요?’ 하고 전화가 지금도 와요. 그리고 ‘가대위원장님, 저희가 무얼 할까요?’, ‘저희 율동 하면 안 돼요?’, ‘피켓팅.. 이거 저희가 하겠습니다’고 해요. 아무튼 진짜 힘이 나요. 그리고 SNS 그런 것들은 엄마들이 잘 몰라요.(그런 것도 아이들이 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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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오토텍 동지들이 공장에서 고립되지 않고 끌려 나오지 않고 이기도록, 연대를 확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대를 호소하는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눈물) 그냥 감사한 것 같아요. 사실은 작년에도 그렇고 고마움이 들어요. 이건 참 빚진 자 심정이다. 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요. 아빠들 외롭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은데 마이크 잡고 하려고 하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정말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가 “아빠, 고기 먹자” 그러던데 그 짧은 말 하나에 그냥 아픈 거예요. 남편 오면 여보 반찬 없어 된장찌개 끓였어, 사실 된장찌개가 특식 아니잖아요. 그렇게 얘기하면서 같이 놓고 먹고 싶어요.
이런 게 우리한테는 어느 순간 소원이 된 거예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소원 정도는 이뤄야 되지 않냐 이러면서 가대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재환, 녹취 박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