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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후보는 투표일에 차선책이 될까?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대선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그해 9월 통합진보당 분열 사태를 겪은 직후인 데다 박근혜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중도 사퇴했다.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여파로 구 여권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20퍼센트를 간신히 넘을까 말까 한 상황이다. 심상정 후보는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해제돼서 마음껏, 우리 정의당의 깃발을 들 수 있는 그런 선거”라며, “민주당이 왼쪽에 있는 정의당과 경쟁하는 구도”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게다가 정의당은 지난 몇 년 사이 노동자·청년 사이에서 꾸준히 지지를 확대해 왔다. 2016년 총선에서는 심상정 자신이 수도권의 노동자 밀집 지역인 고양시에서 3선에 성공했고, 노회찬 의원도 민주노총의 지원을 받으며 창원에서 당선했다. 비례후보도 4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정의당은 민주노동당이 얻었던 지지율을 상당히 회복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이번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도 상당히 전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심상정 후보는 스스로를 “노동자 후보”로 부각시키고 있다. 정의당의 대선 표어도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다. 박근혜 퇴진 운동을 계승하려 애쓰는 일에서 민주당과는 변별점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계승하겠다고 하는 노무현 정부의 약점을 꼬집었다. “[노무현 정부의] 기간제법 도입 당시, 저를 포함한 진보정당은 정부·여당의 기간제법이 비정규직만 확산시키고, 차별 시정에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집권을 말해선 안 된다.” “경제민생분야에 있어서는 모든 정부가 친재벌 정부였다.”

심상정 후보는 출마 선언 직후 춘천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맨 먼저 찾아갔다.

“춘천교도소. 제가 승리하면 가장 먼저 사면할 이가 갇혀 있는 곳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해고하고, 박근혜 정권이 감옥에 가둔 노동자 대표 한상균입니다. 제가 전국민주금속노조 사무처장을 지냈을 시절에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촛불이 일어나기 전, 국정교과서 농단과 노동개악에 맞서 시민들과 함께 가장 먼저 싸운 이도 그였습니다. 그 혐의로 받은 형량이 무려 징역 5년입니다. 지금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은 한상균이 아니라 박근혜입니다.”

출마 선언에서도 “노동개혁을 새로운 정부의 제1의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노동부총리제 신설, 노동전담 검사제 도입, ‘노동’ 있는 헌법 개정 등 상징적 조처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삶과 조건을 개선할 다양한 요구들을 공약에 담았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최저임금 대폭 인상, 노동시간 단축, 노동3권 보장 등.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슈퍼우먼 방지법’, 2040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탈핵’ 정책, 실질적 반값 등록금과 국립대 무상교육, 복지 대폭 확대 공약 등도 주류 정당 후보들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진보적 공약들이다.

다른 한편, 노동과 자본의 타협을 통해 노동의 조건을 개선하겠다는 방향은 걱정스럽다. 가령 초과이익공유제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선의에서 나왔겠지만 역효과를 낼 것이다. 원청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 원청 대기업의 ‘초과이익’도 줄어들어 하청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해 줄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청과 하청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사용자에 맞설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관련기사 ‘정의당 총선 공약 분석 - 노동자와 중소기업, 두 마리 토끼 좇기')

노사공동결정제도나 ‘경제사회전략대화’ 같은 노사정 합의기구도 문제적이다. 그런 공상적 개혁을 위한 기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경험했듯이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싸우지 못하게 발목 잡으려 해, 정작 개혁을 제공하지 못하는 장애물이 되기 십상이다.(관련기사 ‘서울시 근로자이사제 - 노동자의 투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경계해야’)

난관에 봉착할 민주당과 한 배를 타선 안 된다.

제국주의

한편 제국주의 관련 입장에서 오히려 약점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이런 주장을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억지력의 근간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즉 확장 억지력입니다. 그 외에 어떤 합리적 대안도 없다.” 심상정 후보는 미국의 제국주의 공세와 한미동맹을 본질적으로 반대할 수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의 ‘억지력’을 지지하면서 그 일부인 사드를 반대하는 것은 일관될 수가 없다. 최근 대학 강연에서도 사드 문제에 대한 질문에 매번 “실효성 없는 사드 배치 반대”,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는 사드 배치 반대”를 말하는 식으로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모호하게 답변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온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주장이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북한의 핵은 미국의 제국주의 공세가 부른 것이다. 클린턴부터 부시, 오바마 정부를 거치는 내내 언제나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는 기회를 한사코 걷어차 버렸다. 제네바 합의에서 6자회담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약속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예컨대 다음 기사들을 보시오. ‘북한 핵실험 -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위험한 결과 : 유엔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다’, ‘9·19 공동성명 1년을 돌아보며’)

핵확산방지 원칙에도 일관성이 없다. 미국은 핵 개발 근처에도 못 가 본 이라크를 박살냈고, 핵무기를 개발한 파키스탄은 지원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세계 최대 핵 보유국이고 틈만 나면 북한을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과 세력을 견제하려고 북한 핵을 빌미로 삼아 왔을 뿐이다. 이런 제국주의 전략이 갈수록 동아시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북한 핵에 반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게다가 핵우산 지지는 정의당이 지향해 온 평화주의와도 모순된다.

6자회담 같은 다자협력 기구를 통해 평화조약을 맺고 동북아 평화를 지키겠다는 생각은 평화를 염원하는 바람에서 비롯한 것이겠지만 공상적이었음이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관련 기사 ‘한반도를 휘감는 긴장Q&A’) ‘6자’에는 서로 각축전을 벌이며 갈등을 빚고 있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포함돼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착각은 평화주의에서 비롯한 것이다.

민주당 정부 참여는 독배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심상정 후보가 독자 완주를 호언장담하면서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도 기정사실화하는 점이다. “우리 정의당이 작습니다. 그러나 지금 작든 크든 연립정부 해야 합니다.”

물론 정의당은 노골적인 부르주아 정당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므로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고 집권까지 나아가는 목표를 갖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한국이라는 구체적 조건에서 이런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집권을 노동계급의 학습 경험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이 오롯이 독자적으로 집권하는 것과 민주당 정부에 참여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민주당 정부에 참여하면 제대로 된 개혁은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민주당 배신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해도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부터 마주했던 모순에 금세 직면하게 될 것이다. 비록 두 당이 역사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도 경제 위기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불안정이라는 치명적 환경을 피할 길은 없다. 게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민주당도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것이 보수 정부 9년 동안 민주당이 그토록 꾀죄죄하고 지금도 문재인이 몸을 사리는 이유들이다.

따라서 민주당 정부에 참여하는 건 정의당이 충분히 뜻을 펴 보기도 전에 스스로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동역학에 따라 우파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강력히 반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박근혜를 쫓아내는 데 성공한 노동자들은 민주당을 미심쩍어 하면서도 지난 10년을 보상받으려 할 것이다. 아무리 친노 계열 부르주아 개혁파들이 노동자들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설교해도 말이다. 정의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정부 편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기를, 함께 싸우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런 기대를 저버리는 불행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성급하게 정치 권력을 넘보지 말고 민주당 정부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을 오히려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