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임금격차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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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성평등 정부’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인 성별 임금격차 해소책을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성별 임금격차가 무려 37퍼센트로 2000년대 초 이후 줄곧 OECD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는 고작 임금 정보를 공개만 할 뿐인 성별 임금공시제나, 소수 여성들에게나 도움이 될 승진할당제를 부각하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에서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부수는 조처는 필요하지만, 승진할당제가 노동계급 여성 대부분을 위한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여성의 관리직·고위직 진출이 크게 늘어나 성별 임금격차가 눈에 띄게 축소됐지만, 여전히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매우 높다. 성별 임금격차는 한국이 미국의 2배가량 되지만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도리어 미국이 한국보다 약간 더 높다.
소수 엘리트 여성들이 아니라 사회의 다수인 노동계급 여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낳고 저임금 직종과 하위 직급에 여성이 집중되는 등의 사회 구조와 성차별적 관행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에 미온적인 것은 그도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개혁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의 이윤에 타격을 주지 않는 미미한 개선은 지지할지언정, 여성 노동자의 임금·노동조건을 크게 개선하고 복지를 대폭 확충하는 계획은 한사코 내놓지 않는다.
미온적이거나 후퇴하거나
2000년대 초 이래 한국이 OECD 성별 임금격차에서 줄곧 1위를 지켜 온 데는 우파뿐 아니라 1998년 이후 10년을 집권한 민주당 정부도 톡톡히 기여했다.
노무현 정부 때처럼 문재인 정부도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하고 체제에 필요한 노동력을 싼값에 공급받으려 한다. 그래서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주들의 성차별을 묵인하고, 양육을 계속해서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주로 전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심지어 자본가들의 반발을 의식해 자신이 약속한 약간의 개선책조차 후퇴시키려 한다. 지난해 16.4퍼센트 오른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과 함께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를 확대하려고 한다. 최저임금 계산에 들어가지 않던 정기상여금 등을 넣어 계산하면 기업주들이 추가 부담을 줄이고도 최저임금이 저절로 늘어나 보이게 된다.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인 만큼 이런 조처는 여성의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것이다. 이러고도 성평등 정부 운운하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를 추진하자 기업주들이 온갖 꼼수를 사용하며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주 35시간 노동시간 단축의 외피를 쓰고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마트에는 시급제 적용을 받는 무기계약직(다수가 여성이다)이 전체 직원의 60퍼센트인데, 이들은 노동시간이 단축된 만큼 고스란히 임금이 삭감됐다. 반면 인력은 충원되지 않아 노동강도가 강화됐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휴게시간이 축소되고 무급 근무시간이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의 후퇴는 이것만이 아니다. 기업들의 이윤을 늘려주고자 근로기준법도 개악하려 한다.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 모두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또한 사회서비스 시장화도 확대하려 한다. 의료 민영화를 열어 주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추진하고 있고 협동조합 등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게 해 국가의 복지 부담을 줄이려 한다. 기업들의 부담을 덜고자 노동계급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직무급제 도입을 통한 이간질에 맞서야
문재인 정부는 성평등 미사여구를 사용해 전반적인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착취를 강화하려고 한다. 직무급제가 비정규직·여성 등 차별받는 노동자를 위한 것인 양 내세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역시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직무급제를 이용해 대기업의 정규직과 근속연수가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려 한다. 여성·노동운동 내 온건 개혁주의자들이 직무급제를 더 평등한 임금 체계로 여겨온 것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이간질하는 것이다.
출산과 양육 부담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심한 여성들에게 호봉제가 불리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직무급제가 더 평등한 임금체계인 것은 아니다. 직무급이 정착된 유럽 나라들과 미국을 보면, 성별 임금격차가 계속 유지되고 있고 때로 격차가 커지기도 한다.
성별 직종 분리는 자본주의 산업에 구조화돼 있다. 직무급이 정착된 서구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저임금 직종이 다수인 산업에 몰려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에서는 성차별이 고용주들의 관행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는 임금 삭감, 복지 축소를 정당화하고자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계속 부추긴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는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 여성 일부의 임금을 올려 주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부의 진정한 불평등은 소수의 지배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있다. 임금소득 격차보다 자산 격차가 훨씬 크다. 충분한 국가 재정 투입 없이 노동자들 사이의 나눔을 강요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분열을 낳는 것이므로 좌파는 반대해야 한다.
대기업·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든다고 해서 중소기업·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는 함께 살고 있는 노동계급 여성들의 생활 수준 하락으로 이어지고, 계급 전체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약화시켜 미조직 부문의 노동계급에게 더 큰 타격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지배계급의 남성과 여성에게만 이로울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실질적 처우 개선에 무관심하다. 낮은 정규직 전환 규모가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게다가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자에게 저임금을 고착화할 임금체계 안(‘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모델’)마저 도입하려 한다.
표준임금체계 모델은 가장 낮은 직무 등급의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에 맞추고 있다.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상승 폭도 작다. 15년이 걸려 최고 단계로 승급해도 1단계의 임금보다 고작 10퍼센트 더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미 2007년 우리은행과 이마트 등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을 별도 직군으로 만드는 직무급이 도입됐다. 그런데 이들 정규직 이마트 노동자의 임금은 전환 뒤에도 매년 최저임금 인상분만큼만 올라서 10년간 고작 시급 1570원이 인상됐다.
이처럼 직무급제는 결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공정한’ 임금제도가 아니다. 여성단체나 노조가 직무 가치 평가를 위한 협상테이블에 포함된들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직무급제가 도입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명시된다 해도 실질적인 동일임금은 투쟁 없이 쟁취하기 어렵다.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의 단결된 투쟁이 관건이다
심각한 성별 임금격차를 대폭 완화하고 노동계급 여성들의 조건을 실제로 개선하려면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는 게 아니라 이와 독립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꾀죄죄하거나 기만적인 대책을 폭로하며,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단결할 수 있는 요구를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 저임금 해소, 동일임금, 공공서비스 확충 등과 같은 요구는 여성 노동자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에게도 이롭다.
노동계급의 자신감이 높을 때는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이 단결해 투쟁하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특히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과 임금 인상 투쟁이 활발히 일어났을 때 여성 노동자들의 동일임금 투쟁이 많이 일어났다. 당시 많은 남성 노동자들이 성, 학력 등에 따른 임금 차별에 반대해 함께 투쟁했다.
계급의식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주들과 국가의 공격이 강화된 데 비해 노동계급의 저항이 충분치 않으면서 1985년 이후 지속되던 임금격차 축소 추세가 중단됐다. 노동계급의 투쟁과 압력이 크지 않다면 지배자들은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을 선사하지 않는다. 도리어 마지못해 양보했던 것조차 빼앗아간다.
노동계급 여성들의 조건이 개선되려면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하며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고무해야 한다. 단결된 투쟁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이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 속에서 성평등한 계급의식이 발전하고 조직도 강화될 수 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청소·경비, 마트 산업 등지의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투쟁했다. 기아차에서도 식당·청소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임금·채용 차별을 자행하는 사측에 항의해 여성 노동자들과 남성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기도 했다.
좌파는 노동계급을 이간질하는 각종 주장을 반박하고, 임금 차별과 불평등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더 강력해질 수 있도록 계급적인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
민주노총 전국여성노동자대회
- 3월 8일(목) 14시 광화문광장
3시STOP 제2회 조기퇴근 시위
- 3월 8일(목) 15시 광화문광장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행사
차별과 착취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 3월 8일(목) 오후 7시 30분
- 중부여성발전센터 2층 대강당
- 주최: 노동자연대
- 참가비: 2000원(장소 대여료에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