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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성별 임금격차 그대로

3.8 세계 여성의 날이 다가오면서 성별 임금격차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은 대선 때 OECD 1위인 성별 임금격차를 OECD 평균 수준(15퍼센트)으로 축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2017년에도 변함없이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 OECD 1위 자리를 지켰다. (정규직 전일제 기준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34.6퍼센트나 적게 받는다. 지난해 9월, 한국노총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2018년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월평균임금 기준)는 37.1퍼센트에 달했다.

‘말로만 개혁’의 대표 사례 ‘여성’, ‘노동’ 2018년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 ⓒ조승진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의 능력 부족이나 특정 직업 선호 때문이 아니라 구조화된 여성 차별을 나타낸다.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내내 지속되지만, 30대 이후 급격히 확대돼 나이가 들수록 더욱 커진다. 55~59세에는 그 격차가 무려 48.6퍼센트다(2019년 한국노총 정책토론회 자료집).

출산과 양육으로 많은 여성이 경력단절을 겪고, 재취업 시 흔히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는 여성 경력단절 대책의 일환으로 육아휴직 사용을 권장해 왔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여성 차별과 양육 부담 때문에 육아휴직 뒤 여성의 직장 복귀율은 매우 낮다. 올해 2월 발표된 자료에서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은 3년 전보다 늘었지만 휴직 뒤 직장으로 복귀한 여성은 전체의 43.2퍼센트에 그쳤다(‘2019년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

같은 조사에서 결혼, 임신·출산, 양육, 가족돌봄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은 3명 가운데 1명(35퍼센트)이었다. 평균 28.4세에 경력단절을 처음 경험해 재취업까지 평균 7.8년이 걸렸다.

그러나 복귀 뒤 일자리의 질은 떨어지고 임금도 낮아졌다. 경력단절 이전엔 상용근로자 비율이 83.4퍼센트였으나, 단절 뒤에는 55퍼센트로 28.4퍼센트포인트나 줄었다. 반면 임시근로자는 7.8퍼센트에서 14.6퍼센트로 늘었다. 경력단절 이후 첫 일자리의 임금도 단절 이전(218만 5000원)의 87.6퍼센트 수준(평균 191만 5000원)에 그쳤다.

여성이 주로 저임금 직종에서 일하는 상황도 성별 임금격차의 주요 요인이다. 여성이 집중된 직종의 다수가 저임금 직종이다. 성별 직종분리뿐 아니라 같은 직종 내에서도 흔히 여성은 더 낮은 지위를 차지한다. 승진 차별이 만연하고 여성의 업무는 보통 저평가된다.

생색내기

문재인의 성평등 정책은 생색내기로 일관해 왔다. 대선 때는 성별 임금격차를 최우선으로 다루겠다고 약속했지만 집권 후에는 실질적 대책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공공기관과 금융권 등지의 채용 성차별 관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이를 뿌리뽑을 대책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설 이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는데 20대 여성의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올해 2월 정부가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기업에 성별 임금격차 현황과 해소방안 제출을 의무화했지만, 이 역시 생색내기에 가깝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보고서를 다 낼지도 의문이지만, 보고서를 낸들 임금을 낮추고 실적 경쟁으로 노동자들을 내모는 데 혈안이 된 사용자들이 성차별을 얼마나 인정하겠는가. 성차별은 임금 비용을 낮추고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데 유용하기에 공공기관과 특히 대기업에서 널리 사용된다.

사용자들이 성별 임금격차를 합리화하거나 매우 제한적인 해소 방안을 낼 공산이 크다. 기껏해야 관리자나 기업 임원에 여성을 소수 늘리는 방안이 되기 쉽다. 노동계급 여성들에게는 별로 기대할 게 없다.

2월 18일 고용노동부는 사업체 규모, 직업, 학력, 성별 등에 따른 임금격차 정보도 공개했다(새로운 정보를 공개한 게 아니라 위 항목별 격차를 더 손쉽게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의 목적도 저임금 문제 해결과 무관한데, 정부가 밝혔듯이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것이다.

물론 정부는 직무급제를 저임금·여성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위선적인 속임수다. 직무급제는 ‘동일임금’ 미명 아래 추진되는 임금 억제책일 뿐이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도입하는 직무급제(표준임금체계)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평생 유지한다는 것만 봐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직무급제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본지 260호 김하영, “직무급제는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공정한 임금체계인가?” 를 참조하시오.)

여성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월평균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역대 최저 수준으로 결정했다. 더 나아가 올해 최저임금제도를 더한층 개악하려 한다.

문재인은 ‘성평등’을 말하며 여성의 경력단절 대책을 강조하지만, 실은 자본가들을 위해 저임금 노동력 공급을 늘리는 게 핵심 목적이다. 이는 지금 같은 불황기에 특히 요긴하다. 박근혜 정부 때처럼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핵심적인 경력단절 대책으로 추진하는 이유다.

고용노동부 장관 등 정부 인사들은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2019년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에서 재취업 때 전일제를 선호하는 여성이 10명 가운데 8명(79.2퍼센트)이었음이 드러났다. 2016년(49.4퍼센트)보다 무려 30퍼센트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노동계급 여성들의 바람과 동떨어진, 지배계급을 위한 대책일 뿐이다.

실질적인 성평등을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확대가 필요하다. 여성의 저임금도 해소돼야 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이 필요하다. 공공보육 시설도 대폭 확대해 노동계급 여성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고위직이나 관리직에 여성의 진출을 강조한다. 여성의 유리천장은 깨져야 마땅하지만, 고위직이나 관리직에 여성이 늘어난다고 해서 노동계급 여성들의 처지가 저절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기업주들의 임금 공격이 강화되고 문재인 정부도 노동 개악을 노골화하는 지금, 임금 인상과 공공보육 확대 등을 위해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투쟁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의 중요성은 2018년 조합원들의 성별 임금격차(20.4퍼센트)가 노조가 없는 곳의 노동자들(36.7퍼센트)보다 더 낮다는 데서도 확인된다(통계청). 노조가 있는 곳에서는 비조합원의 성별 임금격차(22.6퍼센트)도 미조직 부문보다 낮다.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성별 임금격차가 거의 줄어들지 않은 것도 사용자들의 공세 강화와 함께 노동자들의 투쟁이 충분치 못했던 것과 관련 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눈에 띄게 축소된 시기는 계급 투쟁의 상승기 때였다.

여성의 평등한 임금은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는 더 광범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중시하는 사회를 위한 투쟁은 사회에서 여성 노동이 취급받는 방식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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