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임금격차, 왜 개선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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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내내 성별 임금격차가 제자리 걸음이다.
여성가족부가 국내 상장 기업(2149곳)과 공공기관(369곳)의 2020년 임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성별 임금격차가 35.9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64만 1000원을 받는 것이다. 이 격차는 OECD 평균의 2.8배나 되고,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성별 임금격차는 남녀의 능력 차이나 생물학적 요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오늘날 20대 여성은 통상 남성보다 노동시장에 먼저 진출한다. 또한 여성과 남성은 교육 수준과 직무 경험 및 능력에서 별 차이가 없다.
성별 임금격차는 체계적인 여성 차별의 결과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작동 방식에서 비롯한다.
기업주들은 노동계급을 효과적으로 착취하는 데 여성 차별을 적극 이용한다.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계급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남녀 노동자의 단결을 방해하는 데 톡톡한 구실을 한다.
무엇보다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에게 주로 전가되는 보육 부담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자본주의 국가와 기업주들에게 노동력 재생산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그 부담을 주로 노동계급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 국가는 여성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얼마간 제공하기도 하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대개 출산·양육기인 30대 여성들은 원치 않는 경력 단절을 겪는다. 이후 재취업을 시도하지만, 주로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린다. 그래서 경력 단절 이전보다 평균 임금이 27만 원이나 깎인다.(여성가족부 조사, 2020)
현재 여성 노동자의 45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21.7퍼센트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통계청,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이렇게 질 낮은 일자리에 재취업한 중년 여성들은 아무리 오래 근무해도 임금이 잘 오르지 않고, 진급 기회도 거의 없다.
그래서 30대에 남녀 임금격차가 상당히 벌어지기 시작해, 50대에 이르면 연평균 임금격차(2019년 기준)가 약 3000만 원에 이른다.(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말만 요란했던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공약
문재인 정부는 대선 때부터 한국의 성평등이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성평등 개혁을 약속했다. 고질적인 성별 임금격차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말만 요란했을 뿐 유의미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큰 실효성 없는 ‘성별 임금공시제’와 ‘승진 할당제’를 내놓는 데 그쳤다(그나마 임금공시제는 기업주들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시행하지도 않았다).
정부는 여성의 양육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 줄 수 있는 가족·돌봄 복지 확대에 매우 인색했다.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GDP의 11.1퍼센트로 OECD 평균 20.1퍼센트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최근 2년 연속 보육 예산이 삭감됐고, 올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도 20.6퍼센트나 줄었다. 무기 구입 등 국방비에는 돈을 왕창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육아휴직 수당 인상과 사각지대 해소도 알맹이가 쏙 빠진 미미한 개선 외에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
문재인 정부도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 여성 노동자를 더 효과적으로 착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시간제 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최저임금을 역대 최저 인상률로 억제하는 데 안간힘을 썼다. 또한 노동자들의 임금 하향평준화를 초래하는 직무급제를 ‘평등 임금’으로 호도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처지를 더 악화시키려 한다.
여성 일자리 질 제고에 중요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사기극으로 끝났다. 정부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등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냉담한 외면과 탄압으로 응답했다.
불황과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여성 고용이 큰 타격을 받았고 노동조건도 악화됐지만, 정부는 임시·단기 일자리를 찔끔 제공하는 것 외에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은 허울뿐이고 오히려 “노동시장 성차별 구조가 더 심화됐다”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일각의 비판은 매우 타당하다.
젠더 이분법 아닌 계급적 단결 투쟁이 대안
이토록 심각한 성별 임금격차는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임금격차 해소에 사용할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심각한 수준의 성별 임금격차는 지난 20년 동안 거의 개선되지 못했다. 여기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투쟁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국제 노동자 운동사에는 기층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을 통해 여성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대폭 올리고 성별 임금격차를 상당히 줄인 경험이 많다.
1970년 남성 임금의 고작 63퍼센트를 받던 영국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오른 것은 1969년~1975년 노동자 투쟁 고양기에 포드 재봉공 등 여성 노동자들이 동일임금 쟁취 투쟁을 벌인 덕분이었다. 이 투쟁은 3주 동안 포드 자동차 생산을 완전히 멈추면서, 여성 임금을 남성의 92퍼센트로 끌어올렸다.(관련 기사: ‘여전한 성별 임금격차 - 왜 이토록 불평등한가? 어떻게 싸워야 하나?’, 〈노동자 연대〉 199호)
한국에서도 1985년 이후 10여 년간은 성별 임금격차가 축소되는 추세가 나타났다. 이는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노동자 투쟁 물결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과 동일임금 투쟁이 활발히 일어난 결과였다. 당시 많은 남성 노동자도 여성의 저임금과 여성 차별에 반대해 함께 투쟁했다.
하지만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주들과 국가의 공격이 강화된 데 비해 노동계급의 저항이 충분치 않으면서 임금격차 축소 추세가 중단됐다. (관련 기사: ‘성별 임금격차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노동자 연대〉 239호)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 대중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대표적인 여성 차별이고, 여성운동의 핵심 과제가 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주류 여성운동은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에서 급진 페미니즘이 크게 득세하면서 운동의 쟁점은 성폭력 쟁점 위주로 이뤄졌다.
착취·계급 문제가 실종된 채, 남성 개인 단죄하기에 몰두하는 도덕주의적 방식은 운동의 파편화와 분열을 부추겨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하는 데 해악적이다.
노동운동 내 좌파 상당수가 급진 페미니즘의 이런 젠더 이분법적 접근법을 추수하며 성차별에 맞선 계급 투쟁을 경시해 온 것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매년 ‘여성의 날’ 집회에서 거론했지만, 이를 위한 진지한 투쟁 계획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별 임금격차 해소는 1년에 한 번 외치는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배자들의 임금·일자리 공격에 일관되게 반대하고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의 단결된 임금 인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고 여성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