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위기에 노동자 책임 없다:
일자리 보호 위해 군산 공장 공기업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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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군산 공장 폐쇄 발표로 일자리 수만 개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GM 측에 경영 정상화를 위한 “3대 원칙”을 제시하고 큰 틀의 합의를 했다.
정부가 제시한 3대 원칙은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장기 생존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 등이다.
GM 측은 이를 “합리적”이라고 평가하고 이른 시일 안에 자구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GM의 자구안은 한국 정부의 자금 지원과 노동자 희생을 전제한 것이다. 게다가 벌써부터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GM은 여전히 군산 공장 폐쇄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부평·창원 공장에 2개 신차종을 배치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신차가 배치돼도 2년 뒤에야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어서 이행을 장담하기 어렵다.
2012년에도 한국GM 군산 공장은 차세대 크루즈 배정을 약속 받았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결국 생산 공장 선정에서 탈락해 큰 타격을 입었다.
GM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GM은 2013년 신규 투자 8조 원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투자는커녕 빚만 늘었다.
곧 시작될 경영·재무 실사도 난관이 수두룩하다. GM은 지난해 산업은행의 주주 감사 때 자료 제출을 대부분 거부하는 등 비협조로 일관했다.
둘째, GM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GM 측은 3월 신차 배정을 앞두고 ‘희망퇴직’과 임금 삭감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2월 22일 발표된 사측의 임단협 안은 임금 동결, 상여금·성과급 미지급, 각종 복리후생비 대폭 축소 등을 담았다.
700여 명이 고용돼 있는 서비스센터의 외주화도 한국GM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창원 공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놓아, 거기에서도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셋째, 문재인 정부가 단호하게 GM 측에 위기의 책임을 묻고 일자리 보호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선 자구계획, 후 지원’이 기본 입장이며 “GM에 끌려가지만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GM의 요구에 대해서는 유상증자는 할 수 없지만 신규 투자는 지원할 수 있다거나, 한국GM에 신차를 배정하면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노조의 고통분담”을 강조하며 GM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기업이 부도 위기에 놓였을 때 정부의 재정 지원은 필요하다. 일자리 수만 개를 위한 투자는 결코 “혈세 낭비”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은 말 그대로 일자리 보장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엄청난 세금이 사기업 GM의 자본금 조달에 사용돼서는 안 된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직접 보장하는 방안을 회피하는 데 있다. 그러면 일자리를 쥐고 흔드는 GM의 요구에 타협하는 것밖에 달리 방도가 없게 될 것이다.
요컨대, 정부-GM 간 협상으로 당장에 한국GM을 붙잡더라도 군산 공장 폐쇄를 비롯한 구조조정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미·중국을 중심으로 픽업트럭, SUV 등 수익성이 높은 차량을 생산하겠다는 GM의 전략을 볼 때, 또 여러 해외 경험들을 볼 때 결국은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
“노동 귀족” 압박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공장 폐쇄 등 구조조정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2월 23일 노조 주최로 열린 집회에 1000여 명이 참가했다.
물론 공장 폐쇄 위험에 놓인 군산 공장 노동자들이 다수였다. 이 노동자들은 2월 28일 금속노조 주최로 열리는 집회와 청와대 행진에도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GM 노동자들이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GM의 적자는 GM 본사의 전략에 따른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 오펠 매각 등으로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GM 본사는 한국GM을 상대로 높은 이자율을 매기고, 손실을 떠넘기고, 이전가격을 부당하게 산정하고, 연구·개발비를 빼돌리는 등 의도적으로 부실을 키웠다.
우파 언론은 ‘고임금’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오히려 지난 수년간 임금이 줄어드는 고통을 겪어 왔다. 조업 단축으로 인한 임금 손실로 절대 액수가 낮아졌을 뿐 아니라,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도 국내 다른 완성차들보다 낮다.
이 점에서 그동안 한국지엠지부 지도부가 임금 동결, “상생 협력”을 약속하며 양보를 거듭해 온 것은 안타깝다. 지금도 일부 간부들은 “사측이 지속 가능한 물량을 확보한다면 임금 동결 등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가 거듭 주장해 왔듯이,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벌어진 노조의 양보는 고용 불안의 종식이 아니라 그것을 가중시키는 구실을 했다.(관련 기사: 232호 ‘어떻게 GM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해 왔는가?’, 237호 ‘한국GM 공장 폐쇄 철회하라’를 보시오.)
거듭된 양보는 노동자들을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고 사용자 측의 통제력을 강화했으며, 결국 공장 폐쇄나 철수를 막을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최근 금속노조 지도부가 고용 보장 방안으로 제안한 ‘일자리 나누기’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나누기는 불황기에 노동시간, 근무형태 변화 등을 통해 노동자들끼리 일감을 나누고 임금을 삭감하는 ‘고통분담’(사실은 고통전담)의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이 점에서 “고용 친화적 구조개혁으로 생산능력을 조정”해야 한다거나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도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특히, 이런 양보는 자동차 산업 전반의 조건 후퇴를 압박하는 용도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재계와 우파 언론은 한국GM 위기를 계기로 “노동 귀족”, “강성 노조”가 한국 자동차 산업을 망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고비용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GM 노동자들이 고용·임금을 지키는 것은 전체 자동차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는 데에도 중요하다. 금속노조와 완성차 지부들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
지금 노동자들은 GM이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뾰족한 대안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고용을 보장해야 할 것인가가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이나 양보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투쟁에 나서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진정한 대안은 정부가 한국GM 군산 공장을 공기업화해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는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더구나 정부는 한국GM 부실에 일부 책임이 있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지분 17퍼센트를 가진 2대 주주로, 지난해까지는 주요 결정 사항에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사외이사와 감사들의 추천권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도 산업은행은 자신의 대출금 회수에만 신경 썼지, 한국GM을 제대로 견제·감독하지 않았다. 일자리 보장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2010년에는 GM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약을 맺고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부는 1999년 대우그룹 법정관리 하에서 노동자 수천 명을 대량해고 했고 헐값에 공장을 GM에 팔아 넘긴 장본인이다. 만약 당시 김대중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투입한 20조 원으로 대우자동차를 공기업화 했다면 노동자들은 고용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는 GM의 5000억 원~1조 원의 자금 지원과 여러 특혜를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돈은 수만 개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 쓰여야 한다.
공기업화를 쟁취하려면 점거파업 등 대단한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조선업, 금호타이어 등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처하고 일자리 문제가 부각된 지금,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운다면 광범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