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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공장 폐쇄 철회하라

GM이 5월 말까지 한국GM 군산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13일 발표했다.

설 명절을 코앞에 두고 노동자들은 조만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용자 측은 이날 군산 공장 노동자들의 집으로 ‘희망퇴직’ 안내문과 신청서가 담긴 익일 특급 우편을 보냈다고 한다.

현재 한국GM 군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000여 명(그중 비정규직이 200여 명)이고, 협력업체 13곳 노동자들까지 합치면 1만 3000여 명이나 된다. 군산 시 전체 고용의 22.6퍼센트나 되는 규모다.(2016년 기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GM은 군산 공장 폐쇄를 발표하면서 “군산 외 다른 공장의 미래는 수주 내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혀, 완전 철수 가능성도 내비쳤다. 한국GM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합쳐 무려 30만 개 일자리를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GM은 그동안 철수설이 무성했지만, GM 본사가 분명히 철수를 경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M 총괄사장 댄 암만은 이렇게 말했다. “GM의 한국 잔류 여부는 한국 정부가 기꺼이 자금이나 다른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지, 한국 노조가 노동 비용 절감에 동의해 줄지에 달려 있다.”

자금 지원: 누구를 위한?

이는 우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대한 정부를 압박해 지원금을 받아 내려는 목적을 드러낸 것이다. 발표 시기를 설 연휴 직전으로 고른 것도 일자리 위협의 효과를 키워 정부 지원을 끌어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GM은 한국 정부에 3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 참여, 한국GM 소재지에 대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감세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리 되면, 한국GM의 지분 17퍼센트를 갖고 있는 산업은행이 적어도 5000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받으면 한국GM은 토지세의 절반가량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고, 7년간 법인세·소득세를 면제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FTA 재협상은 이런 GM의 생떼 부리기에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 GM이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하자 트럼프는 곧장 환영의 뜻을 밝히며, “나쁜 무역협정”(한미FTA) 때문에 한국GM이 위기를 겪게 됐다고 거들었다.

한미FTA 재협상의 미국 측 요구 가운데는 GM의 의사도 상당히 반영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는 현재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을 억제하기 위한 원산지 기준 강화와 함께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수입을 확대하기 위한 안전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국회 입법조사처). 그중 한국보다 규제가 덜한 미국의 안전·환경 기준을 충족한 자동차의 수입 쿼터를 확대하는 것은 GM이 줄곧 원해 온 것이다.

GM은 이런 엄청난 특혜들을 요구하면서 일자리 수십만 개를 볼모로 잡고 있다. 고용을 지키려면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기업이 부도·파산 등의 위기에 빠졌을 때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제 위기로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위한 것이어야지, 기업주의 손실을 만회해 주고 배를 불리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사기업 GM의 자본금 조달과 이윤 보장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대고 특혜를 제공해야 할 이유가 없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는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주가 온갖 특혜로 득을 보는 동안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열악한 조건을 강요 받기 일쑤다. 이것이 바로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 GM 공장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부가 자금 지원과 특혜 제공으로 GM을 붙잡을 수 있더라도 그것은 미봉책이기 십상이다.

GM은 호주에서도 ‘신차 배정’을 무기로 호주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구해 2001년부터 무려 1조 7000억 원을 받아 냈었다. 그러나 2013년 정부 지원금이 끊기자 GM은 호주 철수를 결정하고 결국 2017년 69년간 운영해 온 호주 공장 두 곳을 모두 폐쇄해 버렸다.

거듭된 양보 압박

다른 한편, GM은 노동자들의 양보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한국GM 사용자 측은 노조에게 임금·복리후생 삭감을 받아들이라고 거듭 촉구하고 있다. 2월 13일에는 인원 감축도 예고했다. 전 공장의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공고한 것이다.

이런 공격에는 어김없이 노동자 “경합시키기” 수법이 더해졌다.(세계 자동차기업들의 노동자 경합시키기에 관해서는 본지 232호 김하영, ‘어떻게 GM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해 왔는가?’를 참고하시오.) GM 본사가 3월 초에 신차 계획을 발표하는데, 이를 카드로 내세워 세계 각지의 노동자들을 경합시키는 것이다. 임금 삭감과 인원 감축 등으로 “생산성 경쟁력”을 보여 줘야 공장 철수를 피하고 물량을 따올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말이다.

지난 수십 년간 GM은 이런 식으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가해 왔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에서 노조 지도자들은 일자리를 지키려면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등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동안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도부도 사용자 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반대하면서, 대신 “생산성 향상”, 임금 동결 등에 협력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해 왔다. GM이 군산 공장 폐쇄를 발표하자, 일각에서는 희망퇴직과 전환 배치로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는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그러나 국내외 경험들은 거듭된 양보가 노동자들을 더한층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고, 결국 일자리도 지키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줬다.

호주 사례는 이런 점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호주 제조업 노동조합(AMWU) 지도자들은 GM의 “생산성 향상” 요구를 충족시켜야 공장 폐쇄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로 양보를 거듭했다. 조합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계약직 노동자들의 해고를 수용하고, 남아 있는 일자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희망퇴직에 눈을 감았다.

2013년에는 3년간의 임금 동결(실질임금 삭감)과 교대제 근무 변경을 통한 노동강도 강화 등에 타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GM은 그해 말 호주 정부의 자금 지원이 끊기자 곧바로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그 뒤로 공장 두 곳이 완전히 문을 닫은 2017년 말까지 4년이 걸렸는데, 노조는 이미 거듭된 양보로 조직력이 취약해져 이렇다 할 저항을 조직하지 못했다. 절정기에 2만 4000여 명이던 인력은 2017년에 950명으로 대폭 줄어 있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노조의 양보는 결코 일자리를 지키는 대안이 될 수 없다. GM이 군산 공장 폐쇄를 넘어 전체 공장의 철수까지 위협하고 나선 상황에서, 노조의 양보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장차 벌어질 더 큰 공격에 맞선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반대로 노조가 단호하게 파업을 선언하고 희망을 제시한다면, 노동자들이 실의에 빠져 희망퇴직에 이끌리는 것을 차단할 수 있고, 공장 폐쇄와 철수에 제동을 걸 투쟁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GM의 이윤 보장을 위해 세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 보장을 위해 국유화해야 한다 ⓒ이미진

효과적인 대안과 투쟁 수단

문재인 정부는 한국GM 군산 공장 폐쇄가 미칠 파장을 우려해 긴급하게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한국GM 경영 상황에 대한 실사, 경영정상화 방안에 대한 협의 등 뜬구름 잡는 얘기만 늘어놨을 뿐 일자리를 보장할 실질적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집권 여당의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홍영표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조의 “협력”을 주문하기도 했다. “과거 한국GM 노조는 (회사가) 아주 어려울 때 임금 동결, 무쟁의 선언을 한 역사가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부도 당시 노조 지도부가 취했던 거듭된 양보 교섭은 노동자들을 더한층 고통으로 내몰고 대량 해고도 막을 수 없었다. 무쟁의 선언은 투쟁의 족쇄가 돼서 이런 사태를 극복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새롭게 투쟁적 지도부를 선출했지만, 아쉽게도 그 지도부 역시 조건 후퇴를 양보하는가 하면 점거 파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그 결과 경찰들 손에 공장을 내 주고 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임금 동결”, “무쟁의” 운운하며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공장 폐쇄·철수에 반대해 GM 사용자 측에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철수의 대가를 치르게 해서는 안 된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면, 정부가 국유화를 단행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GM이 일자리를 쥐고 흔들며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 악화를 위협하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

국유화는 결코 비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GM은 애초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며 한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 받았는데도 또다시 수천억 원 지원을 요구하는 것을 보라. 이런 돈은 GM 사용자 측의 배를 불리는 데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 쓰여야 마땅하다.

물론 이를 쟁취하려면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공장이 폐쇄 위기에 놓였을 때 노동자들이 싸워 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공장 점거에 나선 노동자들은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공장 점거는 생산을 마비시켜 완강한 사용자 측에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다. 또 노동자들이 공장 안에서 감시하는 한 사용자들이 함부로 설비를 철수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효과 때문에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부도와 공장 폐쇄 시도가 잇따르자,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점거 투쟁이 이어졌다.

영국 자동차 부품업체(포드 계열사) 비스티온 노동자들은 사측의 공장 폐쇄 발표 소식이 나자 곧바로 공장 점거에 들어갔다. 첫날 벨파스트 지역 공장의 노동자들이, 그 다음 날에는 나머지 공장 두 곳의 노동자들이 점거파업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공장 문을 닫으려던 사용자 측은 노동자들을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미국 포드 본사가 직접 노조와의 협상 자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점거파업은 노동자들의 결속력을 높이고, 사회적 연대를 집중시키는 데서도 탁월한 효과를 낸다. 2009년 미국의 창틀 제조업체 리퍼블릭윈도스앤도어스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은 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이 투쟁은 비록 260명 규모의 작은 공장에서 진행됐지만,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공장을 점거하고 지지를 모은 덕분에 경제 위기로 실업에 내몰린 많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떠올라 승리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GM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지금,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저항에 나선다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GM과 정부에 압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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