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획 인터뷰:
“차별하지 말고 배척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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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앞두고 한결(필명) 씨에게서 트랜스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들었다. 인터뷰는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책갈피) 엮은이 정진희가 했다.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는 많은 차별을 받고 배척당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텐데요. 까다로운 법적 성별 정정 요건, 성전환 비용의 건강보험 미적용, 고용 차별, 화장실 이용의 어려움, 혐오범죄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본인이나 지인의 경험을 통해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성장기
제가 다른 아이들과 뭔가 다르다고 느낀 건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저는 편안하게 제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는데, 원피스처럼 상의가 긴 옷을 많이 입었어요.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애들이 제 의상을 보고 이상하다고 얘기했고, 그 때부터 제가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아이들의 괴롭힘이 심해졌고, 중학교 때는 맨날 울었어요. 왜 이런 것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걸까 하면서요. [나는 여자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에서 받아들이지를 않으니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 할머니가 저를 끌고 가서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학교 규정대로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셨어요.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찍기도 전에 빡빡 머리가 됐죠. 그때부터 계속 괴로운 상태로 지냈어요.
고등학교 와서는 열심히 반항했죠. 학교 규칙이 중학교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머리를 건들지 못하게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강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성별 정체성을 바꿔] 남자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노력했는데, 결국 대학교 가서 이게 다시 폭발한 거예요. 도저히 가면을 쓰고는 살기 힘들었어요.
가족
부모님께서 [저를] 옳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강제로 정신과 치료도 받게 했고, 남성호르몬을 강제로 투여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나마 지금은 엄마랑 남동생들은 저를 받아들이려고 해요. 그 외의 친척 분들이랑은 왕래를 끊다시피 했고, 고등학교 때 동창이랑도 연락을 끊고 지내요. 대학교 이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하고만 왕래를 하고 지내고 있어요.
처음에 부모님은 굉장히 격앙됐고 살벌했죠. 어렸을 때부터 집이 편안한 가정은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아시고부터는 심각할 정도로 정신적인 폭력, 육체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20대 중후반부터 따로 살았어요. 같이 살 때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수면 장애를 얻었어요.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인해서 다른 여러 신체적 증상들이 생겨서 몸이 서서히 망가졌어요. 혼자 살고 나서부터 신기하게 건강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모르는 사람이 괴롭히면 다시 안 보면 되고,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하면] 응징이라도 할 텐데, 가족은 그게 안 되잖아요.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언어적으로 폭력을 당하게 되면, 자존감이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추락해요. 소외감도 느끼고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혼자 살다가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어요. 기절하진 않았으니까 제가 119 불러서 실려가서 응급 치료를 받았어요. 그때도 외형상으로는 여잔데 주민번호가 달라서 병원 가서 좀 많이 힘들었어요.
다친 이후에 어머니가 와서 간병을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그래도 병원에서는 안 계시는 것보다 계시는 것이 저한테는 좋죠. 이후 부모님 댁에 내려와서 지냈어요. 아무래도 몸이 성한 상태에서 혼자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다가 [사고로] 4년 정도 다리도 못 쓰고, 가족들한테 받는 스트레스도 심했고, 그동안 [성별 전환] 수술하려고 벌어 놨던 돈도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상실감이 들었어요. 많이 속상했죠. 내가 다치지만 않았으면 하고요.
성별 정정과 트랜지션
법적 성별 정정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치료를 다 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요. 한국에서는 수술, 예컨대 고환 적출 등을 다 받아야지만 기회를 주잖아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 두 차례밖에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3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어야 해요.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죠.
저는 수술비를 여러 차례 모았어요. 그런데 모을 때마다 번번이 다른 급한 돈 쓸 데가 생겨 4차례나 날렸어요. 지금도 상황이 여유롭지 못해 [당장 수술을 받긴 어려울 거 같아요.] 그래도 외관상으로 [여성으로 보여서] 주변에서 배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병원 치료를 받을 때도 여자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편의를 봐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반면에 보수적인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수도권 쪽에 살다가 지방으로 이사 갔어요. 호르몬제가 다 떨어져서 처방 받으려고 다녔는데 지방의 산부인과 의료진들이 [진료를] 거부해요. “우리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받을 수가 없으니 더 큰 대형병원으로 가라” 하고요. 그런데 종합병원에서도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얘기했어요. 제가 2군데를 갔는데, 아예 진료를 거부당했어요. 그런데 접수했기 때문에 병원비를 납부하라고 해서 너무 화가 나서 싸우고 납부를 안 하고 나왔어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호르몬 치료를 받은 지 18년에서 20년 정도 됐어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죠. 그나마 지금은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셔서 [받고 있어요.] 저는 폐경기 여성이 치료받는 ‘프로기노바’라고 하는 약을 복용하거든요. 보통은 주사제로 맞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주사를 많이 맞아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주사나 약 복용이나] 별 차이가 없거든요. [약 복용이] 생활하는 데 있어서 더 편해요. 예를 들어 주사를 맞으려면 2주 또는 한달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평일에 산부인과에 다녀 간다는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약을 먹었어요.
호르몬 치료는 예전에 제가 수도권에 살 때 1갑 당 1만 5000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6개월 치를 끊어 줘요. 호르몬 치료의 일부는 건강보험이 약간 적용되는 것 같은데 저를 제외한 대다수가 보험 적용이 안 된다고 얘기하셔서 확인해 보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그런데 나머지는 정말 미용 시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험 처리가 전혀 안 됩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사시는 분들(트랜스남성)은 단순히 성호르몬 치료만 하더라도 수염도 나고 목소리도 낮아져서 외형상으로 남성으로 보이는 확률이 높아지는데, 트랜스 여성 같은 경우에는 변성기 때 만들어진 목소리도 쉽게 안 변하고 남자랑 여자랑 골격 차이가 커서 매일같이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조금 덜했기 때문에 그나마 편하게 살 수 있었어요. 그래도 저도 남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 머리를 2~3일 정도 안 감으면 남자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호르몬 치료를 한 지 이제 거의 20년이 가까이 되는데도 말이에요.
직장생활
[직장을 구할 때] 제가 남자로 주민등록번호가 뜨니까 입사를 거절당한 적도 많아요. 그래서 이력서를 내고 서류 통과해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머리도 짧게 자르고 남장을 해서 취업을 하러 다녔어요.
처음에 그렇게 입사를 했는데, 호르몬을 장기 복용하다 보면 신체적 변화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감추기 위해서 많이 신경 썼어요. 가슴을 가리기 위해서 스포츠 브라를 몇 겹씩 입는다거나, 내의를 타이트하게 입는다거나.
그렇게 직장에서 1년쯤 생활하다가 여름에 아마도 영업과장님과 몸을 가볍게 스쳤는데 그때 들켰죠.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사정 설명을 했어요. 다행히도 “뭘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냐? 처음부터 얘기를 했으면 편하게 직장 생활을 했을텐데” 하고 말씀해 주셔서 그때부터 직장 생활을 편하게 했어요. 남직원으로 있었다가 여직원으로 바뀐 거죠. 운이 좋았죠.
물론 이 직장 생활 전에 20대에 아르바이트 할 때는 불편함이 많았죠. 일단 주민등록번호로 생활을 해야 하니까. 20대부터 중후반까지는 주변 사람들한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수술을 준비했는데, 트랜지션 시일이 지나고 나니까 외형상으로 저의 모습이나 분위기가 바뀌니까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너 왜 그러냐?”, “설마 아니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친구들도 있었고.
이 지역[경상도]에 와서 고용 차별을 겪었어요. 일단은 외형상으로는 남자로 직장 생활을 하기 힘들 거 같으니까 있는 그대로 털어 놓고 일자리를 구해보자는 생각으로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 곳에 다 넣었어요. 100여 군데를 넣었는데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던 곳은 5군데 밖에 안 돼요.
4곳은 이력서를 보고 남자로 생각했는데 외형상으로 [그렇지 않으니] 긴가민가 하면서 이상하다고 얘기했고 제가 이러저러한 전후 사정을 말하자 거절했어요. 마지막 한 군데는 주민등록번호를 안 봤나 봐요. 면접까지 잘 봤어요. 그런데 나중에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했죠. 그러고는 3개월 후에 전화가 와서 다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하길래 이상해서 고용센터에 가서 물어보니까, 고용센터 직원 분들이 블랙기업이라고 말리시더라고요.
“왜 여기[경상도]로 이사를 왔냐?”, “보수적인 도시로 와서 왜 고생하냐”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면전에다 대놓고 [혐오적인] 얘기를 하는 경우를 만나본 적은 없어요. [면전에서] 흉측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저희 아버지밖에 없었어요.
화장실 이용
저는 여자 화장실에 다닙니다. 스스로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까 자연스러웠어요. 그래도 차라리 남자와 여자 구분을 짓기보단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낫지 않나 싶어요. 아예 성별중립화장실이라고 해놓고 칸막이를 일일이 만들어서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화장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 외 경험들
요즘은 커뮤니티나 사이트 같은 것들이 많아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다독여주고 해요. 제가 단체로 모여서 채팅할 수 있는 공간에 다녀보곤 했는데 사람들이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자존감이 없어요. 근본적으로 가족들한테 학대받고 주변 친구들한테 학대를 받아서 외톨이가 돼서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더라구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미 진작에 그런 것들을 튕겨버린 지 오래됐고 새로 만난 사람들끼리 돈독하게 지내고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제가 주민증록번호 1번이라는 걸 전혀 모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었어요. 아는 언니가 서프라이즈 하게 병문안을 혼자 왔다가 병원 로비에 이름 입력하면 병실을 찾아주는 기계로 제 병실을 찾았어요. 거기에 이름 옆에 성별이 뜨는 거에요. 그 언니가 재밌다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 와서 보여주더라고요. 이거 왜 이러냐고, 웃기다고요. 언니는 병원 실수로 생각했던 거죠. 그것 때문에 놀랐어요.
저는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제 귀가 알아서 필터링을 하거든요. 스스로 저를 여자라고 인식을 해 왔고 그게 몸에 베어 있어요. 때가 되면 돈을 모아서 [수술]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요.
요즘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부모님이 [트랜지션을]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고 아니면 대학교에 입학하고 바로 휴학한 다음에 수술비를 독하게 모으고, 수술하고 군 면제 받고 대학교 복학해서 직장 생활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렇게 빠르게 가는 분도 있는데 저같이 가족들한테 학대도 받고 고민도 하고 방황도 하다보면 자존감도 낮아져요. 마침내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계속 부족함을 느끼기도 해요. 예를 들어 자기 외모에 대해서 비하하거나, 계속 주변 눈치를 보거나. 그 족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들은] 남중, 남고, 군대, 공대 이런 데에서만 살다 보니 적응을 못해요. [특히 여성들과] 의사소통이 안 돼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여자로 사는 사람들도 남자들끼리 있을 때 하는 성적 농담을 하기도 하고요. 남자들 사이에서 치고 박고 살아 오다 보니까 그렇게밖에 클 수 없는 환경이잖아요. 젊을수록 심한데 그게 참 안타까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외과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마음가짐 등 내적인 부분도 필요해요.
책갈피 신간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 출간 기념 세미나(젠더와계급연구회 주최)에 참석하셨고 책도 구입해 읽으셨는데요. 세미나 참가나 이 책을 읽은 소감이 어떠합니까?
우선 흔치 않는 소재를 다뤄주신 책갈피 출판사에 감사를 드려요. 신간도서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이라는 주제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책을 구매하게 됐어요.
오랜 시간 여성으로 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보다는, 여성 또는 남성으로 이뤄진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살아오는 것이 익숙해요. 그러다 보니 트랜스젠더 여성 남성으로 따로 구분하는 걸 꺼려하는 입장이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쪽과는 교류가 없다시피 하며 살아 왔어요.
한번 아웃팅 당한 경험이 있어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주변 이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될 경우 뒤따르는 피해는 인생을 통째로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차별과 해방이라는 주제를 통해 뭔가 해결책이나 돌파구를 찾으려는 저자 분들의 생각을 알고자 책을 주문했고 우물 안에 있던 제게는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세미나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하고 강연을 듣고 수준 높은 질문과 답변을 하고...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것 그 자체에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거나 있어도 생계 유지를 위해,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폐쇄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이들을 안전한 양지로 끌어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가까운 거리가 아니지만 세미나 참가 신청을 했어요. 또한 이렇게 저자 분들과 교류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요.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평범한 사람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보행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도 많이 힘든데 집 밖을 나오게 되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힘들어요. 일단 도로 등이 모두 신체 건강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관공서의 계단이나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거나. 병원이나 은행 업무를 보거나 식료품 구매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처리하기 매우 어렵죠. 도심에선 택시를 부를 수 있지만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또 고난의 시작이거든요.
제가 이런 것들을 모르고 있다가 다리를 다치고 나서부터 심각하게 깨닫게 되었어요. 이렇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서 세금 낭비라고 생각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 논조가 저희[트랜스젠더]한테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막말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희도 똑같이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차별하지 말고 배척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를 거부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어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서 나와 다른 사람도 저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기독교 단체의 혐오 선동이나 충청남도에서 인권조례를 폐지한 것들을 보면 답답하거든요.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와 다르면 모두가 적이고 악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저는 개인적으로 싫어해요. 그런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권리 보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차별하지 말고 배척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트랜스젠더를 두고] 마음이나 의지의 문제라거나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고들 해요. 특히나 기독교 단체는 우리에게 변태라고, 죽으라고 얘기하잖아요. 상대방의 인격에 대해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애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처럼 말해요.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사람들이 그런 글을 보게 되면 자살 충동이 일어날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모르고 [이런 문제들을 스스로 조사하기엔] 번거로워하잖아요. 그래서 당사자에게 닥치지 않으면 몰라요. 실제로 다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보행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를 잘 모르는 것처럼요. 역지사지 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면, 왜 저 사람이 고통스럽게 사는지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요. 애초에 소통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우리] 얘기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네요.
또, 성소수자들이 꾸준하게 뭉쳐야 해요. 이런 곳[성소수자 모임]이 있다고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싶네요. 남들이 탐탁지 않아 한다고 해서 음지에서 머물면서 눈치만 보고 조그맣게 옹기종기 모여서 뒷짐만 지면 안 돼요.
물론 직장이나 생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 너무 오픈해서 활동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온라인에서라도 의견을 모으고 우리가 뭘 원하는지 우리의 의사가 반영되는 환경이 구성이 됐으면 좋겠네요. 저도 몸을 좀 추스르고 나면 오프라인 모임에도 참가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