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 출간 기념 세미나 취재기:
“트랜스젠더 차별에 반대하는 책이 출간돼 너무 반갑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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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젠더와계급연구회가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책갈피) 출간을 기념해 연 세미나 '트랜스젠더와 페미니즘'이 신촌에서 열렸다.
이 책은 영국의 트랜스 여성이자 노동조합 활동가, 마르크스주의자인 로라 마일스가 주요 필자인 책으로, 트랜스젠더 차별의 현실과 원인을 밝히며 해방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지지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주장한다.
국제적으로 트랜스젠더의 권리 문제는 특히 여성운동 내에서 뜨거운 논쟁이 돼 왔는데, 한국에서도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주장을 해 논쟁이 일었다. 1월 말에는 근본적 페미니즘 경향의 신생 출판사 ‘열다북스’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로 악명 높은 실라 제프리스의 논문을 엮은 책이 출간된다(이 책의 일부가 트랜스젠더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논란 속에서 열린 세미나라 세미나 신청이 금방 마감됐고 당일에도 참가한 사람이 있어, 6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강연장을 꽉 메웠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참가자 중에는 트랜스젠더(또는 논바이너리)도 여럿 있었다.
사회를 맡은 책갈피 출판사 편집자는 "[실라 제프리스의 책이 출간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이 책을 내려고 노력했다. 이 책이 지독히 차별받는 트랜스젠더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세미나를 시작했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의 공저자인 양효영 성소수자운동 활동가와 엮은이 정진희 젠더와계급연구회 상임연구원이 발표했다.
양효영 씨는 트랜스젠더 차별의 현실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차별의 원인을 설명했다.
"우선 트랜스젠더에 대한 끔찍한 차별의 현실을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일부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사람들은 아예 이런 현실 자체를 부인합니다.
"트랜스젠더는 오늘날 유난히 차별받는 집단입니다. 성소수자 권리가 상당 수준 확장된 서구에서도 트랜스젠더 차별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체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유독 트랜스젠더가 폭력적 혐오 범죄와 강간의 피해 경험이 높습니다.
"한국의 현실은 서구와 비슷하거나 더 나쁩니다. 한국은 성별정정 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유독 까다롭습니다. ... 박근혜 정부 때의 국가인권위원장은 성별정정을 요구하는 트랜스젠더에게 성기 사진을 요구한 판사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군대 문제, 학교에서의 차별, 주민등록번호에서 드러나는 차별, 막대한 성전환 비용, 열악한 일자리, 화장실 사용의 어려움 등을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양효영 씨는 트랜스젠더 차별이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와 함께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북미 원주민의 '두 영혼의 사람'들처럼 인류 역사 내내 자신의 태어난 성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았고 이것은 계급 발생 이전 여러 사회에서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계급사회가 등장해 여성 차별이 발전하면서 더 엄격한 성 역할과 성별 범주의 협소화가 강화됐고, 성별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비난도 시작됩니다.
"자본주의에서도 여성 차별과 트랜스젠더 혐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배계급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는 자본주의 가족제도가 그런 구실을 합니다. … 따라서 여성 해방과 트랜스젠더 해방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트랜스젠더와 페미니즘
이어 정진희 씨는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왜 트랜스젠더 권리를 방어하는 것이 차별받는 모두에게 이로운지 설명했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 내에서 소수입니다. 그러나 소수더라도 이런 태도는 차별받는 트랜스젠더를 더욱 고립시키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연대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대차게 논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 여성이 ‘여성의 공간’을 침해해 여성을 위험에 빠뜨린다거나, 여성으로 사회화되지 않아서 "진짜 여성"이 아니라거나,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며 현실과도 잘 맞지 않다.
“모든 시스젠더(타고난 성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도 똑같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계급에 따라 삶의 경험도 천차만별입니다.
“누가 더 차별받는지 경쟁하거나 누구의 경험이 진짜 경험인지 비교하는 것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차별을 공고히 하고 이 사회의 대다수를 지배하는 소수의 사람들일 겁니다.
“차별받는 한 집단의 권리가 신장되면 다른 차별받는 집단에게도 자신감을 줍니다. 따라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투쟁이 연결돼야 합니다. … 또한 차별받는 사람들의 투쟁과 노동자 투쟁이 연대해야 합니다.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보면 노동계급의 해방과 차별받는 집단의 해방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어진 청중토론과 다과회에서 참가자들 사이에 진지한 주장과 질문들이 오갔다.
한 트랜스젠더 참가자는 최근 트위터에서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받고, 실라 제프리스의 책을 출간하겠다는 소셜 펀딩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절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의 출간 소식에 희망을 얻어 참가했다. 책 출간 소식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며 책 출판에 감사를 표했다.
다른 참가자는 “한국의 트랜스젠더들이 숨어서 지내고 트랜지션[성전환]이 끝나면 커뮤니티에서 나가는 게 대부분”이라며 어떻게 하면 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힘을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한 대학생은 트랜스젠더 권리 운동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정진희 씨는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모임과 단체를 만드는 것을 환영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공격받을 때 잘 조직된 운동이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지하고 방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심한 차별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성소수자들의 다수가 커밍아웃 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성소수자임을 밝히면 해고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잘 조직된 운동이 나선다면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힘을 줄 수 있습니다.” 하고 답했다.
또한 정진희 씨는 노동계급 운동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운동이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별받는 사람들 다수가 노동계급에 속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은 차별을 부추기고 차별 받는 사람을 속죄양 삼는 자본주의 권력자들을 위협할 수 있는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전교조 조합원 참가자는 자신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뽑아서 ‘여장남자 대회’를 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이런 대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물었다. 여러 참가자들이 의견을 내놓았고, 이 외에도 여러 문제가 토론됐다.
이날 참가자 다수가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를 구입했고, 많은 사람들이 다과회에 참가해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다과회가 끝나고도 다수 참가자들은 근처 호프집에 가서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최근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가 더 가시화되고 트랜스젠더 단체들도 늘어나며 트랜스젠더 운동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성공회대학과 서울시에서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논의하고 있다. 경제 위기로 일자리와 복지가 축소되고 지배자들이 곳곳에서 차별을 부추기고 있다. 트랜스젠더와 여성 등 다른 차별받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게 중요한 때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즘 일부의 트랜스젠더 배제적 태도에 관한 논쟁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전진할 수 있도록 더 크고 강력한 운동을 건설하려면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무조건 옹호하며 여성해방이 트랜스젠더 해방과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 출간 기념 세미나가 성황리에 치러진 것이 매우 뜻 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