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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서비스:
국가가 직접 운영하고 직접 고용해야 한다

보육, 요양 등 한국의 사회서비스는 시장화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수익성 위주의 민간 사회서비스 시장이 팽창하면서 보육, 요양, 의료 등 주요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민간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사회서비스에는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데 그 운영은 민간업자들이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서비스 시설은 이윤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는 턱없이 적게 공급되는 한편,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에게는 형편없는 임금과 노동조건이 강요돼 왔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은 사회서비스의 질도 낮출 수밖에 없다.

열악한

“보육 노동자들은 어린이집 원장들의 소왕국에서 일하고 있다.”(이현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 1·2 지부 대표지부장) 어린이집 원장들은 제멋대로 본인 수당금액을 늘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보육 교사들을 해고로 위협하는 등 온갖 갑질과 횡포를 부리고 있다. 최근 노동시간 단축으로 휴게시간이 의무화됐지만, 인력 충원이 안 돼 보육교사들은 여전히 휴게시간에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은 적어도 생활임금 수준의 임금과 월급제 시행을 간절히 원한다. 장애인활동지원사도 마찬가지이다.

시설요양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인데다 올초부터는 처우개선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치매 환자나 혼자 몸을 가누기 어려운 환자들을 부족한 인력으로 돌보느라 낙상 사고도 자주 일어나 인력도 충원하길 원한다.

재가요양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에 3~4시간밖에 일하지 못해 임금이 쥐꼬리만 하다. 대부분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인데 몸을 쓰는 일이 많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임금을 병원비로 날리고 있다. 그래서 2인 1조로 팀을 구성해 노동강도를 완화하길 원한다.

사회복지 시설에서는 노동법 위반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사회복지 노동자들은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국가가 책임져라

이런 시장화 폐해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국가가 충분한 재정 지원과 공공인프라 확충으로 사회서비스 기관을 직접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면 일자리 안정과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노동조건이 개선된다면 높은 이직률도 낮아져 숙련된 노동을 제공할 수 있기에 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9월 28일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공단(원) 설립, 사회서비스 좋은 일자리 확충 촉구 기자회견 ⓒ제공 공공운수노조

문재인 정부의 생색내기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문재인 정부는 광역지차체별로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사회서비스 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2022년까지 보육·요양 일자리 중 25만여 명(40퍼센트)을 공공으로 전환하는 등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34만 개 창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여전히 사회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민간으로 남겨 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사회서비스공단 계획이라도 하루 빨리 시행돼 처우가 개선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을 시행하지도 않고 사회서비스원으로 후퇴하는 안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원 추진 계획은 5월 4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법안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국가의 재정 지원 계획이 들어 있지 않고, 공공인프라 확충 계획도 빠져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재정 지원을 최소화하고, 시장을 보호하고자 사회서비스원의 대상 규모와 해당 분야를 축소시키려는 것이다. 민간위탁 된 국공립시설 중 신규 시설과 위·불법을 저지르거나 평가가 저조한 시설만 사회서비스원에 포함되고 대부분은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한다. 즉, 전체 사회서비스 중 극히 일부만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는 재정 지원을 최소화해 사회서비스원 소속 시설들이 자체 수입으로 운영되게 하고 경영평가도 시행하려 한다. 그리 되면 시설들은 수익성 압박에 시달리게 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서비스의 질 향상을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남인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분야별 회계 구분이 있어 수익성이 좋지 않은 시설들은 수익성 위주로 운영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남인순 의원 법안에 공공인프라 확충, 정부 재정 지원 등을 명시해 대체법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발의에 필요한 10명의 국회의원을 채우지 못해 아직 발의하지 못한 상황이다.

후퇴

이런 사회서비스원 설립 계획조차 자유한국당 등 우파 야당들과 민간업자들은 격렬하게 반대해 왔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의 어린이집 원장들은 자신들의 이윤이 줄어들까 봐 과거에 반대했던 유보 통합(유아교육인 유치원과 보육인 어린이집을 하나로 합침)을 위해 보육을 사회서비스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이 사회서비스원 설립으로 후퇴했지만 이조차 지지부진하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가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인순 의원이 발의한 법안조차 연내 통과가 불투명하다.(우여곡절 끝에 법안이 통과돼도 누더기가 될 공산이 크다.)

보잘것없는

내년 사회서비스원 관련 예산은 서울, 경기, 경남, 대구 광역지자체 시범사업에 고작 68억 원을 배정해 놓은 게 전부다.

이대로라면 내년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으로 창출될 일자리의 규모는 매우 보잘것없고 일자리의 질도 형편없을 것이다. 내년 예산 계획에 있는 추가 일자리는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시간제 일자리 중심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범사업을 가장 먼저 추진하고 있지만, 고용 규모는 소규모일 것이다. 민간업자의 반발과 예산 부담을 이유로 보육시설은 사회서비스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시는 사회서비스원 소속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준다고 밝혔지만 재가요양, 장애인활동지원사 등의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전일제 및 월급제 시행에는 한참 못 미친다.

심지어 내년에 시범사업만 시행하고 결과가 좋지 않다며 실제로 추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 후퇴를 비판하며,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충과 정부의 재정 지원과 책임이 강화된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요구하며 10월 13일 돌봄노동자 행진을 한다. 공공운수노조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의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사회복지 노동자가 참여한다.

민주노총이 일자리 공공전문위원회에서 복지부와 사회서비스원 계획과 관련해 공공인프라 확충, 재정 지원, 임금 가이드라인 등에 대해 논의해 왔지만 이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바람대로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공공인프라 확충과 재정 지원에 열의 없는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시장에 맞서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