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경제 공황을 배경으로 치르는 4·15 총선:
노동자·서민층에게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4·15 총선 국면이 본격 시작됐다. 지금 주류 정당들의 행태를 보면서 20대 청년들은 선거가 원래 이렇게 더럽고 웃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소수파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라고 그토록 요란하게 떠들어대던 여당이 직접 정당투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임한다. 민주당은 심지어 선거제 개혁을 두 전직 대통령(김대중·노무현)의 유지라며 정치 개혁의 상징처럼 다뤄 왔었다.
물리적으로 쇠지렛대까지 동원하며 선거제 개혁에 결사항전으로 저항했던 미래통합당은 법 통과 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위성정당을 만들어 의석수를 늘리려고 한다.
주류 양당의 위성정당들은 3월 3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급하는 국고 정당 보조금도 수십억 원 받아 냈다(미래한국당 61억 원, 더불어시민당 24억 원). 이중으로 국가 보조금을 탄 셈이다. 이 당들이 가난한 서민이 복지예산 몇십 만 원을 중복 수령했을 때 어떻게 나올지를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다.
더불어시민당은 3월 31일 연합정당 티를 낸답시고 여러 참가 세력이 낸 공약들을 모아서 중앙선관위의 총선 사이트에 올렸다가 기본소득 60만 원 공약 등이 민주당 기조와 다르다는 비판을 받자 바로 내렸다. 다음 날엔 반대로 민주당의 10대 정책을 그대로 올렸다가 너무 노골적으로 위성정당임을 드러낸다는 비판을 받고 또 삭제했다. 그야말로 촌극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주류 양당을 비웃는 것 이상의 정치적 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정치 권력을 나눠 갖는 주류 양당이 제1당 지위를 차지하려고 최소한의 대의명분과 염치도 보이지 않는 것은 공식 정치가 주류 양당 간 불신에 기초해 양분돼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중간층, 무당층으로의 득표 확장보다 각자 자신의 지지층 결집에 중점을 두는 것은 주류 양당이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국민적 지도력을 확보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4·15 총선의 쟁점
이번 총선의 배경과 쟁점은 다음 3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코로나19 사태라는 보건 위기 대응 문제다. 둘째, 코로나19 사태가 방아쇠를 당긴 경제 공황 문제다. 셋째, 문재인 정부 만 3년 시점에서 치러지는 정권 중간평가 선거다.
문재인 정부는 3월 중순까지 지지율 위기를 겪었다. 거듭된 개혁 배신에 이어 방역에 실패해 책임론이 불거진 탓이다. 정권 심판론이 유력한 선거 프레임으로 부상하며 통합당 지지율이 올랐다. 정부·여당은 정부 책임론을 덮으려고 신천지 마녀사냥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집회 금지, 강제 검사 등 권위주의적 수단까지 동원해 겨우 감염 확산을 줄였다.
3월 중순부터 미국과 서유럽 나라들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고 사망자가 늘자 문재인 정부는 서구 정부들의 좀 더 열등한 대처 방식과 비교해 한국 정부가 대응을 잘했다고 프레임을 역전시켰다.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최근 반등했다. 4월 1일 〈한겨레〉의 단독 보도를 보면, 민주당 내부 선거활동 지침은 조국 사태 등 불리한 이슈는 물타기해서 피하고 대신 코로나 대응 성공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려고 통합당은 경제전문가 이미지가 강한 김종인을 영입하고 정부의 “경제 실패론”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공천에서 탈락시킨 현역 의원들의 무소속 출마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는 협박으로 후보 사퇴를 시키고 있다. 어떻게든 반사이익을 최대한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와 우파 정당인 제1야당이 모두 타국 정부의 실패나 자국 정부의 실패에서 ‘반사’ 이익에 기대려고 한다.
기업 살리기에 쏠린 정부 대책
정부의 서민 생계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3월 30일 발표한 정부의 지원 방안은 액수도 불충분할뿐더러, 중위소득 서민들은 자기가 받는 대상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헷갈린다. 총선 때문에 다급해진 민주당 지도부의 지원 규모·액수 확대 요구를 청와대와 경제관료들이 함께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총액이 10조 원에도 못 미치는 이 안조차 지급 자체가 5월 이후로 돼 있어서 긴급한 필요에 부합하지 못한다. 지급 여부가 아직 미정이다.
그런데 미래통합당은 이 미약한 정부안조차 ‘현금 살포를 통한 매표’라며 반대한다.
정부·여당과 통합당 모두 균형재정(사실상 긴축)을 강조한다. 거의 모든 정부들이 경제 침체를 막겠다고 대규모 재정 투입을 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재정 정책에 매달리는 건 어이없다. 선거를 앞두고도 정부의 태도가 이런 것은 국민 대중을 설득할 위기 해법과 대안이 없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그러나 정부가 기업 지원에는 100조 원을 투입하느니, 무기명 국채를 발행하느니 하는 것을 보면, 진정한 쟁점은 재정 적자 여부가 아니라 누구에게 돈을 쓰고 누가 그 부담을 질 것이냐 하는 문제다.(굳이 무기명 국채를 고려한 것은 상속세·증여세를 피하려는 부자들의 거래를 돕거나 부정한 정치자금 등 검은 돈 세탁의 의도가 의심된다.)
기업 살리기 예산이 노동자들에게 흘러갈 가능성도 거의 없다. 최근 산업은행 등에서 1조 원을 대출받기로 한 두산중공업이 인력 감축을 멈추지 않듯이 말이다. 무기명 채권 발행이 거론되자마자 전경련 기관지 격인 〈한국경제〉가 4월 1일 찬성 사설을 냈다.
경제 관료들은 재정적자를 실제로 두려워하는 듯한데, 기업주들이 소득 지원에 재정을 쓰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경총은 최근 법인세 감면 등과 함께 노동개악을 정부에 촉구했다.
기업주들은 이 위기를 이용해 노동계급의 사기를 떨어뜨려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고 착취율을 높이려는 듯하다. 이는 기업주들의 두려움이 크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세계시장의 침체는 수출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 더 불리할 것이다. 외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문재인 정부가 한사코 경제 활동의 국제 이동은 막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복합 위기 속에서 노동자·서민은 위기에 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미친 여파로 어떤 노동자들은 과로와 감염 위험으로 내몰리고, 어떤 노동자들은 실직을 당하거나 임금 소득이 사라지거나 대폭 깎일 위험에 내몰린다. 영세 자영업 같은 서민층에서도 소득 위기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진보 염원 대중에게 민주당 차악론은 설득력도 없고 오히려 해로운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참가론은 오류이다. 한국노총이 민주당 후보들을 친노동 후보라며 지지하는 것도 잘못이다.
아래로부터의 저항
문재인 정부가 방역 ‘성공’을 자화자찬하지만, 이제껏 방역망이 뻥 뚫리는 것을 막은 것은 방역 과정에서 과로로 죽은 공무원들, 환자를 통한 감염도 불사하고 헌신한 일선 의료진과 보건 노동자들(특히 대구 지역)의 희생이 있어서다. 이런 방식이 지속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감염 확산이 잦아들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병상이 부족해지고 있다.
최근 대구 지역에서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돼 운영됐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의료 인력 포함 계약직 5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대구시와 병원 모두 책임을 떠넘기는 실정이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에서 시장경제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은 여전하다.
해외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 역유입 가능성도 커졌다. 문재인은 입국 제한을 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지만, 해외 여행객 등의 입국은 사실상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문재인의 국제 교류 유지 방침은 사실은 국가간 외교와 기업 활동에만 적용되는 것인 셈이다.
이처럼 위기의 수준이나 정부·여당의 개혁 배신과 친기업적 위기 대응 기조는 노동운동과 진보·좌파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보여 준다. 싸울 자신감 수준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노동자와 청년들은 진보정당에 투표해야 한다.
반면 3월 하순 여론조사들에서 진보정당들의 지지율이 낮게 나온 것은 안타깝다. 특히 정의당의 지지율이 기대치보다 낮다. 물론 정의당 지지가 높게 나온 조사도 있고, 위기가 심각해지며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으므로 기회의 문이 닫힌 건 아니다.
최근의 진보정당 지지율 저조는 노동운동이 정부의 방역 노력에 무비판적으로 협력한다는 기조 아래, 필요한 저항을 방기하며 시간을 보낸 탓이 크다. 대중 속에서 수동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면, 통합당의 지지율 상승에 대한 반발로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진영 논리 재강화)을 막을 방파제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이런 상황을 탈피하려고 민주당과의 차별화 기조를 꽤 부각시키는 듯하다. 위성정당 참여를 거부한 뒤 민주당의 꼼수와 비난에 맞서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이런 방향을 채택한 것은 다행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민주당 비판에 주춤거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은 면이 있다. 가령 비례 위성정당 공천 개입을 이유로 통합당의 황교안만 고발한 일이 그렇다. 지난해 가을 조국 사태 국면에서 정의당이 노동계급과 청년층의 정당한 계급적 분노를 대변하고 나섰다면 지금 조금은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을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하면서 효과적인 대응은 노동운동이 위기에서 노동자·서민 대중의 삶을 지킬 요구들을 내놓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총의 계급투표 조직과 진보정당들의 선거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