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
현대제철 서른다섯 번의 죽음, 그 이유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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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년 사이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만 35번의 죽음이 있었다. 기계에 끼이고, 가스에 질식하고, 철재에 깔리고, 추락하고, 감전되고, 열기 속에 과로하고, 암에 걸렸다.
한 달 전인 2월 20일에도 컨베이어 벨트 협착 사고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언론의 반짝 관심조차 별로 받지 못했다.
현대제철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심층 취재하려고 당진으로 향했다.
전국 다섯 곳에 위치한 현대제철 공장 중 핵심인 당진 공장은 쇳물부터 최종 철강 제품까지 만들 수 있는 일관제철소로, 여의도 면적의 2.5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공장 담벼락을 따라가다 보면 해변가에 인접한 공장 지대가 나온다. 철광석 등 원료가 들어오는 곳이다. “1급 보안”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이 공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일찌감치 막아 선다. 비교적 인적이 드문 이 곳이 2월 20일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사망한 노동자는 외주업체 소속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아랫면에 있는 커다란 도르래(풀리)에서 벨트를 멈춘 채 작업하고 있었다. 2미터 남짓한 간격을 두고 바로 옆에는 벨트 네 개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원료가 지나갈 때마다 발생한 분진이 가득했다. 바닥 어떤 곳은 분진이 발목 높이까지 쌓여 있을 정도였다. 공기 중에도 많아서 안 그래도 조명이 약해 어두운 시야를 한층 더 가렸다.
노동자는 부품을 가지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작업 중이던 벨트가 아닌 바로 옆 벨트 풀리에 협착돼 쓰러진 채 발견됐다.
아래 영상은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를 통해 입수한 사고 현장 모습이다. 40초부터 보이는 것이 노동자가 협착돼 사망한 풀리다. 머리카락이나 옷 자락만 끼어도 협착될 수 있는 위험한 설비임에도, 접근을 막아 주는 펜스망(방호울) 없이 드러나 있다.
지회 사무실을 방문해 더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홍승완 지회장, 김한성 부지회장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한 정규직 노동자가 함께했다.
모든 게 돈이니까
홍승완 지회장은 공장 설계부터 노동자들의 안전이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을 대비하는 안전 투자는 회사 처지에서 최대한 아껴야 할 ‘비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컨베이어 벨트들 사이 사이에 ‘안전 통로’가 있어요. 제 키가 1미터 75센티미터인데도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야 해요. 자칫 머리가 부딪히면 몸이 휘청하더라고요. 바로 옆에서는 컨베이어 벨트가 쿠구궁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돌아가요.
“난간이 있긴 한데 법적 기준은 1미터 20센티미터예요. 근데 워낙 바닥에 분진이 많이 쌓여 있다 보니까 [분진을] 밟고 서면 안 그래도 낮은 난간 높이가 소용이 없어져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키도 크잖아요. 옆에서 툭 치면 벨트 쪽으로 얼마든지 쉽게 넘어질 수 있어요.
“벨트 아래 쪽도 난간이 촘촘하게 막힌 형태가 아니라 뚫려 있어서 잘못 넘어지면 밑으로도 기계에 끼일 수 있죠.
“통로 바닥에 분진이 워낙 많아서 어디가 삭아 있는지도 알 수 없어요. 잘못 밟으면 추락사죠. 이게 무슨 ‘안전 통로’인가 싶어요. 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죠. 모든 게 다 돈이니까.”
비상 정지 장치인 풀코드 스위치는 고(故) 김용균 씨가 사망했던 태안 화력 현장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풀코드 스위치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군데군데 고리를 걸어 길게 연결한 줄이다. 이 줄이 느슨할수록 멀리 잡아당겨야 스위치가 반응한다.
“위급 상황에 풀코드 스위치가 쓸모 있으려면 줄을 순간적으로 탁 당겨야 하는데, 회사는 줄이 팽팽하면 기계가 오작동할 수 있다면서 황당한 변명을 해요.”
노사합동 안전 점검 결과를 보면, 조명등 중 절반에서 3분의 1가량이 켜지지 않았고 사고 현장의 조도(밝기)는 30럭스에 불과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 제21조(통로의 조명)에 규정된 조도는 75럭스다.
이곳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위험한 환경인데도 주변이 어둡고 분진이 많아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장소다.
“같은 원료 이송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만 벌써 세 번째 사망이에요. 2010년에 노동자가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추락해 협착되는 사고가 있었어요. [위층 통로에서] 점검 작업을 하다가 아래 개구부가 열려 있는 걸 못 본 거죠. 현장에는 분진이 많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조명도 없었어요.”
김한성 부지회장이 얘기를 이어받았다.
“11시 28분쯤 야간 출근해서 사고 난 거였거든요. 당시에 구조한다고 사다리차가 왔는데 거기 계단이 엄청 좁아요. 들 것을 가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잘 안 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두 시간 정도 지체됐죠. 원래는 조명이 없었는데 다음 날 노동부에서 들어온다고 해서 회사 조명팀이 아침에 조명을 달더라고요. 노동부가 조사 나왔을 때 이러는 거죠. ‘여기 밝은데 왜 빠졌냐’고. 저는 당시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는데 정말 황당했어요.”
소 잃고 외양간 찔끔 고치기
옆에 있던 정규직 노동자가 공감했다. 원료 검사 업무를 하는 그는 원료 이송 공장인 사고 현장을 자주 방문한다.
“안 그래도 어두운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진이 조명등에 들러붙어서 점점 더 어두워져요. 특히 석탄이 지나가면 시커먼 분진이 나면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 허다하죠. 바깥에서 현장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안전 카메라도 똑같아요. 벨트 위에 지나가는 게 석탄인지 철광석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인데 사람이 보이겠어요? 저희[정규직 노동자들]도 현장에서 카메라를 주기적으로 닦아야 한다고 요구해요. 안전과 직결되니까.”
홍 지회장과 김 부지회장은 2016년 같은 공정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를 이어서 설명했다.
“당시 사망한 노동자는 1인 1조로 작업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뒤에서 설비가 오는 걸 못 보고 기계에 쓸려 들어간 거죠. 그 노동자는 작은 공간에 몸이 낀 채로 무전기를 꺼내 살려달라고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사내 구조대가 처음에는 들 것만 가져 왔어요. 장비를 부랴부랴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차량용으로 달랑 하나 가져와서 설비를 뜯어낼 수 없었죠. 나중에 산소로 절단해서 꺼냈어요. 그 노동자는 한 시간 동안 기계에 낀 채 서서히 의식을 잃어 사망했어요.”
비정규직지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7~2018년 2년간 당진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총 137건 발생했다. 기계 끼임(협착)이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충돌이 31건, 넘어짐이 29건, 추락 13건, 고온 접촉 10건 등이었다. 그러나 이 중 절반은 산재가 아니라 공상(회사 비용으로 보상하는 것) 처리됐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생산 라인을 담당하고 있어 위험 작업도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비정규직은 산재를 당하면 평균 임금의 70퍼센트밖에 못 받아요[정규직은 100퍼센트]. 안 그래도 정규직 대비 임금이 60퍼센트고 복리 후생도 없는데 말이에요.
“예전에는 산재 은폐가 많았어요. 노조가 생기고 나서는 많이 없어졌죠. 근데 노동자들이 새끼 손가락에 금 가는 정도로는 산재 신청을 잘 안 하려고 해요. 산재 신청을 하면 하청 업체가 무재해 포상금을 못 받거든요.
“산재 신청을 한다고 다 쉽게 처리되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 ‘골병’이라고 하는 근골격계 질환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재해는 산재 판정이 잘 안 나요.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으면 뭐해요. 현실이 바뀌지 않는데. 산재 신청을 하고 하청 업체랑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를 꾸려 봤자 설비에 대한 권한을 가진 원청이 없기 때문에 소용이 없어요.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설비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데 개선 요청서를 보내면 1년이 지나도 그대로입니다. 문의를 하면 “언제 신청서를 보내셨죠?”, “서류가 없어졌어요”라고 해요. 그렇게 신청서를 또 보내고 두 달 후에 물어 보면 “검토 중입니다” 하고. 또 2년이 지나가고.
“저희는 원하청 공동 산보위 구성을 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측은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꼴이 될까 봐 극구 거부하죠.”
2013년 아르곤 가스 누출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금속노조 현대제철 내화조업정비지회 신승희 지회장은 원청이 하청업체와 재계약을 할 때 보는 기준 중 하나가 안전 사고 빈도인데, 산재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하면 하청업체가 인센티브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청의 근본적인 안전 투자 없이 산재 발생이 줄어들 리가 없다. 하청업체는 산재 은폐를 시도한다.
사고 현장에는 3월 18일부터 천안노동지청의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만이다. 비정규직지회는 이번 특별근로감독도 요식 행위에 그칠까 우려한다.
당진 공장에는 이미 수차례의 특별근로감독과 수십 차례 정기·수시 감독이 이뤄진 바 있다. 2013년 아르곤 가스 누출 사고 직후에는 1123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빛 좋은 개살구
상대적으로 빈도가 적긴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도 결코 중대재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007년 이래 사망한 노동자 5명 중 1명은 정규직 노동자였다.
특히 2017년 12월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28살 젊은 청년이었다. 당시 그의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이 노동자는 기계 점검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아무도 작동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움직인 기계에 두 차례나 끼어 사망했다.
당시 현장 조사에 참여했던 김유정 변호사(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 충남사무소)는 사고의 원인이 기계 오작동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만약 기계 오작동이 원인이라면 다른 설비에서 언제 어떻게 재발할지 모를 심각한 문제다.
당시 노조는 같은 설비를 사용하는 전체 공장의 작업을 중지하고 원인을 규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천안노동지청은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 없이 작업 중지를 해제해 버렸다. ‘특별근로감독에 준하는 정기 감독’을 실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일부 공정에 대해서 5일 동안 부실하게 점검하고 끝나 버렸다.
문재인은 2017년 7월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사망 사고 발생 시 작업을 중지한 뒤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들어 안전 확보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노동부는 ‘중대 재해 발생 시 작업 중지 명령·해제 운영 기준’ 지침을 발표해서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 확보됐다”고 해야 작업을 재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노동부의 직접 작업중지 명령은 이전 정부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일이긴 하지만, 각 노동지청들은 충분한 안전 실태 점검과 대책 마련 없이 금세 작업중지를 해제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산업재해는 매해 늘었다.
2017년 12월 당진 공장에서도 이런 보여 주기식 작업중지가 반복됐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불안한 일터로 다시 발길을 옮겨야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좌파 지회장이 이끌고 있던 정규직노조 집행부도 이 문제로 더는 투쟁하지 않았다.
이윤 경쟁
현대제철이 만든 홍보 영상에는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무재해 100년 제철소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멘트가 뻔뻔스럽게 흘러 나온다. 영상 속 시뻘건 쇳물에서 산재로 죽어나간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보이는 것만 같다.
제철소에서는 뜨거운 쇳물이나 최대 몇 백 톤에 이르는 철강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어디 하나 안 위험한 곳이 없다. 노동자들은 용광로에서 흘러 나오는 쇳물을 밀어넣거나, 한 삽에 10킬로그램 정도 되는 쇳가루를 퍼 올린다.
사측은 용광로를 식히지 않으려고 공장을 24시간 불철주야로 돌리는데, 야간 노동은 산재 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다. 2004년에 인수한 옛 한보철강 공장 설비는 많이 낡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1970년대부터 시장을 독점해 온 포스코에 비해 뒤늦게 뛰어들었음에도 현대그룹 계열사라는 이점을 이용해 성장했다. 특히 2008년 미국 발 경제 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던 속에서도 2011~2013년 당진 공장 일관제철소 건설과 2015년 현대하이스코 합병 등을 거치면서 덩치를 급속도로 키웠다.
그 치열한 이윤 경쟁 속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은 내팽개쳐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도 2007년에서 2013년 사이에만 10배 늘었다.
2012년 9월 5일부터 11월 9일까지 일관제철소 건설 현장에서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한 달 간격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해 두 달 사이에 6명이 사망했다. 당시 하청 노동자들은 부족한 인력에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렸다.
2013년에는 아르곤 가스 누출 사고를 비롯해 12명이 사망했다. 회사는 1200억 원을 안전에 투자하겠다고 했다가 사고가 반복되자 이를 5000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돈이 다 어디로 간 건지 현장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해 12월 정부는 당진 공장을 “안전 관리 위기 사업장”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특별관리감독 첫날부터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현대제철은 일간지에 대국민 사과를 실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고열 속에 용광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나 너무 힘들어” 한 마디를 남기고 쓰러져 사망했다.
150여년 전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공장 노동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2019년 당진 공장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빈틈 없이 설치한 기계들은 계절처럼 규칙적으로 사망자와 부상자의 명단을 제공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든 높은 온도, 원료의 먼지로 가득 찬 공기, 고막을 찢는 소음 등등으로 말미암아 모든 감각기관이 손상된다. … 자본의 수중에서 [공장은] 작업중 노동자의 생명에 필요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빼앗아 가며, 생명에 위험하고 건강에 해로운 부수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모든 수단을 체계적으로 빼앗아 가는 것으로 변한다. … 공장을 ‘완화된 감옥’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부당하겠는가?”
자본주의 하에서는 철강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만든 기계가 노동자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돼 돌아온다.
공장은 어딘가 사람이 죽고 다쳐야 그 자리라도 찔끔 개선이 된다. 이런 식이라면 그 드넓은 당진 공장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회사가 입에 달고 사는 “안전 100년”이 올까?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소박한 바람을 진정으로 실현하려면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 경쟁에 따라 돌아가는 현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해야 한다.
철강 시장의 지분을 놓고 현대제철·포스코 등 국내외 자본가들이 끝없이 경쟁하는 한, 각 공장 노동자들의 생명이 마모되고 위험으로 내몰리는 일 또한 반복될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뿌리 뽑고, 안전 대책과 처벌을 강화해서 현장에 적용하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도전의 중요한 일부다.
더는 동료의 죽음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는,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장시간·야간 노동에 휘청거리다가 죽고 싶지 않다는 노동자들의 지극히 당연한 요구에 현대제철 사측과 문재인 정부는 즉각 응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