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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 문재인 정부 2년 KBS 특별대담:
책임 회피와 개혁 후퇴 변명으로 채운 80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파기도 재확인

문재인 정부 2년을 맞아 특별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가 5월 9일 저녁 실시간 중계로 방송됐다. KBS 송현정 기자와 문재인 대통령이 일대일 심층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 이 대담에서 문재인 정부의 곤란한 처지가 잘 드러났다. 문재인은 좌우 눈치를 다 보면서도 개혁 후퇴와 배신을 변명하기 바빴다.

ⓒ출처 청와대

대담 시작 전 방송된 영상은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킨 촛불의 연장선에 있음을 드러내려고 했다. 문재인도 대담 초반에 자신의 정부가 “촛불정신 위에 서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주 뒤늦게 촛불에 올라 타 집권에도 성공한 문재인은 촛불 염원을 일관되게 대변한 적이 없다. 촛불의 눈치도 봤지만,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수장으로서 우파의 눈치도 봐 왔다.

이번 대담에서도 그런 점들이 계속 드러났다. 가령 대담 4시간 전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을 비난하고 대화를 위태롭게 한다며 경고하는 말도 했지만, 대북 지원을 위한 여야 회담도 제안했다.

헌법 파괴에 대한 적폐 수사를 멈출 수 없다면서도, “선 적폐청산” 발언은 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혜 사면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은 판단할 때가 아니라고만 했다.

박근혜와 뇌물죄 혐의로 얽혀 재판 중인 삼성 이재용을 챙기는 것에 대한 비판에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라”고 답했다.

중도파 자유주의자로서 문재인은 지난 2년 동안 촛불과 우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자신의 국정 주도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노동개악이나 탈핵발전 같은 첨예한 쟁점들에서는 노동계 일부 지도자와 온건한 NGO 지도자들과 진보 지식인들 일부를 끌어들여 사회적 대화 시도를 했다. 이 것들은 진보 개혁 염원의 실현보다는 그에 못 미치거나 심지어 역행하는 문재인 정부의 실천(개악)을 정당화해 주는 수단이었다.

사실 문재인의 개혁의 진정한 핵심은 한국 자본주의를 사용자들 편에서 효율적으로 개편하려는 것이었지, 촛불 운동이 표현한 여러 불만과 요구에 담긴 친노동 진보 개혁을 실현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 계승에 대한 언급은 시기와 쟁점에 따라 편차가 심했다. 지난해 문재인 지지율이 높아 진보 개혁을 실행할 여지가 많아 보였지만, 문재인은 오히려 자한당과 손잡고 노동개악을 개시했다. 임기 첫해에는 당시 북한에 전쟁 불사의 자세로 임하던 트럼프의 방한에 반대하는 운동 측에 “촛불 집회에서 보여 준 질서 의식을 보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촛불의 현장인 광화문 광장을 경찰버스로 봉쇄했었다.

필요할 때만 찾는 “촛불정신”

지금 우파와 갈등이 두드러지는 국면에서 문재인은 촛불정신 계승을 강조한다. 촛불의 반우파 정서 덕을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스스로 반우파에도 일관되지 않고, 진보 개혁 염원과는 점점 멀어져 왔다. 박근혜 퇴진 촛불의 주요 요구 중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말고 이뤄진 게 뭐가 있는가? 오히려 노동개악, 친기업 규제 완화 같은 박근혜 적폐 계승 정책을 우파와 손잡고 추진했다. 이처럼 말과 실천이 다르니, 문재인의 화법도 “유체 이탈”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같은 “행위가 거듭 된다면 지금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북한 측에 경고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문재인은 북한 위협을 핑계로 한 사드 배치 강행, 미국산 무기 수입 등 군비 증강, 한·미 합동 군사훈련 등을 계속해 왔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9일, 미국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를 시험 발사했지만 문재인은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북한의 5월 4일 발사 사흘 전에도 미국은 미니트맨3를 시험 발사했었다.

경제 실적 악화에 대한 답변도 유체이탈 그 자체였다.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할 것은 거시적으로 한국경제가 크게 성공을 거뒀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국민들에게 고르게 분배되지 않고 있고, 아직도 양극화가 심하고 소득이 낮은 계층의 소득이 늘지 않기 때문에 해결을 못하고 있다.”

경제실적은 자기 공이고, 분배 악화는 그냥 남 얘기하듯 한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기업 주도 성장을 정부의 기조로 삼아서 말뿐이었던 소득주도성장으로 표현된 분배 개선 약속을 내팽개친 건 바로 본인이었는데 말이다. 그 배신의 상징이 준다고 했다가 도로 빼앗은 최저임금 연쇄 개악이었다.(또 하나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인데, 이는 대담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최저임금 관련 발언도 모순 투성이였다. 문재인은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므로 대통령이 관여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는데,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이원화해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하게 하는 개악을 국회에 요구하고 있는 건 문재인 자신이다.

그래놓고는 이내 지난 2년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노동자의 임금이 개선된 건 현 정부의 성공한 개혁이라고 자랑했다. 그리고는 다시 또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대선 공약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공약 파기 재확인). 경제에 부담이 된다면서 말이다.

대담 막판, 버스 파업 대책 질문에 “요금 인상 필요”를 언급한 것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 수백만 명을 당황스럽게 하는 말이었다.

한겨울에 촛불 들어서 박근혜를 임기 중 퇴진시키고 정권을 바꾼 “평범한 사람들”이 보고 듣고 싶었던 것이 이런 것들이겠는가?

바로 이런 후퇴와 배신 때문에 진보 염원 층이 문재인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이용해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으며 사기를 회복해 왔는데, 지금은 단지 반사이익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힘을 키우고 있는 국면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문재인 지지율이 40퍼센트를 상회하고(이는 같은 기간 역대 정부들보다는 높은 수치다) 민주당 지지율이 자한당 지지율보다는 높다. 그러나 문재인과 민주당 지지율은 하강 추세이고, 자한당은 우여곡절 속에서 상승 추세인 것도 봐야 한다. 그러자 이제 다시 촛불 계승을 부각해 우파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전임 우파 정권들의 “적폐”를 “청산”하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지지층에게 호평 받은 얼마 안 되는 사안이기도 하지만, 그 불충분함에 불만과 불신이 쌓이는 쟁점이기도 하다.

이번 대담에서 문재인은 촛불정신 계승과 엄호를 강조해 놓고도 막상 적폐 청산에 대해서 한발 빼는 발언들을 했다.

가령, 이번 대담에서 작정한 듯 자신은 “선(先) 적폐청산 먼저, 후(後) 협치”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언론이 오보를 했다는 것이다. 문재인의 해명을 보면, 이게 오보인가에 관한 해석의 다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이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거 청산도 일종의 개혁이다)이란 것이 갈수록 보잘 것 없다는 게 드러나고 그마저도 후퇴하는 상황에서 “적폐청산 먼저”가 아니라는 말 자체가 이미 개혁 후퇴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파 타협 신호

문재인은 “적폐수사 재판은 앞 정부에서 시작된 일이고 우리 정부가 기획하거나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 구속,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 폭로와 수사, 사법농단 폭로와 수사 등으로 이 정부가 지지율 제고에 도움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어이없는 발언이다. 사용자들이나 중도층에서도 경제 위기 돌파를 위한 친기업(“민생”) 개혁은 안 하면서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릴 거냐는 반응이 커지는 것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명박은 풀려났고, 기무사와 사법 농단 수사는 흐지부지됐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이고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의 정치공작 활동들도 별로 단죄된 게 없다는 점이다.

형식적인 적폐청산에서마저 후퇴하겠다는 신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명박·박근혜의 재판(적폐청산 수사와 재판)이 끝나기 전엔 사면(협치) 언급을 하기 어렵다고 한 것은 사면 불가가 아니라 좌우의 눈치를 보며 오히려 (우파를 향해) 사면의 여지를 남긴 발언인 것이다.(물론 지지층에서도 반발이 있을 것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문재인은 뇌물죄 재판 중인 삼성 이재용을 자주 만나는 것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한 질문에 “재판은 재판, 경영은 경영”이고 “재벌을 만나면 친재벌이 되고 노동자를 만나면 친노동자가 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답했다.

말만 놓고 보면 그럴싸 하지만, 일단 문재인은 취임 초 인천공항 깜짝 방문 말고는 노동자들과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문재인의 국내 현장 시찰은 대부분 기업체였다. 재계 인사들과는 올해 청와대 초청 행사만 해도 대기업, 중소기업, 벤처기업, 외국계 기업 등 특성별로 수 차례 열렸다. 게다가 문재인이 재계 인사들과 만날 때는 (요구를) 청취하는 입장에 서고, 노동계 지도자들을 만나서는 (양보를) 주문하는 입장에 선다는 점도 다르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말조차 진보 개혁 염원과는 멀어져 가고 있음이 재차 확인된 대담이었다. 문재인은 “촛불 정신”을 강조했지만 정작 구체적인 진보 개혁 추진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고, 개혁 후퇴와 배신에 대한 변명만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이번 대담에서 문재인은 우파에게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대북 문제에서 한미동맹 강조, 최저임금 재개악 정당화, 친재벌 변명, 선 적폐청산 입장 부인 등. 다만 인사 문제와 “좌파 독재”발언 등 자한당과의 정국 주도권 경쟁 문제에서만 예민하게 반응했다.

문재인의 대담은 진보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문재인 “개혁”에 기대서는 개혁 성취가 요원하다는 걸 드러냈다. 문재인의 배신은 단지 개혁의 지체가 아니라 우파에게 사기 회복의 기회가 되고 있다. 노동자들도 노동개악을 막고 임금인상과 정규직 전환 등 개혁을 성취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