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호르무즈해협 위기와 미국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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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아덴만에서 합동훈련하는 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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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습으로 급격하게 고조된 중동의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자, 이란은 누구든 자신을 공격하면 “파괴”해버리겠다고 반발했다.
미국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1개 포대와 병력 200명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추가 배치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방어적 성격이 크다고 했지만 결국 긴장을 높이는 데 일조할 것이다. 미국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2개 포대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를 추가 배치할 준비도 하고 있다. 이란의 공격에 대비해 카타르에 있는 공군 지휘 본부의 기능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전하는 훈련도 했다.
물론 트럼프는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9월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란 정부를 “피에 굶주린 정권”으로 비난하면서도 평화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전날 트럼프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이란 대통령 로하니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10여 년 전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한 뒤 미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더 중요한 위협으로 여기는 문제, 특히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고 중동에 투여하는 역량을 줄이고 싶어 했다.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동 자체의 중요성 때문에 중동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도 못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중동은 중요한 곳이다.
이런 모순과 힘의 한계 때문에 미국은 상황을 뜻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집중하겠다며 중동에서 일부 철수했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이번에 재배치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하는 데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력을 발휘하길 바라는 듯하지만, 이란과의 충돌은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친(親)이란 후티 반군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개입한 예멘 내전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수렁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연합군은 최근 내분에 빠져 후티 반군에게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후티 반군은 예멘-사우디아라비아 국경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군 500명을 사살하고 2000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그럴 경우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으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더 확실히 보장받으려 할 것이다. 이는 중동 불안정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미국을 중동의 수렁으로 더 깊숙이 끌어들일 것이다.
미국이 처한 딜레마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실패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은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혔고, 이란과 연계된 야당 세력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이란과 경쟁해 온 이라크 정권이 무너진 것도 이란에 득이 됐다.
미국이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부추긴 종파 갈등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났다. 아랍 혁명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중동 독재자들이 이를 종파 간 내전으로 비틀었다. 열강이 중동에 개입한 것과 종파 갈등이 맞물려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가 부상했다. 온갖 이해관계와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충돌이 벌어졌고, 미국은 아이시스를 격퇴하느라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이란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켜 내 그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더 키웠다.
오바마는 이란과 핵협정을 맺고 중동 강국들 간 세력 균형을 추구해서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트럼프는 핵협정을 파기하고 대(對)이란 경제 제재와 군사 위협을 재개했다.
많은 언론들은 트럼프가 단지 오바마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으로 핵협정을 파기했다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그 근저에는 상대적으로 쇠퇴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할 방법을 둘러싸고 미국 지배자들이 벌이는 갈등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최대 압박’ 정책은 더 나은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오히려 중동의 긴장을 잔뜩 끌어올렸다. 대선 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어 했던 트럼프는 더 군색한 처지가 됐다.
이처럼 중동과 석유 통제를 둘러싼 갈등과 경쟁이 지금의 위기를 낳았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전 실패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다.
파병 트라우마
문재인 정부 또한 이라크전 파병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청에 응해 호르무즈해협으로 갈 것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청해부대 강감찬함은 아직 아덴만에 있다.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 정부의 위기를 촉발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구한다며 이라크 파병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는 지지층에 큰 실망을 줬고, 노무현은 커다란 반전 운동에 부딪혔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반전 운동이 등장했다. 문재인 또한 이라크 파병이 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결정”이었다고 술회한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평화 교환론’의 파산에 대해서는 본지 기사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은 한반도 평화에 해로웠다 — 문재인의 호르무즈해협 파병도 마찬가지일 거다’ 참고)
하지만 현재 미국이 처한 딜레마와 중동 불안정은 그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물론 줄곧 친미 노선을 견지해 온 문재인은 결국 호르무즈해협으로 군함을 보낼 수 있다. 정부가 호르무즈해협에서의 임무 수행을 준비시키고 강감찬함을 출항시켰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폭로된 바 있다.
사실 소말리아 해적을 잡는다며 아덴만에 청해부대를 보낸 것부터가 서방의 제국주의에 협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덴만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갈등을 빚는 예멘의 앞바다이고,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잇는 중요한 지역이다. 강감찬함이 아직 아덴만에 있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한편, 8월 말 문재인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여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환심을 산 바 있다. 그러나 9월 23~26일 강감찬함은 일본 군함과 함께 아덴만에서 합동훈련을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일관되게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미국은 일본을 동북아에서 중국 견제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삼고 있다.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 한다며 미국에게서 값비싼 첨단 무기를 대거 사들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일본과의 군사 협력에 열려 있게 된다.
일본에 함께 맞선다며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고 비판을 삼가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친미 행보를 비판하고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분명하게 경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