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논란과 여야 갈등:
여전히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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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정치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이번엔 임시국회(12월 11일 소집된)에서 선거제 개혁,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법 개정안들을 처리하는 문제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선거제 개혁 등에 반대하는 우파 태극기 부대를 국회 내로 끌어들여 집회를 열고 정의당 청년 당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핸드마이크를 들고 이들을 선동하는 한국당 대표 황교안의 모습이 혐오스럽다.
상반기에는 의원들이 나서서 국회의사당 안에서 물리력을 행사했던 한국당이 이제는 태극기 부대를 동원해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한국당은 이번 선거제 개혁이 “정의당을 원내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정당에게 의회 운영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로 만들어 주려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노동계 기반 국회의원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것으로 극히 반동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한국당을 비난하면서도) 한국당과 하는 협상에 무게 추를 둔다. 선거법보다는 공수처법 통과로 문재인 레임덕을 막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보기 때문일 듯하다.
물론, 날로 심각해져 가는 경제·안보 위기 상황에서 한국당의 막무가내 반발에 움찔한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은 정세균을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했다. 친기업 경제 중시와 안정 기조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인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다.
기업인 출신인 정세균은 김대중에게 발탁돼 국회의원이 됐고,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냈다. 이후 그는 민주당 당대표,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거친 6선의 거물급 여권 인사다.
한국당과 우파는 박근혜 탄핵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정세균의 총리 임명에 반발하고 있다. 친박계와 공화당의 조원진 등은 국회 탄핵 가결 당시 정세균의 의사 진행이 편파·위법이었다고 비난해 왔다.
우파·기업주들과 진보 염원 대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권력을 강화하려고 해 온 정부·여당은 위기 심화 국면에서 둘 다에게 그저 한국당 핑계를 대고 있다.
민주당의 선거법 개정 위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현 선거법 개정안(이른바 패스스트랙 원안, 지역구 225석과 비례 75석으로 하고 정당비례득표의 연동률을 50퍼센트로 한 안)을 도출할 당시에도 민주당의 배신을 점치는 목소리가 있었다(본지를 포함해).
지역구를 28석 줄이는 이른바 준연동형 선거제 개혁안은 자기 지역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고 민주당 지도부도 그 안에 대한 찬성표를 강제하지 안/못 할 거라고 봐서였다.
이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정의당 지도부에 한국당을 고려한 후퇴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선거법 ‘원안’을 본회의에 올리겠다고 했다. 사실상 선거법 개정을 완전히 무산시키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러자 본회의 거부 중인 한국당이 원안이 상정되면 표결에 참가하겠다며 정의당의 ‘위선’을 비난했다. 노동계 기반 정당들의 의석 확대를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주류 양당 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의 위선은 메스껍다. 그들은 정의당을 이용하기만 하려 하고, ‘한국당이 반대해서 개혁이 어려우니 민주당을 밀어 줘야 한다’는 프레임 만들기에만 열중한다.
상황을 예상했느냐가 핵심은 아니다. 우리가 진중하게 민주당의 배신을 경고한 것은, 정의당이 선거법 개정 기대 때문에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끌려다니지 말라는 취지에서였다.
안타깝게도 정의당은 조국 사태에서 반대로 행동했다. 바로 그 점을 한국당이 교활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18일 낮에 “4+1”(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중 민주당을 뺀 나머지 당대표들이 선거법 협상 마지노선에 합의했다.(이는 지역구 250석에 비례 50석으로 하고 50석 중 50퍼센트 연동비율 적용 의석을 30석으로 하는 안이었다.)
이 안으로 민주당과 담판 짓겠다는 것이다. 원안보다는 못해도 현행 선거법보다는 진보정당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노동계 기반 국회의원 수가 늘어서 노동계급 지도층의 목소리가 공식 정치에서도 커지길 바란다. 그러나 그 때문에 노동계급을 대변하고 투쟁을 고무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노동자 대중의 지지는 바로 그런 일을 잘 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2대 의혹
청와대가 수사 대상이 돼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유재수 감찰 무마·비호 의혹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 검찰과 경찰의 갈등 등이 서로 얽혀 있다. 권력형 부패 의혹, 여야 갈등, 검찰 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2017년 당시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이던 유재수의 감찰을 무마한 당사자 중 1인으로 지목돼 있다. 그는 2017년에 감찰이 중단된 것은 유재수 본인이 감찰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은 감찰 대상 혐의가 “프라이버시”라고 했다!
금융위 국장이 아무리 대단한 직책이어도 상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집권 1년차) 청와대 민정수석실이었다. 그런데 유재수는 단순히 그 앞에서 감찰이 멈춘 정도가 아니라, 올해까지 영전을 거듭했다.
유재수가 노무현 청와대를 거친 인사가 아니라면, 또 부패한 ‘민원’의 한 고리가 아니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유재수와 함께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 있었고 현 정부에서도 실세인 인물들과의 연관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우리들병원 대출 의혹도 이 인맥과 연관돼 있다.)
울산시장 선거 건은 좀 더 복잡하다. 청와대와 경찰뿐 아니라, 피해자를 자처하는 한국당 김기현(당시 울산시장)의 비리 의혹이 풀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기현과 울산 검찰의 유착 여부(경찰의 김기현 관련 의혹 수사를 중단하고 덮어 준 의혹)도 의심 대상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김기현 털기를 지시했느냐가 아니라, (본지가 처음 규정한 것처럼) 청와대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느냐를 초점으로 삼아 문제를 봐야 한다(김기현 비리 의혹은 별개의 건).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와 송철호 캠프의 연결고리로 보이는 송병기 현 울산시 부시장의 업무 수첩에 적힌 “VIP” 언급이 의미심장한 이유다.(아직은 사실과 의견이 섞여 있을 것으로 보여 신중히 봐야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 김기현 의혹 수사와 ‘고래고기 수사’ 등으로 지역 내에서 검찰과 경찰이 갈등을 겪은 사건이 최근의 검·경 수사권 조정 대립과 결합돼 있다.
검찰 수사가 한국당을 위한 것일까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청와대와 검찰, 경찰, 언론이 서로 얽히면서 오히려 서로의 치부가 중구난방 식으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가 민주당 정부를 공격해 한국당을 도우려는 것이라는 여권의 비난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청와대의 권력 농단 의혹에 실체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검찰의 권력자 수사를 방해한 여권이 더 문제다. 조국 일가 수사 방해 공작이 대표 사례다.
정부가 수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려 했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검찰의 직접수사 부서 축소, 소환조사 제한, 혐의사실 공표 금지 등을 실행했다. 여기에 정경심 검찰 조사 당일 검찰청 앞 대규모 집회, 법원의 계좌추적 영장 기각, 여권 인사들이 검찰 수사팀을 계속 흔들고 비방한 일들까지 벌어졌다. 가히 전방위적 수사방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도 조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생 조권, 5촌 조카 조범동 등이 모두 구속 수사·재판을 받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편, 검찰이 야당인 한국당을 위해서, 한국당에 대한 지지율 우위를 수년째 유지하는 정권의 실세들을 없는 혐의를 씌워 엮는 수사를 한다는 추측은 개연성이 너무 없다. 더구나 검찰총장 윤석열은 조국 일가 수사 전까지는 ‘적폐 수사의 영웅’으로 정권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문재인의 검찰개혁 방향은 애초에 정권 안정과 재창출의 조건을 마련하는 데에 있었다. 사법 절차의 민주적 개혁에는 진정한 관심이 없었다. 그 방향은 공수처 신설로 권력기관 기강 잡기, 수사권 일부를 제공해 경찰 수뇌부와 유착하기, 윤석열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면서 검찰 수뇌부와 유착하기 등이었다.
이것이 뜻밖에 조국 일가의 부패 혐의가 드러나는 상황에 부딪혀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것이 서로 엉켜서 원치 않는 상황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검찰 수사는 검찰이 자신의 권한과 위신을 지키려는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청와대를 곤란케 하면서도, 청와대와 타협하려고 세월호 참사 재수사를 천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2014년 수사 책임자들이 친문 인물들이고 수사 대상은 황교안이라서 수사 결과는 미지수다.)
아마 최근 검찰에게 한국당이 필요하다면, 그것 검·경 수사권 조정안 부결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상반기 국회 물리력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지 않는 것에는 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의 진보 염원 배신이 계속돼 진보 염원 대중의 사기가 떨어지고 우파가 결집해 반사이익을 얻게 되면, 검찰은 진짜로 새로운 산 권력을 지향하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경찰도 구여권으로 돌아설 것이다.
노동계급이 여/야 진영논리가 아니라 독립적인 계급정치의 관점에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오직 노동계급이 진보 염원 실현을 위해 투쟁을 지속한 덕분에 계급 세력 균형이 우리에게 유리할 때만 조금이라도 이런 권력기관들의 수사와 재판에 민주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