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선의 쓰디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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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수당이 12월 12일 총선에서 승리한 배후의 사정은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를 맡은 시기나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셉 추나라가 이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한다. 조셉 추나라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 중앙위원이자 SWP가 발행하는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자다. [ ] 안의 말은 〈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이번 총선이 “브렉시트 선거”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아성은 오래전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코빈이 노동당 의원단 내 비주류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컨대 사우스요크셔 지역의 로더 밸리 선거구는 1918년부터 노동당 텃밭이었다. 1945년부터 1974년 2월까지는 노동당 지지율이 70퍼센트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했을 때 노동당은 거기서 68퍼센트를 득표했다. 노동당 지지율 쇠락에서 핵심적인 시기는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총리를 지내던 시절
한때 주요 산업이었던 광공업 등이 1980년대 이래 쇠퇴한 곳들에서 신노동당*에 대한 반감이 특히 심했다. 토니 블레어의 당선으로 사양산업이 부흥하리라는 낙관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절망으로 뒤바뀐 곳들이었다. 이런 곳들에서는 에드 밀리반드가 노동당을 이끌던 2015년에는 어느 정도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코빈 지도부 시절에 치른 2017년 총선 때는 지지율이 소폭 반등했다. 그러나 2019년 총선 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노동당 지지율이 하락하자 일부 논평가들은 오늘날에는 보수당이 노동계급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급을 육체 노동자, 즉 ‘블루칼라’ 노동자로 환원할 수 없다. 오늘날 영국 노동계급 중 상당수는 공공부문, 상점·식당 등 서비스 부문, 금융 관련 업종에 고용돼 있다. 이 노동자들도 임금 노동의 본질인 착취에 시달리며, 전통적 육체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멸, 관리자의 고압적 통제, 스트레스를 점점 더 많이 받고 있다.
지나친 단순화
가장 궁핍한 사람들이 노동당에 등을 돌렸다는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다.
그러므로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이동한 표심의 정체를 규명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총선 직전에 학술지 《폴리티컬 지오그래피》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버려진” 유권자들이 노동당을 저버렸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살펴봤다.
“‘코스모폴리턴’한 도시들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는 고령·미숙련·백인·노동계급이 다수인 곳을 ‘버려진’ 지역이라고 본다면,
역사적으로, 노동당의 지지는 적어도 집단적 노동계급 조직과 관계 맺는 수준에 의존했다. 노동당의 ‘붉은 벽’이 무너져 내린 것은 그런 조직이 취약해졌다는 맥락을 감안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에 제조업 심장부였던
《가디언》에서 이 점을 꾸준히 역설한 칼럼니스트 아디트아 차크라보르티는 선거 직후 이렇게 썼다. “광업·제조업·철강·조선업이 끝장났다. 그러면서 비타협적 노동조합 현장위원들, 자주적 조직들, 대부분의 지역 신문들 같은 노동당 정치의 문화도 함께 사라졌다. 노동계급 고유의 정치적 정체성을 길러 줄 기구들 일체가 사실상 깡그리 무너진 것이다.”
이런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뚜렷이 표현했던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이주민 악마화
2016년 투표 결과에는 온갖 정서가 영향을 줬다. 인종차별 정서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이 이주민·난민·무슬림·흑인을 얼마나 악마화해 왔는지를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못 된다. 하지만 인종차별의 분출이 핵심 특징은 아니었다.
영국의 다른 곳들,
그 때문에 생겨난 노동계급 내 분열은 극도로 해악적이었다.
두 고정관념 모두 별로 좋지 않았다. 그보다는 노동계급 내부의 변화와 수십 년 동안
가가호호 방문 선거운동을 한 노동당 운동원 한 명은 블로그에 쓴 글에서 브렉시트 문제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노동당이 공약한 사회 변화가 현실성이 있을지 의문을 품은 유권자들을 접했다고 지적했다. 투쟁성과 확신의 수준이 낮으면 노동자들의 시야도 현재의 계급 세력관계 속에서 가능해 보이는 수준으로 좁아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고정불변하지 않다. 그러나 이는 급진좌파가 선거 기간이든 아니든, 노동계급의 일상에 많이 개입하고 그럼으로써 노동계급의 집단적 조직을 재건하고, 투쟁 수위를 높이려 노력해야만 바뀔 수 있다.
그런 일이 없는 상황에선 우파가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을 이용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2019년 총선 결과를 이해해야 한다.
2017년 총선 당시 코빈은
기성 정치권 내 책략
그때와 달리 2019년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은
노동당은 2년 전과는 달리
총선 당일 보수당 출신 마이클 애쉬크로프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에 투표했다고 밝힌 사람 중 4분의 3이 “브렉시트 완수”가 투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답했다. 2016년 국민투표 당시 유럽연합 탈퇴에 투표한 사람 중 73퍼센트가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을 지지했다. 이는 2017년 총선 당시 60퍼센트에 비해 는 것이다. 반면 노동당은 유럽연합 탈퇴 찬성 투표자의 16퍼센트만 득표했는데, 2017년 총선 당시의 25퍼센트보다 준 것이다. 전에 노동당에 투표했던 사람들 중 10분의 1만이 보수당에, 100분의 1만이 브렉시트당에 투표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브렉시트가 끼친 효과는 유럽연합 탈퇴 강세 지역에 집중돼 나타났다. 아마도 그런 지역의 노동당 지지자들은 투표에 기권한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 됐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코빈에 대한 중상 비방과 거기에 동참한 노동당 우파의 배신도 효과를 발휘했다. 코빈이 아일랜드공화국군
이런 난관을 돌파하려면 정부와 기성정치권에 대해 비판적인 정서로 다가가 이를 좌파 쪽으로 견인하는 게 필요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동당 패배 후 영국 정치는 어떻게 될까? 존슨 하에서 보수당은 마거릿 대처 이래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번 승리가
정책들이 대중적 지지를 받았거나, 심지어 신뢰도가 높아서 존슨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다섯 명 중 한 명만이 존슨이 공약을 이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
이에 관해서도, 차크라보르티가 에섹스주
존슨이 자신에게 표를 “잠시 빌려 준” 이 지역 사람들을 열정적 보수당 지지자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수당 내 강경 유럽연합 탈퇴파
“브렉시트 완수”라는 약속조차 존슨의 말과 달리 간단치 않을 수 있다. 보수당이 큰 격차로 다수당이 됐기 때문에 존슨은 보수당 내 강경 유럽연합 탈퇴파나 영연방연합당
스코틀랜드국민당
급진좌파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향후 노동당을 집어삼킬
인종차별 반대가 다가올 투쟁에서 중요한 전선이 될 것이다. 성장 중인 기후변화 운동도 중요할 것이다. 고등교육 부문의 파업이 예정돼 있고, 이 투쟁을 다른 공공부문과 그 이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에 더해, 지난 10년 동안 추진됐고 앞으로도 영국 전역 노동계급의 삶에 계속 영향을 줄 긴축 정책을 철회시키는 투쟁도 있다.
이런 투쟁들은 존슨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세력관계를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려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우리는 코빈의 승리를 간절히 바랐지만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의 길’의 한계도 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제 광범한 코빈 지지자들과 함께 영국 전역에서 노동계급의 집단적 조직과 계급투쟁을 재건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노동계급 안에서 희망을 되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