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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브렉시트, 영국 총선, 노동당 좌파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용어 설명과 [ ] 안의 내용은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한 것이다.

20년 전 시애틀 항쟁은 반자본주의 투쟁의 새로운 주기를 열었다. 존 홀러웨이의 유명한 구호, “권력을 잡지 않고 세상을 바꾸자”로 대표되는 자율주의 정치가 영향력이 있었음에도 우세한 흐름은 국가를 이용해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 뒤 이런 개혁주의 물결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스페인의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는 처음에 온라인으로 조직됐고 라틴아메리카의 온갖 운동과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프의 포퓰리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에서 제러미 코빈과 존 맥도널이 이끈 노동당은 훨씬 전통적인 좌파적 개혁주의였다. 그러나 이런 조직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선거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자본가 권력의 중심부가 개혁주의를 혹독한 시험대에 올린 극적인 사례가 지난 두어 달 동안 두 번 있었다. [11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군부의 개입 때문에 퇴진했다. 에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현대사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자 그 나라 역사상 단연코 가장 큰 선거적 성공을 거둔 정치인이었다. 군부 쿠데타는 원주민의 사회적 부상에 두려움을 느낀 도시 중간계급이 벌인 극렬 인종차별주의 집회에 화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전통적 권력층과 미국, 미주기구(OAS)*에 있는 그 동맹들의 지원을 받았다.

한편 [12월] 영국에서는 노동당 역사상 가장 좌파적인 지도부가 총선 결과 궁지에 몰렸다. 보수당은 1987년 마거릿 대처의 마지막 승리 이래 최대 의석을 확보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은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강세이던 선거구(이른바 “붉은 벽”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북부 일대)를 현 보수당 총리 보리스 존슨에게 빼앗긴 것이다. 코빈이 노동당을 [좌파적으로] 이끄는 것에 고무됐던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다. 게다가 매우 우파적인 보수당 정부가 영국의 운명을 좌우하게 됐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볼리비아 쿠데타에 대해서는 조셉 추나라가 국제적 반란의 새 물결을 분석한 글[본지 310호 ‘세계적 투쟁의 새 물결’]에서 다룬다. 그러면 2019년 12월 12일 영국 총선에 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선거운동, 특히 보수당의 선거운동이 지저분했다는 말은 많다. 자유분방하고 별난 우파 언론인 피터 오본은, 우익 신문 〈데일리 메일〉부터 공영방송 〈BBC〉에 이르는 언론들의 “받아쓰기 저널리즘”을 비난하며 이렇게 썼다. “언론들은 [보수당] 총리가 바라는 시각으로 소식을 보도했다. 일부는 야당 세력[노동당]을 흠집 내는 도구가 기꺼이 돼 주었다.” 보수당과 영연방병합당[DUP, 북아일랜드의 우파 정당이자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이 평소에 보이는 부정직함에 비춰 봐도 언론의 행태는 그야말로 악랄한 선거운동이었다. 특히, ‘유대인 혐오’라는 마녀사냥이 코빈을 겨냥한 무기였다.(여기에는 노동당 우파의 책임이 크지만 말이다.)

그러나 ‘가짜 뉴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노비에프 편지” 조작 사건을 떠올려 보라. 1924년 10월 〈데일리 메일〉은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의장 지노비에프가 영국 공산당에게 군대 내에서 반란을 일으키라고 명령하는 편지를 입수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이 편지는 영국 비밀정보국(SIS) 정사(正史)가 인정하듯이 날조된 것으로, 비밀정보국 리가[라트비아의 수도] 지부의 작품이었고, 십중팔구 영국 국내정보국 MI5를 통해 언론에 유출됐다. 그러나 이 편지는 당시 총리 램지 맥도널드의 노동당 정부(의석을 절반 이상 확보하지 못한 소수 정부)가 1924년 10월 29일 총선에서 패하는 데에 일조했다.

정말이지 이번 선거운동을 보면, 사태를 규정하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여러모로 확인됐다. [지난 수년 간] 영국 국가가 브렉시트 위기 때문에 거의 마비되면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정치사회”가 평상시 자본의 이해관계에 맞게 돌아가게 하는 연결고리가 삐걱거렸다. 런던 금융가, 더 넓게 보면 기업들은 유럽연합 잔류를 선호하고 ‘하드 브렉시트’*를 매우 격렬히 반대한 탓에 과거 100년 동안 대기업의 정당이던 보수당과 사이가 매우 틀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과 자본의 연계는 다시 돈독해지기 시작했다.

보리스 존슨의 국수주의 도박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은 브렉시트였다.* 그래서 “브렉시트 선거”로 불렸다. 보리스 존슨은 총리가 되자마자 사면초가 신세였다. 노동당, 브렉시트 반대파 정당들, 보수당 내 소수의 브렉시트 반대파 의원들이 존슨에 대항하는 연합을 이뤄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9월 초] 이들은 하원에서 이른바 ‘벤 법안’을 통과시켜서, 당시 [유럽연합이 정한] 최종 시한인 10월 31일에 탈퇴 조건 합의 없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것(노 딜 브렉시트*)을 불법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탈퇴 조건에 합의하지 못하면 이듬해 1월 31일로 시한 연장하는 것을 유럽연합에 요청하도록 했다.] 존슨이 자신에 맞서는 이런 의회를 5주간 정회하려 하자 [9월 24일] 대법원은 위헌 판결을 내려서 이 시도를 좌절시켰다.

존슨은 이 족쇄를 풀어버릴 방책으로 10월 17일 유럽연합과 새 브렉시트 합의안을 타결한다. 이 합의안은 전 총리 테리사 메이가 1년 전 유럽연합과 고생스럽게 협상해서 타결한 합의안과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달랐[고 그래서 의회 통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첫째, 악명 높은 “안전장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슨은 “안전장치” 조항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꼴통 친영파 정당 영연방병합당(DUP)을 저버렸다. 존슨은 북아일랜드만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유럽연합 측의 최초 안을 수용했다. 영국 전체를 관세동맹에 잔류시키고 싶어 했던 메이는 이 안을 거부했었다. 북아일랜드만 관세동맹에 잔류하면 북아일랜드가 나머지 영국과는 다른 특수한 지위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연방병합당이 극도로 싫어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메이는 2017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바람에 [정부 운영에 필요한]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려면 영연방병합당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존슨은 의회에 기대하는 바가 메이보다 훨씬 적었는데, 오직 브렉시트 합의안, 이 하나의 안건만 통과시키면 됐기 때문이다. 일단 합의안만 통과되면 어차피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를 요량이었다. 존슨이 보수당 의원들(벤 법안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존슨이 당에서 출당시킨 의원들을 포함)과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소수 노동당 의원들을 긁어모아 브렉시트 합의안을 제2독회*에서 간신히 통과시킨 데서 보듯 그 점에서는 영연방병합당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영연방병합당과 굳게 손잡았던) 보수당 우파는 이번에는 영연방병합당을 저버리는 것을 묵인했다. 마치 ‘닉슨의 중국 방문’ 같은 일이었다. 보수당 우파는 남이 하면 비난했을 일을 자기네 사람이 하자 용인해 버렸다.

메이 합의안과 존슨의 합의안의 둘째 차이점을 보면, 보수당 우파가 왜 이 배신을 묵인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메이 합의안은 브렉시트 후에도 무역 규제에서 “공정 경쟁의 장”을 유지하라는 유럽연합 측 요구를 수용했다. 즉, 노동조건·환경 규제를 유럽연합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서, 유럽 대륙의 경쟁 기업에 대한 영국 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게 한 것이다. 보수당 우파가 메이 안을 반대한 것은 영국이 계속 유럽연합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연합 바깥 나라와 마음대로 무역협정을 맺는다는 오랜 숙원을 이루는 것이 보수당 우파가 브렉시트를 추구한 핵심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존슨은 유럽연합과 벌인 탈퇴 협상 초반부터 “공정 경쟁” 요구를 기각하려 했다. 유럽연합은 영국이 “템스강의 싱가포르”가 돼 유럽연합의 규제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결국 양측이 합의한 문구에는 이런 우려가 반영됐지만, 영국이 재량을 발휘할 여지는 이전 합의안보다 늘어났다.

이런 성공 덕에 존슨은 의회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유럽연합이 메이 합의안을 놓고 재협상을 거부하던 기존 태도를 뒤집고 최선을 다해 존슨을 도운 덕분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겠다.) 야당들은 ‘노 딜 브렉시트’ 위험이 사라지기 전에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며 존슨이 바라는 조기 총선을 거부해 왔다. 존슨은 결국 ‘벤 법안’에 굴복하며 마지못해 탈퇴 시한 연장을 유럽연합에 요청했고, 유럽연합은 이를 승인했다. [그리고 의회는 조기 총선 실시에 동의했다.](갖가지 음모론이 있지만, 존슨의 행동을 보면, 노 딜 브렉시트도 불사한다는 말과 달리 노 딜 브렉시트가 초래할 혼란을 줄이는 것이 그의 우선순위임을 시사한다.)

존슨의 구호 “브렉시트 완수”가 보수당 선거운동을 지배했다. 총리 취임 이래 존슨은 브렉시트 지지 표를 결집시켜 총선에서 승리하려 해 왔다. 존슨은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브렉시트당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브렉시트당 대표 나이절 퍼라지는 지지자들의 압박에 굴복해 보수당 우세 지역구에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았다. 노동당 우세 지역구에서도 브렉시트에 대한 노동당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노동당에게 등을 돌린 브렉시트 지지 노동계급 표를 가져간 것은 주로 보수당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전략에 수반된 보수당 기반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수많은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투표한 것은 유럽연합뿐 아니라 대거 몰려오는 이민자들, 정치적 올바름, 진보적인 사회적 가치에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권자들은 재원이 충분한 대규모 공공 서비스를 선호한다. 이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혹독한 자유 시장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이들의 희망사항은 브렉시트 지지 우익 이데올로그들이 선호하는 순수한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와는 까마득히 멀다.

존슨 정부는 유럽연합 모델과 근본적으로 단절하겠다는 자신의 제안과 보호받고 싶어 하는 새 유권자들의 욕구를 조화시키느라 진땀을 뺄 것이다. … 브렉시트의 마력은 런던 등 번화한 도시나 스코틀랜드처럼 유럽연합에 우호적인 지역에 살 법하지 않은 상대적 고령·저학력·블루칼라 표심을 보수당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보수당은 유럽 대륙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전형적 특징들을 띠게 됐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당 지도부 수준에서도 벌어졌다는 관측은 과장이다. [물론] 존슨은 “일국 보수주의자”를 자처했다. ‘일국 보수주의’는 전통적으로 보수당 내에서 대처 시절 신자유주의 도입에 반대했던 파벌, 즉 복지국가와 일정한 국가 개입을 지지한 “중도파”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돼 왔다. 그러나 [이런 전통을 실제로 대변한 보수당 원로들이고 이번에 존슨의 브렉시트 방침에 반기를 든] 케네스 클라크는 [9월] 보수당에서 쫓겨났고 마이클 헤슬타인은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이 조류는 정치적으로 거의 사라진 상태다.

존슨의 선거 공약도 일국 보수주의 경향을 따른다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신자유주의 반대로 보이지 않으려고] 상당히 조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존슨은 자유시장 지지자들이 좋아할 대규모 감세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노동계급 표심을 겨냥한 “국민 보수” 제스처(메이 정부 초기에 메이와 그의 고문 닉 티모시도 잠깐 취했던 바 있다)도 피했다. 물론 이후 존슨은 브렉시트 후 산업 보조금 규제를 완화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해 [자금난에 처한] “영국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일국 보수주의”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가긴 했다.

보수당 공약의 신중함은 재무장관 사지드 자비드가 비교적 전통적인 재정 정책을 지켜 내는 데 성공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비드는 노동당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전임자 필립 해먼드의 재정 준칙을 완화해 한해 220억 파운드[약 33조 원]를 공공투자에 더 쓸 수 있게 했지만 동시에 3년 안에는 균형재정을 맞추도록 했다. 이 때문에 “사회 복지나 과감한 감세 등을 위한 정부 지출을 더 늘릴 여지가 거의 남지 않았고 [존슨이 약속할 수 있는 것도 한정됐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적한다. 이런 조처는 존슨의 수석 보좌관 도미닉 커밍스의 분노를 자아낸 듯하다.(커밍스는 총리 관저에 똬리를 튼 포퓰리스트 책략가로 널리 묘사되는 자다.) 일국 보수주의와 엇박자인 이런 경제정책 때문에 브렉시트에 대한 존슨의 진의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표했다. 그러나 존슨은 대법원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고 의원 다수의 반대에 직면한 자신의 상황을 이용해서, 기득권에 맞서는 인물 행세를 하며 의구심을 뭉갤 수 있었다. 이는 존슨이 12월 12일 총선에서 잉글랜드 북부의 브렉시트 지지 표심을 노동당에게서 빼앗아 오는 데 도움이 됐다.

자본이 노동당에 맞서 결집하다

보수당이 선거운동에서 브렉시트를 중심에 놓자 유럽연합 잔류파 내에서도 ‘코빈 차악론’이 논쟁 거리가 됐다. 노동당이 브렉시트를 2차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때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우파 언론인] 오본은 브렉시트 지지를 철회하고 코빈을 지지했다. 코빈이 당선되면 영국이 하드 브렉시트로 입을 피해를 모면할 수 있고, 노동당 정부는 의회에서 다수표를 확보하려고 다른 정당에 의존할 공산이 크므로 지나치게 급진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오본이 이런 주장을 편 때는 존슨이 유럽연합과 탈퇴 협상안을 타결하고 탈퇴 시한을 연장하기 전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코빈 차악론은 무너지지 않았다. 싱크탱크 ‘변화하는 유럽 속의 영국’은 노동당이 제시한 소프트 브렉시트(탈퇴 후에도 영국이 유럽단일시장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방안)가 국민소득에 미칠 일시적 효과가 GDP 대비 -0.2~0.7퍼센트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수치는 유럽연합에 잔류했을 때(1.2퍼센트)와 그렇게까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무엇보다 보수당이 제시한 대로 탈퇴 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거나(-1.1~-2.6퍼센트), 노 딜 브렉시트를 했을 때(-3.2~-4.4퍼센트)보다 훨씬 낫다.

그런 만큼, 유럽연합 잔류를 단호하게 주장해 온 자유민주당의 입지가 더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결국 당대표인 조 스윈슨은 총선에서 의석을 잃었다) 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야말로 브렉시트를 막거나 브렉시트의 고통을 줄일 대안처럼 비칠 법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가장 세련된 유럽연합 잔류파 언론들은 그런 결론을 도출하지 않았다. [대표적 친기업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노동당 차악론을 직접적으로 공격했다. “노동당이 집권하면 그 정부는 심지어 소수 정부일지라도 영국 경제를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이래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근본적으로 뒤엎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사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케인스주의가 유행한 시기에도 자유 시장 경제를 두둔했을 만큼 자유 시장 경제의 옹호자로 악명이 높다.

반면 〈파이낸셜 타임스〉는 훨씬 섬세한 태도를 취해 왔다. 수석 논평가인 마틴 울프는 2007~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줄곧 주류 경제정책에 꽤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마틴 울프도 결국 노동당의 경제정책에 대항해 대처의 그림자를 끄집어냈다. 노동당이 고속 인터넷을 전 가구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영국 통신회사] BT의 자회사 오픈리치를 국유화하겠다고 공약하자(BT 경영진은 이를 “인터넷 회선 공산주의”라고 비난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광분했다. “대처 혁명이 위험에 처했다”고 울부짖었다. 울프는 노동당의 총선 공약과 이를 지지한 경제학자 163명을 비난했다. “실업률이 낮고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3.5퍼센트에 달하는 경제 상황에서 노동당의 팽창적이고 혁명적인 공약은 자본 도피와 환율 붕괴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노동당의 총선 공약은 10년 동안 4000억 파운드[약 611조 원]를 “녹색 산업혁명”에 투자해 최소 100만 개 일자리를 마련하고 2030년대 안으로 탄소 배출 없는 경제를 달성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 공약에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노동당의 공약은 실제로 지난 40년을 지배한 신자유주의와 뚜렷하게 단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공약이 “혁명적”인가? 영국의 국민소득 대비 정부 지출은 2019년 3월에 37.8퍼센트였고 노동당 계획대로라면 2023~2024년에 44퍼센트로 증가할 터였다. 〈파이낸셜 타임스〉조차 다음과 같이 시인한다.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집권해도 정부 지출 수준은 프랑스보다 낮고 독일과 같으며 네덜란드보다 조금 높을 것이다. 세 나라 모두 성공적인 자본주의 경제다.”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장관인 맥도넬이 공개한 투자 계획은 대부분 차입을 늘려서 자금을 댄다. 이런 정책에 대한 고전적인 반론은 “구축효과(驅逐效果)” 때문에 [즉, 정부가 국채를 많이 발행해 돈을 쓸어가는 바람에 민간으로 흘러갈 자금이 줄어] 금리가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추락하고 10년 내내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이런 반론은 힘이 없다. 심지어 주류 경제학자들도 선진국들이 “장기 침체”에 빠져 있고 “완전고용에 상응하는 저축과 투자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필요”하다는 이론을 검토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금융 체제에서 생명 유지 장치를 떼는 데 실패해 왔다. 금리 “정상화”(경제 위기 이전 수준으로 인상) 시도는 실패했고, 물가 상승률은 대체로 목표치에 못 미쳤으며, 어떤 중앙은행들(최근에는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은 “양적 완화”, 즉 채권 매입으로 은행에 돈을 공급해 (이론상으로는)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지속했다.

이런 상황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신자유주의가 승리하면서 득세한 경제정책(화폐수량설에 근거한다)의 틀이 무너졌음을 보여 준다. 이런 정책 공백을 기회로 삼아 유럽과 북미의 중도좌파 경제학자들과 부상하는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미국 브롱크스 출신 사회주의자 국회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선도한 ‘그린 뉴딜’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 정책으로 결집했다. 좌파 학자들은 수십 년 만에 정책 결정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일부는 현대화폐론(MMT)의 영향을 받았다. 케인스주의의 기이한 변종인 현대화폐론은 “발권력”을 가진 정부가 돈을 찍어 내기만 하면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 찍어 낸 돈이 더 많은 투자를 낳고 이것이 성장으로 이어지면 인플레이션 위험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통화주의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 같은 주류 신자유주의자들처럼 현대화폐론 지지자들도 화폐를 정부의 도구로 본다. 그들은 카를 마르크스나, 니콜라스 칼도어 같은 포스트케인스주의자들이 공히 통찰한 바를 이해하지 못한다. 즉, 중요한 것은 통화 공급이 아니라 (자본가와 노동자의 지출에서 생겨나고 요즘에는 은행 대출로 창출되는 신용 화폐로 충족되는) 통화 수요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통화 조작으로 개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은 자본주의 사회 계급 관계의 모순을 외면하고, 부유층에게서 빈곤층에게로 부를 어느 정도 재분배하는 누진세의 구실을 무시하는 발상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더그 헨우드가 말했듯이, “과세가 완전한 몰수는 아니지만 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그나마 차선이다. 과세는 비록 온건하게나마 민간 투자와 소비를 공공지출로 전환시키는 사회화의 한 형태다.”

현대화폐론은 정설적인 정책 수립이 거의 마비된 덕분에 유행할 수 있었다. 실제로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극도로 낮은 금리를 이용해 차입을 늘려서 마련한 재원으로 생산 능력을 높이고 성장을 자극할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흔해졌다. 울프가 노동당을 비난하는 것은 위선적인데, 그는 몇 달 전에만 해도 현대화폐론이 (제한적이나마) “분석은 옳다”고 인정하며 이런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 일본처럼) 민간 수요가 구조적으로 취약하거나 경기가 침체한 시기에는 정부가 … 그 취약함을 상쇄할 조처를 취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현대화폐론 주창자들의 지적은 옳다. 그렇다면 [정부 지출에 대한] 제약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결단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코빈과 맥도넬이 하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결단” 즉, 차입으로 투자를 늘려서 경제를 자극하고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11월 중순 〈파이낸셜 타임스〉는 “제러미 코빈의 지출 계획이 영국 경제 위기를 촉발할 것인가”라는 호들갑스러운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 필자들이 런던 금융가에서 들은 답변은 확고한 “아니오”였다.

차입해서 특히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노동당의 공약이 지난주 공개된 후에도 영국 국채 시장은 잠잠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노동당이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투자자가 거의 없음을 시사한다. 물론 노동당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 시각은 많겠지만 말이다.

1990년대에 미국 민주당 고문 제임스 카빌은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국채 시장으로 환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영국 총선에서 영국 국채 시장 자경단[인플레이션이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채권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국채의 대량 매도에 나서는 투자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 블루베이 에셋 매니지먼트 최고 투자 책임자 마크 다우딩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정부 차입 계획을 바라보는 많은 채권 투자자의 시각을 이렇게 요약했다. “채권 시장은 확대 재정 정책을 펼, 30년에 한 번뿐인 기회를 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클 로버츠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채권 시장의 이완된 태도는 노동당의 공약이 비교적 온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영국의 금리 생활자 경제를 고용이 생기는 생산적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국책 은행과 [신규 공공투자를 관리하기 위해 설립하겠다고 노동당이 약속한 — 캘리니코스] 투자위원회만으로 가능할까? 노동당은 5대 은행이나 주요 보험사와 연금 펀드를 공적 소유로 돌려서 운영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잠재적인 투자 자금은 대부분 이런 곳들이 계속해서 공급할 것이다(이들은 GDP의 약 15퍼센트를 공급하며, 정부는 기껏해야 GDP의 4퍼센트 정도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당 정부가 투자, 서비스, 소득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다. 엄청나게 부유한 자들에게서 소득과 부를 가져와 나머지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려는 노동당의 조세 및 기타 정책들 또한 매우 제한적 효과만 낼 것이다. 사실 노동당은 국민의료보험(NHS) 지출을 매년 4퍼센트씩 늘리겠다고 했지만, 이는 블레어 정부 때보다도 적고 고령화하는 인구의 수요도 간신히 충족시킬 것이다. 노동당의 정책들은 극심한 불평등을 찔끔 완화하는 데에 그칠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당의 선거 공약은 고전적 케인스주의 강령으로서, 기저에 놓인 계급 권력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탄소 배출 없는 경제로 나아감으로써) 국가를 이용해 투자를 증진하고 경제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강령이다. 이런 정책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조적 모순들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그런데 2019년 총선은 영국 자본주의가 그런 강령조차 거부한다는 점을 보여 줬다. 노동당이 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고 소프트 브렉시트를 위한 협상을 전적으로 지지했는데도 영국 지배계급은 존슨과 보수당으로 결집했다. 앞서 살펴봤듯이, 사회 상층부를 겨냥한 시장에서 이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같은 만만찮은 부르주아 간행물들의 태도에 반영됐다.(비록 이들은 자신들이 편 주장의 논리적 귀결을 인정하고 존슨을 대놓고 지지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일반 대중을 겨냥한 시장에서는 친기업 언론들(특히 BBC)이 죄다 달려들어서 코빈을 헐뜯고 존슨을 추켜세웠다. 이는 대처주의가 절정이었던 1980년대~1990년대 초에 〈선〉이 법석을 떤 이래 유례없을 정도로 심했다.

이런 계급적 동원을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파운드화의 동향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의회의 위기가 극에 달한 시기에는, 존슨이 잘 나가는 듯 보일 때마다 통화 시장이 추락하곤 했다. 존슨이 잘 되면 노 딜 브렉시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2월 초, 보수당의 승리 전망 속에서 파운드화는 4월 이래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12월 12일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에는 더 높이 치솟았다. 주식 시장도 다음 날 반등했다.

나는 앞에서 “사태를 규정하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위력”을 언급했다. 경우에 따라 이 말은 좁은 의미에서 그람시가 말한 “경제적 공동이익”을 뜻한다. 노동당이 국유화하겠다고 공약한 수도·전기·철도 같은 사회기반시설 부문의 투자자들이 그런 사례다. 이들은 유럽경쟁법과 쌍무투자협정 위반으로 [노동당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계획을 세우고, 이 소송을 가능케 하려고 해외에 유령회사를 설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넓게 보아, 노동당에 맞선 지배계급의 공동 대응은 더 근본적인 것을 반영한다. 2007~2009년 세계적 경제·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입증했지만, 자본가 계급은 신자유주의를 버릴 태세가 안 돼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신자유주의가 자본가 계급에게 매우 득이 됐기 때문이다. 다시 하는 말이지만 “경제적 공동이익”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즉 엄청난 보수, 보너스, 스톡옵션 등 덕분에 기업 고위 경영자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큰 혜택을 누렸다는 의미에서 득이 됐다. 그러나 둘째, 케인스주의를 도입하면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기업 권력에 대한 더 큰 침해를 고무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코빈과 맥도넬과 그의 고문들은 사회주의자이고 장기적으로는 바로 그런 식의 변혁을 바랐다. 물론 자본가들 입장에서도 신자유주의가 파산했기 때문에 경제를 정치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은 커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철저히 충성하고 선출되지도 않는 중앙은행에 그 일을 주되게 맡긴 채 꾸역꾸역 버티는 것이 더 안전한 베팅으로 보였다.

노동당은 왜 패배했는가

기업주들은 개혁주의 정부를 용인할 수 있다. 특히,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달래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혁주의 정부를 반기지는 않는다. 그들은 노동당의 패배로 큰 위험을 피했다고 자축하고 있다. 그러면 코빈은 왜 패배했을까? 이 글은 총선을 치른 지 나흘 뒤에 발표된다. 그래서 이 평가는 노동당은 물론 좌파 전체에게 참담한 결과가 나오면서 조성된 강한 압력 속에서 쓰였다.

노동당 우파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주장은 앞으로도 끈질지게 제기될 것이다. 그 주장이란 바로 코빈이 지도자로서 약점이 많고 강령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이런 견강부회식 평가로는 2017년 6월 8일 총선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당시 코빈은 올해 총선만큼이나 급진적인 공약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데도 노동당은 잉글랜드 북부 선거구를 넘보는 메이를 물리치고 2001년 이래 최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므로 코빈이 패배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네 가지 요인이 두드러진다.

첫째, 이번 총선은 사실상 브렉시트 선거였음이 드러났다. 존슨이 쉴 새 없이 되풀이한 “브렉시트 완수”는 매우 영리한 구호였다. 브렉시트 찬성 유권자에게 호소함은 물론, 상당수 브렉시트 반대 유권자도 설득하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 브렉시트 반대 유권자들 중에서도 국민투표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여론 조사에서 응답한 사람이 꽤 많기 때문이다. 존슨은 정계의 끝없는 권모술수에 대한 대중의 커져 가는 염증에 호소할 수 있었다. 반면,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이어진 의회의 마비 사태는 코빈 지도부에게 매우 해로웠다. 코빈 지도부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예비내각과 의원단에게 실제로 포위됐고, 그들은 코빈에게 브렉시트를 뒤집는 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라고 요구했다.

코빈은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지지자들을 잃지 않으려 했고, 옳게도 이런 압력에 저항했지만(맥도넬은 부끄럽게도 이런 압력을 강화했다), 그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동요한다는 인상을 줬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고통스러운 후퇴와 타협 끝에 합의된 당론은 존슨의 탈퇴 합의를 놓고 재협상하되 이렇게 해서 나온 합의안과 유럽연합 잔류 중 택일을 묻는 2차 국민투표를 치른다는 것이었다. 이런 당론으로는 브렉시트 반대자들을 결집시키지도 못했고, 존슨의 공세에 맞서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묶어 놓지도 못했다. 보수당은 2016년 국민투표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광범한 정서에 호소하고,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이 스코틀랜드국민당SNP에 밀린 탓에)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 훨씬 더 큰 혼란과 불확실성이 따를 것이라고 유권자들을 부추길 수 있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이번 총선의 중요한 쟁점이긴 했어도 그것만으로 코빈의 패배가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노동당의 득표는 2016년 국민투표 당시 브렉시트 찬성 여론이 강했던 곳에서 10.4퍼센트, 브렉시트 반대가 강했던 곳에서 6.4퍼센트 줄었다. 전체적으로 보수당 득표율은 1.2퍼센트포인트 증가한 43.6퍼센트로 조금 올랐을 뿐이다. 그러나 노동당 득표율은 7.8퍼센트포인트 하락해 32.3퍼센트를 기록했다. 1983년 마이클 풋이 대처에게 괴멸적 패배를 당했을 때[27.6퍼센트]보다는 훨씬 높다. 그러나 의석 수로 보면 노동당은 잉글랜드 북부 선거구들을 빼앗긴 탓에 1935년 이래 최악의 성적을 거두긴 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두드러진 둘째 요인은 노동당 의원단 내에서 코빈에 대한 반대가 끈질겼다는 점이다. 그런 반대는 공공연했고 언론들에 의해 크게 증폭됐다. 특히, 코빈이 유대인을 혐오한다는 터무니없는 거짓 비방이 노동당 우파 측에서 나왔고, 아마 이것이 코빈의 이미지를 가장 많이 실추시켰을 것이다.

셋째 요인은 가장 불 보듯 뻔한 것으로, 언론들 자신이 “정상적으로” 선거 운동을 펼치며 자본의 이익에 따라 코빈을 헐뜯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다른 좌파 영웅들, 예컨대 대처 시대의 노동당 좌파 지도자 토니 벤이나 광원 파업 지도자 아서 스카길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넷째, 마이클 로버츠가 지적하듯이 많은 논자들이 간과하는 경제라는 요인이 있다.

선거는 보통, 경제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이번 총선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제적 안녕” 지표(실질 가처분 소득과 실업률 변화를 함께 계산에 넣는 지표)는 전 보수당 총리 메이가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2017년 이래 개선됐다. 투자와 산출 수준으로 보면 경제는 정체했지만, 영국의 평균적 가구들은 2017년보다 살림이 살짝 나아졌다고 느낀다. 고용이 개선되고 실질 소득도 올랐다. 이것이 존슨 정부에게 도움이 됐다.

노동당은 선거운동 기간에 사회적·경제적 공약을 중심으로 넓은 활동가 기반을 단호히 동원해 이런 요인들을 극복하려 했다. 노동당의 공약은 코빈이 계속 되풀이했듯이, 브렉시트 지지와 반대를 불문하고 모든 노동계급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전국의 가가호호 방문 유세단에 참가한 수많은 활동가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특히, 선거운동 막바지에 활용한 대중 집회 방식의 유세는 2017년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재현했다. 이런 활동들이 얼마나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많은 토론이 당연히 벌어지겠지만 그것은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치러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많은 노동계급 유권자들과 정치과정 사이의 심대한 괴리를 목도하고 있다. 그런 괴리 때문에 많은 노동계급 유권자들은 2016년 브렉시트 찬성에 투표했고, 이제 그중 다수가 보수당에 투표했다. 또는 아예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좌파들은 건성으로 그런 노동자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한다. 보수당에 투표한 많은 노동자들이 국수주의나 심지어 인종차별 사상에 분명 이끌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경제학자인 티모 펫처는 최근에 발표한 연구에서 보수당-자민당 연립정부의 긴축 정책이 2016년 브렉시트 찬성 결과가 나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주요 “복지 개혁” ― 저소득층 지방세 감면 중단, 장애인 생활 보조금 개악, “침실세” 부과[주택 보조금 삭감] ― 의 영향이 개인들의 브렉시트 찬성 성향을 크게 높였다는 것이다. 펫처는 “긴축정책이 없었다면 브렉시트 반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그러나 긴축만으로는 브렉시트 찬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수당에 투표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잉글랜드 북부에서 노동당 표가 붕괴한 것은 훨씬 더 장기적인 맥락에서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노동계급 조직과 지역이 점차 붕괴한 것이 바로 그 맥락이다. 예컨대 이번에 보수당에 투표한 폐광 지역들을 보자. 1984~1985년 광원 대파업이 패배한 이후 이 지역들에서는 석탄 산업이 사라졌고, 임금이 괜찮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공급할 다른 산업이 성장하지 않았다. 1997~2010년 기간에 집권한 신노동당 정부는 이 지역들을 자신의 표밭으로 여겨 공적자금을 들여 간신히 지탱했다. 긴축 정책은 이 버팀목을 치워 버렸다. 오래된 노동계급 조직들은 쪼그라들었으며, 노동운동이 더는 유의미해 보이지 않자 노동운동의 틀 바깥에서 분노와 설움이 표출됐다. 결국 우리는 1980년대에 대처주의가 산업 노동계급의 핵심 집단들 — 광원뿐 아니라 철강·자동차·항운 노동자들까지 — 을 깔아뭉갠 후과를 아직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선거 당일 〈가디언〉 칼럼니스트 아디트야 차크라보르티는 몇 주 전에 방문한 콜체스터[영국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 무료급식소의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했다.

전국에서 브렉시트 표가 가장 많았던 지역의 하나인 [잉글랜드 동부에 속한] 이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브렉시트가 약속한 미래에 투표했지만 그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를 갖다 바친다”는 보수당의 거짓 광고 문구가 찍힌 버스는 믿을지 몰라도 금발의 거짓말쟁이 당대표[보리스 존슨]는 믿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엉망임을 인정했지만, 정치인들이 세상을 개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이는 브렉시트를 지지한 노동계급에 대한, 흔히 묘사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순된 그림의 일부다. 이런 그림 없이는 이번 선거를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 첫째, 그들에게 유럽연합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아주 흔한 대용물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병원 치료가 지체되고, 딸이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가족들과 이웃들이 쪼들려 사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 유럽연합에 화풀이를 한다.

둘째, 정치인들은 일주일 지난 일도 고대사로 치부하며 잊기 일쑤지만 유권자들은 위기가 올 때마다 삶이 얼마나 숨 막혔는지를 기억한다. 예컨대, 내가 만난 게리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에 “갖다 바치지” 않아도 되는 돈이 결국 어디로 갈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돈은 런던 금융가의 그들 패거리에게 떨어질 겁니다.” 이번 선거 기간에 들은 말 중 금융가를 언급한 것은 이것이 유일했지만, 실제로 이번 선거는 2008년 금융 위기와 그 후 공공부문과 일상 생활수준이 퇴보한 현실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불신이 수십 년간 쌓인 결과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브렉시트에] 허황한 기대를 품지도 않고, 상류층 도련님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무한정 믿지도 않는다. 오히려 깊게 침잠한 울분을 품고 있다. 그 어느 정당이나 민주적 기구로도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없고 다가가기조차 어려운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이토록 무너져 내린 노동계급의 의식을 만회할 유일한 방법은 집단적인 조직과 자신감을 재건하는 투쟁뿐이다. 하지만 영국의 파업 수준은 지독하게 낮다. 게다가 코빈 열풍에는 모순이 있다. 코빈이 그토록 존경받을 만한 이유 하나는 35년 이상 의원을 지내면서 운동적 활동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코빈은 운동을 대변하는 의원이었다. 그가 대표를 맡으면서 노동당은 열성 당원을 거느린 대중 정당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전쟁, 긴축, 기후변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운동을 한단계 고양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코빈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선거로 이목이 쏠리면서 코빈이 총리가 되길 기다리는 수동적 분위기가 조장됐다.(파업을 조직하지 않을 핑계를 찾아 헤매는 노조 지도자들이 이런 분위기를 크게 강화했다.)

아쉽지만 ‘총리 코빈’은 물 건너갔다. 선거 전에는 “코빈 없는 코빈 정치,” 즉 노동당이 패배해도 다른 인물로 코빈의 구상을 이어 가자는 논의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워낙 크게 패배한 탓에 노동당 우파가 늑대처럼 달려들고 있고 친기업 언론의 응원을 받으며 좌파를 갈갈이 찢어 버리려 할 것이다. 늘어난 당원들(코빈의 한 가지 핵심 유산이다) 사이에 강력한 기반이 있는 노동당 좌파는 우파에 반격할 것이다. 노동당이 당내 투쟁에 휘말릴 것은 거의 확실하다. 대단히 애석한 일이다. 왜냐하면 존슨 정부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여러 평론가가 지적하듯이 “브렉시트 완수”는 간단치 않을 것이다. 물론 영국은 분명 1월 31일에 유럽연합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훨씬 어려운 문제들이 남을 것이다. 존슨은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해야 한다. 존슨은 [유럽연합보다 규제를 완화해] 영국 기업들이 유럽 기업들에 대해 원가 경쟁력을 갖추길 바란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여전히 영국에게 가장 큰 시장이다. 유럽연합 기업들에 대한 경쟁력과 유럽연합 시장에 대한 접근권,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영국 총선 결과를 보고 유럽연합이 “코 앞에 경쟁자를 두게 생겼다”고 반응했다. 유럽연합은 계속 강경한 자세로 협상에 임할 것이다.

만일 존슨이 과도기(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뒤에도] 유럽단일시장에 잔류하는 기간)를 2020년 12월 31일 내로 끝낸다는 공약을 고수한다면, 이는 유럽연합 측의 협상력을 키울 것이다. [협상 자체가 물거품이 될 경우 영국이 유럽연합보다 잃을 것이 더 크기 때문에 협상 완료 시한이 촉박할수록 영국이 불리하다.] 앞서 메이도 탈퇴 의사를 유럽연합에 서둘러 통보해서 리스본 조약 50조[2년 내로 탈퇴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규정]를 발동하는 바람에 유럽연합의 협상력을 키워 준 바 있다. 존슨은 자유무역협정 없이 유럽단일시장을 나가든지, 공약을 어기고 유럽단일시장 잔류 기간을 연장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전자는 일종의 노 딜 브렉시트로 온갖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나는 존슨이 후자를 택하리라 예상한다. “안전장치”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맹인 영연방병합당을 버렸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치적 대가가 따를 것이다.

둘째, 이번 선거는 지리적 경계선에 따른 사회적·정치적 반목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잉글랜드는 유럽연합 잔류 여론이 강한 남부와 탈퇴 여론이 강한 북부로 나뉘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잔류를 지지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지지를 얻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탈퇴를 지지하는 영연방병합당이 두 석을 잃었고, 탈퇴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과 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SDLP)에게 밀렸다. 영국 중앙정부와 스코틀랜드의 갈등은 존슨에게 까다로운 사안이 될 것이다. 존슨이 “하나의 영국”을 강조할수록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를 묻는 2차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염원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국민당 지도부는 신중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도 카탈루냐와 같은 폭발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셋째, 존슨은 자신이 말한 “일국 보수주의”에 어느 정도 알맹이를 제공해야 할 상황에 부딪힐 것이다. 앞서 봤듯 보수당 득표는 살짝 늘었을 뿐이다. 노동당은 크게 패배했지만 여전히 3분의 1을 득표했고 대도시 표밭들을 지켰다. 보수당은 이번에 획득한 잉글랜드 북부 선거구들을 붙잡아 둬야 한다. 노동당에 투표하던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몇 년 동안 붙잡아 둘 무언가를 존슨이 제시할 수 있을까? 존슨이 보수당을 유럽 대륙의 매우 우익적인 정당들처럼 바꿨을지는 몰라도 앞서 봤듯 신자유주의와 단절한 것은 아니다.(이는 유럽 대륙의 매우 우익적인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끝으로, 마이클 로버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카드놀이의 조커 같은 변수가 있다. 바로 세계경제다. 현재 주요 선진국 경제는 2008년 이래 대불황 중에 가장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일시적 휴전에 돌입하더라도 다시 터질 것이다. 게다가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기업 이윤율이 떨어지고 기업 부채가 늘고 있다. 세계경제가 다시 크게 후퇴할 가능성이 2008년 이래 가장 높다. 새로운 세계적 경기후퇴가 닥치면 영국 유권자들의 태도는 급변할 수 있고, 그러면 존슨 정부의 브렉시트 거품은 터질 것이다.

따라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저항할 일이 많을 것이다. 대담해진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더 쥐어짜려 들고, 긴축 공격이 간판만 바뀐 채 계속되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영국판 도널드 트럼프가 총리직으로 복귀한 것에 신이 나서 설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라는 재앙이 넘실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투쟁과 함께 정치적 토론과 논쟁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번 선거는 선거 위주 정치의 한계를 뼈아프게 확인시켜 줬고, 노동당의 가장 훌륭한 사회주의자가 실천하는 선거 위주 정치조차도 한계가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좌파는 이번 재앙에서 회복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올바른 교훈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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