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사이에 비정규직 36만 명 증가:
비정규직, 왜 늘었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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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통계청 발표로 지난 1년 사이 비정규직이 확대됐다는 게 드러났다. 본지는 지난 기사에서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공약이 거짓말이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 사용자들은 왜 비정규직을 확대해 왔고, 비정규직 사용의 효과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살펴본다.
1월 7일 문재인은 신년사에서 “일자리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자화자찬했다. 이 말 자체도 과장이지만, 늘어난 일자리 중 비정규직이 많다.
몇 달 전 통계청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약 748만 명이라고 발표했다(2019년 8월 기준). 이는 전년 대비 86만 7000명이나 증가한 수치였다. 통계청은 집계 방식의 변화 때문에 새롭게 통계에 포함된 비정규직 부문이 있다고 변명했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비정규직은 최소 36만 7000명이나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약속이 거짓말이었음이 통계로도 드러난 셈이었다.
특히 시간제 노동자가 크게 늘었다. 최근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기업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고 노동시간 쪼개기, 초단시간 근로를 확대해서 오히려 월 임금 인상률이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초단시간 노동자가 증가하고 월 임금 격차 확대되고, 저임금 계층이 증가했다고도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역대 최저 수준으로 결정한 것도 모자라 최저임금 인상률을 제약하기 위해 추가적인 개악을 하려 한다.
한편, 보수 언론들은 정규직 고용이 확대되려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파견근로를 확대하는 등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매일경제〉)고 주장한다. 기업을 살리고 경제를 살려야 미래도 있다면서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비정규직 제로”를 진지하게 추구하려면 이런 이윤 논리에 정면 도전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정반대로 ‘돈 안 드는 정규직화’를 제시하며 공공부문 정규직화 약속을 배신하고, 시간제 저질 일자리를 늘리고, 민간 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했다.
비용 절감
한국에서는 특히 1997년 IMF를 불러들인 경제 위기로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가 확대됐다. 기업주들은 이윤 확대를 위해 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늘려 왔다.
비정규직이란 고용 기간이 한시적이거나(기간제 등), 고용 형태가 간접고용(파견, 용역, 도급, 사내하청)이나 특수고용이거나, 전일제가 아니라 파트타임인(시간제 등) 일자리 등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 노동자들은 고용, 임금, 노동조건, 각종 복지 등에서 차별을 받는다.
IMF 경제공황 당시 기업주들은 대규모 정리해고와 조기 퇴직 압박으로 인력을 감축했다. 동시에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외주화를 늘렸다.
그 뒤로 실업률이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얻게 된 일자리는 훨씬 불안정하고 저임금이었다. 제조업에서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늘었고, 공공부문에서는 직접고용 노동자들이 외주화되거나 간접고용으로 밀려났다. 직접고용 또는 정규직이었던 화물차·건설기계 노동자, 보험모집인 등은 자영업자로 둔갑했다.
비정규직 확대는 경제 위기 시기에 떨어진 이윤율을 만회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사용자들은 비정규직에게 정규직과 같은 일을 시키면서 절반밖에 안 되는 임금을 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각종 복지 혜택,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비정규직 확대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기에도 용이하다. 파견·용역의 경우 고용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특수고용의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의 적용과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인정을 기피할 수 있다.
비정규직을 활용해 경기 위축 때 인력 규모를 상대적으로 쉽게 조정하려는 목적도 있다. 정규직을 해고하는 것보다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이는 1987년 이래로 강력해진 노동조합의 저항을 우회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반대로 이는 기존 노동조합들이 외주화 등 비정규직 확대를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연대해 투쟁하는 게 중요한 이유이다.
단결·투쟁의 잠재력
정부와 사용자들은 차별받는 집단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고 단결하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 사내하청과 정규직 등으로 말이다.
또한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고용 불안과 임금 하향 압력을 부추겨서 정규직들이 조건 개선에 쉽게 나서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이 심해질수록 사용자에게 맞설 단결의 힘이 약해질 것이다. 한 작업장의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서로의 투쟁에 대해 대체인력 투입 등 파업 파괴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일각의 주장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어느 한 쪽의 조건 악화는 다른 한 쪽의 조건 악화로 이어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이 중요한 이유다.
비정규직이 크게 확대되자, 일각에서는 이제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이 필요할 때 쓰다가 버릴 수 있는 ‘일회용’이 됐다는 주장들도 나온다. 특히, 최근 플랫폼 노동에 대해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많다. 이런 주장들은 심각한 불안정성 때문에 비정규직이 싸우기 힘들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도 단기 비정규직을 무한정 늘리기는 어려움이 있다.
비정규직 고용은 사용자들에게 인건비 감축과 책임 회피 등 이익을 가져다 주지만, 동시에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잦은 이직은 사용자에게 골칫거리다.
사용자들은 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비정규직이 대거 늘어난 시기에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량은 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는 계약 기간을 연장하면서 장기간 일해 온 노동자도 적지 않다. 불안정성이 크다는 시간제 중에도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자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에서 사용자들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노동자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이는 비정규직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2000년대부터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 확대돼 왔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많이 벌어졌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조직되고 저항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섰을 때, 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잠재력이 있음을 거듭 보여 줬다.
이 글은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김하영 지음, 책갈피)을 많이 참고해서 썼다. 비정규직 쟁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