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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브렉시트와 유럽연합 ─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세계경제의 블록화를 전망한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세계화 종말의 징후일까?

1월 31일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브렉시트)했지만 정국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무엇보다, 2016년에 영국에서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된 지 3년 반이 지난 지금은 당시보다 세계경제에서 쟁투가 훨씬 치열해졌다.(단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주요 경제 블록들(미국·중국·유럽연합) 사이의 쟁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도 점차 격렬해지는 추세다.

국민투표 이래 3년 동안 영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브렉시트를 둘러싼 사태 전개를 통제하지 못했다. 브렉시트를 되돌리려던 영국 대자본들은 정치권과 날카롭게 갈등했다. 그 와중에 총리가 두 번 바뀌었고(둘 모두 조기 사임했다), 총선을 두 번 치렀으며(영국 노동당 역사상 가장 좌파적인 당 대표 제러미 코빈은 화려한 선전과 큰 패배를 모두 겪어야 했다), 의회는 한때 거의 마비됐다.

유럽연합 지배자들에게도 브렉시트는 골치 아픈 일이었다. 회원국 중 경제 규모가 2위이고 군사력은 가장 강력한 데다 금융의 중심지인 강국이 턱밑의 경쟁국으로 바뀐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롯한 갈등은 3년이 넘게 현재 진행형이다.

브렉시트에는 당시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를 비롯한 주요 제국주의 열강도 난색을 표했다. 브렉시트 때문에 제2차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구축돼 있던 국제 질서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세계적 사건을 두고,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글들을 엮은 책이 새롭게 나왔다. 캘리니코스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자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로,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풍부하게 전개해 왔다. 그의 저서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은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읽히고 있다. 이번 신간에서도 관찰자적 태도가 아닌 현실에 굳게 발 디딘 실천가로서 문제에 접근한다는 저자의 탁월함이 잘 드러난다.

세계경제가 대침체로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캘리니코스는 브렉시트의 의미를 화두로 세계 자본주의 핵심부의 갈등을 종합적으로 짚어낸다. 캘리니코스는 한때 세계 최강이던 영국 자본주의가 ‘여러 열강 중 하나’가 되면서 겪은 변화를 분석하고, 브렉시트의 배경에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를 지적한다. 장기 불황 속에서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반발이 분출하는 등 체제의 핵심부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오늘날 이런 분석은 더욱 각별하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지정학적 경쟁을 키우는 동학을 짚고 이것이 (유럽연합 같은) 지역 블록에 미칠 영향을 다루는 부분이 날카롭다.

국제주의

한편,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정치적 항의의 의미가 있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인종차별적·국수주의적 표심의 결과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이는 서민 대중이 자신들의 삶이 파탄 난 책임을 ‘신자유주의 전도사(유럽연합)’에 물었음을 뜻했다.

캘리니코스는 세계 정세 변화가 브렉시트 투표에 얽힌 여러 정치학과 어떻게 갈마드는지, 또 국제주의적 좌파가 왜 유럽연합이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독립적 대안을 추구해야 하는지도 다룬다. 그런 맥락에서 캘리니코스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진보 지지자들에 특히 뼈아팠던 2019년 12월 12일 총선 결과를 분석한 글은 매우 탁월하다.

세간의 여러 분석들과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주요 원인은 브렉시트에 대한 잘못된 태도 때문이었다. 노동당 제러미 코빈 지도부는 좌파적 브렉시트 지지와 브렉시트 철회 사이에서 동요했고, 후퇴와 타협 끝에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데에 실패했다.(집요하게 코빈을 반대했던 노동당 의원단과 당내 우파의 탓도 컸다.) 반면 보수당 총리 보리스 존슨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교착 상태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도박을 걸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한 진보·좌파들과 좌파적 유럽연합 탈퇴 운동을 벌였던 반자본주의자들이 모두 패배했고 역사상 가장 우파적인 보수당 정부가 들어섰다.

캘리니코스는 이 선거를 돌아보며 브렉시트를 둘러싼 쟁점과 그 배경에 있는 계급적 이해관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세계경제 위기와 맺는 연관성을 면밀히 다뤘다. 이런 분석들 끝에 캘리니코스는 명료하고 구체적인 실천적 함의를 도출한다. 변혁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덕목이 빛나는 부분이다.

그 밖에, 이 책에는 캘리니코스의 분석들을 접할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실증적·역사적 글들을 몇 편 덧붙였다.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방식으로 발표된 글을 엮다 보니 일부 반복이 있을 수 있지만, 세계 자본주의의 중대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보고 모두 그대로 실었다.

세계경제가 다시 대침체에 빠지리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2020년에 독자들이 명료한 이해를 얻고 진정한 국제주의 대안을 발전시키는 데 캘리니코스의 분석이 도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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